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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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경제기사를 읽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3월 15일은 한미 FTA가 발효된 지 2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2006년 2월 2일에 한미 FTA 협상 개시 선언이 있었으니 벌써 8년이 흘렀죠. 이 어마어마한 사건 탓에 '한미 FTA 반대 전도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저로선 감개가 새롭습니다. 다음 글부터 읽어 보실까요?
"한미 FTA 자기 반성문"을 쓰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해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이 매듭지은 한미 FTA는 진보 보수라는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무역을 통해 국익을 증대한다는 취지였다. 2년의 성적표를 보면 성공적이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반미(反美) 반(反)세계화라는 시대착오적 좌파이념에 사로잡혀 한미 FTA 반대를 외치던 정치인들과 강성 좌파 시민단체 등 촛불세력은 이제 통렬한 자기 반성문을 써야 한다."
<동아일보>의 지난 3월 17일 자 사설입니다. 저야 정치인이라고 할 순 없지만, 한미 FTA 반대를 외치던 "강성 좌파 시민단체 등 촛불세력"에 틀림없이 속할 겁니다. 다른 보수 언론의 논조도 별반 다를 바 없었는데 이들이 이렇듯 비판자들을 매도한 근거는 정부가 지난 3월 14일 내놓은 '한미 FTA 발효 2주년 성과분석'이라는 자료, 그리고 미국 의회 내에서 미국의 무역적자 증가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는 사실입니다. 때론 이 사람들의 단순하고 속 편한 사고가 부럽습니다.
거대 언론이 쓰라니, 저라도 "통렬한 자기 반성문"을 쓸 수밖에요. 하지만 이 반성문은 1주년 때 정부 발표와 언론 보도에 관해 쓴 내용과 대동소이합니다.
한·미 FTA 발효 전후 한미 교역현황(단위: 억불, 전동기비%)
이 표를 보면 정부가 무엇을 근거로 삼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정부는 발효 후 2년 동안 대미수출 증가율이 2012년 4.1%, 2013년 6.0%로 대세계수출 증가율보다 높은 것이야말로 한미 FTA의 성과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논법대로라면 발효 이전 2008년과 2009년의 대미 수출증가율이 각각 32.3%와 12.8%로, 지난 2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정부처럼 단순 수치만 놓고 얘기한다면, 한미 FTA 때문에 수출증가율이 형편없이 낮아졌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요?
나아가서 한미 FTA와 거의 비슷한 강도로 FTA를 맺었고 이보다 1년여 먼저 FTA를 발효한 EU에 대한 2년간 수출증가율은 마이너스입니다. 물론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은 EU가 재정위기에 빠져 수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때에 대미 수출 증가율이 세계의 수치보다 조금 낫게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FTA 혜택 품목, 즉 관세가 인하된 품목의 수출이 더 많이 증가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표를 보면, 발효 후 2년째는 혜택품목의 증가율은 4.9%인데 비혜택품목의 증가율은 5.7%로 비혜택품목이 오히려 높습니다. 정부는 반도체(원래 관세가 없었으므로 FTA 혜택 품목이 아니죠) 수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런 설명은 무역수지의 개선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대폭 증가한 것은 관세혜택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흉년과 한국의 침체로 곡물과 원료의 대미 수입이 급감했기 때문이니까요.
짧은 기간에 여러 변수가 개입해서 나온 몇 개의 단순 수치로 한미 FTA와 같은 거대한 정책의 성과를 평가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정부가 오히려 대답해야 할 건 장기적인 추세에 관한 얘깁니다. 정부는 2007년에 한미 FTA와 한 EU FTA가 동시에 발효되면 실질 GDP가 무려 7.61% 추가 증가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 있죠.
지금은 한미 FTA와 한 EU FTA가 모두 발효된 지 2년 지났습니다. 그들의 계산법대로 하면, 통상의 경제성장률에 더해서 1.5% 이상 증가해야 했고(그러니까 최근의 침체를 감안해도 우리 경제성장률은 5~6%가 넘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8년 후에는 10%가 넘을 거고요.) 후생수준은 50억 달러 이상 늘어났어야 합니다. 도대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던 걸 되돌아보면 낯이 뜨거울 만도 한데 정부는 자화자찬 중입니다. 아니 이를 반대했던 사람들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주장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선인들이 '후안무치(厚顔無恥)',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을 만든 게 아닐까요?
어쨌든 수치를 놓고 싸우는 건, 양쪽에게 모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증명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문제는 원래부터 미국의 전략이 상품시장을 열어 주고 대신 지적재산권· 서비스·투자시장을 개방하자는 것, 즉 미국만큼 규제를 완화하고 민영화하자는 것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한미 FTA의 '통렬한 성과'는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한미 FTA에 맞춰 63개의 법령을 이미 제정 또는 개정했고, 각종 정책 역시 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환경부의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 좌절, 산업자원부의 IT·네트워크 장비 공공조달 시 중소기업 우대 정책 좌절,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시 미국업체 제외, 우정사업본부의 우체국 보험 가입한도 증액 좌절, 마이크로소프트(MS)의 국방부에 대한 사용료 요구, 금융위원회의 비자·마스터카드 국내 수수료 제한 좌절 등이 그것입니다.
이미 해설해 드린 대로 이런 사안들은 TPP 협상 가입 4대 선결요건으로 모습을 바꿔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 정부는 TPP 가입을 목표로 한-호주 FTA, 한-캐나다 FTA를 연달아 체결했는데요, 이제 위에 제기한 정책들은 완전한 폐기 수순을 밟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런 좌절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있는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는 한미 FTA의 위력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게 될 테니까요. 최신판 민영화정책은 공기업의 알짜배기 부분을 분리해서 영리자회사를 설립하는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예컨대 수서발 KTX 자회사, 병원의 영리 자회사에 미국 자본을 끌어들이면 그 자회사는 한미 FTA의 투자 챕터의 적용 대상이 됩니다. 기차가 부딪히고 병원비가 폭등하는 등 어떤 대형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차기 정부는 이 자회사에 손을 댈 수 없게 될 겁니다. 바로 악명 높은 투자자국가제소권 때문이죠. 한미 FTA의 진정한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미국식 시장만능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세계금융위기가 보여 주었는데도 아직도 거기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착오' 아닐까요? 정부와 일부 언론은 그때와 똑같이 자의적 통계 해석, 그리고 그들의 말투로 하자면, '친미·친세계화라는 시대착오적 우파 이념'에 빠져 있는 거죠.
내수 위축의 증거들
한국은행이 3월 17일 발표한 '2013년 중 자금순환표(잠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자금잉여 규모는 87조 원으로 전년보다 3조6000억 원 늘어났습니다. 즉, 가계의 여윳돈이 늘어났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2003년 이래 가장 많은 돈을 '쟁여 놓고' 있는 거죠.
가계의 잉여자금이 늘어난 것은 소득에 비해 지출을 줄였기 때문입니다. 소득이 늘었지만 빌린 돈 갚는 걸 걱정해야 하고 경기 불확실성에도 대비해야 하니까 소비를 최대한 억제한 겁니다.
이런 상황을 요즘 학계에선 '대차대조표형 불황'이라고 부릅니다. 3월 16일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이 '대차대조표 경기후퇴의 뇌관 제거 전략'이라는 이름이 붙은 보고서를 내놓았는데요. 현재 경제는 '자체적 조정이 어려운 전형적인 대차대조표 경기후퇴' 상황이라는 겁니다. 과잉부채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소비 흐름이 위축되고, 심각한 내수 부진에 빠지게 된다는 얘긴데 1929년 대공황 때 어빙 피셔가 얘기한 부채디플레이션이나 마찬가지 얘깁니다.
실제로 지난해 가처분 소득에 대한 소비지출액의 비율을 뜻하는 평균소비성향은 73.4%로 2003년 통계 산출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습니다. 연간 소비지출 증가율도 0.9%로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였고요.
(☞ 내수 부진… 빚 부담에 지갑 닫아, 경상 흑자도 ‘불황형’)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3162106365&code=920100
제가 연초에 정부의 금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3.9%에 대해서 소비 증가율을 낙관한 수치이기 때문에 약 1%포인트 정도 낮춰 봐야 한다는 평가를 했는데요, 바로 그 상황인 거죠. 2012년 3월 기준으로 자영업자의 대출 규모는 약 450조 원이었으니까 지금은 500조 원을 넘었을 겁니다. 소비가 계속 이렇게 지지부진하면, 자영업 붕괴는 현실의 일로 다가올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을 올리려고 중산층에게 돈 빌려 집 사라고 부추기는 이 정부는 도대체 제정신일까요?
투자를 늘리겠다고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정부, TPP에 들어가겠다고 농업 강국들과 서둘러 FTA를 체결하는 정부, 경기대책이라고는 오로지 부동산 가격 올리기밖에 모르는 정부…. 4년 후 정권이 바뀐다 해도 박근혜 정부가 남긴 후유증을 치유하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나의 한 표'는 이렇게 우리 모두의 삶을 좌지우지 합니다.
이미 약속된 지면을 넘겨서 독자들께 약속드린 희망찬 기사를 하나도 소개해 드리지 못하겠군요. 다음 주에는 반드시 하나 이상 찾아내고야 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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