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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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기도에서 아이를 키우며 삽니다. 얼마 전 아내에게 들은 얘깁니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 아이가 나중에 진학하게 될 중학교가 내년에 혁신학교로 전환된다는 소식에 '엄마 커뮤니티'가 술렁인다는 겁니다. 누구 엄마는 '이사를 가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라더군요. 빛보다 빠른 정보력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맹모'들의 삼천지교라고 할까요. 치맛바람 센 동네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런 얘기를 듣고 나니 <개그콘서트> 유행어 마냥 ‘많이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당황스러웠던 건, 혁신학교 주변의 집값이 오르고 자기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내려고 위장전입까지 시킬 정도로 인기가 좋다고 들었는데, 바닥 정서는 그게 아닌가 싶었던 겁니다. 물론 목소리 큰 몇몇 엄마들의 이야기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요. 침묵하는 많은 엄마들 중에는 혁신학교 전환을 반기는 경우도 꽤 되리라고 생각하지만, 혁신학교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완전히 사라지려면 아직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건 분명해 보입니다.
짐작건대, 혁신학교에 대한 거부감은 아이의 성적에 관한 걱정 때문일 겁니다. 기존의 공교육과 다른 방식의 교육, 즉 창의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다보면 자칫 내 아이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겠지요.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가 높아지고 대학 진학률이 오른 혁신학교의 성공 사례들이 여러 차례 소개됐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여전히 미덥지 않은가 봅니다.
혁신학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이 만든 '이념 학교'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교조 소속 교사의 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줄어들어 이젠 어느 학교도 전교조의 온상이 될 수가 없는 데다, 혁신학교 대부분도 무소속 교사가 가장 많고 전교조 조합원보다 교총 회원이 더 많은 비율을 보인다고 합니다. 전교조 교사들의 이념 교육에 대한 걱정은 한마디로 기우라는 얘기죠.
혁신학교에 관한 이런저런 불신은 사실 부모들 마음속에서 스스로 자라난 게 아닙니다. 보수 진영의 정치 세력과 힘센 언론들이 집요하게 자극한 결과죠. 혁신학교 모델이 시작될 때부터 일부 언론은 갓 3개월 된 혁신학교의 성적이 떨어졌다고 대문짝만 한 기사를 내기도 했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혁신학교의 전교조 교사 현황을 조사해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기도 했으니까요.
왜 그러는 걸까요?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이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일군 이 교육 개혁의 성공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친환경 무상급식이 단지 아이들 밥 먹이는 일에 그치지 않고 복지에 관한 거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된 것처럼, 성공적인 공교육의 혁신 모델은 다방면에 파급 효과를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주거와 교육을 민생의 양대 과제라고 하는데, 정치와 직결된 민생의 한 축이 뒤흔들리면 권력 지형도 더불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걸 '김상곤 현상'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대중적인 인지도로 보면 무명에 가깝던 그가 2009년 4월 첫 주민 직선으로 경기도교육감에 당선된 이후, 5년간 일궈낸 성과는 실로 눈부십니다. '좌파 정책'이라며 숱한 비난을 받던 무상급식은 이제 대세가 돼 누구도 이를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트집 잡지 않습니다. 다른 이유 없습니다. 겪어 본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크게 만족하기 때문이죠.
특히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 정부 하에서, "공짜 바이러스"라며 무상급식 예산 전액 삭감을 압박한 김문수 경기도지사와의 불편한 관계에서 지켜낸 성과이기에 김 교육감은 정치력까지 주목받게 된 겁니다. 역으로, '김상곤 현상'은 보수 진영에겐 '김상곤 포비아(공포증)'라고 할 만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드러납니다. 복지와 혁신, 인권 등 보수 세력의 취약 분야에서 거둔 성과가 '김상곤'이라는 주체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로까지 이어지는 형국이니 그럴 만도 하죠.
최근 보수 언론과 새누리당이 김 교육감의 일거수일투족에 태클을 거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경기도지사 출마가 거론되는 새누리당 원유철 의원은 "'김상곤 교육'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면서 "김 교육감은 정치 교육감이 됐다"고 했습니다. <문화일보>는 사설로 "김 교육감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개인적 이해득실을 저울질하면서 볼썽사나운 정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지난 2월 17일 김 교육감이 서울에서 가진 출판 기념회를 "구태정치"라고 사설로 때린 <동아일보>는 이번엔 "김 교육감은 범야권의 차기 주자를 노린다"며 은근히 '대권욕'을 유포하더군요.
행간에 숨긴 속내가 다르겠지만, 보수 언론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언론들도 김 교육감의 행보에 주목합니다. 교육감 3선에 도전할지,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할지 양 갈래 길에 선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지 '김상곤 개인의 선택'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 측으로부터 동시에 러브콜을 받는 김 교육감의 선택은 지방선거 야권 연대의 향방을 가늠할 첫 번째 퍼즐 조각이기도 합니다.
특히 안 의원 측이 오래전부터 김 교육감 영입에 공을 들인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김 교육감의 상징성과 파괴력을 감안해보면, 창당 과정에서 인물난에 허덕이는 안 의원 입장에선 천군만마를 얻는 셈이자 당선 가능성까지 겸비한 걸출한 경기도지사 후보를 낼 수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지난 24일 두 사람이 심야에 회동한 자리에서 안 의원은 삼고초려의 자세로 손을 내밀었을 겁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김 교육감이 안철수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민주당의 지원을 받은 게 사실이고, 당선 뒤엔 교육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민주당 소속 경기도의원들의 도움도 컸던 만큼, 김 교육감의 안철수 신당 합류는 부담이 큰 선택이 됩니다. 이에 따라 김 교육감이 만약 경기도지사에 출마한다면,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시민사회계가 함께 지원하는 무소속 단일후보 방식이 유력합니다. 민주당도 김진표·원혜영 의원이 출마를 선언한 이상, 김 교육감이 무소속 후보로 나와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 과정을 거치는 쪽을 희망하는 분위깁니다.
민주당과는 다른 맥락에서, 손호철 서강대 교수도 야권이 대승적으로 합의해 김 교육감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추대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민주당보다 보수적인 안철수 신당 후보로 나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진보적 학계에는 안 의원의 중도 노선을 기회주의로 평가하는 의견이 상당히 많은 게 사실입니다. 이와 별개로 야권 전반을 아우르는 그림으로 '박원순 서울시장-김상곤 경기지사 패키지'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모두 일리 있는 분석과 지적입니다. 지방선거가 그저 도백을 선출하는 4년 주기의 정치 행사에 그치지 않고, 정치권 전반이 변동하는 '터닝 포인트'로서의 의미를 갖기에 그러합니다. 특히 극심한 침체에 빠진 야권 전반이 '김상곤 효과'로 말미암아 반전의 계기를 찾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건강한 긴장이 생기게 될 겁니다. 김 교육감이 만약 도지사 출마로 결론을 내린다면 이에 관한 숙고와 방향 제시가 있어야 할 겁니다.
그러나 선거는 결과가 지배하는 잔인한 게임입니다. 그 잔인한 승부가 도박이 되지 않으려면 치밀한 전략과 대중들 가슴에 와 닿는 명분을 구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경기도라는, 어마어마한 인구와 재정을 책임지는 수도권의 지방정부를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나와야 합니다. 그건 전적으로 김 교육감이 스스로 준비해야 할 몫이고, 그에 따른 김 교육감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다만, 지금 야권에서 이어지고 있는 '김상곤 모시기'가 편하게만 보이지 않는 까닭은 김 교육감의 나머지 선택지가 갖는 함의가 은연중에 축소되기 때문입니다. 야권의 '김상곤 모시기'는 후보 경쟁력과 당선 가능성을 앞세운 선거공학적인 의미가 다분해 보입니다. 또한 민주당이나 안철수 의원 측 모두 자기 당의 유·불리 계산을 먼저 했을 겁니다. 김 교육감의 거취가 향후 야권 재편에 미칠 영향도 내다봤겠지요.
하지만 김 교육감이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한다고 해도 결코 쉬운 선거를 예상할 수는 없습니다. 선거는 상대방이 있는 경기입니다. 게다가 상대방은 '선거의 귀신'이라는 새누리당입니다. 김 교육감이 출마하면 지금까지 '중진차출론'을 뿌리치고 있는 남경필 의원에 대한 새누리당의 후보 만들기도 더욱 치밀해질 겁니다. 남 의원은 후보 적합도와 인지도, 당선 가능성 모든 면에서 새누리당의 필승 카드로 평가됩니다. 가뜩이나 김 교육감의 잠재력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보수 진영인 만큼 틀림없이 승부를 세게 걸 겁니다.
이처럼 위험한 선거이기 때문에 안전한 길로 회피하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선거지상주의와는 다른 성공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김상곤 현상'은 그가 무명이었기에, 그리고 권력 중심의 정치와 거리가 있었기에 더욱 드라마틱했다고 봅니다. 어지간하면 이름도 기억하기 힘든 교육감 한 명이 복지와 교육에 관한 우리 사회의 관성을 부숴가는 놀라운 방향 전환을 만들어낸 거죠.
대단한 파급력을 가진 이 정치모델은 현재적인 효과를 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 공약 후퇴가 줄곧 비판받는 배경에는 복지를 대세의 흐름으로 올려놓은 김 교육감의 성과가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박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직접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도 복지 홀대가 확연했는데, 이는 시간이 갈수록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겁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진보진영이 '복지 전쟁'을 선방해온 데에는 김 교육감이 말이 아닌 성과로 보여준 체감형 정책에 힘입은 바 큽니다.
이는 야권이 모델로 삼아야 할 정치의 전형이라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김 교육감의 남은 선택지, 즉 교육감 3선 도전이 어찌 보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고도 봅니다. 권력 중심의 다이내믹함은 떨어져도 현실의 변화를 일구어내는 정치야말로 우리 정치가 지향해야 할 바이니까요. 서두에 저의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했듯이 경기도교육청의 혁신교육 모델은 아직 뿌리가 깊게 박혀있다고 할 수 없는 상태이고, 지난해 김문수 지사의 무상급식 예산 전액 삭감 엄포에서 볼 수 있듯이 보수 진영은 복지 모델의 성공적인 착근에 대단히 공격적인 방해를 할 게 틀림없습니다. 어렵게 이끌어 온 경기도교육청의 성과가 한순간에 허공으로 날아갈 위험 요소는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김 교육감이 현재까지는 교육감 3선에 도전하는 쪽에 무게를 실어 고민하고 있다고 하는데, 오는 3월 6일 전까지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으니 최종 결론은 곧 알게 되겠지요. 그가 입장 표명을 빨리하면, 주 단위의 정치 전망을 하는 이 글은 사문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렇더라도 다음 주는 김상곤 교육감의 선택과 그에 따른 파장이 가장 주목되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합원 여러분도 그의 선택이 갖는 의미를 관심 있게 살펴보기를 권하는 마음입니다. 아울러, 혁신학교가 조속히 뿌리를 내려 부모들의 불신이 걷히고 제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혁신학교에서 좀 더 나은 교육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는 사심도 굳이 숨기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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