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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대참사 겪어도 '탈핵'은 시들,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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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대참사 겪어도 '탈핵'은 시들, 그렇다면!

[이렇게 읽었다] 김종철 외 <탈핵 학교>

지난 2월 9일 치러졌던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는 탈핵 이슈가 크게 부각되었다. 아직도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즉각 탈핵을 공약으로 내건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를 지지하고 나서면서 원전 재가동을 주장하는 집권 여당과 대립각을 세울 수 있게 됐다. 특히 아베 현 총리가 마스조에 요이치 후보를 적극 지원하며 '탈핵 전 총리 vs 찬핵 현 총리’의 대결 구도가 형성됐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결과는 탈핵 후보의 참패로 끝났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집권 여당의 마스조에 후보에게 2배의 표차로 졌다. 심지어는 진보 성향의 우쓰노미야 겐지 후보한테도 뒤져 3위로 밀려났다.

일본 도쿄 도지사 선거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고민거리를 던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탈핵 의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았고, 우경화되고 있는 사회 분위기상 현 총리의 인기를 넘어서기 힘들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지만 어쨌든 그것마저도 현실이다.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의 당사자였던 일본에서조차 탈핵 이슈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건 탈핵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겐 적잖은 충격을 넘어 참담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후쿠시마에서 선거가 있었다면 선거의 결과는 확연히 달라졌을 수 있겠지만 이는 뒤집어보면 핵발전소의 주 소비층인 도시 소비자들이 핵발전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 점을 역설하고 있어서 더욱 뼈아프다.

▲ 2012년 3월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사고 1주기 시민문화행사. ⓒ프레시안(최형락)

우리는 흔히 '핵 마피아'라고 부르며 핵발전 연구자, 정부관계자, 기업관계자 들에게 비판을 집중하지만, 이미 핵 문제는 일부 마피아 급 무뢰한들의 주장을 넘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한 요소로 고착화되었다는 걸 인정하고 넘어가는 게 우선이다. 핵이 사회의 문화처럼 공고화됐다는 건 탈핵의 시작은 인식의 전환, 정보의 전달이 탈핵의 핵심 과제라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핵은 어렵다. 생경한 영어 단위가 밑도 끝도 없이 등장하고, 전문가 수준의 배경지식을 요구할 때도 있다. 생활의 일부로 인식이 되면서 '핵발전이 없으면 어떻게 할 건데?'라는 무의식적 공포가 우리를 망설이게 한다. 심지어는 탈핵이 필요하다는 주장들마저 지나치게 어렵거나 우리 생활과 동떨어진 얘기로 채워진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탈핵의 시작은 '쉽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탈핵 학교>(김익중·김정욱·김종철 외 지음, 반비 펴냄)의 출간 소식은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 <탈핵 학교>(김익중·김정욱·김종철 외 지음, 반비 펴냄). ⓒ반비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 이후 수많은 탈핵 관련 서적들이 출간됐지만, 개인적으로 <탈핵 학교>만큼 쉽고 접근성이 높은 책은 보지 못했다. 일반 시민 강연들을 모아놓은 성격 탓이기도 하겠지만, <탈핵 학교>의 저자들은 이미 대중강연에서도 쉽고 재미있게 탈핵을 주장하는 강사들로 유명하다. 그 강점은 책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대표가 소개하는 제임스 러브록(<가이아>(홍욱희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저자)의 핵발전 필요 논리나 조지 몬비오((정주연 옮김, 홍익출판사 펴냄) 저자)와 헬렌 칼디콧(반핵운동가)의 논쟁이 대표적이다. 원문으로 읽었으면 난무하는 수치와 근거에 골치 깨나 썩혔을 이 주장들을 매우 명쾌하게 정리하면서도 전환의 논리까지 전하고 있다. 러브록이나 몬비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기후변화가 심각하니까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핵발전소는 불가피하다는 건데, 이에 대해 김종철 대표는 그건 지속불가능한 지금의 생활방식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성립이 불가능한 논리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우라늄은 유한한 자원이고 그렇다면 언젠가는 임계점에 도달할 텐데 왜 지금 바꾸려고 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탈핵의 대안은 탈핵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더 나아가 일반 시민들이 혼동할 만한 핵발전의 쟁점을 요목조목 지적한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는 핵발전소 우라늄 채굴부터, 농축, 발전소의 폐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에 '청정에너지'로 포장되는 것은 허구라고 지적하기도 하고(273쪽), 김익중 동국대 교수는 정부가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방사능 기준치가 의학적으로는 근거가 없으므로 기준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간단한 수식을 통해 검증해준다.(67쪽) 또 최무영 서울대 교수는 생활 속에서 쓰이는 에너지의 개념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해 일반 시민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핵발전과 핵융합의 개념 이해까지 능숙하게 끌고 나간다. 그 이해의 끝에는 핵발전의 파국적 결말이 위치해 있다.

▲ <가이아>(제임스 러브록 지음, 홍욱희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갈라파고스
그 외에도 <탈핵 학교>는 의학적, 사회적, 종교적 관점 등 논쟁이 되고는 있지만 어렵게 느껴졌던 얘깃거리들을 친절하게 되짚어준다.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탈핵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예상 외로 많이 늘지 않은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어려운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질타라도 하듯 탈핵의 문제를 우리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충분히 성공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에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입문서 성격의 책은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할 때 그 소임을 다한다. 첫 번째는 쉽고 재미있어서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킬 수 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그 촉발된 관심이 더욱 커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요소에 관해서는 다소 아쉽다. 이 책을 읽고 탈핵에 대해 관심이 생겼을 누군가에게 '그렇다면 이 책을 더 읽어보라'고 말해줄 법도 한데 강사들은 말해주지 않는다. 강사들이 추천하는 책이나 보고서를 적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뷔페에 가서 음식이 진열되어 있으면 맛있게 먹고 끝나지만, 음식 이름이 적혀 있으면 집에 가서 기억나는 음식을 다시 찾아보는 것과 마찬가지랄까.

물론 이것은 소소한 문제다.(그것쯤이야 <탈핵 학교>가 많이 읽히기만 한다면 증쇄할 때 추가하면 되는 편집의 영역에 불과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탈핵 학교>는 우리 사회가 가지지 못했던 '제대로 된 탈핵 입문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탈핵 학교>의 저자들은 내가 아는 한 전문가랍시고 젠체하는 그런 류의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탈핵에 필요한 목소리로서 <탈핵 학교>는 단언컨대, 가장 쉽고 흥미롭다. 마치 탈핵의 대안이 탈핵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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