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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치인의 '도덕성 시비' 드문 이유는…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의 정치 ①

독일에서 공부하던 2003년 11월의 어느 날, 대학원 세미나 과정의 일환으로 보훔(Bochum) 시에서 열린 사회민주당(SPD, 이하 사민당)의 정기 전당대회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사민당 전당대회는 독일 전역의 도시들을 돌아가며 2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개최된다. 물론 그 중간에 특별한 안건이 있거나 선거를 앞두고 있다던가 하면 특별 전당대회를 가진다. 이 경우에는 주로 수도인 베를린에서 열리게 된다.

보훔 시는 독일 중서부 노드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인구수가 약 38만 명으로 독일의 20대 도시에 속한다. 과거 라인강의 기적으로 유명한 루르 공업지역의 한 곳으로, 광부나 간호사로 온 한국인들이 많이 정착한 도시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도시의 보훔대학교에는 한국학과가 있어서 독일을 아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잘 알려진 곳이지만, 독일에서 그렇게 주요 도시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독일 정당들의 전당대회는 우리와 달리 전국을 순회하며 크고 작은 도시에서 개최된다.

독일의 전당대회, 모두가 의견 교환

이날 행사는 시내의 한 체육관에서 치러졌다. 입구에는 사민당 관련 마스코트나 홍보물 등이 구비되어 있었고, 주변에는 이 당의 역사나 주요 인물 등에 대한 정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 SPD 출신의 저명한 인물사진이 담긴 엽서들을 공짜로 나누어 주고 있었고, 사민당 마크가 새겨진 셔츠나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당시 연방수상(Bundeskanzler, 이하 연방총리 또는 총리 등으로 같이 사용)이던 슈뢰더(G. Schröder)의 전신 모형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서 간간이 방문자들이 그 옆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서면 앞쪽에는 단상을 만들어 그 위에 사민당의 지도부들이 테이블과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 있고, 무대 아래에는 마찬가지로 길게 늘어선 테이블들과 함께 전국에서 모여든 수백 명의 대의원이 지역별로 자연스럽게 모여 앉았다. 행사가 진행되면서 많은 대의원들이 차례대로 무대에 올라가 현안에 대해 그리 길지 않은 연설들을 쉼 없이 계속해 나갔으며, 아래 참석자들은 그러한 연설을 지긋이 응시하거나 옆 사람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거나 가져온 신문, 잡지를 보면서 간단한 먹거리를 먹고 마시는 등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연설이 마음에 들면 테이블을 두드리면서 환호성을 올리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강의나 강연, 연설 등에서 동의나 찬사의 표시로 보통 책상을 두드린다.

중간에 결정이 필요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즉석에서 표결이 이루어진 후 또다시 연설이 계속되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봐 얼굴이 눈에 익은 정치인들이 연사로 나오기도 했지만, 대부분 잘 알지 못하는 대의원들의 연설이 주를 이루었다. 행사는 종일 진행되는 것 같았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전국의 대의원들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를 통해 당 차원의 공감대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새로운 신인정치인을 발굴해 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휴식 시간에 학교 동료들과 함께 전시물들을 돌아보다가 당시 사민당의 원내대표(이후 당대표, 부총리 등 역임)인 뮌터페링(F. Müntefering)을 만났다. 세미나 담당교수의 소개로 인사를 하고 잠시 담소를 나누게 되었는데,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되니 신기했다. "정치인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다소 상투적인 질문을 했는데, 뜻밖에도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까지 인용해 가며 "객관적 열정(sachliche Leidenschaft), 책임감(Verantwortungsgefühl), 거리를 두는 균형감각(ein distanziertes Augenmaß)"을 정치인의 덕목으로 강조하였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훌륭한 대답인 것 같다. 정치인에게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뭐가 있을까? 여의도에 가서 우리 정치인들에게 물어보면 무엇이라고 대답할지 궁금하다.

▲ 2003년 보훔시에서 열린 사민당 전당대회에서 필자와 뮌터페링. ⓒ조성복

오후 시간에는 담당교수와 친분이 있던 슈타인마이어(F. Steinmeier) 연방총리실 장관(우리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 나중에 사민당 총리후보, 외무부 장관 역임. 현재 대연정에서 다시 외무부 장관직을 수행 중)과 별도의 공간에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당시 한창 중요한 이슈였던 이라크 전쟁에 불참한 독일의 입장을 묻는 질문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질문들이 쏟아졌다. 사전에 논의한 바 없이 모든 것이 즉석에서 이루어졌지만 그 장관의 대답에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논의를 마치고 행사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마침 슈뢰더 총리가 방문하여 연설을 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노동의 유연화, 사회복지의 축소 등을 골자로 하는 '아젠다 2010'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당내 좌파 진영으로부터 커다란 반발을 사고 있었다. 이후 우리 학생들이 참관을 마치고 행사장을 떠날 무렵에는 슈뢰더 총리가 체육관의 관중석에서 전당대회장을 배경으로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아무것도 보지 않은 채.

정치인이 명료해져야 인사청문회도 간단해진다

이처럼 독일의 정치인들은 명쾌하다. 독일에서 뉴스, 행사, 토론회, 전당대회 등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분야에 대해 정통하고, 나름대로 소신이나 주장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자가 마이크만 갖다 대면 그들은 일사천리로 현안을 술술 설명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대안을 제시한다. 그러한 대안의 맞고 틀림을 떠나서 각 사안에 대해 그처럼 명확한 입장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독일 정치인들의 이러한 모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정치 활동을 통해 교육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처럼 정치와 상관없는 다른 일을 하다가 갑자기 정치권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어릴 때 또는 젊었을 때부터 정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토론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상대를 설득하는 것 등을 지속적으로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독일 연방하원(Bundestag)의 의원(우리의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또 당대표, 장관이나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20년 이상의 정치 경력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따라서 이러한 선출직 정치인들은 이미 장기간에 걸쳐 여러 가지로 검증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의 인사청문회에서 보듯이 "자질이나 능력이 있네, 없네!"라든가 "도덕성이 결여 되었네, 어쩌네!" 하는 등의 불필요한 시비가 없는 것 같다. 한마디로 정치의 비효율적인 부분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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