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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보험사 로비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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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보험사 로비 탓?

[시민정치시평]민간보험이 더 좋다는 궤변이나 그만둬라

지난 25일 방송 뉴스에 안타까운 사연 하나가 보도되었다. 골프장에서 23년 동안 캐디로 일한 여성 노동자가 업무 중 홀에 빠져서 뇌사 상태에 빠졌다. 골프장 노동자는 특수고용 산재보험 특례 적용대상이어서, 산재 신청을 하려고 알아보니, '적용제외 신청'을 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일하다 다쳐 생사를 헤매고 있는데, 산재보상도 안 되고 회사도 나 몰라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실질적으로는 노동자이면서 사업주에 의해 도급계약, 위탁계약, 출연계약 등으로 '가짜 사장님'이 된 250만 명에 달하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현실이다.

1999년부터 학습지 교사, 보험 설계사, 레미콘 기사를 비롯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노동조합 설립과 투쟁을 해왔으나, 관련 법 제도는 14년째 탁상공론에 머물고 있다. 정부는 면피용으로 2008년 4개 직종(골프장 캐디,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레미콘 기사)으로 한정하여 보험료를 노동자와 사용자가 절반씩 부담하는 산재보험 특례만 제도화하였다. 현재는 6개 직종(택배기사, 퀵 서비스 기사 일부 추가)이다. 그러나 6년이 지나는 동안 산재보험 실질 적용은 대상 노동자 가운데 8~9%에 머물렀는데, 그 이유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적용제외 신청'이라는 것 때문이다.
 
원래 산재보험 제도는 당연 가입 제도이다. 사업주는 누구나 가입해야 하고, 설사 사업주가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산재가 발생해도 노동자는 산재보상을 받고, 사업주가 미가입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그러나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보험 특례는 도입의 근거도 명확하지 않은 '적용제외 신청'을 두어 대상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제도화되었다. 그러자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사업주들이 보험 가입 신고를 하고서는 대상 노동자를 아예 통째로 적용제외 신청서를 제출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결국 사업주는 보험 가입 신청은 서류상으로만 하고, 대상 노동자는 한 명도 없는 상태로 만들어 산재보험료도 안 내고, 노동자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페이퍼 가입이 넘쳐나게 된 것이다.

사업주들은 노동자의 동의 없이 '적용제외 신청서'에 허위 서명을 하거나, 위탁계약서 작성 시 수많은 서류에 슬쩍 끼워 넣기도 하고, 서명을 하지 않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가짜 적용제외 신청서를 만들어 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회사의 요구로 적용제외 신청서를 작성한 경우가 절반이 넘었다. 현장에서는 산재보험 가입을 하면 줄줄이 세금 폭탄을 맞는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집단 교육을 통해 산재보험에 대한 악의적인 선전을 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대부분의 특수 고용노동자는 본인이 적용제외 신청을 한지도 모른 채 막상 산재를 당하고 나서 보상이 안 된다는 날벼락 통보를 받아야 했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대상 직종확대, 보험료 사업주 부담, 적용제외 신청 폐지 등을 수년 동안 요구해 왔다. 그중에 적용제외 신청 제도는 국정감사의 단골 메뉴였다. 18대 국회에서 당정협의로 적용제외 신청을 폐지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그때부터 보험협회는 국회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법안 반대 활동을 펼쳤고, 결국 폐기되었다. 지난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 관련 공약을 제시한 것이 별반 없었다. 그 와중에도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제도 개선은 포함되었다. 올해 발표된 경제개발 3개년 계획에도 특수고용노동자 고용보험, 산재보험 적용확대 및 제도개선을 포함했고, 제도개선 주요 내용이 적용제외신청 폐지다. 그러나 19대 국회에서도 지난 2월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적용제외 신청 폐지'는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국정감사에서 적용제외 신청 폐지를 주장했던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이 돌연 태도를 바꾸어 반대에 나섰고, 환경노동위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법사위가 내용심사를 하겠다며 계류시켜 버린 것이다.

박 대통령도 국회 환경노동위도 노동부도 추진하고 찬성하는 법안임에도 발목이 잡혔다. 그 배경에는 자신들의 민간보험 시장 사수를 위해 이번에도 국회에 상주하다시피 한 보험협회의 로비가 있었다.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면 자신들의 민간보험 상품시장이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이들은 산재보험 제도를 잘 모르는 현장 노동자와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

첫째, 산재보험보다 보장성이 높은 민간보험에 가입하고 있으므로 노동자나 사용자에게 이중부담이 된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제도이므로 자신이 퇴직하거나 회사가 폐업해도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 발생했던 사고나 직업병에 대해 보상이 된다. 그러나 민간보험은 회사에 다니는 기간 동안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민간보험의 약관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 직업병은 보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보상 급여 범위도 사업주가 낸 보험료에 따라 달라지며, 산재보험과 똑같다고 선전하는 보험 상품도 실제 약관에서는 보장성이 떨어지는 것이 드러났다. 더욱이 산재보험은 무과실 책임주의로 산재 발생에 대한 노동자 과실을 따지지 않고 보상한다. 그러나 상해보험은 과실 여부와 연계시켜 보장범위가 달라진다. "산재보험보다 더 좋은 민간보험"은 사기극이다. 실질적으로 많은 민간보험이 산재보험보다 보험료가 저렴하다. 더 좋은 보장성을 제공한다면서, 보험료는 더 낮은 이유가 무엇일까. 보험 사업주가 갑자기 자선 사업가라도 되었다는 것인가?

둘째,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면 특수고용 노동자의 해고와 실업으로 이어진다? 산재보험 가입 의무화는 특수고용노동자의 근로자성 인정으로 이어지고, 이는 기업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켜 대량 해고와 실업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는 바로 앞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보험 사업주들은 노사가 절반씩 부담하는 산재보험이 아닌 사업주가 전액 부담하는 민간보험에 가입하고 있으니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사업주 전액 부담의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사업주가 노사 절반부담의 산재보험료에 대한 재정 부담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노동자에게는 해고와 실업으로 이어진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산재보험은 이미 외국에서는 전업주부, 유학생까지 그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험제도이다. 특수고용노동자가 적용대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비용도 사업주 부담으로 운영된다.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이 된다고 해서,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것과는 이미 무관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이 외국의 사례이다. 더욱이 한국의 특수고용 산재보험 특례는 외국과 달리 비용도 절반 부담이고, 대상도 250만 명 중 45만 명 내외로 지극히 제한적이다.

특수고용노동자는 외형적으로는 도급, 위탁계약의 형태를 맺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노동자들이다. 2012년 노동부 연구 보고서에서도 노동자 평균임금이 284만 원이지만, 특수고용노동자 평균임금은 170만 원이다. 100만 원 미만 특수고용 노동자는 45%에 달한다. 그러나 민주노총 조사에서 산재 발생은 30배가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민간보험 가입도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에서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은 너무도 절실한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이다. 노동조합을 결성해 집단적인 보호를 할 권리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적용제외 신청'이라는 독소조항으로 산재보험조차 보장하지 않는다면, 이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계속 떨어뜨리는 것이다.

올해는 산재보험 제도 도입 50주년을 맞는 해이다. 산재보험은 사업주 책임배상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보장제도이다. 이에 사회안전망으로서 가장 최소한의 조치로 거론된다. 그러나 막상 50주년이 되는 산재보험 제도는 민간보험사업주의 사기극에 휘말리는 일부 국회의원 문제로 실질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미 250만 명에 달하고, 앞으로 더욱더 확대될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산재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지 않는다면, 결국 특수고용 산재보험은 민간시장에 내맡겨지는 것이다. 이것이 산재보험 민영화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국회와 일부 언론은 더 이상 보험사업주의 꼭두각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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