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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쁜 엄마라 아이가 불행" 그 죄책감은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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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쁜 엄마라 아이가 불행" 그 죄책감은 허구다

[프레시안 books]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의 <모성애의 발명>

"이대로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된다면 몇십년 뒤에는 세계지도에서 대한민국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우리나라가 저출산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최근 몇 년 동안 저출산과 관련한 위와 같은 언설들이 확산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통계청이 '출생·사망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저의 출산율을 보이고 있다. 가장 낮은 수준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수)을 기록했던 해는 2005년(1.08명)이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2005년에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을 발 빠르게 제정하고,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2006년부터 9년째 시행 중이다.

저출산 대응정책이 시행된 2006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53조 원을 쏟아 부었는데 정책의 효과는? 통계청이 2월 27일에 발표한 '2013년 출생·사망통계(잠정)'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2005년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은 1.19명을 기록하여 최근 3년간 약간의 증가 추세에서 다시 떨어졌다. 왜일까?

▲ <모성애의 발명>(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 지음, 이재원 옮김, 알마 펴냄). ⓒ알마
게른스하임의 책 <모성애의 발명>(이재원 옮김, 알마 펴냄)은 저출산의 원인에 입각한 정책 수립에 관심 있는 정책 입안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근 여성·가족·어머니노릇·성별관계(gender)의 변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저자는 독일 사람이고 책은 독일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독일은 가장권(家長權)이 강한, 보수적인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국가의 역사, 정치·경제와 문화에 있어서는 매우 다르지만 '모성'을 둘러싼 남녀의 역할, 자녀의 문제, 가족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놀랄 만큼 유사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은 출생률이 사회적 테마가 되고 있는 독일 사회를 배경으로 모성애의 역사를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의 초판은 <내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 한 조각 내 인생과 아이문제>(이재원 옮김, 새물결 펴냄, 2000)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바 있다. 이 책은 초판 발간 이후에 여성과 아이를 둘러싼 변화에 입각하여 많은 부분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졌다. 저자는 역사성에 발을 딛고 여성과 아이를 둘러싼 사회 변화가 극적으로 이루어졌던 근대 산업자본주의 사회로의 전환 시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지배적인 노동형태와 삶의 형태는 하나의 경제공동체였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에 통합되어 있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아이들은 단지 완성되지 않은 불안전한, 체구가 작은 어른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아이들을 돌보는 노동은 여러 사람에게 분담되었다. 상류층 여성들일수록 직접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드물어, 아이들은 전적으로 유모의 돌봄에 의하여 성장하였다. 아이들은 한 집안의 노동력으로 환영받기도 하였지만 지금처럼 엄마와 아이 간의 배타적인 관계와 애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늘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면서 영아사망률도 높았기 때문에, 아이들에 대한 기본 태도는 관심보다는 오히려 무관심에 가까웠다.

역사적으로 산업사회로의 이전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는 일터와 생활공간의 분리이다. 누군가는 일터로 출근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가정에 남아서 생활공간을 지켜야 한다. 산업화 초기에는 하층계급의 남녀노소 모두 일터에 나가서 노동을 하였다. 그러나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들은 노동 시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 남겨진다. 당시 부르주아 계급 여성들의 인생행로가 가정에 한정될 수 있게 하는, 성별(gender)과 관련된 세 가지의 강력한 이념 체계가 전 사회에 유포된다. 그것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아동의 발견과 의식적인 육아의 등장"이다. 아동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의 극적인 전환이 있었다. 아동기는 어른과는 구별되는, 특별하게 섬세한 양육과 교육을 필요로 하는 시기라며 이것이 '교육학'이라는 이름으로 유포되었다. 아이는 더 이상 어른의 세계에 통합되어 있을 수 없다. 아이는 어른의 세계에서 분리되어 순수하고 특별한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등극한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어린이의 발달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과거에는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집안일과 들일 사이에 아이를 돌보는 일이 들어갔으나, 이제는 고유한 과제이자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의식적인 육아의 지침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어린이에 대한 새로운 입장에 따르면, 적절한 양육과 교육은 어린이의 건강과 성장에 필수적이며 어린이의 장래 전체를 위한 밑거름이 된다." (69쪽)

둘째, 어머니 역할의 승격이 이루어진다. 아동기가 새롭게 발명되고 아동교육의 중요성이 증가할 때, 어머니는 이러한 아동에게 가까이에서 특별한 보살핌을 주기에 가장 적당한 존재로 간주되기 시작하였다. 어머니를 존중하는 태도, 새로운 숭배도 나타나는데, 여기서 모성 이데올로기로 이어지는 모성 신화가 지적되고 있다.

"이제부터 여성은 본질적으로 (때로는 오로지) 모성을 바탕으로 정의된다."(75쪽)

셋째로는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이 남성 중심적 생물학과 의학 담론에 근거하여 정당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성·합리성을 특징으로 하는 직업세계는 성숙한 남성의 본성에 적당하고, 감성과 사랑을 특징으로 하는 가족은 미성숙한 여성의 본성에 적당하다는 성역할 이데올로기가 광범위하게 유포되기 시작하였다.

"부상하는 산업사회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전제로 한다. 바로 노동 시장의 삶과 타인을 돌보는 일, 즉 "자유로운 시장"과 "평화로운 오아시스로서의 가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남성과 여성에 대해 정반대되는 성적 특성이 구성되고, 그에 상응하는 "대조적 미덕들"이 만들어진다."(68쪽)

즉 근대사회로의 이행에서 여성들에게 기대되는 일차적인 역할은 집에서 사랑스럽고 특별한 아동을 돌보는, 신성한 어머니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어머니 노릇이 부르주아 계급 여성에게는 하나의 직업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어머니 노릇은 늘 갈등을 수반하게 된다. 독일 사회에서 출생률이 처음으로 감소한 시기는 19세기 말이다. 중간 부르주아와 상층 부르주아 계급의 기혼 여성들은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어머니 노릇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성들의 교육이 중요해지고 여성 운동도 등장하면서 집 밖 직업 활동의 가치인식, 여성의 권리와 개인화에 대한 요구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점차로 내용이 다양해지는 어머니 노릇과 여성 개인의 욕구가 충돌할 때, 여성들은 자녀수를 줄였다. 즉 19세기 말에 최초로 출생률이 감소하였던 것이다.

게른스하임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여성의 삶에 나타난 변화인 교육개혁, 새로운 여성 운동의 등장, 여성의 직업 활동 증가에 주목한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여성들은 "한조각 자기만의 인생"에 대하여 열망하게 되고 "한 조각 독립성을 지키기"위한 시도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고도 산업사회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생산성과 기획이라는 가치가 일터에서 가족의 영역으로까지 침범해 들어오고 있고, 사회는 점점 아이들을 키우기에 위험한 환경으로 둘러싸여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제 불가능한 야성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점점 불가능한 임무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1961년의 경구피임약 출시는 여성들로 하여금 "아이를 가질 것인지 말 것인지, 언제 가질 것인지, 몇 명을 출산할 것인지?"를 둘러싼 선택의 압박에 직면하도록 했다. 여성들은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 경제적 자원을 투입해야하는 자녀 양육보다는 자신의 독립성을 선택한다. 게른스하임은 이 시기를 '제2차 출생률 감소의 시작' 시기로 보고 있다.

▲ 경구피임약. ⓒearthtimes.org


게른스하임은 1965년부터 현재까지 출생률 감소가 계속되는 이유에 대해, 최근의 변화를 몇 가지 덧붙이고 있다. 세계화에 따른 노동계약, 신자유주의의 유연성과 탈규제가 노동계를 강력히 파고들고 있는 점, 여성에게 해방인 듯 보였지만 '덫(난임)'으로 돌아오고 있는 생식의학의 상품들, 이주여성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가정이라는 이중 노동의 부담 등이 출생률을 낮추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게른스하임은 '모성애'라는 것은 여성의 유전자에 내포되어 있는 "본능"이 아니고 산업 자본주의사회로의 전환 시기에 발명된 개념이라고 지적한다. 모성애는 집에 남겨진 중간계급 여성에게 자녀 양육을 떠넘기고자하는 가부장적 욕망과 자본의 담합이다. 게른스하임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가치로 '평등'을 강조하고 있는 결론 부분은 매우 반갑고, 당연하게까지 느껴진다.

게른스하임의 <모성애의 발명>은 대한민국에서 모성의 신화에 입각하여 "죄책감" 혹은 "엄마에 대한 원망"을 갖고 살아가는 어머니와 자식들에게 많은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자녀가 공부를 못하는 것은 엄마의 태교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어머니들. 사회에서 활동하며 "내게는 다른 엄마들처럼 모성애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어머니들. "다른 엄마들하고 다르게 자기밖에 모르는 엄마를 둔 덕분에 내 팔자가 요 모양이야"라고 탄식하는 자식들.

실제 근대로의 이행은 불균등하게, 모순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사회의 역사적 변화를 매우 단선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그리고 저출산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최근의 나는 게른스하임과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저출산이 극복되기 위해서 사회의 가치 지향을 '성평등'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강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저출산의 원인은 결혼파업, 임신파업, 출산파업이 아니라 연애파업이 아닐까? 연애를 굳이 거부하지는 않지만, 신자유주의 하의 청년실업, 남녀 간 의식의 격차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미혼 남녀들 간에 친밀한 관계로의 진입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가족·학교·직장 등의 사회에 성평등의 가치가 배어들어 남녀가 소통이 가능한, 서로 대등한 파트너로 느껴질 때, 그래서 거리 곳곳에서 달달한 연애를 하는 청춘 남녀들이 목격될 때, 그것이 바로 저출산 극복의 신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가족과 사회 모두가 무한경쟁의 열차처럼 가속하는 가운데 자녀를 고도 산업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생산성을 갖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경제력·시간·지성을 투입하는 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때, 작지만 급진적인 희망을 품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우리는 가족일까>(몸문화연구소 엮음, 은행나무 펴냄). ⓒ은행나무
<기획된 가족>(조주은 지음, 서해문집 펴냄)
게른스하임의 전작인 <가족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박은주 옮김, 새물결 펴냄)의 한국판(version)이라고 보아도 좋다. 세계적인 도시인 서울이라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자녀가 있는 중산층 맞벌이 가족이 속도경제사회에서 어떻게 가족관계·부모자녀관계를 기획해 가는지를 촘촘한 시선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리는 가족일까-각자의 가족, 10가지 이야기>(몸문화연구소 엮음, 은행나무 펴냄)
엄마역할, 부모와 자녀관계, 싱글맘의 인터뷰, 솔로족의 삶, 가족과 법 등 최근 가족의 변화에서 놓칠 수 없는 분야들을 사례들에 덧붙여 소개했고 그에 대한 인문학적인 분석도 제시하고 있다. 최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 가족의 변화에 대하여 통찰력을 제시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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