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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헤이그 '유체이탈 화법', 최선일까?

[정욱식 칼럼] ‘한반도판 체르노빌’이 걱정된다면

“영변에 너무나 많은 핵시설이 집중돼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한 건물에서만 화재가 발생해도 체르노빌보다 더 큰 핵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위험도 있다.”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각) 방영된 네덜란드 공영방송 NOS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박 대통령은 또한 “북한이 핵물질을 이전할 수도 있고 또 그 이전된 핵물질이 테러에 사용될 수도 있다”며 “이런 북한의 행동은 주변국에 핵무장의 경쟁을 야기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를 야기하고 있다”고도 했다.

박 대통령이 밝힌 것처럼, 영변에는 재가동 준비에 들어간 5메가와트 흑연감속로, 최근 규모를 두 배로 확장한 것으로 알려진 우라늄 농축 공장, 완공을 눈앞에 둔 30메가와트 실험용 경수로, 핵연료 제조 공장 및 재처리 시설 등 많은 핵시설들이 밀집되어 있다. 특히 북한이 경수로 운영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30메가와트 경수로 가동 시 핵사고의 위험성은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핵사고가 당사국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이러한 우려 제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네덜란드 공영방송 NOS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청와대

곳곳에 ‘한국의 체르노빌’ 만드는 박근혜 정부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한반도판 체르노빌’이 걱정된다면서 정작 박근혜 정부는 ‘원전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북한의 핵 활동을 멈춰 세울 수 있는 실효적인 접근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1월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보면, 정부는 전력 수요가 2035년에 2011년 대비 80% 증가할 것으로 보고, 핵발전소 5~7기를 추가로 건설키로 했다. 이렇게 되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23기, 현재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11기에 더해 총 40기 안팎의 원전이 들어서게 된다.

이미 한국은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도를 갖고 있다. 이에 더해 20기 가까이 추가로 건설하면 한국은 그야말로 체르노빌, 혹은 후쿠시마 참사의 위험을 잉태한 ‘핵폭탄’을 곳곳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인류와 핵은 공존할 수 없다’는 교훈이 ‘한국의 원전은 안전하다’는 오만에 자리를 내주게 되면 핵 발전소 사고는 그만큼 커지게 된다. 북한의 원전 문제를 얘기할 때에는 ‘체르노빌’ 참사에 빗대고, 남한의 원전을 얘기할 때에는 ‘르네상스’를 외치는 이중적인 태도로는 결코 안전하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하다.

말뿐인 비핵화, 실효적 정책이 시급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또한 “한반도를 비핵화시키는 것을 하나의 세계의 파일럿 프로젝트같이 만들어서 여기에 전 세계가 여기에서부터 핵무기 없는 세상은 시작된다는 마음으로 힘을 모은다면 그건 이뤄질 수 있다”며, “공조가 안 되고 한 군데, 두 군데로 자꾸 흘러나간다면 그 공조는 힘이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핵 해결을 ‘핵무기 없는 세계’로 가는 출발점으로 삼아 물샐틈없는 대북 압박과 제재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다.

그러나 압박과 제재 위주의 대북정책이 오히려 북한의 핵 능력 강화로 귀결되어왔다는 것은 길게는 1990년대 초반부터, 짧게는 이명박 정부 이후 6년간 충분히 입증되었다. 실패한 정책에서 교훈을 찾기보다는 실패의 탓을 압박과 제재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몰역사적 태도는 더 큰 실패를 잉태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한두 군데”는 아마도 중국과 러시아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는 정상적인 상업 거래마저 금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 나라에 대북 경제협력을 중단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근거 차체가 빈약하다. 더구나 6자회담을 거부하는 쪽은 한-미-일이다.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서 대북 압박과 제재를 높이자고 요구하면, 이들 나라가 동참하기는커녕 오히려 한-미-일의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또한 박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자꾸 대북 제재와 압박을 주장하게 되면 제 발 등을 찍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난 2월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첫 단추가 끼워진 남북관계는 현재 숨 고르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가 한미합동군사훈련 종료 이후에 진정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다면, 지금은 사전 정지 작업에 힘써야 한다.

그런데 대북 제재 목청을 높이게 되면 남북한의 신뢰구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남측의 정책적 범위도 제한하게 된다. 이산가족 상봉 확대와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등 박근혜 정부가 중시하는 대북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와 5·24 조치의 완화 및 해제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대북 제재 공조에 힘이 빠질 것이라는 안팎의 대북 강경 여론에 직면하게 된다.

필자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핵 해결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북핵 ‘동결’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견을 개진해왔다. 6자회담을 열어 대북 제재와 완화나 해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한반도 평화포럼 개최 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북한과 협상하면, 영변 핵시설 동결을 받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정 한반도판 체르노빌 사태가 걱정된다면, 구호로서의 비핵화에 실효적인 정책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또한 핵 발전소 확대를 향한 ‘묻지마식 질주’에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 지금 한반도는 ‘유체이탈 화법’이나 즐길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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