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상상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원을 체험하고 싶다면 올 여름, 몽골학교(교장 이평래, 한국외대 연구교수, 몽골학박사)가 떠나는 몽골 탐사에 참가하십시오. 이번 탐사지는 몽골만의 일망무제의 초원과 대자원을 가로지르는 강, 호수 그리고 삼림이 어우러진 가장 몽골다운 풍요로운 땅입니다.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 동부 초원으로, 칭기스 칸의 고향을 찾아 떠납니다. 칭기스 칸을 낳고 기른 대자연은 어떤 모습일까. 이번 탐사는 7월 29일(화)부터 8월 6일(수)까지 9일간 진행되며 국내 최고의 몽골 전문가 이평래 교장선생님이 직접 인솔하십니다.
칭기스 칸의 고향 다달 솜은 러시아 국경지대에서 가까운 몽골 동북쪽 끝에 있습니다. 다달 솜은 세계적 위인의 탄생지로서 유명할 뿐 아니라 캠프의 러시아식 통나무집과 주변의 아름다운 적송(赤松) 군락 그리고 칭기스 칸 탄생지 바로 앞의 안개 낀 고르왕 노르(세 개의 호수) 등이 어우러져 수려한 풍광을 자랑합니다.
다달 솜 거주민은 몽골족의 한 지파인 부랴트족으로 몽골족 중 우리와 생김새가 가장 비슷합니다. 이들은 원래 바이칼 호 주변에 살다가 러시아 혁명 무렵 이곳으로 이주해 왔습니다. 흔히 한민족과 몽골족은 한 계통이라고들 합니다만, 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칭기스의 고향 마을 다달 솜입니다.
몽골 시인 S.돌람은 몽골 초원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맑고 푸른 하늘
맑고 푸르게 하는 자 이 하늘에서, 우리는
지혜와 밝은 지성을 배운다.
끝도 없이 광활한 이 초원에서, 우리는
순결하고 넓은 마음을 얻는다.
멈춤 없이 앞으로 물결쳐 흐르는 강물에서, 우리는
목적한 곳에 이르는 믿음을 생각한다.
수직으로 연이은 회색빛 산, 산에서 우리는
용기와 인내의 이야기를 듣는다.
분홍빛 작약꽃 그에게서, 우리는
가슴을 성스럽게 하는 사랑을 발견한다.
즐겁고 명랑한 여름, 우리는
뜨거운 청춘의 생명력을 느낀다.
누렇게 변한 초원의 가을에서
고통을 맛보는 자의 인고를 생각한다.
균열되는 소리를 낼 듯한 겨울의 희디흰 성에에서, 우리는
백발의 생애를 읽는다.
풍요롭고 드넓은 고향에서, 우리는
삶은 영위하는 법칙을 깨닫는다.
다달 솜으로 가는 동몽골 각지에는 끝이 안 보이는 대초원이 펼쳐져 있으며, 그 초원을 헤집고 몽골의 젖줄인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오농 강과 헤를렝 강이 흐르고, 그 주변에는 에머랄드 빛깔의 초원 호수와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몽골의 시골 마을들이 펼쳐집니다.
특히 1206년 칭기스 칸이 몽골제국의 칸으로 즉위한 하더 아랄 주변에는 ‘아오르가’ 궁전터, 몽골비사 <성서(成書)>기념비, 박물관 등 칭기스 관련 유적과 아울러 길이 30km에 20km 너비의 일망무제의 대초원이 자리합니다. 영화 <칭기스 칸>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초원으로, 여기에서 몽골 초원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어린 시절 아버지가 적대세력에게 독살된 후 친족에게 버림받은 칭기스 일가가 들쥐를 잡아먹으면서 연명하고 제기의 발판을 마련한 역사현장인 후흐 노르, 마치 동화 속의 이상한 나라를 본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몽골의 시골 마을 빈데르 솜, 그 주변에 있는 초원 속의 호수 빈데르 호와 그 바로 앞에는 있는 오색 천으로 장식된 초원 속의 성황당 빈데르 오보는 영원히 잊지 못할 몽골의 정취를 심어줄 것입니다.
몽골 시인 D.나착고르지는 몽골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나 태어난 고향
헨티, 항가이, 사얀 같은 높고 아름다운 산맥들
북방을 꾸며주는 숲, 산줄기, 산들
메넹, 샤르가, 노밍 같은 광막한 고비들
남방을 상징하는 모래 언덕의 바다들
이는 내가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헤를렝, 오농, 톨 같은 맑고 깨끗한 강들
모든 이에게 약이 되는 시내와 샘과 광천(鑛泉)들
훕스굴, 오브스, 보이르 같은 깊고 푸른 호수들
사람과 가축이 먹는 웅덩이, 늪의 물들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오르홍, 셀렝게, 후후이 같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강들
광산 자원의 보고인 수많은 산과 고개들
옛 기념비들, 유적들, 도시와 성터들
먼 곳으로 갈 수 있는 넓고 단단한 길들,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멀리서 번쩍이는 눈 덮힌 고산준령들
푸른 하늘 활짝 갠 거친 들과 소금 벌들
먼 모습이 보이는 우뚝 솟은 만년설 봉우리들
사람의 마음을 펴주는 드넓은 초원들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항가이 고비 사이의 드넓은 할하(*외몽골) 땅
유년시절부터 종횡무진 말달리던 곳
온갖 짐승을 몰이 사냥하던 기나긴 산등성이들
준마를 타고 경주하던 분지며 아름다운 협곡들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바람 끝에 흔들리는 싱싱하고 부드러운 푸새
탁 트인 초원에는 번쩍거리는 갖가지 신기루
의적들 모여들던 험준한 땅이 있는 곳
제사가 이어져온 수미산 같이 큰 오보(*돌무지 신앙대상물)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부드러운 풀이 자라는 아름다운 초장이 있는 곳
이리 저리 누빌 수 있는 평평하고 아름다운 땅
사시사철 마음대로 유목할 수 있는 목영지와
오곡이 자랄 토양을 가진 흙이 있는 곳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요람 같은 아름다운 산에 조상들을 모신 땅
자자손손 자식을 낳아 기르는 곳
5종 가축이 초원 가득 풀을 뜯는 목영지
몽골 사람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대지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한겨울 살을 에는 추위에 눈과 얼음으로 덮여
수정빛 은빛으로 반짝이며 빛나는 대지
한여름 좋은 시절에 꽃과 잎이 피어나고
철새들 멀리서 날아와 끼룩대는 대지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알타이 흥안령 사이의 풍요로운 처녀지
내 아버지 어머니가 머무른 영원한 운명의 고향
금빛 햇살에 평화롭게 자리잡은 대지
은색 달빛에 영원히 빛나는 곳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흉노(匈奴)이래 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던 곳
푸른 몽골 시대(몽골 제국시대)에 힘차게 일어선 곳
년년(年年)에 몸에 배고 세세(歲歲)에 정이든 고향
새 몽골의 붉은 기가 뒤덮인 곳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우리가 나고 자란 겨레의 사랑하는 고향
호시탐탐하는 적이 오면 당장 차서 쫓아버린다.
복된 이 땅에 혁명의 국가를 흥륭(興隆)케 하여
후세의 새 세상 위해 막중한 공을 세우리.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몽골 땅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70여만 년 전입니다. 몽골 전역에는 이들 이들 선사인과 그들의 후손들이 남긴 많은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과장하면 몽골은 국토 전체가 문화유산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유적과 유물이 풍부합니다. 우리가 답사할 아라샹 하드도 그중 하나입니다. 아라샹 하드는 빈데르 오보 부근에 있는 거대한 바위인데 그 위에는 투르크어, 거란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몽골어, 티베트어 등 20여 개의 문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몽골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그 주위에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시대 등 선사유적지가 산재하고, 흉노와 거란 시대 관련 유물도 발견되었습니다. 몽골 초원이 살아있는 박물관임을 실감할 수 있는 유적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세계자연유산인 테렐지와 칭기스 칸 시대 몽골사회를 재현해 놓은 민속촌에 들를 것입니다. 민속촌에서 우리는 13∼14세기 몽골군의 병영과 공방, 군사훈련장, 학습장을 둘러보고, 몽골 전통공연도 보고 전통음식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답사는 도강 하드에서 끝납니다. 도강 하드는 울란바타르 인근에 있는 캠프로 기암괴석과 수려한 경관 때문에 ‘몽골의 금강산’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캠프 주변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지천에 널려 있고 뒷동산 바위산에는 항상 안개가 자욱하여 신비를 자아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솔롱고 캠프만의 특식, 몽골의 유목생활 체험(승마, 유목가정 방문, 양요리 전통음식), 야생화 군락지 탐방, 기도 바위와 오보 탐방 등의 민속기행, 쏟아지는 별밤 체험과 명상의 시간을 통하여 지친 몸을 충전하고 세파에 시달린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이번 답사를 통하여 여러분은 세계적인 위인 칭기스 칸의 체취를 느끼고, 몽골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눈으로 보고, 몽골인들의 고된 삶을 체험하고, 그들의 삶 속에 배어 있는 신앙의 의미를 배울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답사 내내 대초원에 감탄하고, 그 초원 속을 흐르는 거대한 강물에 감사하고, 지천에 널린 야생화에 취하고, 기암괴석에 반하고,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에 홀려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참마음의 평안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한국 최고의 몽골 전문가인 이평래 교장선생님이 동행, 깊이있고도 재미있는 <길 위의 명강의>를 해주실 것입니다.
이번 주요 탐사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허더 아랄]
몽골인의 젓줄인 헤를렝 강가의 조그마한 삼각주다. 이곳에서 1206년 쿠릴타이(대집회)가 열리고 칭기스 칸이 몽골제국의 칸으로 공식 즉위한 역사적 장소다. 주변에 ‘아오르가’라는 칭기스 칸의 궁전 터가 있으며, 그 앞에는 몽골 최초의 역사서인 몽골비사 <성서(成書)> 750주년 기념비가 우뚝 서 있으며 기념박물관도 있다.
허더 아랄 부근에는 또한 길이 30km 너비 20km의 일망무제의 대초원이 펼쳐져 있다. 영화 <칭기스 칸>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대초원으로 이번 답사의 첫번째 하이라이트다.
▶가장 몽골적인 초원과 거대한 강물
▶칭기스 칸의 즉위와 몽골비사에 대한 강의
[후흐노르(푸른 호수)]
숲 속의 작은 호수로 기묘한 기분과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적대세력에게 독살된 후 친족에게 버림받은 테무진(칭기스 칸의 아명) 일가가 들쥐를 잡아먹으면서 연명하고 제기의 발판을 마련한 역사현장이다.
▶테무진 일가의 시련과 극복에 대한 강의
[빈데르 호수]
2km 남짓한 타원형의 에머럴드 빛나는 푸른 호수로, 한 가운데 작은 섬이 있으며 섬은 백로 떼로 가득하다. 오염되지 않은 공기와 물,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운 공간, 새들의 보금자리다.
▶몽골의 자연에 대한 강의
[빈데르 오보]
빈데르 호수 바로 앞에 있는 오색 천으로 장식된 초원 속의 성황당으로, 그곳에서 내려다보면 사방이 확 트인 호수와 초원이 전개된다.
▶몽골 민속에 대한 강의
[아라샹 하드]
빈데르 오보 부근에 있는 거대한 바위다. 그 위에는 투르크어, 거란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몽골어, 티베트어 등 20여 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몽골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그 부근에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시대 등 선사 유적지가 산재하고, 흉노와 거란 시대 관련 유물도 발견되었다. 몽골 초원이 살아 있는 박물관임을 실감할 수 있는 유적이다.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서의 몽골 초원
▶몽골의 문화유산에 대한 강의
[빈데르 솜]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기는 몽골의 시골 마을이다. 마치 동화 속의 이상한 나라에 온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동화 속의 나라 같은 진짜 몽골 촌락
▶사회주의 시절 몽골에 대한 강의
[다달 솜 캠프]
칭기스 칸이 태어난 고향 마을로, 외국인들이 묵는 캠프 주변이 온통 적송으로 둘러싸여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이곳 거주민은 몽골족의 일 지파인 부랴트족으로 몽골족 중 우리와 생김새가 가장 비슷하다. 원래 바이칼호 주변에 살다가 러시아혁명 무렵 이곳으로 이주해 왔는데 그래서 그런지 캠프 역시 러시아풍이 물씬 풍기는 통나무집으로 되어 있다. 이번 답사의 두번째 하이라이트로서 주변이 온통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한민족과 가장 생김새가 비슷한 부랴트 사람들의 생활체험
▶삼림과 초원이 어우러진 또다른 몽골의 풍광
▶근현대 몽-러 관계, 부랴트족과 한민족의 관계에 대한 강의
[델리운 볼닥 : 칭기스 칸의 탄생지로 추정되는 캠프 뒷동산/고르왕 노르(3개의 호수) : 델리운 볼닥 앞에 있는 안개가 자욱한 호수/칭기스 칸 탄신 800주년 기념비 : 고르왕 노르 부근에 우뚝 서 있는 흰 비석]
▶칭기스 칸 탄생과 800주년 기념비 건립의 비화에 대한 강의
[테렐지 국립공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울란바타르 인근에 위치한다. 주변의 경관이 수려하여 외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이다.
▶테렐지 역사에 대한 강의
[몽골 민속촌]
약 100만 평 규모의 민속촌이다. 13세기 몽골군 병영, 공방, 군사훈련장, 학습장 등이 두루 갖춰져 있고, 무속과 유목생활 등 칭기스 칸 시대의 모든 것을 볼 수 명소다. 이와 함께 몽골 전통공연을 보고 전통음식을 즐길 수 있다. 민속촌 부근에는 또한 9층 높이의 칭기스칸 기마상이 있으며, 그 아래에는 박물관이 갖춰져 있다.
▶몽골의 전통문화에 대한 강의
[솔롱고 힐링 테마파크]
울란바타르 인근에 있는 캠프로 기암괴석과 수려한 경관 때문에 ‘몽골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캠프 주변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지천에 널려 있고 캠프 뒷동산 바위산에는 항상 안개 자욱하여 신비를 자아낸다. 또한 캠프 주변에 있는 몽골에서 가장 유명한 13오보가 푸른 색 천을 휘날리며 우뚝 서 있다.
귀국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몽골의 정취를 두고두고 새길 수 있는, 자신있게 권하는 이번 탐사의 세번째 하이라이트다. 솔롱고 캠프의 특식, 몽골 유목생활 체험(승마, 유목가정 방문, 양요리 전통음식), 자연 속 야생화 트래킹(야생화 군락지 탐방), 기도 바위 오보 등 민속기행, 쏟아지는 별밤 체험과 명상의 시간 등을 통하여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 정화할 수 있다.
▶야생화 천국, 신비를 자아내는 기암괴석,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 최적의 명상의 장소
▶몽골 야생화, 유목생활, 몽골인의 신앙에 대한 강의
▶공룡박사의 몽골 공룡에 대한 강의. 참고로 몽골은 세계 최대의 공룡화석지이다.
[울란바타르]
역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예술박물관, 간단사(불교사원), 자이상톨고이(전망대), 이태준기념관, 전통공연
▶몽골의 대표적인 박물관 세 곳과 몽골 불교의 본산인 간단사, 울란바타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1910년대 몽골에서 활동한 독립지사의 유적에 대한 강의
<당신이 상상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원>의 상세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상기 일정은 항공 또는 현지 사정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평래 교장선생님은 몽골 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에서 역사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몽골 연구자로 몽골사뿐 아니라 신화와 종교 등 몽골인들의 정신문화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실크로드의 삶과 종교> <중국학자들의 몽골사 인식> <세계사교과서 바로잡기> <중국학자들의 소수민족 역서서술> <동북아 곰 신화와 중화주의 신화론 비판> <아시아의 죽음 문화-인도에서 몽골까지> 등을 공동 저술하고, <몽골 민간 신화> <몽골의 종교>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몽골 신화학의 형상> <몽골의 역사> 등을 우리말로 번역했으며, 몽골사, 몽골 문화, 종교와 신화에 관한 30여 편의 논문을 썼습니다.
이번 탐사는 7월 29일(화)부터 8월 6일(수)까지 9일간 진행되며 이평래 교장선생님이 인솔하고, 몽골 전문여행사인 (주)세븐데이투어가 준비·진행합니다. 참가비는 20명 이상 249만원, 30명 이상 243만원입니다. 항공 예약 관계로 참가자 마감은 6월 27일입니다. 자세한 문의와 참가신청은 (주)세븐데이투어 전화 02-3210-0507번 팩스 02-720-5628번 최서영 담당자에게 해주십시오.
[학습자료]
[몽골의 자연과 유목생활] 몽골은 초원과 사막의 나라다. 초원은 황량하면서도 포근하다. 몽골 초원의 풀은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자라는 잡초와 근본이 다르다. 실처럼 가늘고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가 난다. 향내 나는 풀 사이로 이름 모를 들꽃이 피어 있다.
고비사막도 흔히 생각하듯 황막한 불모지만은 아니다. 그런 곳은 고비의 중심부 극히 일부 지역에 한정된다. 대부분은 모래와 자갈, 덤불과 관목, 짧은 풀이 자라는 사막성 초원이다.
초원 및 고비와 한 짝을 이루는 것이 몽골의 하늘이다. 몽골은 세계적으로도 맑은 날이 많은 나라에 속한다. 그래서 몽골 하늘은 유난히 푸르다. 그 아래 떠 있는 구름도 유별나게 하얗다.
이것이 몽골 자연환경의 전형이다. 적어도 유목 목축이 행해지는 몽골국에서는 변함없이 이런 장면이 연출된다. 밤이면 초원 대신 하늘이 축복을 내린다. 푸른 하늘은 별천지로 변하고, 그 틈새로 은하수가 강물 되어 흐른다.
몽골인들은 지난 2천년 동안 이 아름다운 대지에서 유목을 하며 살아왔다. 유목은 이동하는 목축이다. 유목민은 적어도 1년에 네 차례 이상 거주지를 옮긴다. 소‧말‧양‧염소‧낙타 5종 가축을 이끌고 처자식을 거느리고 생활도구를 챙기고 천막을 뜯어 아예 사는 곳을 옮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을 유목민이라고 하지 않는다. 유목민은 봄집, 여름집, 가을집, 겨울집이 따로 있고, 그 사이를 정기적이고 규칙적으로 옮겨 다닌다.
유목민이 거처를 옮기는 것은 방랑벽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유목민이라 해도 거처를 옮기는 것은 번거롭다. 풀과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강수량이 적어 물이 부족하고 목초지 상태도 보기보다는 좋지 않다. 재미 삼아 구경하는 자와 그곳을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은 초원을 보는 눈이 다르다. 확실히 초원은 보는 자의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봄이면 모래 폭풍이 몰아치고, 여름이면 불볕더위가 내리쬐고, 겨울이면 온 대지를 얼게 하는 매서운 추위와 폭설이 엄습한다. 그것도 매년 때만 되면 반복된다.
그만큼 유목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달프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당연히 아무나 유목민이 될 수 없다. 어려서 몸으로 익히고, 근면하며, 강인인 체력과 인내와 끈기를 갖추고, 해당 지역의 자연과 지형과 기후를 꿰뚫고 있는 사람만이 유목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강인하고 근면해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유목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소한 재해에도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유목이다. 이런 점에서 유목민들의 삶은 전적으로 자연에 의존하고 있다.
자연의 심술에 대하여 유목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화난 자연을 두려워하고, 그 주인에게 노여움을 풀도록 기도하는 것이 고작이다. 몽골인들이 찾아낸 첫 번째 기도 대상이 머리 위의 하늘과 밭 아래의 대지다. 이렇게 하여 하늘 숭배와 대지 숭배 신앙이 생겨났다. 몽골 초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오보는 대지 숭배의 뚜렷한 흔적이다. 불교가 들어온 이후로는 또 부처님께 빌었다. 이와 더불어 오보에 제사를 올리는 것도, 하늘에 천제(天際)를 지내는 것도 무당을 대신하여 스님이 떠맡았다.
하늘과 대지에 제사를 지내고 나서는 한데 모여 기예를 겨루고 한 해의 수고를 얘기하고 먹고 마셨다. 이렇게 하여 몽골 축제 나담이 생겨났다. 나담은 몽골인들의 삶의 여정이 여과 없이 투영된 놀이문화다. 나담에서는 ‘남자의 3종경기’가 벌어진다. 이는 몽골인의 전통 생업과 관련이 있다. 수렵과 목축을 하면서 살았던 몽골인의 삶에서 기마와 궁술은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자 삶의 조건이었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대대로 기마와 궁술을 연마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으며, 종교의례 등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평소에 익힌 기예를 선보이는 시합을 벌였다.
기마와 궁술은 이처럼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놀이문화로 정착되었다. 씨름도 마찬가지다. 녹녹치 않은 대지와 혹독한 자연환경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시련이었다. 여기서는 강인한 정신력과 힘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살아가기 위한 사냥과 전쟁에서도 튼튼한 체력이 요구되었다. 몽골인들이 수시로 씨름판을 벌여 평소에 닦은 실력을 겨루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씨름도 삶에 필요한 힘과 기예를 연마하는 과정에서 놀이문화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몽골의 자연환경] 몽골 고원은 북에서 남으로 갈수록 건조하고 자연환경도 다르다. 고원 북부에는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이 이어진다. 그 반대편 남쪽에는 황량한 고비 지대가, 그리고 그 중간에는 일망무제(一望無際)의 대초원이 펼쳐져 있다.
초원은 얼핏 보면 황량하고 삭막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몽골 초원은 포근하기 그지없다. 몽골의 풀은 우리나라 산과 들, 빈터에서 자라는 잡초와 근본이 다르다. 실처럼 가늘고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풀이다. 향내 나는 풀 사이로 이름 모를 들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다.
고비도 흔히 생각하듯 황막한 불모지가 아니다. 그런 사막은 고비의 중심부 극히 일부 지역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모래와 자갈, 덤불과 관목, 짧은 풀이 자라는 사막성 초원, 이른바 반사막이다. 몽골국(외몽고)을 예로 들면 사막 고비의 비율은 전국토의 약 15%, 사막성 초원 비율은 대략 27%정도다. 이것만 보아도 고비가 결코 버려진 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초원 및 고비와 한 짝을 이루는 것이 몽골의 하늘이다. 몽골은 세계적으로도 맑은 날이 많고 일조량이 높은 나라에 속한다. 연평균 250일 이상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고 하니 꽤나 밝은 땅이다. 그래서 그런지 몽골 하늘은 유난히 푸르다. 그 아래에 떠 있는 구름도 유별나게 하얗다. 푸른 하늘과 연녹색 풀밭은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하늘은 새하얀 구름을 걸쳐 입고, 초원은 들꽃 장식을 달고 있으며, 고비 곳곳에는 원색의 모래 언덕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저 멀리 한 무리 양떼가 풀을 뜯고, 건너편 냇가의 흰 게르(천막)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노라면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느낌이다.
이것이 몽골 자연환경의 전형이다. 적어도 유목 목축이 행해지는 몽골국에서는 변함없이 이런 장면이 연출된다. 밤이면 초원 대신 하늘이 축복을 내린다. 푸른 하늘은 이내 별천지로 변하고, 그 사이로 은하수가 강물이 되어 흐른다.
[몽골의 사람들] 현재 몽골 인구는 300만 명이 채 안 된다. 이 중 수도 울란바토르에 100만이 산다. 나머지 도시를 합하면 유목민보다 도시민이 많다. 도시민은 물론 우리와 똑같이 아파트에 살고 우리처럼 회사원, 공무원, 사업가로 살아간다. 부문별 국민총생산 비율 역시 유목 부문보다 기타 부문이 높다.
따라서 몽골은 분명히 목축국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몽골하면 초원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유목 목축을 떠올리고, 그것이 몽골의 본 모습이라고 믿고 있다. 직업별 인구 구성 및 산업구조와 관계없이 몽골인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소똥 연기 피어오르는 유목민 천막에서 태어났다, 나는/거친 들판 초원을 나의 요람이라 여긴다/…맑고 고운 고향땅을 뿌듯하게 바라볼 때…환희의 눈물이 나의 두 눈을 가린다…”
1945년에 발표된 <나는 몽골인>이라는 시의 일부다. 1945년은 몽골사회주의가 일로 번창하던 시기다. 목축보다 공업, 천막보다 아파트가 돋보이던 시절이다. 그러나 시인은 거친 들판과 초원을 자신의 요람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고향땅을 바라보면서 감격에 겨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몽골인의 본연의 모습이다. 거친 곳에서 태어났지만 착하고 부드러우며, 무뚝뚝한 외모와 달리 섬세하고 자상한 사람이 몽골 사람이다.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적 인간상. 몽골인들도 이 이미지를 결코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시인은 오히려 짐승을 키우며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유목민의 삶에 무한한 긍지를 갖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몽골인을 몽골인답게 하는 몽골인의 정체성은 초원과 유목이라는 뜻이다.
[몽골의 유목생활] 유목은 계절에 따라 주기적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목축을 말한다. 몽골인들이 언제부터 유목을 시작했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서기전 3세기 말 몽골 땅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흉노(匈奴)시대부터는 이곳 사람들이 유목으로 생계를 꾸려간 것만은 확실하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흉노전’에는 “흉노는 물과 풀을 따라 이동하고 성곽과 일정한 거처가 없고 농사를 짓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사계절 이동하며 지내는 유목민의 생활을 말한다. 그 후 2천년 동안 유목은 몽골인들의 가장 중요한 생업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리하여 현재도 몽골국 경제활동 인구의 절반인 40만 명 이상이 3천여만 마리의 가축을 키우며 살고 있다.
조금 전 언급했듯이 유목은 이동목축이다. 그래서 유목민은 적어도 1년에 네 차례 이상 거주지를 옮긴다. 소‧말‧양‧염소‧낙타 5종 가축을 이끌고 처자식을 거느리고 생활도구를 챙기고 천막을 뜯어 이사를 한다. 그렇다고 아무렇게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을 유목민이라고 하지 않는다. 유목민은 봄집, 여름집, 가을집, 겨울집이 따로 있고, 그 사이를 정기적이고 규칙적으로 옮겨 다닌다.
유목민이 거처를 옮기는 것은 방랑벽 때문이 아니다. 유목민이라 해도 거처를 옮기는 것은 번거롭다. <사기>에 쓰인 대로 좋은 풀과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강수량이 적어 물이 부족하고 목초지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다. 유라시아 초원 중 최고라는 몽골 초원도 풀이 무성한 초원보다 흙이 드러나 있는 곳이 더 많다.
그만큼 유목민의 삶이 고달프다는 증거다. 이 점은 현재도 큰 변화가 없다. 그래서 아무나 유목민이 될 수 없다. 어려서 몸으로 익히고, 근면하고, 강인인 체력과 인내와 끈기를 갖추고, 해당 지역의 자연과 지형과 기후를 꿰뚫고 있는 사람만이 유목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
[몽골의 축제] 몽골어로 축제를 ‘나담’이라 한다. 원뜻은 ‘놀이’라는 말이다. 나담에서는 ‘남자의 3종경기’가 벌어진다. 이는 몽골인의 전통 생업과 관련이 있다. 수렵과 목축을 하면서 살았던 몽골인의 삶에서 기마와 궁술은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자 삶의 조건이었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대대로 기마와 궁술을 연마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으며, 종교의례 등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평소에 익힌 기예를 선보이는 시합을 벌였다.
기마와 궁술은 이처럼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놀이문화로 정착되었다. 씨름도 마찬가지다. 거친 대지와 혹독한 자연환경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시련이었다. 여기서는 강인한 정신력과 힘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살아가기 위한 사냥과 전쟁에서도 튼튼한 체력이 요구되었다. 몽골인들이 수시로 씨름판을 벌여 평소에 닦은 실력을 겨루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씨름도 삶에 필요한 힘과 기예를 연마하는 과정에서 놀이문화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나담은 몽골인의 삶이 여과 없이 투영된 놀이문화다. 그래서 몽골인은 어디에 있든 나담을 기억하고 여름이 오면 어떤 식으로든 나담을 즐긴다. 외국에 있는 사람들도 나담을 지내기 위하여 귀국하고 도시 사람들도 나담에 맞추어 고향을 찾는다. 돈벌이를 위하여 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2만~2만5천 명)도 사회단체의 주선으로 해마다 약식 나담을 한다.
나담은 거국적으로, 유제품이 풍부한 여름철(7월 11~12일)에 열린다. 겨울 명절인 ‘차간 사르’(음력 정월)가 정적이라면 나담은 동적이고 활력이 넘친다.
무엇보다 따듯하여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겨울이 길고 추운 몽골에서 6, 7, 8월은 말 그대로 황금의 계절이다. 여름에는 대자연의 선물인 유제품도 풍부하다. 유목민은 유목민대로 행복하고 도시민은 도시민대로 행복한 시절이 이때다. 겨우 내내 발길이 끊긴 유목민 천막에 외지인이 찾아오는 것도 여름이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면 으레 외국인이 찾아온다.
[몽골의 종교] 몽골은 불교 국가다. 인구의 90%가 불교 신자이거나 친불교적이다. 불교는 물론 외래종교다. 그것도 상당히 후대에 몽골 땅에 전해졌다. 몽골인들이 자발적으로 불교를 믿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후기부터다. 그러나 이때 전해진 불교는 대중 속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전통신앙을 숭배하고, 불교를 적극 장려하고 옹호한 궁정에서도 무당이 활동했다.
불교가 몽골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린 것은 16세기 말기부터다. 그 후 불과 1~2세기만에 불교는 몽골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종교로 자리 잡았다. 초창기 불교 교단은 몽골의 전통신앙에 대하여 강경한 입장을 견지했다. 전통신앙에 대한 탄압은 주로 샤머니즘에 집중되었다. 개종 초기 몽골 불교사는 두 종교간 투쟁과 대립으로 점철되었다. 그러나 탄압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무당들의 저항은 여전했으니 불교는 탄압과 아울러 통합이라는 온건 정책을 병행했다. 즉 불교는 전통 신앙의 특정 요소를 수용하고 이를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한편, 전통신앙을 불교 체계로 통합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반면에 무당들은 불교 요소를 수용하여 자신을 위장하는 방법으로 살길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승려는 무당의 역할을 수행하고, 무당은 승복으로 갈아입고 화해를 모색했다. 그 결과 18세기를 전후하여 몽골 무속에 등장하는 신들이 불교의 만신전으로 흡수되고, 민간신앙은 대부분 불교식으로 정비되었다. 그래서 18세기 이후 몽골의 종교 지도를 보면, 불교가 중심을 차지하고, 불교화한 샤머니즘이 그것과 나란히 또는 그 뒤를 쫓아가고, 불교식으로 조정된 민간신앙이 기층을 이루는데, 그 상황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몽골국 초원 곳곳에 산재하는 신앙대상인 오보와 신목(神木)에서 펄럭이는 푸른 비단천(하닥), 바이칼호 올혼 섬의 무당 바위에 놓인 헤진 불교 경문은 불교와 전통신앙의 통합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또한 오보제를 주제하며 오보의 신을 불러내는 승려는 먼 옛날 무당을 연상케 한다.
[몽골의 유적] 몽골 땅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70여만 년 전이다. 몽골에는 이들 선사인과 그들의 후손들이 남긴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과장하면 몽골은 국토 전체가 문화유산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유적과 유물이 풍부하다.
이 땅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사람들은 흉노(기원전 3세기)라 불리는 집단이다. 그 뒤 선비(기원 2~4세기), 유연(4~6세기), 돌궐(6~8세기), 위구르(8~9세기), 거란(10~12세기) 등 어디서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이 번갈아 가면서 몽골 땅에 나라를 세우고 지배자로 군림했다. 이 사람들은 물론 몽골족은 아니다. 몽골족은 원래 중국 동북방에 있는 흑룡강 상류 지역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9~10세기경 지금의 몽골초원으로 이주하고 13세기 초기부터 이 땅의 주인이 되었다.
따라서 몽골초원에는 선사시대에서 몽골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인간 집단이 남긴 다양한 유적이 남아 있다. 암각화도 그 중 하나다. 여러 시기에 걸친 암각화가 몽골 전역에 산재하지만, 서부 지역에 특히 집중 분포한다. 서기전 10세기 전후 또는 이보다 약간 앞선 시기의 대형 적석총도 몽골의 대표적 선사유적이다. 적석총 주변에는 대개 사슴 문양이 그려진 사각 돌기둥, 즉 녹석(鹿石)이 단독 또는 복수(10~20개)로 서 있다.
역사시대 유적으로는 무덤과 분묘 주변의 구조물을 들 수 있다. 무덤은 그 구조나, 크기, 형태를 통하여 해당 시기 사회 구조를 추측할 수 있고, 무덤 주변의 구조물을 통하여 그 시대의 의복, 무기, 일용품 등을 재현할 수 있다. 사진 자료에 보이는 돌궐 시대 비문과 그 앞의 석렬(石列)은 무덤의 부속물이다. 원래는 주변에 담장이 둘러쳐 있고 무덤의 주인인 훈촐로[石人]가 서 있다. 다만 이번에 전시된 훈촐로는 다른 구조물이 없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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