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청와대 비공개 만찬에서 국민연금개정안 부결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알았다. 두고 보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반응이 즉각 사의 수리로는 해석되지 않는 분위기다.
어차피 국민연금개정안 건이 아니더라도 유 장관의 당 복귀는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상황은 그리 단순치 않다. 여권의 대선주자군 가운데 한 사람인 유 장관이 '빈 손'으로 당으로 돌아가기도 힘들다는 말이다.
"어차피 복귀는 기정사실이고 시기가 문제일 뿐"
8일 청와대 관계자는 "일부 언론이 유 장관의 사의가 반려됐다는 보도를 했는데 청와대에서는 6일 이후 상황을 업데이트 할 것이 없다"면서도 "'두고 보자'는 발언을 부처에서는 반려나 재신임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만 말했다.
한편 유 장관 본인은 이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회 한ㆍ중ㆍ일 보건장관회의 이후 일부 기자들을 만나 "(6일 만찬에서) 대통령께서는 생각해 본 뒤에 (반려 여부를) 이야기할 테니, 그때까지는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유 장관은 "장관직을 수행하는 마지막 날까지 충실히 수행할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며 "그래서 어제, 오늘 공식적으로 잡혀있던 한ㆍ중ㆍ일 보건장관회의에 참석하는 등 최선을 다했고 내주 국회에서 열리는 대정부 질의와 상임위 전체회의에 주무장관으로서 참석해 정상적으로 장관 업무를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6일 비공개 만찬 이후 청와대 측은 '유 장관의 사의 표명에 대통령이 알았다. 두고 보자라고 답했다'는 내용만 밝혔을 뿐, '반려 여부'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특히 각료들의 사의 표시에 대해 노 대통령이 '알았다'고 답하면 대체로 수리로 이어졌던 전례 탓에 유 장관의 당 복귀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개인적 해석이다"면서도 "51대 49정도로 유 장관의 당 복귀 확률이 높다고 본다.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지 않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6일 만찬에는 이호철 국정상황실장 등이 배석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현재 청와대의 대체적 분위기는 '어차피 복귀는 기정사실인 것이고 날짜가 문제인 것 아니냐' 정도.
우리당 "4월 국회 내에 처리하겠다"
유 장관의 복귀 시점에 대해서는 "어쨌든 국민연금법을 매듭짓고 가지 않겠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장관으로서 연금법 개정안을 마무리 짓는 것이 최선의 자세"라며 "4월 임시국회 내에 연금법 개정안을 처리해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영식 전략기획위원장도 "4월 국회까지는 기다려봐야 하지 않느냐"며 "대통령도 유 장관의 사의 표명을 반려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내주 중에 국민연금법안을 다시 제출해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민연금법안에 관해 한나라-민주노동당 공조가 이어지고 있고 양당안이 한나라당 일부 의원의 투표 불참으로 아슬아슬하게 부결된 점을 감안하면 그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유 장관의 사의 표명-대통령의 일단 반려'는 일차적으로는 '유시민이 싫어서' 반대 내지 기권표를 던진 우리당 탈당파에 대한 압박용으로 해석된다.
유 장관 본인도 이같은 지적에 대해 "제 개인에 대해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장관직을 사퇴하는 게 국민연금법 개혁안 처리환경 조성에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FTA 정국'과 유사한 '국민연금 정국'
노 대통령의 노인연금법 거부권 행사, 내주 중 한나라당과 우리당의 법안 재 제출 등이 이어지면 국민연금법안은 빠른 시일 내에 재격돌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안이 통과될 경우 유 장관은 부담없이 성과물을 안고 당으로 복귀하게 된다. 또한 재처리 과정에서도 부결된다손 치더라도 유 장관의 부담은 감소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FTA와 마찬가지로 '덜 내고 더 받기'를 골자로 하는 정부 측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 우군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도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는 연금법이 부결된 바로 다음날인 3일자 사설을 통해 법안 부결을 맹비난하며 "법안은 부결됐는데 이제 대선도 있고 총선도 있다"며 "노인연금법안만 처리하고 국민연금법안이 부결돼서 다음 세대에 연금재앙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유 장관의 지론과 정확히 궤를 같이 하는 지점으로 청와대-조선의 한미FTA동맹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들 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이니까 국익을 위해 한미FTA를 결단할 수 있었다"고 상찬한 바 있다. 이는 '노 대통령의 판박이인 유시민의 결기니까 표나 이념에 연연하지 않고 개혁을 밀어붙인다'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이나 보수진영도 부담을 느끼는 FTA문제를 처리한 것처럼 유 장관의 '국민연금 올인'도 비슷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진보진영 일각은 "한미FTA 타결에서 나타난 청와대-한나라당-조중동 신 3각 동맹은 결국 신자유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신보수주의 집단의 장기집권을 가져올 것이고 사실상 노 대통령이 제기했던 대연정이 내용적으로 완성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런 우려가 만일 현실화 될 경우 다음 대선은 기존의 전통적 구도를 완전히 탈피할 것이라는 때이른 전망도 가능하다. 이같은 경우 청와대와 일부 보수진영이 공유하고 있는 '선진화 전략'이 대선의 핵심키워드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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