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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학원 없는 '검증된' 공부법! 학부모라면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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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학원 없는 '검증된' 공부법! 학부모라면 필독!

[이명현의 '사이홀릭'] 김주환의 <그릿>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십중팔구 낭패를 보게 되는 주제 중 하나가 공부 이야기일 것이다. 그만큼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도 아이들 공부 문제로 시름이 깊은 사람들이 많다. 나도 대학교를 휴학하고 군대에 가 있는 아들과 곧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딸을 가진 학부형이다. 아이들 공부 문제로 고민이 없을 수 없다. 대학생인 아들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조심스럽지만 공부 문제의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는 딸아이의 공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얼마 전에 딸아이가 몇 년 동안 다니던 영어 학원을 그만두었다. 영어 소설을 읽고 내용을 분석하고 에세이를 쓰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동네 학원이었다. 한 번에 두 시간씩 일주일에 두 번 학원에 갔었다. 딸아이가 다니는 유일한 학원이었다. 이제는 영어 공부도 혼자 하겠다는 것이다. 이 학원의 수업방식을 딸아이도 만족스러워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딸아이처럼 한 학원에 오래 다니는 학생이 없다보니 딸아이가 늘 레벨이 가장 높은 반에 배정되곤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실력에 비해서 너무 벅찬 수업을 견뎌야만 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딸아이가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나는 한마디의 사족도 달지 않고 그렇게 하라고 했다. 영어 학원 문제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가장 많은 고민을 했을 사람이 바로 딸아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앞서 말한 동네 영어 학원 이외에 다른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아본 적이 없다. 딸아이가 5학년 여름 방학을 맞이할 무렵의 일이다. 아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딸아이를 수학과 논술 학원에 보내려고 했다. 나는 반대했다. 맥락 없고 너무 앞서가는 선행학습이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전혀 없다는 주장을 했다. 입시를 위한 논술 공부를 초등학교 5학년에게 시키는 것도 전혀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아내에게 제시했다. 아내는 모두들 하는 일인데 우리 아이만 빼놓으면 뒤처질 것이라면서 걱정을 했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둘 사이에 팽팽한 의견 대립만 계속 되었다. 전형적인 이 시대 학부형 부부의 모습일 것이다.


늦은 귀가가 일상이 된 학원가의 모습. (사진은 본 칼럼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연합뉴스

나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수학은 방학 때 내가 직접 가르쳐서 한 학기 분량만큼 선행학습을 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명색이 과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니 딸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칠만한 실력이 충분히 있다고 아내를 설득했다. 논술에 대해서도 내가 신문에 칼럼도 쓰고 책도 쓴 사람이라는 점을 내세워서 직접 가르치겠다고 제안했다. 아내가 수정안을 내게 던졌다. 일단 5학년 여름 방학 동안 수학 선행학습을 하고 2학기 동안의 성적을 보겠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꽤 까다로운 시험 성적 목표를 제안했었는데 다행히 딸아이가 그 목표에 맞는 점수를 유지하는 바람에 학원에 다니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논술을 잘 하기 위해서는 먼저 책읽기 기초를 다져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딸아이와 내가 같은 책을 같이 읽고 공동 서평을 쓰는 작업을 하겠다는 제안을 했고, 아내가 그걸 받아줘서 논술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이 작업의 결과를 공동 서평 형식으로 써서 두 편을 발표했는데 아쉽게도 그 이후에는 기회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 쓰는 서평에세이가 딸아이와 내가 다시 이 작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공부에 대한 내 주장에 확신은 있었지만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할만한 능력은 없었다. 아내는 누구보다도 딸아이의 노력과 능력을 믿고 있었지만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낼 위안처와 근거를 찾지 못해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6학년이 되자마자 아내는 투병 생활을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딸아이의 공부 문제에서 한발 물러나게 되었다. 나는 아내의 몫까지 이어받아서 공부에 대한 고민을 해야만 했다.

딸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 나는 그녀와 긴 대화를 나눴다. 이런저런 일상의 이야기부터 중학교 공부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는 공부에 대한 내 생각을 딸아이에게 처음으로 진지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나는 공부는 즐거운 작업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딸아이는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공부를 열심히는 하겠지만 결코 즐겁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딸아이의 생각이었다. 몇 달 전에 원소의 화학 결합 부분을 공부하던 딸아이가 처음으로 내게 공부가 즐겁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느꼈다고 말했다. 기뻤다.

나는 또 공부는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공부를 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일 텐데 공부 때문에 불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딸아이는 원칙적인 동의를 표하는데 머물렀다. 언젠가 딸아이가 공부가 즐겁고 행복한 작업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공부의) 가장 큰 목적은 '독립'이다. 한 가지 덧붙여서 다시 말하면 나는 공부를 세상을 보는 올곧은 태도를 갖고 독립적인 사고를 하도록 훈련시키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나는 딸아이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어떤 공부를 하는지 물어보고 도와줄 것이 없는지 물어보기는 한다. 질문을 하거나 도움을 청해오면 가능한 한 친절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크든 작든 자기 일은 자기가 하도록 내버려둔다.

딸아이는 보통 밤 12시쯤부터 한두 시간 웹툰을 본다. 학교에서 돌아온 오후 시간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친구들과 카톡을 하는 것이다. 몇 시간을 할 때도 있다. 드라마를 좋아해서 나와 함께 하루 두세 시간은 텔레비전을 본다. 가끔씩 묻는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딸아이를 바라보다가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간다. 그녀 자신이 선택한 시간 활용을 방해할 권리가 부모에게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이 선택하고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자기 의지대로 시간을 쓰는 것도 독립을 위한 훈련, 즉 공부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고 사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딸아이를 지켜보면서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응원하는 것이다.

공부 계획을 짜고 수행하고 수정하는 일에도 간섭하지 않는다. 물어보고 스스로 내리는 평가를 들어보고 추임새만 넣는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결과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딸아이가 즐겁든 고통스럽든 모두 다 혼자서 느끼고 감당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잔소리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웹툰을 볼 시간을 금지한다고 그 시간에 부모가 원하는 대로 기꺼이 공부를 할 아이들이 몇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잔소리를 해서 얻을 이득이 없다면 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으로도 훨씬 이익이다.

학교 숙제나 수행 평가를 할 때도 질문에는 응하지만 글씨 하나 쓰는 것부터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하도록 독려한다. 스스로 공부하는 훈련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일을 계획하고 수행하는 소중한 과정을 방해하고 착취하는 부모가 되기 싫어서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아무리 어설픈 결과를 얻었더라도 자신이 기획하고 수행한 작업의 결과는 행복감의 충만이었다. 자식이 마땅히 누려야할 그런 경험과 권리를 부모라는 이유로 빼앗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미래가 중요하듯 현재도 중요하다. 공부라는 이름으로 자율성도 방황의 권리도 빼앗아버린다면 자식의 현재뿐 아니라 미래도 착취하는 망나니 부모가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부모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딸아이와 공부에 대한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 약속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나는 수업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집중하라는 주문을 했다. 내 학창 시절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성적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딸아이는 지금까지는 이 주문을 잘 지키고 있다. 이 간단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성적 향상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딸아이는 몸소 느꼈고 친구들에게 전파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친구들이 자신의 말을 잘 믿지 않아서 답답하다고 푸념을 하기는 한다. 시험공부에 투입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남는 시간은 노는 데 사용하고 있다. 나는 물론 그녀의 시간 사용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는다.

딸아이는 동네 영어 학원을 제외하면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하지 않으면서 혼자 공부하는 습관을 익혀온 지 몇 년이 되었다. 내 생각에 이제는 모든 일을 혼자 하는 습관이 몸에 익은 것 같다. 기획부터 준비와 실행까지 그리고 결과까지 자신이 감당하는 연습이 곧 공부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성적도 괜찮은 편이다. 공부하는 데 투입하는 시간이 최소화된 만큼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생겼다. 딸아이는 아직도 자신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게 현재를 즐기고 있다. 나도 그런 딸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공부는 여전히 우리들의 큰 화두 중 하나지만 현재와 미래를 모조리 삼켜버리는 모든 것 중의 모든 것은 아니다.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고 내가 발언해야 하는 시간이 되면 나는 앞서 이야기한 공부에 대한 나의 태도와 딸아이의 공부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곤 한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별로 좋지 않다.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면서 문제 제기를 한다.

첫 번째는 딸아이가 머리가 좋은 아주 특수한 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아이의 특수한 경우를 보편화시킬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늘 딸아이의 타고난 능력보다는 그녀가 몇 년 동안 끈질기게 연습해서 길러온 독립성에 주목해 주길 바란다고 대답한다. 실질적이고 현명한 선택과 노력에 방점을 찍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적은 별로 없다. 나도 이런 경험치를 객관화할 과학적 근거와 데이터를 제시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답답했지만 그저 경험을 바탕으로 한 호소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릿>(김주환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쌤앤파커스
두 번째는 혼자서만 입시의 큰 흐름을 외면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충고다. 아무리 원칙이 중요하더라도 아이가 입시에 실패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다. 큰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소외되고 결국은 아이를 낙오자로 만들 것이라고 내게 걱정 어린 말을 해주곤 한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큰 흐름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는 허수아비 타깃에 불과하다고 항변하곤 한다. 오히려 그런 망상에 휘둘리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야기는 대개 평행선을 긋다가 흐지부지 되곤 한다.

김주환이 쓴 <그릿>(쌤앤파커스 펴냄)은 아이들 공부 문제에 대해서 그동안 내가 주장하고 실천해 오던 지극히 개인적이고 경험적인 방식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제공해주는 책이다. 더구나 지은이 자신의 딸에게 그 이론을 적용해서 성공한 사례까지 담고 있다. 든든한 동지를 만난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다.

<그릿>을 읽기 전에 먼저 공부 문제의 한 가운데 있는 당사자인 딸아이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다. 딸아이가 간단한 감상평을 보내왔다.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서 아래에 옮겨 적는다.

"이 책은 간단히 말해서 공부를 잘 하는 방법에 대해 서술한 글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공감 가는 게 꽤 많았던 것 같다. 그 중 가장 공감이 많이 갔고, 또한 내가 중요하다고도 생각하는 2가지는 바로 공부는 머리가 좋아야만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수업을 잘 들어야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수업시간에만 열심히 집중해서 들어도 시험을 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고등학생이 아니라서 입시에 대해서는 실감도 나지 않고 아는 게 별로 없지만, 그 두 가지는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 꼭 알고 있어야 하는 사실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이 책을 읽고 새롭게 알게 된 놀라운, 어떤 것들은 충격적인 사실들도 몇 있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부모들의 잘못된 생각이, 잘못된 욕심이 그들의 자녀들의 인생을 망쳐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보면 실제로 저자의 지인들의 잘못된 자녀교육 때문에 자녀가 공부에 손을 거의 놔버린 경우도 있었고, 자녀교육에 대한 다른 가치관 차이 때문에 부모가 이혼한 사례도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잘못된 자녀교육이란 자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조건적인 사교육에 아이를 맡기고, 무조건 공부하는 것만을 강조함으로써 자녀에게 시험 부담을 주고 스트레스 받도록 만드는, 안타깝지만 요즘 흔한 한국 부모들의 자녀교육 방식이다. 물론 이 방법은 자녀의 시험성적을 잠시 올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자녀가 공부를 즐겁게, 자발적으로 열심히 잘하기를 바란다면 이런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 이러한 방법은 오히려 자녀를 망쳐놓는 지름길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내가 진정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주변에서 공부는 꼭 해야 한다고 늘 말해서 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후자 쪽이다. 물론 공부가 그저 즐거워서, 시험도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보기에는 제도적으로도 그렇고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인데, 즐겁게 겪어나가면 그 과정도 결과도 좋을 것이고, 억지로 고통스럽게 겪어나간다면 결과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 과정은 정말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일 것이다. 그러니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이 있듯이 나도 앞으로는 전보다 더 즐겁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이 메모를 나에게 건네주면서 <그릿>은 정말이지 엄마들이 읽도록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딸아이의 <그릿> 감상평은 의외로 담담했다.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공부법에 대한 확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즐거운 공부의 중요성에는 동감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인 듯하다. <그릿>에서 강조하고 있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었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고 싶은 것만, 또 볼 수 있는 것만 본 것 같다. 딸아이 말대로 '아직 고등학생이 아니라서' 실감을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딸아이의 <그릿> 총평은 '대체적인 공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릿>을 쓴 김주환은 현장에서 이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학자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자신이 연구한 결과가 적용될 수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기술한 책이 <그릿>이다. 공부법 책들은 흔히 교육적인 당위성만 강조하는 원칙론의 함정에 빠지곤 한다. 또는 입시를 대비하는 즉각적인 기술에만 집중하는 얄팍함을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릿>은 검증된 과학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현실을 진단하고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서 자신의 딸에게 직접 적용한 성공 사례까지 담고 있다. 이보다 더 설득력 있고 공감을 줄 수 있는 '공부법' 책이 어디 또 있을 것인가.

김주환은 <그릿>에서 "부모가 극성을 부릴수록 아이의 성적이 오를 거라는 생각은 크나큰 오산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더 나아가 "부모의 잘못된 개입이 아이를 오히려 무능력하게 만들고 공부도 못하는 아이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너무도 자주 보아 왔다"고 현실을 진단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고 실제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떠벌리고 다니는 말이다. 내 이야기는 그저 한 학부형의 치기어린 외침이지만 <그릿>에서의 서술은 검증된 과학적 이론에 바탕을 둔 기술이다. 나는 앞으로 '나는'이라는 주어로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대신 '<그릿>에서는'이라는 주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그릿(GRIT)은 스스로의 능력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온갖 어려움과 역경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발적인 열정으로,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끝까지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문장을 나는 내 방식대로 해석해서 '그릿'은 '독립'을 위해서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그릿>에서는'이라는 주어로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독립'이라고 확대 해석해서 이야기하고 다닐 생각이다. <그릿>에서 정의하는 '그릿'은 무엇인지는 책을 읽을 독자들의 흥미를 반감시키지 않기 위해서 옮겨 적지 않겠다.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는 '그릿을 키우라'는 것이 <그릿>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공부에 간섭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마음의 근력인 그릿을 강화하는 훈련을 시켜야 하며, 그것이 공부 잘 하는 아이를 키우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내가 막연한 경험으로 어렴풋이 이야기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릿>은 과학의 언어로 공부 잘하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공부는 과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릿>은 결국 공부 잘 하는 과학적 공부법에 대한 책이다. 더 크게는 행복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훈련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이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간섭을 시작하면 십중팔구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하지 못할 것이고 불행할 것이다. 부당한 간섭과 잔소리를 걷어내고 그릿을 갖추도록 아이들을 훈련시킨다면 성적도 덩달아서 오를 가능성이 높다. 최소한 아이들은 행복할 것이다. 지혜로운 선택은 너무나 자명해 보인다. 학부형이기 이전에 부모였고, 그 이전에 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할 시점이다. <그릿>은 자각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게 해주는 냉철하면서도 지혜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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