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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안철수, 정치곡예술이 새 정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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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안철수, 정치곡예술이 새 정치인가"

[남재희 인터뷰②] "기울어진 운동장의 축을 바꾸는 게 야당 역할"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3자 구도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 야권이 '공멸'할 수 있다는 불안감, 기계적으로 꺼내든 '정권 심판론'의 깃발이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함,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정치지형이 낳은 무력감이 켜켜이 중첩돼 있다. 그렇다고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의제가 그랬던 것처럼 운동장의 '축'을 뒤흔들 선제적 의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사진)에게 이번 지방선거의 구도와 전망에 대해 물었다. 박근혜 정부 1년 동안 몰아친 '공안몰이'를 누구보다 날카롭게 비판한 그였지만, 답은 의외로 "이번 선거를 정권심판 구도로 몰아가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섣부른 '정권 심판론'이 야권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오히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경합이란 현실을 부정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창당 초읽기에 들어간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에 대해선 거침없는 쓴 소리를 쏟아냈다. 호남에서 민주당과 쟁탈전을 벌이는 '정치 곡예술'로는 새 정치도, 대안세력도 될 수 없다고 했다.

집권 초, 거대 여당에 눌려 '기를 쓰지 못하는' 야권 전체를 향해서도 뼈 있는 질문을 던졌다. 매카시즘 광풍이 지나간 뒤 미국 정치지형이 우(右)측으로 기울었던 것처럼, 박근혜 정부의 공안몰이 이후 더 기울어져버린 운동장에 야권 역시 속수무책 휩쓸리고 있지는 않는지. "축(軸)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축을 이동시키는 게 정치"라는 충고다.

인터뷰는 18일 서울 서교동 프레시안협동조합 사무실에서 박인규 이사장이 진행했다. 다음은 남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남재희 전 장관 인터뷰 1편 보기 (☞"이석기 사태, '나라의 격'이 걸린 문제")

▲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6.4 지방선거, '정권 심판' 구도 아냐…민주당對신당 구도"

프레시안 : 6.4 지방선거가 3자 구도로 치러지게 되면서 지방선거 ‘프레임 전쟁’도 한창이다. 각 정치세력의 이해에 따라 '정권 심판론'과 '지방정부 심판론', '새정치론'이 각축전을 벌이는 분위기다. 이번 지방선거 구도, 어떻게 봐야 하나?

남재희 : 이번 지방선거를 '정권 심판 선거'로 규정해선 안 된다. 아직 그 이야기가 나올 단계가 아니다. 정권 평가라는 프레임은 국민들을 오도할 뿐만 아니라 야당에게도 결과적으로 불리할 것이다. 우리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득이 되지 않는다.

국민이 '의식'으로 느끼는 것과 '감각'으로 느끼는 것은 다르다. 중요한 것은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엔 더 시간이 걸리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머리로 느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감각으로 느껴서 변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 고작 1년인데, 벌써 정권 심판? 성급한 얘기다.

이번 선거의 핵심은 오히려 야권 재편에 있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즉 안철수 신당의 경합 구도다. 그게 이번 선거의 핵심 포인트라고 본다.

프레시안 : 안철수 의원이 본격적인 창당 작업에 나서면서 호남 지역에서의 민주당과의 쟁탈전이 과열되는 분위기다. 어떻게 평가하나?

남재희 : 격한 표현을 빌리자면, 한 마디로 '거지 밥그릇 싸움'이다. 왜 하필 호남 쟁탈전인가. 김부겸, 김영춘 같은 민주당 인물들이 영남에서 희생정신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안철수 신당에도 이게 필요하다.

안철수 신당이 영남에서 새누리당과 제대로 붙어 본다면, 국민 모두가 박수치지 않겠나. 호남에서 민주당 표를 '찢어먹기'하는 게 무슨 새 정치인가. 외부에서 보기엔 영락없는 밥그릇 싸움 밖에 되지 않는다.

“安 신당 정치곡예술, 이게 새 정치인가?”

프레시안 : 신당이 인물 면에서도 아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재희 : 신당에 입신주의 외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오로지 눈치 작전에만 능한 이들이, 어떻게든 입신을 하려고 몰려간 집합소 느낌이다. 아무리 뜯어봐도, 민주당의 잘못된 점을 통렬하게 반성하고 비판하며 신당으로 옮긴다는 사람을 단 한 명도 찾지 못했다. 내 눈에는 기회주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윤여준 씨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야권연대를 비판하며 "우리가 왜 야권인가"라고 반문했다. 묻고 싶다. 그럼 무엇인가? 안철수당이 여당인가? 아니면 중간파로 봐달라는 항변인가?

오히려 지금 안철수 신당의 모습은 '정치 서커스'에 가깝다. 모든 정당과 정파를, 이른바 책사라고 순방하며 정치 서커스를 벌인 인물을 창당 준비기구의 의장으로 영입했다. 그것도 두 번째 영입이다. 새 정치라고 하더니, 이건 정치 곡예술에 가깝다. 이런 ‘아크로바트(acrobat·곡예사)’를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를 내걸었다. 말은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지당하기만 할 뿐, '절실함'이 없다. 국민이 절박하게 느끼는 문제에 대해 정책과 실력으로 보여줄 사명감은 없고 입신주의만 남았다. 이런 부분은 혹독하게 비판해야 한다.

프레시안 : 신당이 양당 구조의 기득권 정치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점에 기대를 거는 이들도 많고, 안 의원 측도 그런 점을 창당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다당제 정치, 가능하다고 보나?

남재희 : 일시적으로 다당제가 가능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불가능하다. 우리의 선거제도나 지역 구조가 일단 다당제에 맞지 않는다. 우리처럼 한 선거구에서 한 명만을 뽑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는 기본적으로 양당제 구조지, 다당제 구조가 아니다. 독일처럼 비례대표를 늘리든가 소선구제를 개편하지 않는 한 안정적인 다당제 성립이 불가능하다. 결국 다시 양당제의 형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축을 '이동'시키는 게 정치"

프레시안 : 지적하신대로 지방선거의 핵심 구도는 야권 재편이 될 텐데, 정국 주도권이나 리더십, 지지율 모든 면에서 야권이 현재 답보 상태다.

남재희 : 야권 전반적으로 정권의 종북몰이에 상당히 위축된 모습이다. 재벌에게도 위축됐다.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모두에서 재벌과 경제민주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최근에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집권 초기, 거대 여당의 세가 강할 때는 기본적으로 야당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쉽게 타협하고, 또 타락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강력한 여당과 상대해야 하는 야당의 주류는 대부분 타협적이었고, 종내에는 타락했다. 박정희 시절 야당의 수장인 유진산이 그랬다.

여기에 반기를 들고 나선 이들이 양김(兩金)이었다. 야당 주류 유진산의 타협 정치에 김영삼이 먼저 나와 40대 기수론을 내세웠고, 김대중도 곧 뒤따랐다. 유진산은 "구상유취(口尙乳臭·입에서 젖내가 난다)"라고 깎아내렸지만, 결국 이들이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민주당에서도 최근 초선 의원 20여 명이 모여 당 주류에 반기를 드는 것 같다. 이들이 얼마나 정치 역량을 발휘할 지는 미지수고,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김한길 대표의 최근 움직임을 보니, 점차 순응하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아 우려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축(軸)이 움직였으니 우리도 우측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건 정치가 아니다. 야당도 아니다. 대결하고 투쟁하는 것, 패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꾸는 것, 한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지형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야당의 역할이다. 재벌문제, 경제민주화 등 의제를 분명히 세워 여당과 맞붙어야 한다. 그게 민주당이 앞으로 살아남을 길이다.

"야권, '빙하를 움직이는' 치열함 있나?"

프레시안 : 민주당이나 새정치연합 모두 시대적 과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인가?

남재희 : 각종 미사여구와 지당한 말씀만 나온다. 지당한 말씀이다 보니 트집 잡을 것도 없다. 그러나 '지당한' 이야기와 '절실한' 이야기는 다르다. 절실한 이야기는 국민이 피부로 절박하게 느끼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다.

요즘 <정도전>이란 텔레비전 드라마가 방영 중인데, 정도전은 권문세족이 농토를 다 점유해 극심한 수탈을 할 때 토지개혁을 들고 나왔다. 당시 상황이 원(元)나라에서 명(明)나라로 교체되는 시기이기도 했고, 불교에서 주자학으로 바뀌는 전환기였지만, 토지 개혁이 변화의 핵심이었다. 토지 국유화라는 개혁을 통해 조선조라는 새 시대를 열었다. 그렇게 절실한 문제로 정치를 해야 한다.

앞서 말한 오바마의 연설만 봐도 지당한 말씀만 나오는 우리 정치와 다르다. "노동조합이 기울지 않는 운동장을 갖도록 단체교섭권을 제대로 작동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이 보다 많은 교섭을 할 수 있고, 중산층이 보다 나은 임금을 받게 해야 한다"는 연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강화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미국의 중산층 역시 회복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상황이 결코 미국보다 낫지 않은데, 민주당이나 안철수 신당 모두에서 이런 메시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기적 같은 처방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정도전, 오바마와 같은 확실한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란 '빙하를 움직이는 것'과 같다. 빙하는 얼음의 압력으로 서서히 움직인다. 엄청난 무게의 빙하를 움직이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다. 매카시즘도 상당히 오랜 시간 미국을 뒤흔들었다. 한 때 미국사회를 지배했지만, 결국엔 극복됐다. 지금 야권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빙하를 움직이는(moving the glacier)' 노력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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