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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노무현의 길' 말고 '박정희의 길'로! 그 진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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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노무현의 길' 말고 '박정희의 길'로! 그 진의는?

['꼼수 경제학'을 비판하다] 김호균-정승일 대담

박근혜 정부 2년차, 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던 많은 공약과 구호가 지켜지지 않는 가운데, 여러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완전히 정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경제민주화'일 것이다. 지난해 '남양유업 사태' 이후 대리점,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 '을'을 보호하기 위한 경제 구조를 만들자는 열망은 오히려 강해졌지만, 관련법 제정과 개정은 여야 공방과 함께 지지부진하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상위 10대 기업의 일반집중도가 조사 전년도에 비해 상승했지만, 대기업의 지배력 확장을 견제하는 칼날은 오히려 무뎌져 가고 있다. "규제는 암덩어리"라며 규제 개혁을 위한 끝장토론을 개최한 대통령에 대해 "경제민주화의 최종 포기 선언"이라 비판한 천호선 정의당 대표의 말대로다.

▲ <한국 신자유주의의 꼼수 경제학 비판>(김호균 지음, 길 펴냄). ⓒ길
2012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경제민주화라는 과제는 이렇게 선거용 구호로 묻히게 되는 걸까? '프레시안 books'는 최근 이와 관련한 문제의식을 갖고 출간된 <한국 신자유주의의 꼼수 경제학 비판>(김호균 지음, 길 펴냄)에 주목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신자유주의 꼼수 경제학'은 그가 주된 소재로 삼은 전국경제인연합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서 공표한 칼럼들 뒤에 도사리고 있는 이데올로기이며, 저자는 그것을 "재벌들의 이익을 옹호하면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에 반대하는 논리"라 설명한다.

저자는 그 논리에 '달콤한 궤변', '모르쇠', '제 논에 물 대기' 등의 알기 쉬운 이름을 붙여 하나하나 반박하면서 "경제민주화 없이 한국 경제의 재도약은 없으며, 한국 사회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복지국가가 필요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탄탄히 세워나간다. 그가 비판한 '신자유주의 꼼수 경제학'의 기본 주장은 무엇인지, 그것을 뛰어 넘어 한국 경제의 구조를 바꾸려면 구체적인 차원에서 어떤 부분에 주목해야 하는지 저자인 김호균 명지대학교 교수를 만나 들어보았다. 대담 진행은 '사민저널' 출범을 준비 중인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대표가 맡았다. <편집자>

신자유주의 경제학엔 3가지가 없다

정승일 : 이번에 내신 책이 <한국 신자유주의의 꼼수 경제학 비판> 입니다. 제목이 재미있어요. '꼼수'는 이명박 정부의 별명이었잖아요. 출판사가 정한 겁니까?

김호균 : 아뇨. 제가 정한 겁니다. 전 이 제목 아니면 출간 안 하겠다고 했어요. (웃음) 일련의 신자유주의 논객들의 주장에 대해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 없다고 봤어요.

정승일 : 이 책은 경제학자들을 위한 아카데믹한 내용은 아니고 일반 독자들을 위한 건데요. 쓰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나요?

김호균 : 제 이메일 주소가 어떻게 공개되었는지, 4~5년 전부터 한국경제연구원의 뉴스레터 같은 것이 제 이메일로 오기 시작했어요. 원래는 거의 안 열어보다가, 복지국가나 경제민주화 관련 제목이 많이 눈에 띄기에 열어보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이분들이 펴는 논리가 참으로 해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색이 학자들인데 아무리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에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허술한 논리, 아니 엉터리 논리, 속임수, 거짓 주장이 많았거든요.

2012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빈도수가 부쩍 늘었어요. 이걸 모아서 비판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주장들이 그들 내부 안에서 논의될 뿐만 아니라, 주류 언론에 그대로 흘러 들어가게 되면 일반 독자들도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2011년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고, 연구년인 2012년 독일에 나가있는 동안 원고를 많이 썼습니다.

정승일 : 이 책에서 선생님이 비판한 칼럼들의 내용을 보면 정말 괴팍하기 짝이 없는데 사실 보수 경제학자들이 모이면 자기들끼리 흔히 주고받는 이야기죠.

▲ 김호균 명지대학교 경영정보학과 교수.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프레시안(김윤나영)
김호균 : 네. 그 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적 품성이 있어요. 오만하다는 거예요. 자신의 생각이 유일한 진리라는 종교적인 자세를 갖고 있다고 할까요. 그래서 자기 입장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죠.

책을 쓰고 나서 보니 그 분들이 벌이고 있는, 학자로선 해서는 안 되는 반칙이 세 가지로 압축되더라고요. 한국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3무(無)라고 이름 붙여봤습니다.

첫 번째는 무리(無理)입니다. 이치에 닿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논리적 비약을 한다는 겁니다. 어떤 주장을 하면서 중간에 논리적 연결 고리를 빼먹거나, 어떤 것을 인용할 때 원저자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인용해서 견강부회하거나 왜곡하는 거죠. 한 논객은 경제 발전에 성공한 나라들에 관한 대런 에이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두 학자의 연구결과는 '참여적' 경제제도와 정치제도를 발전시킨 나라는 번창하고 '착취적' 제도가 번성하고 소수에게 권력과 기회가 집중된 나라는 쇠퇴한다는 것인데, 이를 한 신자유주의 논객은 경제민주화에는 반대하면서 "우리 시대에 필요한 권력 분산의 대상은 정부와 대통령"이라는 주장으로 왜곡시켰습니다.

두 번째는 무지(無知)입니다. 평등과 불평등의 학술적인 의미를 모르거나 관료제와 관료주의의 차이를 모릅니다. 또는 경제민주화를 비판하면서 그런 용어를 들어본 적 없다고 떼를 씁니다. 어느 신자유주의 논객은 미국 내 경제학 데이터베이스와 백과사전 사이트 '네 곳'을 검색해도 경제민주화(economic democratization)에 관한 논문이나 용어해설이 등장하지 않는다면서 경제민주화를 "경제학에는 없는 대선용 정치용어"라고 주장했는데요.

그런데 검색을 하는 김에 한 번만 더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구글에서 경제민주화를 검색하면 수많은 문서가 나오고, 위키피디아에서 경제민주주의(economic democracy)가 딱 나옵니다. 자기가 배운 지식 안에 없으면 세상에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 이게 말하자면 지적 오만입니다.

세 번째는 무정(無情)입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어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주장은 규제 완화, 감세, 민영화, 자유화·개방화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만, 여기에 과연 사람이 있을까요? 가령 규제 완화 중 대표적인 것이 노동시장 유연화인데요. 그것을 말하면서 회사에서 '잘린' 사람들이나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장 난 전축 판처럼 똑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거지요.

정승일 : 그들 주장의 허점을 2008년 금융 위기라는 구체적인 차원에 접목시켜 봅시다. 선생님은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 꼼수 경제학자들이 이 미국발 경제 위기의 발생 원인을 사실과는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사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눈으로 보면 이 금융 위기는 자본주의의 내부적 모순에 의한 전반적 위기(general crisis)였지요. 그런데 그 이후 약 5년, 자본주의가 폭삭 망하지는 않았단 말이죠. 오히려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우파 정치의 힘이 장악하고 있고요.

김호균 : 2008년의 위기는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의해 뒷받침된 금융 주도 자본주의라는 축적 체제 자체가 위기를 맞이한 건데요. 이 책에서 제가 비판한 일부 논객들이 '복지국가 때문에 발생한 위기'라는 식으로 전혀 다른 형태로 위장시키고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죠. 가령 그리스 재정위기가 발발하자 친재벌 성향의 자유기업원은 그리스 아테네대학 교수를 초청해서 재정위기의 원인이 "정치권이 복지 포퓰리즘을 남발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주류 언론들은 그리스 재정위기를 복지국가의 위기라는 식으로 보도하기에 바빴고요.

이런 지적 헤게모니가 유지되는 것은, 현실 경제에서 국제적인 금융자본의 지배력이 여전히 공고하기 때문입니다. 국제 금융자본의 영향력은 2008년 금융 위기 이전보다 결코 줄어들지 않았잖아요? 위기를 거치며 금융회사들 스스로 자숙하는 분위기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의식은 약해졌고, 그들이 중앙은행에 졌던 빚도 1년 만에 다 갚아버리자 더 이상 정부에게 신세진 것 없다고 발뺌을 했죠. 규제를 강화하겠다던 정부나 국제기구들의 의지도 엄청난 로비 활동에 부딪혀 유야무야 되었고요.

금융 규제가 흐지부지되다시피 하면서, 그들의 활동 공간이 위기 전과 다름없이 살아남은 상황이지요. 미국의 다우지수가 1만6000 포인트까지 올라가지 않습니까. 금융 위기 이전을 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실물 경제가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 오르는 주가는 또 다른 금융 위기를 잉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경제 역시 다시 살아날 거다, 집값이 다시 오를 거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이미 가계부채가 심각한 상황에서 그건 또 다시 버블일 거고요.

노무현과 박근혜의 공통점

▲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 ⓒ프레시안(김윤나영)
정승일 : 이 책은 1부에서 경제민주화를, 2부에서 복지국가를 이야기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둘러싼 신자유주의 꼼수 경제학자들의 칼럼을 구석구석 논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할 때와 복지국가를 이야기할 때 선생님의 초점이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 경제, 즉 그리스 위기나 미국 금융 위기를 이야기할 때는 복지국가에 관심을 갖고 자본주의, 특히 금융자본주의라는 냉혈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한국 경제 이야기를 할 때는 금융자본 이야기는 빠져 있고 주로 재벌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제의 문제가 그렇게 세계 경제의 문제와 분리된다고 볼 수 있는 건가요?

김호균 :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금융 시장 개방도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나라이고, 그래서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죠. 그래도 한국 경제를 직접 지배하는 것은 재벌이며, 국제 금융자본은 재벌 뒤에서 이익을 챙기고 있는 양상이기 때문에 재벌과 국제 금융자본은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복합적인 관계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재벌이 국제 금융자본의 주니어 파트너라 할까요? 그래서 재벌에 대한 비판은 결국 국제 금융자본에 대한 비판과 같이 갈 수 있는 거 아닐까요?

특히 국내 금융회사들, 특히 민영화된 은행의 행태를 보면, 흘러간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신 매판자본'이라는 규정이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매판자본'이 제국주의 자본 축적에만 기여하는 자본이라 한다면, '신 매판자본'은 자기 축적도 해가면서 제국주의적 국제 금융자본 축적에도 기여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이런 의미로서의 신 매판자본이라는 개념이 소련 체제 붕괴 전 80년대 말쯤 마르크스레닌주의 전통 안에서 잠깐 제시된 적이 있었습니다.

정승일 :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은행이 국유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신 매판자본이 아니었다면 이른바 민주 정권 이후부터 국제적 착취가 심해졌다고 할 수 있어요. 김대중, 노무현 두 정권 당시 우리나라 은행이 외국에 팔렸고, 그러면서 주주 자본주의가 나타나고 국제 금융자본이 우리나라 시장을 장악하는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가 (한국에서) 금융 주도 시장 자본주의를 만들었다고 봐야 하지 않은가 싶어요.

김호균 : 시기적으로 그렇죠. 1997년 외환위기 닥쳤을 때 미국을 등에 업은 국제통화기금(IMF) 요구대로 아주 파격적으로 자본 시장을 개방했지요. 그런데 '자본 시장 개방해야 너희들에게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준다'고 했던 거잖아요. 매우 불행한 일이었지만, 과연 그렇게 개방하는 것 말고 당시 다른 대안이 있었을지는 저도 의문입니다.

당시는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전체가 외환위기에 빠져 있었을 때였죠. 그 와중에 말레이시아는 우리와 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말레이시아 경제가 나중에 죽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어요. 그래서 사후적으로 보면 우리도 말레이시아처럼 미국이나 IMF가 원하는 대로 자본 시장 개방하지 않고 독자적 생존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요. 하지만 지금도 그렇고 당시도 그렇고 정치적 역학관계라든지 한미관계를 생각해 보면 그때 김대중 정부에게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지 않았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자본 시장은 일단 한 번 개방하면 다시 닫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개방 당시엔 위기 상황이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이후에도 동북아 금융 허브를 지향하며 개방을 확대한 노무현 정부는 한국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을 잘못 잡은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해요.


▲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와 김대중 전 대통령. ⓒDJ로드

정승일 :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야기되어 왔던 게 금융 허브 구상이나 회계·법률, 의료·교육 같은 각종 고부가가치 서비스 시장의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 성장론이었어요.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 위주의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한미 FTA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되었죠.

그런데 요즘 박근혜 정부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다시 교육이나 의료 같은 필수 공공 서비스 분야도 시장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에요. 이렇게 보면 박근혜 정부랑 노무현 정부랑 뭐가 다른가 싶어요. 노무현 정부의 김진표 라인에서 나온 생각이 지금 박근혜 정부 조현동, 현오석 같은 사람들에게 이어져 내려온다고 할까요?

김호균 : 맞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경제 관료들은 신자유주의에 완전히 투항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통령이 누군지와 상관없이, 정권보다도 더 일관되게 말이죠. 심지어 대통령이 하는 말도 안 듣잖아요. 얼마 전만 해도 대통령이 금융 소비자 보호원을 만들라고 지시했는데 금융위원회가 저항을 하지 않았습니까.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관료들의 이익, 금융 공급자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거죠. 가장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지향이라 볼 수 있지 않은가 싶어요.

독과점과 경제력 집중, 깨야 하는가?

정승일 : 이번 책에서 재벌 비판에도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셨는데요. 제가 알기로 선생님은 과거에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소장 활동을 하셨습니다. 재벌 개혁 운동을 많이 한 연구소였죠?

김호균 : 네. 지금은 그 연구소 소장은 아니고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경실련 이름 자체가 경제 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시민의 연합이기 때문에, 경제 정의를 위한 활동이 중심이 되지요. 거기서 제일 중요한 것이 재벌 개혁, 재벌 견제 활동이고요.

ⓒ프레시안 자료 사진
정승일 : 저는 대기업의 두 가지 얼굴이 있고 이걸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보는데요. 하나는 국제 시장에서 자동차나 전자기기 같이 업종 그 자체가 수출을 위한 제조업으로 플레이어로서의 대기업입니다. 이런 시장에서는 이른바 '등쳐먹기'가 가능하지 않고, 국제시장은 치열한 시장 경쟁 하에서 생산성과 기술개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이 책에서 말하는 꼼수 경제학이 통하지 않지요.

반면 국내 시장, 특히 납품시장이나 서비스 시장에서는 재벌이 꼼수의 얼굴을 가지고 등장합니다. 공정한 시장질서가 없는 공간인데, 바로 여기에서 거의 모든 재벌 문제가 나타나고 있지요. 이마트나 롯데마트처럼 유통업을 장악해서 골목시장에 침투, 소상인들을 괴롭히는 거라든지 납품받는 과정에서 중소기업에 행패를 부린다든지 하는 문제들이에요.

그래서 국민들도 유럽이나 미국 땅을 달리는 현대차를 보면 자랑스러워하지만 '통큰 OO'에는 분노한다든지, 해외 시장에선 좋게 보지만 국내 시장에선 나쁘게 본다든지, 이렇게 재벌에 대해 이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호균 : 저도 동의합니다. 국민들이나 중소기업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은 재벌들이 국내에서 보이는 거래 관행이기 때문인데, 이 부분에 비판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거고 거기서 개선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건데요. 그게 당장은 소비자와 중소기업에 국한된 문제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한국 경제 전체에 위해를 입히기 때문에, 재벌들의 행태 나아가 지배 구조 자체가 크게 개혁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승일 : 1980년대에 우리나라 진보 진영에서도 유행했던 마르크스 경제학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심해져서 결국 독과점화된다'라는 명제였어요. 그리고 독과점과 경제력 집중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의 역사 단계 즉 사회주의 단계로 넘어가는 예비적 과정이라고 보았고요. 즉 독점자본이나 경제력 집중은 해체의 대상이 아니라 장악 즉 사회화의 대상이라고 본 거죠. 정통 마르크스 경제학이 그랬고, 카우츠키도 20세기 초반까지는 그렇게 이야기했었죠.

그에 반해 현재 이야기되는 재벌 개혁론 또는 재벌해체론은, 그리고 김호균 선생님도 책에서 같은 의견이신데, 궁극적으로 경제력 집중을 완화 또는 해체시키려 하고 있어요. 마르크스주의와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는 거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따르면 중소기업이나 동네 상권의 몰락은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필연적 발전과정이 아닌가, 어쩔 수 없는 현상 아니냐,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냐는 거죠. 그러니까 골목 상권이나 중소기업을 보호하려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대기업 또는 독점자본을 사회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겁니다. 극소수이지만 요즘도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있기는 하던데요.

김호균 : 현실적으로 그렇게 독과점화가 일직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죠. 또 중소기업은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지식정보화와 함께 중소기업들이 활동하는 경제 공간이 새롭게 확대되는 부분도 있지요. 그래서 독점 자본에만 관심을 갖고 그걸 어떻게 사회화하느냐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취하느냐는 별개로 하더라도요.

또 요즘 한국 현실을 보면, '9988'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기업 중 99%가 중소기업이고 고용 중 88%가 중소기업에서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건 사실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라, 20년 전부터 하던 이야기에요. 그 20년간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지요. 물론 자본=경제력 집중 면에서 재벌의 힘이 훨씬 더 크죠. 그래도 여전히 중소기업이 자리를 차지하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어떤 대안을 생각할 때 뭐든지 '한 방'에 해결하려는 생각은 지양했으면 좋겠어요. 이거 하나면 다 해결할 수 있으니 작은 데엔 신경 쓰지 말자, 이런 근본주의적인 접근은 실현 가능성도 낮을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소비자가 그 과정에서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크다고 봅니다.

재벌 패밀리와 '타협' 가능할까

정승일 : 사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 상당히 많은 재벌 개혁이 이루어지기는 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재벌 패밀리'의 영향력은 옛날 같지는 않아요. 80년대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당시의 개혁은 명시적으로 소액주주들의 힘을 강화시키는 방향이었는데요. 이때 소액주주라는 건, 다 아시다시피 개미 투자자들이 아니라 펀드 매니저들이었거든요. 이 펀드의 핵심은 월가의 논리이고요.

즉 재벌 개혁의 결과 재벌 패밀리의 힘은 약해졌는데 펀드 매니저들의 힘은 강해졌고 또한 재벌 기업이 중소기업을 수탈하는 경향도 좀 더 세졌습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김호균 : 말씀하신 대로 모기업 또는 핵심기업으로서의 재벌 패밀리의 영향은 확실히 줄어들었죠. 외환위기 직후에는 재벌 개혁의 일환으로 부채비율을 낮추거나 총수의 책임도 물었고, 계열사도 줄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경제가 정상화되면서 재벌들은 다시 계열사를 늘이는 방법으로 영향력을 확대했지요. 특히 적은 지분으로 상속을 하기 위해서 편법도 동원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전환사채 발행이 가장 중요한 편법상속 수단이었습니다만 이것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법적으로도 시비 대상이 되자 지금은 일감 몰아주기로 방법을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통해 재벌 패밀리는 유지하려는 것이지요.

정승일 : 80년대에는 정부가 재벌들의 경영권을 보호해줬는데, 지금은 예전처럼 보호도 안 해주고 알아서 방어하라고 하니까 나름대로 경영권 상속을 위해 꼼수를 부린다고 할 수 있겠지요? 반대로 재벌 입장에서 보면, 옛날에는 보호해줬는데 더 이상 안 해주니까 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라고 나오는 거고요. 그래서 예전처럼 재벌의 경영권을 보호해 주되, 대신 이들에게 투자를 열심히 하도록 장려하는 게 더 낫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김호균 : 저도 동의합니다. 중소기업의 경우 경영권 상속을 하면 정부가 세제 혜택 같은 걸 주는 것처럼 재벌기업에 대해서도 경영권 승계는 일정하게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경영이 좀 더 투명해져야 할 거고, 재벌 가족의 이익만이 아니라 노동자나 하청업체,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당사자, 즉 한국 경제 전체에 대한 책임감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보완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서 빠뜨릴 수 없는 재벌의 책임 영역이 한국 경제의 오랜 숙원인 '신 성장동력'을 개척하는 것입니다. 골목상권을 침범하거나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산업을 개척하는 데 재벌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지요. 재벌들은 그럴만한 자금력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게 하도록 제도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이고 복지국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한국 경제도 살고 재벌 패밀리도 살 수 있다고 봅니다.

정승일 : 그렇지만 재벌 패밀리들 역시 펀드 매니저들과 동일하게, 한국경제연구원 같은 데서 나오는 신자유주의 꼼수 담론들을 참 좋아하지 않습니까? 자기들한테 이익이 되니까요. 그런데 그 신자유주의 꼼수 담론 속에서는 재벌들의 경영권을 보호해주는 대신 재벌기업들이 투자를 늘려야 한다든지 하는 사회적 책임을 재벌들이 짊어져야 한다는 내용은 전혀 없죠?

김호균 : 그렇죠. (경영권 승계를 보장해주는 대신) 재벌에 가할 수 있는 규제를 말하기는커녕 특권만 더 요구하는 실정입니다. 심지어 어떤 논객들은 모든 주식에 대해 똑같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까지도 반대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소액주주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결집해서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황도 상상할 수 있다면서, 그것에 대비해 재벌 패밀리가 갖는 주식에 대해서는 더 특별한 권한을 줘야 한다는 거죠. 기존의 이론이나 제도를 부정하면서 철저하게 재벌을 옹호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를 이야기한다고 할까요.

ⓒ프레시안(김윤나영)


정승일 : 말씀을 듣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재벌 패밀리는 이론가도 아니고 이데올로그도 아니에요. 한국 사회가 그들의 경영권 승계를 보장해주고 대신 생산적 투자를 많이 늘려서 일자리를 창출해라고 하는 게 그들 패밀리의 입장에서 그다지 큰 손해가 나는 일도 아니거든요.

이런 식으로도 말해볼 수 있을 겁니다. 스웨덴식 복지국가가 되어도 재벌 패밀리들은 존재 가능하고,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한국 사회가 재벌 패밀리들하고는 어느 정도 타협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그 전까지는 치열한 싸움이 양자 간에 있어야겠죠. 그런데 진짜 문제는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학 내지는 그 이데올로그들 아닐까요? 겉으로 보면 일개 학자에 불과하지만 그 뒤에는 미국의 싱크탱크가 있고,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있는 겁니다. 신자유주의 논객 위에 재벌이 있는 게 아니라, 재벌조차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호균 : 스웨덴식 복지국가가 되어도 재벌 패밀리들은 경제적 권력을 계속 유지하겠죠. 지금이야 경제적 권력 기반으로 하여 정치적, 사회적 권력까지 다 행사하고 있어서 어디 가서 야구방망이로 사람을 때려도 휠체어를 타고 나오면 풀려나지만. (웃음)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와 재벌의 이해관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사실 그렇습니다. 재벌 입장에서 보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무슨 내용을 이야기하는지, 이론이 정밀하거나 정확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 결론이 자기들을 방어해주는가, 공격을 하는가만이 중요한 거죠. 아무리 정확한 이야기를 한다 해도 본인들의 이해관계를 건드리면 채택하지 않는 거고요.

자본에 국적이 있다?

정승일 : 저는 한국 재벌이 이제 외국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소위 '코리안 캐피털', 즉 민족 자본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민족 자본이라는 말을 좀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합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민족 자본인 미쓰비시, 히타치 같은 자본이 우익들을 지원하듯이, 한국을 대표하는 민족 자본인 삼성, 현대차 그룹 등이 우파 정치를 지지한다는 거죠.

저는 민족 자본이라는 단어를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자본, 즉 중소자본에 국한시켜 사용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한국은 이제 경제력 10위, 기술력 7위, 군사력 5위의 강국이고 중국,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여러 국가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위협적일 수 있거든요. 그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민족 자본인 재벌들은 외부에서 볼 때 위협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요.

ⓒ프레시안(김윤나영)

김호균 : 표현을 달리하면 자본에도 국적이 있느냐의 문제라고 보는데요. 비슷한 맥락에서 간혹 '삼성에 좋은 것이 한국에도 좋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죠. 그런데 저는 좀 부정적입니다. 가령 삼성만 봐도 외국인 투자자들을 별도로 관리하지 않으면 그들이 언제 떠나버릴지 알 수 없는 거고, 국내 시장에서 소비자나 중소기업에 하는 행태를 보면 결코 우호적이라 할 수 없지요.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납품 단가 후려치기라든가 기술 가로채기 등의 행태가 한국 경제 전체적인 성장에 결코 좋은 게 아니잖아요. 재벌은 재벌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지 한국 경제에 대한 관심은 부차적이라 생각합니다.

정승일 :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현대차나 삼성전자에 외국 펀드들이 들어오도록 조장했는데, 그때 논리가 '자본에 국적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그 회사들은 '자본에 국적이 있다'는 원리에 따라 수 십 년간 행동해왔거든요. 그런데 두 정부가 '자본에 국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주주자본주의적인 방향의 재벌 개혁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로서 이제 그 거대 회사들은 마치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어요. 저는 이런 면에서 '자본에 국적이 없다'는 말의 논리에 뭔가 심각한 자가당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김호균 : '자본에 국적이 있느냐, 없느냐'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경제가 60, 70년대 경제 발전을 위해 외자를 끌어들였을 때 남미처럼 외국인 직접투자가 아니라 차관으로 들여온 것이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하나의 간접적인 요인이었다고 한다면 자본에도 국적이 있다는 주장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재벌들이 원가 절감을 위해 '글로벌 소싱'을 한다든지, 국내 중소기업이 새로 개발한 부품은 마다하고 일본 부품을 구매해서 결국 국내 중소기업이 망하도록 하는 것은 국적 있는 자본의 행태라 볼 수 없겠지요.

제가 책에서 비판했듯이 신자유주의 논객들은 재벌들의 "애국심"을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민주화하면 그들이 본사를 해외로 옮겨 간다"고 위협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본의 국적에 대해 말하자면, 자본에 국적이 있도록 하려면, 다시 말해 한국 재벌의 이익이 한국 경제에도 이익이 되려면, 그것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에 맞게 법과 제도를 갖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경제민주화이고 복지국가이고요.

"박정희와 정 반대로 가는 박근혜"

정승일 : 앞서 경제민주화를 내걸었던 정부로 소위 민주 정부, 즉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오히려 시장 논리, 시장주도형 경제를 강화했습니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재벌들의 시장 지위가 강화되었죠. 저는 이들의 이러한 자가당착적인 실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은데요. 1997년까지는 유지되던 국가 주도형 경제의 잔재를 민주 정부가 앞장서서 깨버린 거라고요.

김호균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세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한국이 정부주도 전략으로 산업화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전략이 무한정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정부가 '5개년 계획'으로 좌지우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뿐만 아니라 수출 주도로 가다 보니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대외환경이 중요해졌고, 그 사이 재벌들도 커져서 정부의 품을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활동하고 싶어 하기 시작한 거지요. 그래서 자본주의 계획경제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은 불가피했다고 봅니다. 그것이 8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과제였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 과제가 80년대의 정통성 없는 군사정부에 의해 제대로 해결될 리 만무했지요. 90년대 이후에는 정경유착의 관행이나 신자유주의 세례를 받은 정부 관료, 재벌의 막강한 경제력 등의 이유로 인해 시장에 지나치게 치우친, 재벌 중심의 경제로 꾸준히 옮겨왔다고 봅니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 경제의 침체를 가져온 구조적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경제민주화를 하려면 제조업 부문의 규제를 포함해서 국가의 역할이 더 커져야 하고, 국가가 시장을 보완하는 역할도 강화되어야 하죠. 특히 현재의 경제 위기 국면의 핵심은 '과소투자위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위기를 돌파하고자 한다면 민간 기업이 '투자 파업' 하고 있는 부문에 대해 국가가 투자를 선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정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국가는 나서지 않은 채 민간 기업들에 투자해 달라고 하소연만 하고 있지요. 저는 '천수답 정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에서 비가 오기를 바라며 기우제만 지내고 있는데,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뭡니까. 댐을 쌓고 수로를 놓아야지요.

ⓒ프레시안(최형락)

정승일 : 이 정부가 '창조경제'니 뭐니 이야기는 하는데, 실은 서비스업 규제 완화에 주력하면서 댐 쌓는 일은 방기하고 있죠. 결국 박근혜 정부는 자기 아버지인 박정희가 했던, 국가 주도형 경제와는 정 반대로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앞으로 다시 민주 세력이 집권한다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처럼 이름만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실제로는 시장 논리를 더 강화해서 결과적으로 재벌의 배만 불리는 방향으로는 가선 안 될 겁니다. 저는 민주주의 세력이 시장 주도가 아니라 국가 주도, 민주공화국 주도의 경제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정리하고 싶은데요.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김호균 : 최근, 클린턴 정부 하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던 서머스의 칼럼이 미국의 일부 논객들 사이에서 평지풍파를 일으켰다는 보도를 보았어요. 이 사람은 원래 전형적인 시장 근본주의자인데, 지난해 말부터 열심히 쓰고 있는 칼럼들이 시장 경제엔 내재적인 한계가 있고, 그래서 장기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뭐냐, 첫 번째는 실질 이자율을 낮추는 건데요. 현재 상태에서는 낮출 여지가 없죠. 두 번째는 국가가 투자를 하는 거라고 해요. 경제가 활성화되려면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과 같이 민간 부문의 투자에만 의존해서는 답이 없다는 겁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주장했던 사람 일부도 신자유주의 30년이 가져다 준 결과가 결국 경기 침체, 저성장과 대량 실업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더 이상은 시장에만 의지할 수 없고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는 거죠. 다만 서머스는 그 대목에서 국가가 투자를 하려면 차입을 통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런데 결국 그건 국가 부채 문제가 초래되기 때문에, 저는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물론 미국은 세금 깎는 데는 익숙해도 올리는 데는 저항이 많은 나라죠. 어쨌든 우리도 세금을 많이 걷어서 국자가 투자하는 방법으로 시장을 보완하고 부분적으로는 대체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승일 : 국가가 투자하는 방향이 인간에 향해 있다면 그게 바로 복지국가가 되는 거고요.

김호균 : 네. 인간에 대한 투자가 가장 선행되어야 하겠고요. 뿐만 아니라 제조업 부문에 대해서도 재벌들이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서도 국가가 나서야죠. 필요한 부분에 연구개발 투자는 물론이고, 만약 기술 개발을 해놔도 누구 하나 가져가지 않는다면 정부가 기업을 창업하는 부분까지 내다봐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지금 경제학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발칵 뒤집어지지만요. (웃음)

정승일 : 사실 그런 것들을 예전에 박정희가 좀 했던 거지요. 공기업은 물론이고, 팔 비틀기 식일지언정 재벌 기업으로 하여금 투자를 하게 만들었죠. 물론 이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되겠지만, 정부가 21세기 현재 조건에 맞게 환경기술에 대한 투자, R&D에 대한 투자, 이런 것들을 주도해나가는 해법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김호균 선생님은 74학번이시니까 대학 때 박정희가 시퍼렇게 살아 있던 이른바 '긴급조치 세대'죠. 그런데도 박정희의 공(功)을 어느 정도 인정하시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비록 박정희 정권이 민주주의를 탄압했지만 국가 주도 발전이라는 틀을 만들었고, 게다가 요즘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처럼 꼼수를 부리지는 않았거든요.

김호균 : 박정희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자면, 저는 '한국의 비스마르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19세기 말 독일 비스마르크를 상징하는 표현이 '철혈재상'인데, '철'은 산업화를 나타내는 말이고 '혈'은 정치적 탄압을 뜻하는데 박정희가 그렇다는 거지요. 박정희 하에서 탄압을 받았던 민주 인사들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독재자이지만 그때 지어진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일자리를 만들어준 선의의 정치인이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적지 않은 이해당사자들이 살아 있기 때문에 박정희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힘들다고 생각하고요,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살아나는 것은 한국의 엄연한 현실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경제적 성공'에 대한 향수이지 정치적 독재에 대한 향수는 결코 아닐 겁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것을 반대로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경제는 내팽개치고 정치는 박정희식 불통의 정치, 권위주의 정치로 돌아가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죠.

말씀하신 대로 박정희 시대에는 사실 이론적인 꼼수를 부릴 필요가 없는 상황이기도 했죠. 그 당시 외국자본의 경우에도 대부분 차관이었기 때문에 자금을 운용하는 데에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쥘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주식 투자 형태로 외자가 들어오기 때문에, 중간에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빠져버리기도 하고 주주로서 경영에도 간섭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 입장에서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꼼수를 부릴 것까진 없죠. 아니 부려서는 안 되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한국 경제 관료들이 갖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성향, 친미적 성향이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비판한 것들이 박근혜 대통령 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거의 다 경제 관료들이 하고 있는 겁니다. 어떤 정권이든, 대통령은 일정 부분 끌려 다니는 게 있어요. 관료들에 비하면 경제학 교수나 전문가들은 들러리에 불과하지요.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라면 아버지 후광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성공 비결이 정부의 능동적인 경제정책적 역할에 있었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

정승일 : 독일에 계실 때 주로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하셨죠. 박사논문 주제가 '세계시장에서 독점에 의한 가치법칙 작용방식의 수정'인데요.

김호균 : 큰 틀에서 보면 노동가치론에 대한 논문이에요. 80년대 독일에서는 노동가치론 분야에서 두 가지 커다란 논쟁이 있었어요. 하나는 이른바 국제 가치론 논쟁으로, 마르크스가 <자본> 3권에서 언급한 바 있는 문제입니다. 세계 시장에서 가치법칙이 수정된다는 것, 즉 선진국과 후진국 간 교역에서 후진국이 착취를 당한다는 이야깁니다. 80년대 내내, 선-후진국 간 무역 불평등 관계를 노동가치론으로 입증하겠다는 시도가 이어졌지요. 일단 이 내용을 논문에서 정리했고요.

또 하나는 독점자본에 대한 논쟁이었어요. 독점이 무엇이고 독점과 가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중소기업과 독점기업 사이의 불평등 관계를 노동가치론으로 어떻게 볼 수 있냐는 것이죠. 원래 독일에서는 국가독점 자본주의론에서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경제적 집중이 일직선적으로 독점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그래서 독점자본만 남고 훗날 이를 국유화하면 사회주의가 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는데 80년대 말 동독에서 처음으로 이 경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책이 출판됩니다. 자본주의 현실 경제를 연구해보니 중소기업이 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비중은 작지만 계속적으로 유지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래서 그동안 '독점화 경향'이라 불렀던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동독이 무너지면서 후속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지요. 이 내용도 논문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보론에서 마르크스의 <자본>의 서술 체계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의 서술 체계를 비교 분석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 서술방법이 추상에서 구체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언급했고 이 자체에 대해 철학자,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많았지만 실제로 마르크스가 이 서술 방법을 어떻게 적용했는지에 대해서 분석한 학자는 한 명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논문에서 <자본>의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가장 높은 추상 수준이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좀 더 구체화된 수준이고, 이런 식으로 구분하는 시도를 했지요. 그래서 가장 추상 수준이 높은 데서부터 가장 구체적인 데까지 여섯 단계로 나누었지요.

정승일 : 선생님이 마르크스 경제학을 처음 접한 건 언제였나요? 70년대 대학 시절인가요?

▲ 2009년 출간된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 한국어판(이주명 옮김, 필맥 펴냄). ⓒ필맥
김호균 : 그때 학생들이 복사해서 돌려보던 책은 폴 스위지의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이었는데, 저도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기초 지식이 없어 몇 장 못 읽었었죠. 서클 활동을 잠깐 했는데, 거기서 50년대에 이영협 교수가 유물사관에 기초해서 쓴 경제사 책을 가지고 공부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배운 기초적인 내용부터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서 꽤 수월했지요. 어쨌든 경제사 쪽으로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을 접할 수 있었지만 이론으로는 접할 수 없었어요. 물론 그 당시에 박현채, 유인호, 김병태 같은 비주류 경제학자들이 있긴 했지만, 그분들도 드러내놓고 마르크스 경제학 이론을 주장하거나 그와 관련된 저술 활동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르크스 경제학을 제대로 처음 접한 건 독일 유학 때입니다. 1981년에 갔는데. 그 무렵 국내에서는 종속이론이 소개되어 2~3년 정도 한국 사회과학계를 휩쓸었었죠. 그러다 학생운동이 활발해지고, 80년대 중반부터 소위 마르크스주의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고요. 88년에는 <자본>이 번역, 출간되었지요.

그러다 1980년대 말에는 1960년대에 소련에서 나온 '짜골로프 경제학'이 '정통 마르크스 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소개되었고, 북한에서 내려온 주체사상도 퍼졌죠. 참 혼란스럽고 어수선했죠. 짜골로프 경제학은 소련에서 더 이상 최신 자본주의 경제학도 아니었거든요. 그러다보니 다양한 이론이 '정통'이라는 이름으로 혼재해 있었지요. 여담입니다만, 제가 독일에서 일시 귀국했던 1988년에는 한국에 자칭 레닌이 3000명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웃음)

정승일 : 선생님이 처음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을 접했던 80년대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한국 경제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발전했어요. 그런데 빈부격차나 꼼수는 그때보다 더 늘었지요. 정치적으로 민주화되긴 했는데 살기는 더 힘들어지고, 사람들의 물질적 욕망도 더 커졌고요. 요즘 사람들이 살아가는 걸 보면 정말 '자본주의가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쨌든 마르크스 경제학을 처음 접한 그때로부터 30여 년,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생님은 강신준 선생님과 함께 메가(MEGA) 번역에 매달리고 계십니다. 분량이 굉장히 많은데, 그걸 다 번역하시는 건가요? 우리나라에는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W) 본 전집도 아직 번역이 안 되었는데, 이 상태에서 메가를 번역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죠?

김호균 : MEW를 하고 나서 MEGA를 변역하느니, 처음부터 MEGA를 번역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MEW는 부분적으로 번역되어 있는 것도 있으니까, 기존에 있는 것들과 부딪힐 수도 있고요. 어쨌든 목표는 독일어로 된 마르크스·앵겔스 원고는 다 하자는 겁니다. 독일어로 지금까지 114권이 출간되었는데 지금부터 시작해 몇 십 년이 걸릴지, 몇 세대가 걸릴지는 알 수 없습니다. 팀은 현재 총 여섯 분이고 전공도 철학, 정치학, 사회학으로 다르죠.

MEGA 작업의 배경을 말씀드리자면, 지금까지 마르크스 정치경제학만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심도 있고 정확하게 분석한 이론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앞으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될 텐데, 이것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이제 더 이상 정통이나 권위를 독점하는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마르크스의 학자로서의 엄밀한 모습, 양심, 자기반성과 성찰 같은 '정신'들도 우리에게 큰 빛이 되어줄 거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마르크스 경제학이라고 알아왔던 내용 중, 실제와는 달랐던 부분이나 불충분하고 부정확했던 부분들을 밝힐 수 있는 전거를 조금이나마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마르크스가 공황에 대해 쓴 내용이 거의 없었는데, MEGA 판에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 내용을 보면서 공황에 관한 논의를 확장시킬 수 있지 않나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또 마르크스가 점쟁이처럼 말한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발전 과정을 분석하면서 '앞으로 이렇게 나아갈 것이다'라고 단편적으로 예측한 부분도 있는데, 그때로부터 160~170년이 지난 오늘날 관점에서 볼 때 조금 더 풍부하게 확대해 볼 수 있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김호균 교수 등과 함께 MEGA를 번역하고 있는 강신준 동아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정승일 :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은 본인을 마르크스주의자라 생각하시나요?

김호균 : 예, 스스로는 항상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어도 주변에서는 다 알고 있더군요. (웃음) 한 가지 일화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개인적으로 부대찌개를 싫어합니다. 다른 교수들과 점심을 하는 자리에서 '식민지 음식'이라 싫어한다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처음 본 여교수 한 분이 "역시 마르크스주의자라 다르다"고 하더군요.

독일에서 돌아온 뒤에 직접 정치경제학에 관련된 논문을 많이 쓰지는 못했지만, 다른 주제의 논문을 쓸 때도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적 지식과 방법론이 토대를 이루기 때문에 큰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굉장히 중요한 지적 자산이고, 이번 책도 그 때문에 쓸 수 있었다고 봅니다.

정승일 :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공산주의 혁명을 주장하는 건 아니시고. (웃음) 말하자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하나의 학문적 방법론의 의미에서 언급하시는 것 같은데요. 정치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를 말하시고요.

김호균 : 저처럼 학문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하되 정치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사실 유럽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단적으로 제가 80년대에 학위논문을 쓸 때 국제가치론과 관련하여 인용했던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클라우스 부쉬의 경우, 지금 독일 사민당 싱크탱크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정승일 : 개인적으로 반가운 이야기입니다. (웃음) 오늘 이야기,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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