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지난 1년은 166일 동안 폐쇄된 개성공단을 단순 재가동이 아닌 ‘발전적 정상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한 해였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핵실험 등으로 남북 간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는 상황에서 유일한 경제협력의 장으로서 역할을 해온 개성공단만이라고 유지하려는 양측 최고지도자의 의지와 결심이 작용하면서 더딘 발걸음이지만 발전적 정상화를 위해 나아가고 있다.
2013년 8월 14일에 체결된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서, 이어 9월 10일부터 11일까지 개성공단에서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제2차 회의를 개최한 뒤 나온 공동발표문 등은 남북한 당국이 최악의 남북관계 속에서도 상호 이해와 인내를 통해 개성공단의 발전에 대한 의지와 실천적 행동을 동시에 보여줬다는 점에서 소중한 결과물로 평가할 수 있다.
지난 해 8월 14일에 나온 '개성공단의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점은 남북한이 상설 협의 기구인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이하 공동위)’와 그 산하에 4개 분과위원회(▲3통(통행,통신,통관) ▲투자보호 및 관리운영 ▲국제경쟁력 ▲출입체류)를 구성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개성공단을 둘러싼 현안과 관련해 양측 당국이 직접 만나 상시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대화 틀이라는 점에서 지금은 물론 미래에도 적지 않은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공동위는 논리적으로 개성공단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남북 당국이 함께 협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조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차단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향후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는 공동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합의서는 당시 최대 쟁점인 ‘정치군사적 정세로 인한 가동중단’에 대한 재발방지책과 관련하여 “남한과 북한은 통행 제한 및 근로자 철수 등에 의한 개성공단 중단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한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명시했다. 정세와 무관하게 개성공단 유지 및 발전의 기초를 마련한 점은 좋은 선례로 남아 다른 현안 해결에도 모범적인 준거 틀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까지 공동위를 구성하고 있는 남북한 인력들이 비교적 원활하게 소통하면서 현안들을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에 열린 공동위는 2013년 12월 19일의 4차 회의로서 이 자리에서 남북한 쌍방은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와 재가동 이후 남북 간 합의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추진과제들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리고 전자출입체계(RFID) 공사 및 일일단위 상시통행 조속 실시, 인터넷 서비스 등 3통 문제, 출입체류 부속합의서 채택 문제, 노무·임금 등 관리운영 문제 등에 대해 협의하고, 향후 분과위 등을 통해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한 바 있다. 아울러 남측은 공동투자설명회를 2014년 1월 말에 개최하자고 제안했고, 추후 협의하기로 하였다.
이들 의제들 가운데 3통 문제가 비교적 빠른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남북은 주로 개성공단에 있는 남북공동위원회 사무처를 통해 분과위 개최 문제를 협의해왔는데 이 중 3통 분과위가 2014년 1월 24일 등 모두 4차례 열리는 등 다른 분과위원회에 비해 가장 빈번하게 열린 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3통 분과위에서의 남북 간 논의 진전에 따라 올해 1월 28일부터 개성공단 전자출입체계(RFID) 시범가동이 실시되었다. 2013년 9월 11일 제2차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에서 RFID에 의한 일일단위 상시통행을 실시하기로 합의한 이후 4개월여 만이다. 시스템 보완 등을 통해 안정화되면 RFID 시스템에 의한 일일단위 상시통행이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RFID 시스템 활용이 본격화되면 개성공단 입·출경 심사시간이 크게 줄어든다. 기존 방식에 비해 인원심사는 13초에서 5초로, 차량심사는 15초에서 7초로 시간이 단축될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통행량이 많은 시간대인 월요일 오전 또는 금요일 오후의 전체적인 심사소요 시간은 인원심사가 17분에서 5분으로, 차량심사는 19분에서 8분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3통 중 통신분야에서 인터넷 공급문제도 남북 간의 진전된 합의가 이뤄졌다. 4차 3통 분과위에서 인터넷망 구성 및 경로 서비스 제공 방식, 인증방식, 통신비밀 보장 및 인터넷 사고방지 등 인터넷 연결 방식에 대해 합의했다. 이를 토대로 남북은 사업자인 한국통신(KT)과 북한 조선체신회사 간 협의를 통해 망 구축공사 일정, 서비스 요금 등 실무적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남북은 3통 분과위 회의를 열고, 일일단위 상시통행, 인터넷 연결, 통관 간소화 등에 대해 협의를 해왔으며, 이중 인터넷 연결이 최대 난제로 꼽혀왔다.
남북은 RFID, 인터넷 설치에 합의함에 따라 개성공단 국제화에 한 단계 다가서게 됐다. 하지만 역시 3통의 하나인 선별통관 등 통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합의 이행은 더딘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3통 문제는 외국기업 유치를 위한 선결 과제이자 입주기업의 최대 애로사항 가운데 하나다. 박근혜 정부는 3통 문제의 개선을 토대로 외국 기업과 외국 상공인을 대상으로 투자설명회를 개최하기로 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개성공단의 국제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사항으로서 개성공단에 외국 기업을 유치하고, 해외 판로 확대를 지원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정부는 개성공단 제품의 해외시장 확대를 통해 ‘창조경제’에 기여하겠다면서 미국, 중국, EU와 FTA 협상에서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남북이 합의한 제3국 수출 시 특혜관세 인정, 자유무역협정(FTA) 역외가공지역 인정 문제 등은 우리 정부가 주로 해결할 과제이나,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확대와 국제화를 추진할 경우 미국 의회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경고했듯이 한미 간의 외교적 타협이 필요한 사안이다. 미 의회조사국은 ‘한·미관계 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의 움직임은 대북 금융제재강화법안 등 북한에 대한 제재를 확대하려는 미국 의회 내의 입법노력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일정 시점에서 개성공단을 확대하고 국제화하려는 입장을 내비쳤으나 이는 의회 내의 몇몇 의원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투자보호 및 관리운영 분과위에서는 투자자산 보호를 위해 위법행위 발생 시 공동조사, 손해배상 등 상사분쟁 문제와 노무, 세무, 임금, 보험, 환경보호 등 관리운영문제를 다뤄왔다. 여러 현안 가운데 남북한이 합의한 개성공단에서 발생하는 각종 분쟁을 다룰 상사중재위원회의 구성은 일부 진전을 보였다. 북한은 2013년 12월 개성공단 상사중재위원회를 구성할 북측 위원 명단을 우리 쪽에 통보하였다. 상사중재위원회는 개성공단에서 벌어지는 남북 간 각종 분쟁을 조정하는 기구로 법원과 유사한 기능을 할 예정이다. 위원회는 향후 여러 법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 및 절차를 마련해나갈 것이고 향후 분쟁의 중재는 중재인으로 구성되는 중재재판부에서 이뤄진다.
개성공단의 지난 1년은 엄청난 시련을 겪은 뒤 발전적 정상화를 위해 나아가고 있지만 통행, 통신 분야에서의 일부 가시적인 진전을 빼고는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위해서 아직 넘어야 할 과제들은 첩첩이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장 입주기업들은 노동력 공급과 연계한 북측의 임금인상 요구 움직임, 개성공단 내 전반적인 시장경제 시스템의 불완전한 작동, 개성공단 재가동 이후의 일부 기업들의 경영난, 불확실한 남북관계의 전망, 지지부진한 제도 개선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개성공단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발전하려면 여러 가지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로 보이는데, 이는 남북한 당국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합의와 입법도 중요하지만 남북 간의 신뢰를 쌓아가는 중단 없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아무리 완벽한 법률과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서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즉 남북 간 신뢰가 법제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개성공단은 국제사회의 북한 제재, 북한의 낮은 신뢰도 등으로 인해 남한 외 다른 나라의 자본유치가 어려운 현실에서 탄생된 특수한 모델임을 인정하면서 원칙과 국제규범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특수성을 고려한 유연한 접근도 필요하다.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협력모델을 통해서 남북한이 서로를 향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통일을 향한 동반자라는 믿음과 신뢰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국제화를 위해 외국 기업을 유치하는 노력도 하면서, 현 단계에서는 기존 입주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성공사례를 확산하는 것이 우선 과제로 설정되어야 한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4년 3·4월호(제27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박근혜 정부 1년, 외교·안보·대북정책 평가'입니다.* 원제 : ‘박근혜 정부 1년 평가: 개성공단 정상화 평가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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