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7일 가을 단풍이 절정일 때 친구들과 함께 1박2일의 여정으로 사진여행을 떠났다. 늘 생각했던 기획이나 일들은 우연히 일어난다. 그 일이 절실하면 할수록, 계산이 없으면 없을수록 일의 진행이 순탄하게 되는 것은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래서 난 이 친구들과의 행사를 기획할 때 절대 무리하면서 하지 않는다.
그리 계산적이거나 치밀하지 못한 나의 성격 때문에 일하면서 벽에 부딪힐 때가 많이 있다. 친구들에게 미리 약속했던 여행이고 그들이 얼마나 많이 기다려 온 시간인 줄 알기에 약속을 어길 수가 없다. 사진여행을 통해 그들의 마음치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해야 되는 일들이고 내가 사진을 공부한 이유이기도 하다. 작년 이맘때 친구들과의 제주도 사진여행 다녀오면서 다짐했던 것 중 하나는 '친구들에게 사진여행을 통해 자신만의 포토에세이를 만들어 주자'는 거였다. 포토에세이를 만들고 서로 발표하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웃고, 울고 서로를 위로하고 안아주는 따뜻한 시간을 경험했다. 그 감동의 시간은 자연 안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자유가 없는 상태에서 1박2일이나 2박3일의 사진여행의 효과는 늘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이다. 자유로운 공간 안에서 친구들이 스스로 터득하고 느끼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귀한 경험이었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 안에서 계획했던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하다 보니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난 이 시간이 나를 성숙하게 해 줌을 안다. 타인을 통해 커가는 나의 마음 그릇은 매해 이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포토에세이에 대한 미션을 편지형식으로 써서 주었다.
'고백'
내가 살아온 시간들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단풍구경을 온 게 아닙니다. 단풍을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가을이 익어가는 색깔을 통해 내 몸의 변화도 잘 들여다보고, 가을의 공기를 통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글도 써보려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갇혀있던 몸과 마음을 자연 속에서 호흡하면서 깊은 복식호흡도 해보고, 지난 시간 내가 용서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도 용서하는 마음을 갖기도 하고, 내가 괴롭혔던 친구들, 가족들에게 용서도 청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마음은 참 묘하게도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여러분들 마음속에는 지금 어떤 생각들이 오가는지 그런 생각의 끈들을 사진으로 찍어내기를 바랍니다.
포토에세이 주제는 '고백'입니다.
부끄러울 수도 비밀스러울 수도 있는 마음의 상처를 꺼내어 사진을 통하여 자신의 내밀한 부분과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여러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그래서 잊지 못할 추억으로 여러분들의 가슴에 오래오래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시간은 가버리겠지만 순간의 시간 안에 문신처럼 남아있는 추억은 더 따뜻하고, 더 곱고, 더 순수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날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포토에세이를 만들었고 각자 발표의 시간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고 타인을 통해 나를 배워가는 이 시간을 나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사진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지 나는 그들을 통해 사진을 다시 배운다.
※ 지은이의 포토에세이
"...심한 욕과 눈치보게 되는 나. 진짜 또 못이 박히게 되고 결국 상처 치료가 안 돼 결과는 가출과 비행을 하게 되었다. 하나 하나 조금씩 박혀가는 내 가슴 속의 상처, 살고 싶다는 생각조차 안든다. 점점 깊어져 가는 못. 마음이 아프고 슬퍼서 자살시도까지 하려고 했던 나. "결국 내 자신에게 남은 것은 깊게 패인 상처 밖에 없다. 다시 치료하고 싶어도 치료하기에는 너무 깊게 패여서 힘든 상처이다. 딛고 일어나기엔 벅찬 상처. 어린 나이에 힘든 걸 너무 많이 겪어서 어깨가 너무 무거웠다. 결국 또 가출해서 힘든 걸 못참고 자해라는 걸 했다. 피가 나는데도 죽고 싶다는 이유로 계속 그 자리만 긁고 긁은 상처. 결국 남은 건 후회와 상처 밖에 안 남았다. 이제 그 상처가 마음속에 박혀 나오지도 못하고 잊지도 못하는 상태가 돼 버렸다. 상처는 날이가면 갈수록 패여 흉하게 되고 점점 부정적이게 생각하게 됐다. 찢기고 뜯긴 내마음. 이제 괜찮아지겠지 안심하고 있었는데 결국 또 산산조각 나버렸다. 긍정적인 생각도 잠시 다시 부정적이게 바뀌어버린다. 딛고 일어나려고 다시 잊으려고 하는데 안돼서 다시 주저앉아서 좌절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부서지고 패인 마음은 미뤄두고 새마음을 곁에 두었다. 차이? 나도록 벗겼지만 그래도 나는 뿌듯하다. 나 혼자서도 해냈으니까. 힘든 길이었지만 시작점을 다시 잡게 되었다. 거미줄처럼 엉켜져서 풀기 힘들었지만 용케 풀었다. 다친 곳에서 엉켜서 풀기 힘들다고 주저 앉는다고 되는 일 없으니깐. 시든 낙엽처럼 쳐져 있던 내가 부끄러워 다른 곳에 숨어 있었다.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던 내가 드디어. 홀로서기를 했다. 쓸쓸하고 찢기긴 했지만 홀로서기라는 것을 했다. 아직 갈 길이 험하긴 하겠지만. 쓸쓸해서 주저 앉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딛고 일어나서 견뎌 낼것이다. 그래야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기회니까"
덧붙이는 말: 이 여행을 가능하게 해주신 정심여자 산업정보학교와 PARADISE T&L 대표이사 최종문 이사님과 고경임원장님, 그리고 바쁜 시간 쪼개어 아이들에게 사진지도를 같이 도와준 신동필 작가님께 마음깊이 감사함을 전합니다.
사진가 고현주씨는 2008년부터 안양소년원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연재는 소년원 아이들이 찍어낸 사진을 소개하고 그 과정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는 청소년예술지원센터 '꿈꾸는 카메라'를 통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아이들이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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