안 바뀌려나 봅니다. 박근혜 대통령 말입니다. 차기 총리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내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드는 생각입니다. 또다시 검찰 출신의 법조인을 총리로 내정하다니 참으로 답답할 따름입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고위 공직자의 부패와 비리를 수사하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지냈다는 점을 고려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 경력만으로 세월호 참사로 들끓고 있는 민심을 반영해 대통령 스스로가 약속한 관료제 개혁을 주도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많은 분이 박 대통령이 그럴 줄 몰랐느냐고 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혹시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아니,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국민담화가 정말 진심이었다면, 초당적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경쟁상대인 야당과 권력을 나누기가 싫어 거국내각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야당과 보조를 맞추어갈 수 있는 참신성과 개혁성과 정치력을 갖추었다고 -대통령 자신의 수첩이나 여야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평가받는 인물을 총리로 발탁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안대희 전 대법관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자신한다는 것인가요? 차라리 자신이 갖고 있는 인적 자원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고백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은 것일까요? 이 기회에 차라리 내정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외치에 힘을 쏟아 그리하고 싶다는 '통일 대박'의 꿈에 매진하면 되겠다는 생각은 안 해 본 것일까요?
관피아 척결은 말로만 되는 일이 아닙니다. 언제 관료사회의 병폐를 고치지 않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까. 문제는 힘이었고, 실력이었습니다. 매 정권마다 관료사회 개혁을 외쳤으면서도, 민관 유착을 혁파하겠다고 했으면서도 왜 못했습니까. 관료와 거대 이익집단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보수정치 세력만으로는, 또 그것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진보정치 세력만으로는 개혁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보수는 비정상적 유착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진보는 실질적인 문제 해결의 지점과 수단을 확보할 수가 없었습니다. 보수정부 들어 관료가 더욱 힘을 발휘하고, 민주정부 10년, 특히 노무현 정부의 실패 요인으로 관료 장악 실패가 거론되는 이유입니다.
보수든 진보든 관료사회 개혁을 실제 이루고자 한다면 힘을 합쳐야 합니다. 관료사회 개혁을 위해서는 보수든 진보든 관료사회 개혁을 향한 국민적 열망에 기대어야 합니다. 보수와 진보가 힘을 합쳐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보수와 진보가 힘을 합칠 때, 더 많은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바쁜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며 관료사회 개혁을 일관되게 목소리 높여 외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 어느 때보다도 관료사회 개혁에 대한 열망이 높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때 아닙니까. 이런 때에 관료사회 개혁을 하지 않으면 도대체 언제 하겠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도대체 박 대통령은 왜 안대희 전 대법관을 총리 후보로 선택한 것일까요? 분명 반대세력의 비판 여론에 직면하게 될 것일 텐데 말입니다. 그것을 몰랐던 것일까요? 지금 당장으로는 대국민담화 직후 40퍼센트에서 다시금 50퍼센트대로 상승한 지지율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대국민담화 중에 흘린 눈물은 가짜인 것입니다. 설사 담화를 하면서, 이전과 달리 슬픔을 못 이겨 눈물을 흘렸다고 해도 그 눈물은 가짜입니다. 왜냐고요? 정치인의 눈물은 흘렸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약속한 것을 실제로 추진해서 결과를 이룰 때 진심 어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 그래서 박 대통령이 유족을 만나 눈물도 안 흘린다는 점을 꼭 나쁘게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린 나이에 워낙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했고, 부모님 모두를 총탄에 잃었다는, 평범한 사람이 겪지 못한 크나큰 상처를 안고 살아온 이력을 감안할 때, 아예 눈물이 말라 그럴 수도 있고, 약해 보이면 안 된다는 본능적인 자기방어 심리가 있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정치인의, 대통령의 눈물의 의미는 잘 알고 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눈물 흘리며 한 약속의 엄중함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닌가 봅니다. 참말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 어렵게 대국민담화를 하고, '안전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해놓고선 바로 중동으로 원전 세일즈를 떠난 것을 보면서도 '저게 뭐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물음을 던질 필요조차 없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어쩌면 야당,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은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박 대통령의 연이은 '실기(失氣)'를 보면서 말입니다. 아마도 김기춘 비서실장은 유임시킬 것이라고 보면서, 지지율 상승도 소폭에 그치고 말 것이고, 이제 이기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방선거 최대의 승부처, 서울 시장 선거에서도 박원순 시장이 정몽준 후보와 격차를 크게 벌리고 있고, 인천도 송영길 시장이 친박 유정복 후보를 앞서고 있으니 더욱 승리를 자신할지도 모릅니다. 경기마저도 김진표 후보가 남경필 후보를 바짝 추격하고 있으니 더욱 더 그러할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위기감을 느낀 보수층의 결집뿐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때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참사 효과, 즉 세월호 심판에 기대어 선거전을 벌이면 박 대통령에게서 이탈한 중도층이 다시 박 대통령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예전처럼 세월호 심판론에 동의하는 유권자들의 투표참여를 높이는 것이 관건이라고 볼지 모르겠습니다. 크게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냥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야당은 세월호 효과에(만) 기대서는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다시 한 번 큰코다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회적 사건이 자동적으로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가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그 구체 내용을 공개할 수가 없습니다만) 일간 신문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적지 않은 유권자, 10퍼센트가 넘는 유권자가 지지후보를 변경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여당 후보에서 야당 후보로 말입니다. 야당에게는 큰 희소식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유권자가 애초의 지지를 철회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지지후보를 결정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최근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선 '앵그리 맘'이 세월호 심판을 위해 여당이 아닌 야당을 찍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유의미한 정도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엄마들이 분명 화가 난 것은 맞는데, 아직까지는 그것이 야당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뚜렷한 징후가 없다는 것입니다. 야당에 대한 신뢰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야당을 '안전 대한민국'을 위한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안전이 단지 구호나 구도 짜기의 언어가 아닌, 뚜렷한 '실천 계획'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실현 가능성 있다고 여겨지는 구체적인 정책을 내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여당도 바보가 아닙니다. 안전 의제를 포괄할 것이고, 현실적인 실현 능력을 강조하면서 물타기를 할 것입니다. 그것을 뚫고 자신들의 정책이 더 효과적이고 현실적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야당은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에게조차 자신들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합니다.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며, '월드컵 국가대표 선수들의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등 그 방법을 모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기억의 방법도 선도적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장 월드컵으로 나라가 떠들썩해지면서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처럼 추모일을 만들겠다는 어떤 약속도 분명히 하고 있지 않습니다. 시민들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들을 미워하고 믿지 않는다고 해도 눈과 귀를 열어줄 약속을 만들어내고 알려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국회에서 여당과 국정조사 범위 등을 둘러싸고 '밀당'만 하고 있습니다. 투표율 올리는 것이 다시 관건이라고 하면서도 사전투표제 효과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학교에서 만난 대학생들 중 사전투표제를 잘 알고 있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습니다. 여전히 무능함과 무기력함의 그물망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야당이 정말 승리할 생각이 있다면, 다시 말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효과에 기대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실력과 실천에 기대어야 합니다. 오히려 세월호 참사는 실력과 실천력을 가진 정치세력에 대한 선호를 한층 더 높이는 것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야당은 잘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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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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