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동네북이 없습니다. 요즘 새누리당을 보면 '안철수 때리기'를 빼곤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안철수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너나 잘해"라고 야유를 보내 사과한 일이 엊그제인데, 비슷한 일이 거의 매일 반복됩니다. 예를 들어, 황인자 의원은 지난 8일 대정부질문에서 안 대표를 '스토커'로 만들어버렸더군요.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해외에서는 일본의 아베 총리에게, 국내에서는 안철수 제1야당 공동대표에게 스토킹 당하고 있다"고 한 겁니다. 아베 총리에 대한 여론의 부정적 이미지를 안 대표에게 덮어씌운 것이죠. 제1야당의 대표가 대통령에게 회동을 요청하면 스토커 취급하는, 이상한 여당의 정치 문법입니다.
4월10일 공개한 여론조사와 당원조사 결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선거에 공천하기로 결정했으니, 안 대표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격은 더욱 심해질 겁니다. 야당이 무공천 방침을 번복하기로 결정한 직후, 새누리당이 쏟아낸 독설들이 이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안 대표가 만든 V3는 바이러스라도 잡았지만 정작 본인은 말 바꾸기로 약속 위반 바이러스를 만들어냈으니 이제 그만 안 대표는 다운(down)될 시간"이라며 "정계 은퇴를 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심 최고위원은 "공천하지 않는다는 게 새 정치라고 하더니 공천하기로 했으니 구(舊) 정치가 됐다"고 했습니다. 야당의 선거 프레임이던 '약속 대 거짓'을 빗댄 역공입니다. 마치 '새 정치'에 대한 사망선고라도 내린 듯한 모양새입니다.
언론도 안 대표에게 몽둥이찜질입니다. 글쟁이들의 기가 막힌 조어 경쟁 속에 '안철수, 또 철수(撤收)'가 금메달감입니다. 서울시장 후보 양보, 대통령 후보 포기, 독자 신당 출범 포기에 이은 네 번째 후퇴라는 게 내용입니다. 2년 전에는 '세인트 찰스'라고 했었죠. 현실 정치의 물정을 모르는 '고매하신 메시아'인 양, 대선주자로 발돋움한 그를 그렇게들 조롱했습니다. 천상에 머물러도, 지상에 내려와서도 욕먹는 게 업이 된 안 대표를 '찌질한' 정치인으로 묘사하지 않으면 덩달아 바보 되는 분위깁니다. 이러한 정치권과 언론 때문이겠죠. 안철수 때리기가 전 국민의 레저 스포츠가 된 것은.
물론 안 대표가 능수능란한 정치의 고수 같지는 않습니다. 그가 제시하는 정치 의제 가운데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철수(撤收)론'은 좀 따져봐야겠습니다. 50%의 지지를 받던 그가 5% 지지에 불과하던 시민운동가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비워주었을 때, '아름다운 양보'라고들 하지 않았던가요? 2012년에 대통령 후보에서 물러난 건 어떻습니까. 단일화 압력을 무시하고 그대로 '고(go)'를 부르는 게 가능했을까요? 그가 독자 신당의 길을 접고 김한길 대표와 손을 맞잡았을 때, 가장 먼저 주목한 효과는 여야 간 일대일 구도의 완성 아니었던가요? 모두 양면이 있는 선택의 문제였던 만큼, 그가 어떤 선택을 했어도 긍정 효과와 부정 효과는 나란히 나타났을 겁니다.
이번 기초선거 무공천 논란도 그렇습니다. 기초선거 무공천을 새 정치의 핵심 테제로 세운 건 아이러니이지만, 정당 공천이 선악의 이분법이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입니다. 그런데도 이게 우리 정치의 명운이 걸린 문제처럼 비화된 까닭은 지난 대선 때 덜컥 걸어버린 '약속'의 덫에 걸린 탓이죠. 하지만 그 약속을 안 대표만 한 게 아니었고,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함께 약속을 지켰더라면 이런 난리는 없었을 겁니다. 정치권이 쓸데없는 논쟁에 얽매이게 된 책임을 묻는다면, 응당 대선 공약을 먼저 파기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져야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일언반구 없는 박 대통령은 안 대표의 회동 요청에 정무수석을 보내 거절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습니다. 새누리당은 말로는 공약 파기를 '대리 사과'했지만, 여태껏 논란을 즐기는 기색이었습니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의 고사가 요즘 유행입니다만, 약속을 단물 빠진 껌처럼 뱉어버린 사람들이 최소한의 가책은커녕, 약속을 지키려다 마지못해 돌아선 미생에게 '왜 물에 빠져 죽지 않았느냐'고 나무라는 꼴입니다.
저는 안 대표가 아무런 의미도 실익도 없는 정당공천의 약속에 끝까지 얽매여 지방선거 자체를 기형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한 결심을 꾸짖을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정치의 과정이 늘 직진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잘못 맞춘 첫 단추를 바로 끼우기 위해선 이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고비용·저효율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항간에선 요즘 유행하는 KBS 사극 <정도전>에 빗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안철수의 회군'을 비교하기도 합니다만, 기초선거 정당공천 여부가 나라와 역사의 명운이 달린 문제는 아닌지라 동렬 비교는 한참 과합니다. 이 역시 ‘회군’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안 대표에게 묻기 위한 의도적인 뻥튀기입니다.
어쨌건, 정치 기능을 지루하게 마비시켰던 정당공천 문제는 이제 결론 났습니다. '기호 2번'은 부활했습니다. 어렵게 돌고 돌아왔지만, 지방선거는 '하나의 룰'로 치러지게 됐습니다. 선거를 정상적으로 치를 수 있게 된 점에서 다행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정당공천 문제 자체가 우리 정치의 불요불급의 과제가 아닌 이상, 더 이상 왈가왈부할 일이 아닙니다.
물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논란이 격했던 만큼 '회군'에도 진통이 수반되겠죠. 당장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 특히 안철수 대표의 리더십에 난 생채기는 치유되기까지 고통이 따르고 시간이 걸릴 겁니다. 무공천에 대한 소신을 굽힌 데 대한 비난과 함께 '무공천=새정치'라는 등식을 만든 책임도 피해 가기 어렵습니다. '무공천'을 합당의 고리로 삼았던 안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이 감내해야 할 진통입니다. 일각에서 '안철수 간판'으로 지방선거를 치르기가 어려워졌으니,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지방선거와 관련한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라면 안철수 사퇴론은 성급해 보입니다. 안 대표를 대체한 '간판'이 누가 있는지를 생각하면 다른 답이 나오지도 않습니다. 여권의 '안철수 때리기'의 노림수에 걸려드는 길이라는 거죠. 여권은 합당 이후에도 기존 민주당 세력과 안철수 세력 사이의 틈을 벌리려는 '분열의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구사했습니다. 양측의 합당으로 일대일 구도가 완성되자 내용적인 분열을 꾀하려는 겁니다. 이는 지방선거에 대한 안철수 지지층의 무관심을 유발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선거를 5% 이내 박빙의 다툼이라고 볼 때, 중도와 보수 일부에 걸친 안철수 지지층의 전열을 흩트리는 게 여권의 최우선적인 전략일 테니까요. 야권의 지방선거 깃발이나 다름없는 안 대표를 무너뜨리면 지방선거는 여권에게 식은 죽 먹기가 됩니다.
그렇게 볼 때, 무공천 논란은 가닥이 잡혔지만 여권의 '안철수 때리기'는 더욱 집요해질 겁니다. 그 이유를 찾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우선 '철수(撤收)론'을 관통하는 비판의 핵심은 '약속 정치'의 파기에 있습니다. 약속은 중요한 덕목이고 가치입니다. 지키는 게 마땅하고 불가피하게 번복하게 됐을 시에는 이에 합당한 도의적 책임을 표하고 사과를 하는 게 옳습니다. 이 점에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찔리는 게 많습니다.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 파기는 아킬레스건이죠. 그런데 안 대표가 무공천 약속을 뒤집은 것을 빌미로, 박 대통령의 약속 파기도 은근슬쩍 물타기를 하려 할 겁니다.
정치를 '약속'이라는 도덕의 영역에 가둔 안 대표와 야당의 행보는 분명한 패착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단지 '약속'으로만 볼 수 있을까요? 기초선거 공천 문제처럼 사정이 달라졌다며 사과하고 넘어가면 그만인 문제일까요? 이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그토록 강조하는 '민생'의 제1과제입니다. 국민들이 먹고 사는 것과 전혀 관계없는 정당공천 문제와 달리, 경제민주화와 복지 정책은 100% 달성이 어렵더라도 국가적으로 끊임없이 추진해야 할 과제라는 겁니다. 이에 대한 포기는 곧 민생의 포기와 다름없는데도, 여권은 안철수의 티끌을 문제 삼아 제 눈의 들보를 감추려 합니다.
이제 다시 공은 안 대표에게 넘어갔습니다. 무공천 논란으로 상처가 난 '새 정치'를 올바른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이는 개인 정치인 안철수의 정치생명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안철수 현상'이 안 대표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듯이, '새 정치'도 무공천에 국한된 가치가 아니라는 얘기죠. 안 대표가 진짜 정치생명을 걸고 매달릴 일은 '무공천'이 아니라 '새 정치'의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간의 혼선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민생 의제 중심으로 새 정치의 내용을 가다듬는 일이 시급해 보입니다. 안철수 대표가 견디고 버티고 싸워야 할 이유는 자신의 정치생명 때문이 아니라 '민생'이 진창에 빠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선거 전략을 다시 짜야 할 겁니다. 당초 무공천 방침은 기초선거를 포기하고 광역 선거에서 승부를 보려는 전략에 기초했습니다. 이것이 백지화된 이상, 광역선거와 기초선거의 유기적인 결합을 이뤄내야 할 책임이 생긴 거죠. 훨씬 어려워진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합니다. 무공천은 궤멸적인 패배로 이어졌을 테지만, 공천을 한다고 해서 야권의 지방선거 승리가 보장된 건 결코 아니니까요. 무공천 방침까지 뒤집고도 선거에 패한다면, 그 내상은 더욱 심각할 겁니다. 지방선거는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고, 정당공천의 덫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안 대표와 야당이 새로운 국면을 주도할 만한 실력이 있는지는 곧 드러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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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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