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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혁신이 아니라, 대한민국 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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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혁신이 아니라, 대한민국 혁신이다

[주간 프레시안 뷰] 세월호 참사가 대한민국에 묻는다

정치혁신이 아니라, '대한민국 혁신'이 과제입니다. 정치권이 이제 시민들에게 선보여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 혁신의 비전과 전략과 정책입니다. 정당법, 선거법 등과 같은 정치관계 제도를 손보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으로, 시비할 그런 때가 아닙니다. 정권 심판도 정권 견제도 문제가 아닙니다. 선거 승리를 위해 어떤 구도전략과 프레임이 유리한지를 고민하는 그런 정치를 할 때가 아닙니다. 누가 더 파격적이고 화려한 민생 공약을 내세울 것인지를 두고 경쟁하는 정치를 할 때도 아닙니다. 고작 무상버스, 통신비 인하 등 생활비 절감 운동을 앞세울 때도 아닙니다. 돈 몇 푼 더 벌게 해주겠다거나, 벌어주지는 못해도 더 쓰게 만들지는 않겠다는 식의 정치를 할 때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필요치 않거나 의미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맡은 바 소임을 제대로 하기 위한 적절한 우선순위의 설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정치에 대한 시민적 무관심과 냉소를 극복하는 데 알맞은 의제도 정책도 아닙니다.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나라의 이런저런 체제를 재정비하고 그 체제를 운영해 갈 새로운 역량의 육성을 고민하고 계획하고 실천에 착수하는 정치를 할 때입니다. 세력이, 세대가 바뀌지 않고서는 새 정치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새로운 체제에 대한 구상과 구축 없이 새 정치는 한갓 유행어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을 보면서 더욱더 선명하게, 강렬하게 재확인한 생각입니다.

국가의 미래는 물론, 국민들의 삶의 이모저모를 살피지 않고 구도전략이니 프레임이니 하면서 권모술수(정치 드라마의 연출)에 기대어 표를 얻는 데 급급한 정치인들, 정치로부터 어떤 통제도 받지 않은 채 잘못된 '관행'을 따르며 국민이 아닌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눈치를 살필 뿐인 관료들, 국민의 행복을 위한 시대적 과제를 스스로 설정하고 정치가 그것을 따르게 유도하지 않고 누군가의 흠만 찾아 탓하는 것을 사명이라고 착각하는 언론들, 그런 중에 사람들의 '거짓 욕망'을 자극해 삶에 꼭 필요도 없는 상품을 팔아 번 돈으로 노동자와 서민을 온갖 수법을 동원해 괄시하고 있는 재벌 대기업들, 그 재벌 대기업에 학생들을 많이 취직시키는 것으로 위상을 높이는 대학들, 그런 대학에라도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입시교육조차 제대로 시키지 못해 결국 사교육에 두 손 두 발 든 공교육자들, 의도적인지 아닌지 점점 더 대중적 소통능력을 잃어 대학생은 물론, 같은 학자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외계어 같은 말을 쓰는 것을 지성이라고 여기는 넋 나간 지식인들.

이들이 대한민국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서글픈 것은 이들 대부분이 공부 잘했다는 이유로, 학벌 좋다는 이유로, 집안 좋다는 이유로, 유명하다는 이유로, 직업이 좋다는 이유로, 부와 권력을 지닌 자들과 친분이 두텁다는 이유 등등으로 '인재', '엘리트'라고 불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대한민국이 그간에 소중하게 키워왔던 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등골 휘게 밤낮없이 일해 학비 벌어 대며 자식들에게 모범으로 삼으라고 가르쳤던 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정치인, 관료, 언론인, 기업인, 교육인, 지식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제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정치인, 관료, 언론인, 기업인, 교육인, 지식인들이 꽤 있습니다. 직접 만나보면 나쁜 분들은 아닙니다. 좋은 분들도 많습니다. 모두 필자보다 좋고 똑똑한 분들입니다. 제가 그런 분들만 만나 그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분들이 자신의 직업적 삶의 영역으로 돌아가면 이상스레 '진부'해진다는 것입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진부한 자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전남 전도실내체육관 ⓒ프레시안(최형락)

'진부함에서 벗어나 있는 혁신인'들이 필요하다

한나 아렌트는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김선욱 옮김, 한길사 펴냄)을 통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를 통해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에 동조하고 관여한 자들, 특히 유대인 수용소장을 지내며 학살을 자기 임무로 삼았던 아이히만 같은 이들조차도 특별한 악마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평범함이라고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아렌트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에 방점을 찍은 것이 아니라, 아렌트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평범함 사람일 뿐만 아니라, '진부함'에 쩔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히만은 전범 재판을 받으며 칸트의 정언명령을 암송했고, 왜 정언명령을 포기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조리 있게 진술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히만은 ‘배운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세 가지 능력을 결여한 진부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판단하는 능력, 자신의 언어를 쓰며 주입된 명령과 구호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능력이 그것입니다. 진부하다는 것의 의미는 바로 이 세 가지 능력의 결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좋고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분들조차 '진부함의 늪'에 빠져 있음을 확인할 때가 있습니다. 도대체 인재, 엘리트라고 불리는 분들이 왜 그런 것일까요?

이미 기성의 질서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는, 그래서 그 질서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시도를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즉 그들에 의한 새 정치는 물론, 새로운 시대가 열리지 않습니다. 구래의 체제에서 보고 배운 것에 익숙해져 있는 기득권층은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기득권층은 드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쥬의 전통이 있다고 하는 서구 사회에서도 프랑스 혁명과 같은 큰 대격변을 목격했을 때 비로소 자신들의 사회적 책무를 -억지로라도- 수행할 필요가 있음을 자각하였습니다. 그것도 일부 선각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 프랑스의 알렉시스 토크빌이 바로 그들입니다. 하지만 그들과 같은 이들은 드뭅니다.

그분들은 지금 시대에 걸맞은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쉽지 않습니다. 국민의 삶에 밀착해서 무엇이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인지, 그것이 발견되었을 때 추진하던 일을 어찌 중단해야 할지를 가늠하지 못합니다. 해외와 제주 수학여행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의 수학여행 매뉴얼에는 항공과 선박 관련 안전지침이 전혀 없습니다. 자기 늙어가는 것만 생각해 그에 걸맞은 좋은 지위를 추구하기는 해도, 시대가 변해 새로운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은 쉽게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물론, 시대 상황의 변화를 살피고, 그에 따른 사람들의 삶의 양식과 마음을 헤아리면서 제도와 규칙을 재정비하는 능력을 키우는 훈련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 관료, 언론인, 기업인, 교육인, 지식인의 양성 및 충원 시스템과 콘텐츠와 방식이 그런 훈련 과정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권. 이제 새 정치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할지 분명히 자각해야 합니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치혁신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혁신해야 합니다. 세월호의 비극이 현 시기 대한민국에게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새겨야 합니다. 잘못했고, 앞으로 잘하겠다는 식의 진부한 언동으로 때울 그런 때가 아닙니다. ‘안전행정부’라고 이름 짓고서는 그간 도대체 무엇을 어찌한 것인지를 대한민국 혁신의 관점에서 살펴야 합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에도 빈번하게 일어난 대형 참사에서 도대체 대한민국의 소위 인재와 엘리트들은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으며, 어떤 실천을 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기존의 그들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과제들을 수행해 낼 마인드와 그 마인드를 키울 시스템을 구비했는지 검증해야 합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모든 정치 일정이 중단되었습니다. 지방선거 일정도 그렇고, 국회 일정도 그러합니다. 그래도 정치권이 판단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애꿎은 생명들이 희생되는 사태에 직면해 정치권도 충격을 받기는 했을 것입니다. '정치 왜 하고 있나' 스스로 자문도 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한순간이나마 반추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또 기성세력 간 경쟁과 다툼의 시간이 돌아올 것입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전례의 반복을 중단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 중단해야 할 사항입니다.

이 사건으로 정치권과 그 주변이 손익을 따져보는 논평과 전망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를 계기로 여권은 정치권의 대표로 심판받아야 합니다. 또 먼저 나서서 새 정치를 주창했음에도 불구하고 새 정치가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야권은 또다시 재편되어야 합니다. 정치권 전체가 대한민국 혁신의 관점에서 재편되어야 합니다. 아마도 시민들이 직접 나서야 할 것입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적어도 지금은, 정당정치가 아니라 시민 정치의 지평을 열어젖힘으로써 더욱 견고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시민운동과 시민정치 등 대안 정치 세력도 이제 기성 정치권에 대한 비판과 자신만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이념과 정책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는 실사구시의 정치를 지금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세월호 침몰사건이 일어난 어제, 오늘도 무사히 잠자리에 든 제 아이들을 보며 안도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죄스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다른 학부모들을 떠올리며. 그런데 참으로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 모를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내 자식의 무사함을 감사하는 것조차 죄스럽게 만드는 이 땅에서의 삶에. 오로지 감사한 마음으로 내 아이들의 무사함에 안도의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그런 삶이 이 땅에서도 구현되길 소망해봅니다. 그 소망을 이루어 줄 새 정치의 도래를 기원하면서 말입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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