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범죄가 늘어 걱정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청소년 범죄에서 강력 범죄의 비율이 높아지고 재범률이 높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위험한 10대'를 묘사하는 보도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를 깊이 있게 탐색하는 시도는 그리 많지 않다.
<프레시안>은 법률구조와 사회 복지를 결합해 이 문제를 풀어갈 것을 제안하는 김익태 변호사(법무법인 도담)의 글을 게재한다. 김 변호사는 미국 변호사로서 미국 형사 법원에서 국선 전담 변호사로 활동하며 청소년 범죄를 비롯한 다양한 범죄를 접했다. 귀국 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통상교섭본부 민간자문위원과 인하대 법학 전문 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12∼2013년 론스타와 ISD, FTA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연재를 진행하기도 했다(☞ 론스타 연재 바로 가기). <편집자>
청소년 범죄, 법과 복지 사이
<1> '알바' 구하던 15세 소년, 살인범으로 몰리다
영화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미란다 권리라는 것이 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다. 이는 미국에서 미란다라는 사람이 형사 사건의 피의자로 체포되면서 발생한 실제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63년 애리조나 주에서 에르네스토 미란다(Ernesto Miranda)가 강도죄로 체포되었다. 심문 과정에서 미란다는 강도 사건 이외에도 범행 며칠 전, 18세 소녀에 대해 유괴, 강간을 자행했다고 자백했다. 경찰서에서 행해진 두 시간가량의 심문 과정에서 미란다는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진술서에 서명까지 했다.
검사는 재판에서, 추가 범죄에 대한 미란다의 자백을 증거로 제출했다. 하지만 미란다의 변호를 맡은 퍼블릭 디펜더(Public Defender, 국선 전담 변호사)는 미란다가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행한 자백은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증거의 유효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다. 변호인의 변론에도 불구하고 애리조나 주 법정은 미란다의 자백이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증거가 없다며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다. 진술서가 유효한 증거로 채택되어 미란다는 결국 납치와 강간죄가 모두 인정되어 30년 징역형이 선고됐다.
사건은 전국적으로 여론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이 사건은 미국 연방대법원에 이르게 되었다.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5대4의 의견으로 '미란다의 헌법적 권리가 침해된 상태에서 한 자백은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유죄 판결을 번복하였다. 그 근거는 미국 연방 수정헌법 제5조의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권리"와 제6조의 "변호사 선임의 권리"였다. 재판부는 "구금 상태의 피의자는 심문 전 묵비권과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권리, 심문 과정 동안 변호인을 대동할 권리가 있으며, 재정 능력이 없을 경우 무료 변호인을 임명받을 수 있다" 고 판시하였다. 더 나아가 "심문 중인 피의자가 중간에라도 변호인을 요청할 경우 심문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연방대법원의 결정의 내용은 이른바 미란다 원칙으로 정착되어, 이후 모든 형사 사건 피의자에게 자동적으로 공지되었다. 또한 공지 여부와 권리 포기에 대한 다툼을 피하기 위해, 미란다 권리이 공지됐지만 권리 행사를 포기한다는 피의자의 서면 확인을 확보하는 경찰의 관례까지 정착되었다. 미란다 권리는 미국의 형사 절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란다 원칙에서 명시된 권리의 침해가 확인될 시 그 결과물로서 증거는 채택되지 않게 되었으며, 형사 소송에 변호사 강제주의가 도입되면서 법조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이미 헌법에서 보장한 권리라고 할지라도 실생활에서 모두 실현되고 구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미국 연방 수정헌법에서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권리"와 "변호사 선임의 권리"를 명문화하고 있었음에도 미국의 형사 절차에서는 몇 십 년 동안 이러한 권리가 사문화되어 있었다. 더욱이 성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청소년의 경우 수사 과정에서 강압과 위해를 동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구금 상태의 심문이라는 환경이 주는 공포만으로도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마련임을 고려하면, 이는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우리의 헌법과 형법 그리고 소년법 또한 이미 이론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서 있다. 문제는 이러한 법적 가치를 현실에서 실현하지 않으면 법은 사문화된다는 점이다.
두 번째, 법률구조만으로는 삶에 완결적인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사건의 주인공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친 미란다의 실제 삶에서도 이 점은 드러난다. 연방대법원의 판결 후 애리조나 검찰 측은 법률적 효과가 없는 미란다의 자백에 대해 자체적으로 재수사를 하여 증거를 보강하였다. 그리고 재(再)기소를 하였다. 미란다는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 중 1972년에 가석방되었다. 이후 얼마 동안 자신의 이름을 담은 "미란다 경고"가 인쇄되어 있는 카드를 팔며 생활하던 미란다는 1976년 술집에서 싸우다가 칼에 찔려 죽었다. 그 이름에 걸맞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최후를 맞은 것이다.
이 점은 청소년 문제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삶의 환경이나 개인의 의지가 바뀌지 않는 한, 법률구조만으로는 청소년의 긍정적인 미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초범이 될 뻔한 청소년에게 성심 어린 법률구조를 통해 무죄를 이끌어낸다고 가정해 보자. 청소년의 삶의 구조와 개인의 의식의 전환이 없는 한, 그 청소년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 법률구조는, 그 대상의 특수성 때문에, 복지와 결합하여 제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 말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연관된 사건 하나가 떠오른다. 미국 뉴욕의 로펌에서 일할 때 관여했던 사건이다.
법률구조만으로는 부족하다 : 센트럴 파크 자거 사건
1989년 4월 19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센트럴 파크에서 폭행을 동반한 성폭력 범죄가 발생했다(센트럴 파크 자거 사건, Central Park Jogger Case). 증권 회사에서 일하던 트리사 멜리라는 28세의 백인 여성이 강간을 당하고 거의 사망에 이르기까지 폭행을 당했다. 심한 폭행의 결과로 피해자는 가해자의 인상착의는 물론 심지어 가해자가 몇 명이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경찰은 5명의 청소년(4명의 흑인과 1명의 남미계)을 용의자로 체포하였다. 당시 피고들은 14세, 15세 그리고 16세였고, 재판 후 모두 징역 10년 정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소년들은 모두 형을 살고 만기 출소하였다.
그런데 2002년 강간 살인죄로 복역 중이던 마티아스 레이스라는 사람이 자신이 17세 때 이 사건을 벌인 진범임을 고백하였다. 범행은 단독으로 이루어졌으며, 진범의 자백은 DNA 검사 결과 사실로 판명되었다. 고백은 여론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억울하게 10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한 청소년들은 뉴욕시를 상대로 피해 보상 청구 소송을 시작하였다. 당시 내가 일하던 로펌은 5명의 청소년 중 한 명인 마이클(가명)을 대리하였다.
한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마이클은 기거할 숙소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해 이곳저곳 전전하는 상태였다. 변호인단의 첫 번째 임무가 마이클에게 안정적인 숙소를 제공해 줘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또한 마이클의 지적 능력으로 인해 소송을 준비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이클 또한 사건의 피해자로서 억울한 옥살이로 인해 정신적 공황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마이클에게 상담을 권유해보기도 했지만, 이 또한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우리의 기본적인 임무는 법적인 조력이지, 복지 제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나는 그 로펌을 떠나면서 사건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얼마 전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돌이켜 볼 때, 마이클의 사건 같은 경우 일차적으로 상담을 통한 심리 안정 및 주거 문제 해결과 같은 기초적인 복지를 제공했다면 개인의 삶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되고 나아가 소송을 원활하게 진행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변호인으로서는 법적 조력을 통하여 금전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법률구조의 한계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물론, 사회 복지적 접근만으로 해결하는 것 또한 한계가 있을 것이다.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이 없다면, 마이클은 당장 생계를 꾸리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6년을 억울하게 감옥에서 보낸 마이클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적 치료와 교육을 통한 지적 능력의 향상, 그리고 노동을 통한 사회 구성원으로 편입일 것이다. 그것을 위해 법률구조와 사회 복지적인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융합에 대해 유행처럼 많은 얘기가 떠도는 요즈음, 미래의 주인인 청소년의 문제에 대해 어른들이 융합적인 사고는 할 수 없을까? 공장의 생산 라인과 같은 기계적인 형사 처분으로 방치한 청소년들이 "지존파"나 "막가파"와 같은 극단적인 사회 증오 세력으로 성장한다면 그 사회적 충격과 비용은 사회가 고스란히 안아야 한다. 왜 조금만 더 따뜻한 눈빛으로 문제를 바라봄으로써 적은 사회적 비용으로 훨씬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까?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경험할 때마다 생각나는 곳이 있다. 내가 로스쿨을 다닐 때 인턴을 했던 시카고 근처 에반스톤(Evanston)이라는 곳의 한 법률구조 센터다. 당시에는 에반스톤 커뮤너티 디펜더 오피스(Evanston Community Defender's Office)라는 이름의 작은 법률구조 센터였다.
*에반스톤 법률구조 센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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