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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한 검찰-국정원, 절대 옷 벗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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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뻔뻔한 검찰-국정원, 절대 옷 벗지 않겠죠"

[심층 인터뷰 ①] '간첩' 누명 벗은 유우성, 피 말리는 법정 투쟁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피의자, 또는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 유우성이란 인물을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지난달 25일, 재판부는 유 씨에 대해 "간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1심에 이어 두 번째다. 그가 조작 간첩 사건의 피해자임을 재차 명시한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유우성이란 이름엔 간첩이란 단어가 꼬리표처럼 붙는다. 과연 그가 간첩 멍에를 벗고 대한민국 땅에서 평범하게 살 날이 올 수 있을까.

항소심 선고 기일이었던 지난달 25일은 유 씨가 한국에 온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항소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유 씨가 최근 1년간 '출근 도장' 찍듯 다녔던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모처에서 만났다. 그에게서 재판 과정에 대한 소회와 아울러 과거 한국 정착 생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1일과 2일 이틀에 걸쳐 연재된다. 편집자.

▲항소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소감을 묻는 취재진에 둘러싸인 유우성 씨. ⓒ프레시안(서어리)

정오의 해가 쨍쨍했다.


법원 앞마당에서 눈 부신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선 주인공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북한에서 같은 동네에 살았던 친구가 꽃 한 송이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제야 그의 입술이 작게 호선을 그렸다. 늘 굳은 표정만 보던 기자들이 명장면이라는 듯 카메라를 들고 달려와 그의 앞에 다닥다닥 붙었다.

항소심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덤덤한 표정으로 그가 처음 내뱉은 소감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였다.

"무죄 판결을 받은 것 자체는 기쁘고 시원하지만, 제가 간첩이 아니란 사실을 확인한 것뿐이니까요."

"국가 기관의 간첩 조작, '황당하다'는 말 밖에"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한국 생활은 '평범'이라는 단어와는 멀었다. 한국에 정착한 지 9년 차에 접어들던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국정원에 의해 체포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은 1만 명이 넘는 국내 탈북자들의 신원 정보를 북한 보위부에 건넨 간첩이 되어 있었다.

"중국에서 온 여동생의 옷을 사 놓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는 국정원 직원이 제 동생이 입국하면 도와준다는 걸 믿고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동생이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있는 사이 제가 갑자기 체포되고 8개월간 구치소 생활을 하게 됐어요. 언론에 나온 그 간첩이 저인 줄도 몰랐어요. 내가 간첩이라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어서 볼도 꼬집어봤어요."

제 앞으로 날아온 공소장 내용은 황당 그 자체였다. 자신이 간첩으로 몰렸다는 사실도 어처구니 없지만, 검찰이 휘갈긴 공소 사실들은 말이 안 되는 것들 투성이었다.

유 씨가 북한에 넘긴 정보가 1만 명분이 넘는다는 언론 보도 달리, 공소장에 적힌 것은 170명분이었다. 대학 시절 탈북자 관련 동아리에서 동아리 소속원들과 공유했던 연락처, 서울시에서 탈북자 지원 업무를 할 때 모아놓은 연락처들이 전부였다. 그중 순수 탈북자는 74명이고, 그나마도 이름, 전화번호, 주소가 다 기재된 사람은 30명 정도에 불과했다.

"검찰 얘기대로라면 제가 7년 동안 남한에서 공작 활동을 하면서 얻은 정보가 30명분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이건 게을러도 너무 게으른 간첩 아닌가요?

가장 어이없는 건, 제가 그 정보를 컴퓨터 메신저를 이용해서 동생에게 보내고, 동생은 그 자료를 USB에 넣어 야밤에 강을 건너서 북한 보위부 인사에게 전달했다는 거예요. 자료도 몇 개 안 되는데 전화를 해도 금방이면 될 걸, 굳이 메신저를 쓰고 동생은 야밤에 춥고 무서운데 강을 건너나요."

재판 과정에서도 드라마 같은 일들이 이어졌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자, 2심에서는 위조 문서들이 버젓이 증거 목록에 올라왔다. 위조 사실이 알려지자 조작에 가담한 조선족 협력자는 자살 시도를 하고, 뒤이어 자살 기도를 한 국정원 직원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황당하다는 말밖에 안 나왔어요. 국가 기관이 이렇게까지 더럽고 치사한 방법을 써서라도 나를 간첩으로 몰아가야 하나. 내가 대체 무슨 큰 죄를 저질러서 이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증거 조작이 만천하에 밝혀졌는데도 검사들은 항소를 포기하지 않았다. 도리어 재판을 늦추면서 온갖 자료들을 수집해 법정에 내놨다.

"심란해서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1심에서처럼 당연히 무죄가 나오겠지' 싶다가도 워낙 황당한 일들이 많았으니까 혹시나 했죠."


ⓒ프레시안(최형락)

"국정원 합신센터 '불법 구금'… 동생도 피해자"

다행히 항소심 결과는 좋았다. '1년 징역, 2년 집행유예'는 1심 그대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판결문 내용이 1심보다 훨씬 전향적이었다. 유 씨는 무엇보다도 동생 가려 씨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진 점이 제일 기쁘다고 했다.

"1심에서도 무죄를 받긴 했지만, 동생이 합신센터에서 거짓 자백했다는 건 인정이 안 됐어요. 그게 계속 동생한테는 가슴의 상처로 남아있었어요."

유 씨가 지적한 부분은 항소심 판결의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의 유일한 증거인 가려 씨의 진술이 171일간의 불법 구금 상태에서 나왔고, 따라서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가려 씨 진술이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뤄졌다던 1심 판결을 2심 재판부가 뒤집은 것이다. (관련 기사 :
""간첩 무죄, 땅땅땅"…뭉개진 검찰 자존심" "유우성 사건, 국정원 '불법 구금' 인정됐다")


"달력도 없는 독방에서 수시로 협박·회유를 받는데 이성을 잃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6개월이 아니라 3개월도 못 버틸 겁니다. 그러니 제 동생은 자살기도까지 했죠."

동생 역시 피해자인데도 늘 오빠에게 미안해했다. 자신의 잘못된 진술로 오빠가 간첩 누명을 썼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오히려 당사자보다도 더 극심한 심적 고통에 시달렸다.

"재판 직전에 통화하는데 미안하다고 또 울더라고요. 그래서 '나 재판 들어가는데 울면 어쩌느냐' 하고 가볍게 혼을 냈어요. 재판 끝나고 다시 통화했는데 이번엔 기쁘다고 또 울더라고요."

"뻔뻔한 검사·국정원 수사관들, 후회할 날 올 것"

선고 공판은 양측 공방 없이 재판부의 결정만 듣기 때문에 금방 끝난다. 그러나 이날은 최종 선고를 듣기까지 1시간 30분이 걸렸다. 가려 씨 진술을 비롯, 검찰이 제시한 각종 증거들에 대해 재판부에서 일일이 기각 사유를 밝혔기 때문이다. 변호인단이 "간첩 의혹들을 일거에 해소했다"고 할 정도로 항소심 재판부는 유 씨가 간첩으로 보기 힘든 이유를 법리적으로 꼼꼼하게 정리했다.

1·2심과 달리 대법원 재판부는 소송 기록들을 토대로 법리 판단만 한다. 이제 검찰에게 남은 변론 기회는 없다. 그러니 유 씨로선 검찰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해놓은 항소심 판결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유 씨와 변호인단은 검찰 측 상고 여부에 관계없이 간첩 혐의 부분만큼은 사실상 끝났다는 생각이다.

"검찰에서 사기죄 추가하려고 공소장 변경한 것도 다 들어주고, 간첩죄 관련 증거들을 들어주는 것 같아서 약간 불안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지금 보니 재판부에선 검찰에 기회를 준 것 같아요. '어디 해볼 테면 해봐라' 하고요. 그런데 시간이나 기회를 충분히 줬는데도 별다른 증거가 아무것도 없었던 거죠. 합리적인 판결이었다고 봅니다."

1·2심 판결을 통해 유 씨는 수사기관이 저지른 조작 간첩 사건의 피해자임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그는 검사, 국정원 수사관들에 대한 원망을 구태여 숨기지 않았다.

"(공소 유지를 담당한) 이문성, 이시원 검사는 1심 때도 안 왔어요. 오늘도 졸병 세 명만 왔더라고요. 왔으면 얼마나 창피하겠어요. 판사가 판결 마치고 나가는 데 눈도 안 마주치고 앉아 있더라고요. 절대 옷 안 벗을 걸요. 그렇게 양심적인 사람들이었다면 애초에 저를 간첩이라고 하지도 않았겠죠.

국정원 직원들도 다섯 명 정도 왔는데 구석에 있다가 조용히 나가더라고요. 그 사람들도 그냥 일이니까 하겠죠. 다 가정 있고 자식이 있을 텐데, 언젠가 후회할 날이 올 겁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적당히 징역 살면 한국에서 조용히 살 수 있겠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딱이다. 유 씨는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쓰고 1년 4개월이란 시간을 허비한 건 더할 수 없는 불행을 겪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30년 걸려서 받은 무죄 판결을 불과 1년 4개월 사이 두 번씩이나 받았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증거 조작 사실이 드러났다. 그래서 과거 간첩 사건의 피해자들은 유 씨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관련 기사: "30년 걸려 벗은 간첩 누명, 유우성은 운 좋다")

"변호사님들, 신부님, 목사님, 기자분들 없었으면 어땠을지 상상도 안 돼요. 전 정말 인복이 많습니다."

유 씨 곁에서 가장 고생한 이들은 천낙붕, 장경욱, 양승봉, 김용민, 김진형, 김유정 등 변호인단이다. 1년 4개월간 본업을 제쳐놓고 유 씨 변호에 전력투구했다. 돈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유 씨를 먹이고 돌보느라 돈이 더 나갔다. 검찰 반박 증거를 찾으러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니고, 중국도 수차례 다녀왔다.

"재판 한 번 할 때 의견서 10건 미만이면 다 끝난다는데 우리는 양변(양승봉 변호사)님만 50개 썼을 정도니까 정말 고생이 많으셨죠. 돈도 안 되는 일이라 가족분들한테도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나중에 돈 벌어서 꼭 갚으려고요."

변호사들은 오히려 "우성이가 큰 일 했다"고 입을 모았다. 유 씨를 가장 살뜰히 챙겼던 양승봉 변호사는 유 씨를 무척 기특해했다.

"우성이를 구치소에서 수의복 입었을 때 처음 봤어요. 그땐 이놈이 간첩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어요. 국정원이 간첩이라고 하고 여동생도 자백했다고 하니 어떻게 안 믿겠어요.

국가를 상대로 하는 일인데, 당사자에게 의지가 없다면 저희도 이렇게 못합니다. 저도 처음엔 무죄를 주장하는 게 우성이에게 좋은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적당히 징역 살고 나와서 조용히 사는 편이 나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성이가 잘못된 건 밝혀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어요.

무죄 받은 것만도 좋은데 결과적으로 우성이가 국정원, 검찰 다 휘둘러 놓았어요."

▲25일 항소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서울 서초동 법원 앞마당에서 유우성씨와 변호인단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프레시안(서어리)

"또 간첩 조작… '공개 재판'으로 진실 밝혀야"

유 씨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다시는 저처럼 국가 기관에 의해 개인의 삶이 파괴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도 그렇지만 제 동생도 피해자거든요. 국정원 합신센터 안에서 얼마나 많은 조작이 일어나는지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탈북자들의 불안정한 신분을 이용해 인권 침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해요."

유 씨 바람과는 달리, 이미 또 다른 간첩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다. '보위부 직파 간첩 홍 씨' 사건이다. 장경욱 변호사 등 변호인단은 피고인 접견 후 '조작'으로 판단해 유 씨 사건과 마찬가지로 무죄 취지로 변론할 계획이다.
(관련 기사 :"'유우성 사건' 2탄? 재판 공개 여부 또 쟁점")

유 씨는 홍 씨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 위해선 적어도 '공개재판주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 사건 재판도 처음부터 공개로 했으면 더 많은 분들이 공소사실 자체가 잘못됐단 걸 일찍 알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1심에선 몇 번 빼고 거의 비공개로 진행됐어요. 2심 중간에 언론에서 관심을 가져주니까 그제야 공개로 돌렸거든요. 그런데 1심 때와 비슷한 상황인데도 공개 재판을 했는데, 차폐막 등으로 증인을 보호하니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검찰은 국보법 재판은 비공개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국보법 재판일수록 더 공개를 해야 합니다. 꽁꽁 가려놓으면 검사들이 어디서 또 어떤 조작 벌일지 모릅니다. 제 사건으로 전례가 생긴 셈이니, 홍 씨 사건도 재판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다음 편에 계속. 2편은 5월 2일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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