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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죽음들, 되찾아야 할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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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죽음들, 되찾아야 할 희망

[김민웅 인문정신] 용산 참사, 쌍용차 해고자 자살 그리고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의혹 그리고 진상

세월호 참사 한 달째를 넘기면서 우리는 사건과 구조(救助)의 진상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의혹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무엇을 뜯어 고쳐야 하는지는, 진실이 무엇이었는가를 묻고 밝히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 진실은 두 가지로 조명해봐야 할 것이다. 하나는 현장과 관련된 직접적인 요인들이며, 다른 하나는 그 현장을 떠받치고 있는 우리사회 내부에 장착된 근본문제다.

지금까지 제기된 사고와 구조 현장에 대한 의혹은 하나 둘이 아니다. 사고의 원인에서부터 사고 발생 시각, 사고발생 보고 시간과 대상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도 명확히 모른다. 애초에 다른 배를 타고 가기로 되어 있던 학생들이 왜 갑자기 세월호로 바꿔 타고 가게 되었는지부터 불분명하다. 빠른 속도로 항해하다가 방향을 급격하게 틀어 생긴 침몰이라고 한다면, 왜 그렇게 틀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고, 이런 주장과는 달리 사고 나기 전 세월호가 한 시간 가량 사고지점에 그대로 떠 있었다는 주변 어선들의 증언이 나온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사고 발생 시각이 언제인지, 그리고 사고 발생 보고를 누가 가장 먼저 받았고 조처를 취했는지는 지속적인 의혹사안이다. 여기다가 사고 발생에 대해 국정원에 보고한 사실까지 드러난 상황은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해상사고에 대해 국정원에 보고할 의무가 유독 세월호에 부과된 까닭도 아직 정확히 해명된 바 없고, 사고보고에 접한 국정원이 무엇을 했는지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 뿐만 아니다. 자기들이 먼저 살려고 탈출했다는 선장과 승무원들은 가까운 진도를 놔두고 왜 먼 제주 관제소에 먼저 사고를 알렸는지? 그게 정말인지? 이건 제 목숨부터 구하려 먼저 빠져 나왔다고 알려진 사람들이 취할 행동방식은 절대로 아니지 않은가? 이들은 승객의 안전이 진짜로 안중에도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승객의 구조는 이미 해경과의 교신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고 그렇게 행동한 것일까?

수사관 집에서 간 선장은 누구를 무엇 때문에 만난 건가? 아니면 그냥 잠만?

구조과정에 들어가면 의혹은 증폭된다. 침몰선박에서 승객들을 위해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은 채 이루어진 선장과 승무원들의 일사 분란한 조직적 집결과 탈출은, 이들이 있는 선수(船首)에 해경의 구조선이 직접 접선한 것으로 가능했다. 해경은 세월호 침몰에 함께 빨려들어 갈 우려 때문에 구명보트만 배 근처로 보내 탈출승객을 구했다고 했지만, 선수로는 직접 출동했다. 승무원 복장이 아니라서 일방 승객인 줄 알았다고 했지만 선수는 조타실이 있는 일반승객 통제구역이라는 것을 해경이 모르지 않았을 테고, 승객들의 탈출경로는 선미로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상식이다. 구조에 나선 어선들이 모두 선미(船尾)로 집결했던 상황은 이를 그대로 입증해준다.

더군다나 내부에서 창문을 깨고 탈출하려는 시도가 동영상으로도 확인된 상태에서, 해경이 아직도 시간이 충분한 때 선박 창문으로 내부 사정을 확인하고 긴급 구조조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불가사의하다. 해경이 조타실에 진입해서 탈출방송이 가능했다는 것을 포함해서, 구조가 적극적이었다면 무수한 인명구조가 현실이 되었을 것이라는 증언은 하도 나와서 이건 그저 무능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행동지침이 그랬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의문까지 생겨나고 있는 판이다.

16일과 17일 이틀간의 구조 조처가 미미했거나 부재했던 상황은, 학생들이 침몰하는 배에서 죽기를 기다린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지 않은가? 구조를 못한 것이 아니라, 안했다고 느껴진다는 어느 고등학생의 말은 십대소년의 감정적 과잉에 따른 발언이었을까?

게다가 어떻게 된 것이 해경 가운데 어느 하나도 죽음이 목전에 처한 아이들이 눈앞에 있는데 인간의 본능적 윤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수가 있는가? 그러면 이들의 임무는 선장과 승무원임을 미리 알고 이들을 먼저 빼내는 것이 목적이었고, 여타 탈출승객 구조는 상황에 따라 취한 불가피한 조처였는가? 아니라면, 당연히 선박 안에 있는 이들에 대한 절박한 구조행위를 하게 마련이 아닌가? 군대와 같은 조직인 해경이 현장에서 구조가 무능하면, 현장 책임 지휘자는 엄청난 문책을 받을 텐데 그러고도 무사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일까? 정말 무능해서 이렇게 된 것인가? 그러면 그렇다고 말하기를 바란다.

선장의 신분이 확인된 이후 그를 수사관의 집에서 재운 대목은 일련의 의혹 가운데 핵심 고리가 된다. 피의자의 신분보호를 위한 조처라고 하는데, 그건 있을 수없는 변명이고 이 시간 수사관 아파트의 감시 카메라의 2시간 분량이 삭제된 문제는 진상규명 작업에서 결코 빠질 수없는 대목이다. 민변은 이미 이 대목을 짚고, 선장이 만난 사람이 국정원인가, 청와대인가를 묻고 있다. 전체 흐름으로 보자면, 선장과 승무원이 해경 구명보트가 아니라 구조선으로 먼저 구조되고 수사관의 집에 신변을 확보하는 조처가 취해진 것은 서로 분리된 사건인지, 아니면 연결되는 사안인지도 의혹의 대상이다.

ⓒ 프레시안(최형락)


자본과 권력의 동맹이 저지르는 만행

이 외에도 선주, 인양업체 언딘, 해경의 관계 등 정리해야 할 사안이 숱하다. 그런데 사고와 구조 현장을 전체 맥락에서 보자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본과 권력의 동맹이 저지른 일련의 일들의 연장선에 이 사건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과적(過積)의 문제도 그렇고 안전점검의 허술함도 그렇고, 낡은 배의 선령(船齡)규제를 풀어준 것도 모두 이 자본과 권력의 동맹체제 아래 자행된 만행이다. 그 결과가 302명의 목숨이 억울하게 수장(水葬)된 참사다.

이런 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자행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용산참사요, 쌍용차 해고자들의 자살이다. 이들의 죽음은 분향소 하나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처지에 놓였고, 겨우 마련된 분향소도 공권력에 의해 짓밟혔다. 자본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나서, 죽은 이들과 그 가족들을 권력이 다시 한 번 더 잔인하게 밟아버린 것이다.

이러한 권력과 자본의 생리는 변하지 않아서,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여지없이 그 면모를 드러내지 않았던가? 권부의 중심에서는 조문 연출이라는 희대의 비극적 코미디를 선보이고, 유감 어쩌구 하면서 유가족들을 도리어 지탄의 대상으로 몰아갔으며, 거대자본을 움켜쥔 자의 아들은 “미개” 운운으로 희생자 가족들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여기에 자본과 권력의 종이 된 대부분의 언론들은 엉터리 왜곡 보도와 권력의 입에 맞춘 내용으로 사태의 진실과 본질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고 말았다.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죽음

CBS 라디오 피디 정혜윤은 바로 이런 현실을 고통스럽게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전해준다. 다음은 <그의 슬픔과 기쁨(후마니타스 출간, 2014년)>의 한 대목이다.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불길이 오른 곳은 남일당 옥상이었다. 그곳에는 망루가 세워졌었다. 망루를 세운 지 하루 만에 경찰 특공대 진압이 있었다. 이 불길로 경찰 한 명을 포함한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용산참사의 현장보고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후 쌍용차 노동자들의 운명과 이어진다. “특공대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운명은 곧 연결될 것이었다. 특공대원들은 쌍용자동차 파업 진압에도 동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쌍용차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2009년 1월에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2009년 4월 8일, 쌍용 자동차는 2천 6백 46명의 정리 해고안을 발표했고, 이것은 기나긴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난에 찬 5년간의 투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25명의 해고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5번째 자살자는 세월호 사건이 한 참 진행되는 중에 생겼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무도 그 죽음을 주목하지 않았다. 생명가치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고 있어도, 죽음의 숫자가 더 압도했던 탓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이든 열이든, 또는 수백 명이든 목숨은 다 존귀한 것이 아닌가? 자본의 기만과 폭력, 권력의 야만이 결합해서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형태만 다르지 그 본질은 동일하다. 사람보다 돈이 먼저이고, 사람보다 권력이 먼저인 세상을 유지하려는 자들의 범죄로 인간이 살해당하는 현실은 용산참사이든 쌍용차 해고자 자살이든, 세월호이든 서로 다르지 않다.

“쌍용차 사태 첫 번째 자살자는 비정규직이었어요. 2009년 4월 8일이었는데 강원도 횡성의 산에서 목매달아 죽었어요.” 첫 희생자였다. 그러나 이러기 전에 이미 파업투쟁 현장은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자본과 권력의 폭력이 마음껏 자행되는 현장이었다. 해고자의 자살은 그 결과였다. “평택공장 옥상 상공 1백 미터 위를 경찰, 소방, 방송헬기 등 세가지 종류의 헬기가 날아다녔다. 징그러울 정도로 덥고, 징그러울 정도로 비도 내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 여름, 경찰 헬기에서는 봉투에 넣은 최루액이 살포되었었다. 그해 뿌려진 최루액의 95퍼센트 가량이 쌍용자동차 공장 옥상에 쏟아져 내렸다.”

그러고 나서 투입된 특공대는 어떻게 했을까? “사람이 맞아서 떨어지는데 방패로 막 찍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심정이 어땠겠어요? 굴뚝에서 생각했어요. 우리는 살아서 내려갈 수가 없을 것 같다.” 특공대는 노동자들을 거의 죽을 정도로 폭행했다. 살아서 내려온 사람들은 이후 하나씩 자기 목숨을 버렸다. 누구는 자기 집 화장실 손잡이에 목을 매고 자살했고, 누구의 아내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그 아내의 남편은 아이들을 남겨 놓고 뒤따라 저 세상으로 갔다.

그렇게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이 가고 있었다. 생계가 막히고 동료들이 자살하는 현실에서 이들의 고투와 현실은 한국사회에서 거의 철저하게 무관심과 방치의 대상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가혹했다. 2013년 3월 3일, 자살자들을 위해 마련된 대한문 앞 분향소에 불이 났다. 방화였다. 그리고 이곳의 분향소는 이후 폐쇄되어버린다. 죽은 이들의 목소리가 이 세상에 들리지 않게 하려는 권력의 흉계였다.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또 다시 죽은 이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똑똑하게 들리도록 해야 하는 현실에 처해 있다. 그리고 권력은 이 목소리를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자본과 권력은 시간이 지나고 망각되기를 기다릴 것이다. 자본과 권력에 봉사하는 언론은 이걸 위한 작업을 어떻게든 교묘하게 하기 위해 간계를 짜내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세월은 많이 변하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 자신도 이 5년의 시간을 통해 달라졌고, 우리 사회도 자본과 권력의 동맹과 탐욕을 용서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여가고 있다.

한 노동자는 말한다. “대한문에 있으면서 인생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2009년에는 다 우리보고 잘못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쌍용차 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문제일 수 있겠다고 말을 하는 분들이 많아요.” 고통의 공감과 연대가 알게 모르게 확산되어 왔던 것이다.

이 힘을 느끼면서 또 한 노동자는 지난 5년간의 슬픔과 기쁨을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가 이명박 정권에 대항해서 혹은 어떤 정권에 대항해서 싸운 게 아니에요. 우리는 살려고 했어요. 살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새로운 사람이고 싶어요. 지난 5년 동안 있었던 일을 잊지 않는 새로운 사람이고 싶어요. 77일 파업이 5년 투쟁을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었다면, 지금 보낸 5년이 내 삶을 이끌고 갈 원동력이었으면 좋겠어요.” 이 말은 지금 우리의 형편에 그대로 관통된다. 지난 한 달 동안 우리가 겪은 비극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갈 원동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진실 그리고 죽음

이들의 목소리를 더 들어보자. “노동 인문학이 적극적으로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어요. 먼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양심이 없으면 운동이 안되더라구요.” 우리사회의 핵심을 찌른 말이 아닌가?

먼저 사람이 되지 않으면,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는 대통령, 책임의식 없는 고위관리, 탐욕스러운 기업, 윤리적 사고가 부재한 정치인과 언론인 등 무수한 야만의 주인공들이 이 사회를 쥐락펴락하게 된다. 이것은 교육의 문제이며, 정치의 문제이자 문명의 문제이다. 인간성을 바로 세우는 의식의 합의가 굳건하게 뿌리내리지 못하면, 인간의 생명을 짓밟는 폭력은 끊임없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인간들이 주축이 된 곳에서는 함께 마음을 모아 협력하면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은 극도로 어렵다.

<그의 슬픔과 기쁨>에서 한 해고 노동자는 쌍용차 문제의 중심에는 “진실과 죽음”이 있다고 말한다. 누가 무엇 때문에 이들을 대량해고 시켰고, 폭력으로 몸이 부서지게 했으며 마침내는 죽음으로 몰아갔는지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도 다르지 않다. “진실과 죽음”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망각의 정치에 휘둘려 세월호 가족들 가운데 누군가를 사회적 타살인 자살로 몰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은 우리사회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처참한 사태다.

인간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가진 권력은 자본의 야만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한 자본과 동맹을 맺고, 노동자들을 짓밟고 가난한 이들을 멸시하며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억압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세를 갖지 않은 권력은 민주주의에서 존재할 이유가 없다. 도리어 소멸되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가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를 일깨우고 있다. 생명을 귀히 여기고 인간의 권리를 존엄하게 받아들이며, 자본과 권력의 탐욕을 절대로 묵과하지 말라는 원칙이 우리의 일상의 삶이 되어야 한다. 그때 우리의 슬픔은 새로운 미래를 길어 올리는 두레박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흘리는 눈물과 솟아오르는 분노가, 마침내 희망의 의지로 변모하는 날을 위해 진실추적과 규명을 모든 힘을 쏟아 이루어내야 한다. 진실을 알지 못하고는 정확한 해답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이걸 적당히 넘기려는 자와 세력은 모두 우리의 적이다. 이들은 생명을 희생시키는 사탄의 자식이다. 오직 진실만이 사탄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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