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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지지, 총선 거부하는 '태국식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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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지지, 총선 거부하는 '태국식 민주주의'

[아시아 생각] 대결정치로 내전 위기에 빠진 태국

지난 2월 2일 태국에서 조기 총선이 끝났지만 3개월가량 지속된 태국의 정정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제 1야당인 민주당이 불참한 이번 선거가 정치적 갈등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거는 정치적 갈등을 완화시키고 정치적 타협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다시 말해 선거야말로 ‘탈무장 민주주의’(disarmed democracy)를 가능하게 한다.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졌다면 선거의 패자는 그 결과에 승복하고 그 다음 선거에서의 승리를 다짐하기 마련이다. 선거는 ‘전쟁정치’를 막을 수 있는 민주주의의 불가결한 조건이다.

현재 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적 갈등의 완화기제이자 정치적 타협 기제로서의 선거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정부 시위대와 제1 야당인 민주당이 선거를 거부하고, 나아가 선거를 통해 탄생한 권력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텝왼쪽) 전 총리가 이끄는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수텝이 지난 10일 시위 모금 운동을 벌이면서 잉락 친나왓 현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모습.ⓒ

"내가 이길 수 없으면 선거는 의미없다"는 민주 세력?

그러나 친탁신계 잉락정부는 2011년 선거에서 승리하여 권력을 장악했고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주당도 선거결과에 승복했다. 그렇지만 현 반정부세력은 지난 해 집권 프어타이당이 해외도피 중인 탁신과 2010년 친탁신계 시위대 유혈진압 책임자인 수텝 전 총리를 포함한 친탁신계-반탁신계 인사들에 대한 포괄적 사면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던 것을 문제 삼아 ‘탁신체제’ 종식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들에게 선거는 무의미하고, 잉락정부는 탁신정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퇴출되어야 할 부패 권력이다. 그리고 잉락정부를 포함한 탁신체제를 지지하는 동북부와 북부지역의 유권자들은 부패한 정치인에게 표를 몰아주는 무지한 집단이다. 그러기에 이들에게 어떠한 차별도 허용치 않고 주어지는 1인 1표의 권리행사는 최소한 태국사회에 적절하지 않다. 한 유력 재벌가의 상속자가 시골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모른다는 얘기를 공개적으로 언급해 파장을 일으킨 것도 중산층 이상의 엘리트들의 빈곤층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반정부세력인 국민민주개혁위원회(PDRC)가 주로 중산층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이들이 과거 탁신정부의 농촌지원 정책이 방콕 중산층의 세수(稅收)에 의존한 영악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생각하는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현 태국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는 계급갈등의 성격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연으로 빠져들고 있는 큰 이유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제 1야당인 민주당이 선거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데에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선거에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2001년 이후 민주당은 선거에서 탁신계 정당을 이긴 적이 없다. 심지어 군정 하에서 치러진 선거 하에서도 민주당은 친탁신계 피플파워당에게 패배하였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민주당이 집권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선거와 무관한 일부 탁신계 정치인들의 민주당으로의 전향 때문이었다. 지난 2월 2일 총선 방해에 앞장선 국민민주개혁위원회(PDRC)의 수장인 수텝 타웅사반이 민주당 출신의 전 부총리이자 국회의원이었다는 것만을 보아도 현재의 반정부시위대가 민주당의 외곽부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민주당이 선거 참여를 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당시 탁신퇴진 운동이 거세지자 의회를 해산하고 치러진 2006년 4월 총선 때도 민주당은 선거참여를 거부함으로써 반쪽 선거를 만들었다. 당시 반정부시위를 이끌었던 민주주의민중연대(PAD)는 총선 무효투쟁을 벌였고 헌법재판소는 반탁신세력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해 9월 18번째 쿠데타가 발발하였다. 이어 한때 최고의 찬사를 받았던 1997년 헌법이 폐기되었다. 당시 민주당과 민주주의민중연대(PAD)는 쿠데타를 내심 반겼다. ‘좋은 쿠데타’라는 말도 회자되었다. 지난 2월 2일 총선 직후 민주당은 2006년 쿠데타 이후 탁신이 이끈 타이락타이당과 친탁신계 정당을 여러 차례 해산시킨 바 있는 헌법재판소에 총선 무효 소송과 집권 프어타이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일부 비판적 지식인들은 민주당이 1946년 6월 국왕 마히돈이 의문사했을 때 왕당파들과 연대하여 이를 두고 왕실을 전복하려는 공화주의자들의 소행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그 배후 인물로 1932년 입헌혁명의 주역이자 사민주의 성향의 쁘리디 총리를 지목해 끝내 권좌에서 축출했던 민주당의 보수성에 주목한다. 1947년 11월 일단의 군부세력이 마히돈 국왕의 사인(死因) 규명과 1932년 입헌혁명 이전 왓치라웃 국왕이 내걸었던 ‘국가, 종교, 국왕’ 삼위일체론 수호를 내걸고 쿠데타를 일으켰고, 다음 해 선거에서 민주당은 승리를 거두었다. 물론 급진성향의 쁘리디 세력은 초토화되었다. 태국 정치를 1932년 입헌혁명 이전으로 되돌린 듯한 1947년 군-왕당파 동맹 쿠데타 이후 민주당은 국왕이 상원을 임명하고, 군을 직접 통솔하고, 입법을 거부하고, 장관을 해임하고, 법령을 발동할 수 있다는, 요컨대 왕권강화를 내용으로 담은 신헌법을 추진했다. 민주당이 왕실 수호를 기치로 내걸었던 2006년 쿠데타를 지지하고 이후 군정 하에서 통과된 2007년 헌법을 지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민주당의 과거사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쿠데타를 계기로 태국사회는 쿠데타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으로 나뉘었다. 심지어 과거 반군부 민주화투쟁 경력을 갖고 있던 운동단체들과 개인들도 쿠데타 지지 쪽과 쿠데타 반대쪽으로 분열되었다. 당시 ‘운동권’ 내 쿠데타 반대세력들은 쿠데타 지지세력들을 ‘탱크 리버럴’이라고 비꼬았다. 반면 쿠데타 지지 쪽 일부세력은 선거가 민주주의의 모든 것은 아니라면서 과거 1960년대 군사정부가 거론하던 ‘태국식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부활시켰다. ‘운동권’과 지식인 사회에서조차 선거가 민주주의의 최소요건이자 필수요건이라는 관념이 정착되지 못한 것이다.

태국민주주의 위기 원인은 민주당, 해결의 열쇠는 탁신

오랜 기간 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친탁신-반탁신 갈등은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두 얼굴, 즉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실행하지 못했던 친서민 정책을 펼친 걸출한 대중정치인의 얼굴과 재벌 출신 정치인으로서 부패와의 고리를 끊지 못한 탐욕의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태국사회의 소외계층에 대한 이해가 없는 엘리트층과 중산층의 지지를 받으며 군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정적을 박멸하겠다는 민주당의 전체주의적 인식에 있다. 태국민주당의 이러한 인식이 바뀌지 않고 쿠데타를 유도하는 대결정치를 불사할 때 내전은 불가피해진다. 그것은 곧 태국이 ‘전쟁정치’에 휘말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태국에서 일부 지식인들과 시민운동가들 중심으로 조직된 민주주의수호연대회의(AFDD)가 쿠데타가 발발한 2006년의 상황이 재연되지 않도록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전쟁정치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탁신 전 총리가 자진해서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본인은 부정부패 등의 혐의로 2년형을 받은 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가 통치하는 기간 동안 태국남부 무슬림지역에서의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참사, 무슬림들을 변호하던 인권변호사의 실종 등 여러 인권침해에 무심했고, 오히려 무슬림을 비하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정의로운 법 집행을 외면했던 그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요컨대 탁신은 자신 스스로 법의 심판을 받고 성찰적 태도를 취할 때 보다 폭넓은 지지를 받는 대중정치인이 될 것이고, 또한 전쟁정치를 막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결국 반복되고 있는 태국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은 태국민주당에 있지만 그 해결의 열쇠는 탁신이 쥐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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