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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5가지 폐단, 비정규직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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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5가지 폐단, 비정규직을 만들다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사회정의란 무엇인가 ④

자본과 노동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기업들의 국제적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경쟁력의 강화 차원에서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한 노동 시장의 유연화를 요구해 왔고, 그것이 관철된 결과가 바로 비정규직의 증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주로 노조에 의해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나 신규로 노동 시장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이 해당한다. 국가도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를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일정 부분 이를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간단히 말해 기업은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들의 값싼 노동력과 그들에 대한 손쉬운 고용과 해고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발상인데, 바로 이것을 바꾸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핵심 과제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는 기업들이 경기 침체 등으로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먼저 종업원을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 혁신이나 단축 조업 등을 통해 그 난관을 뚫고 나간다. 그래서 경영인들은 대체로 존경을 받는 편이다. 반면, 우리의 기업들은 어려움이 닥치면 우선적으로 구조조정 등을 통해서 종업원을 대량 해고하는 것으로 위기를 극복해 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경영자가 종업원에게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1990년대 초반 한 유통 업체에서의 경험은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당시 24시간 편의점 사업이 막 시작되는 시점이었는데, 회사는 이를 위해 많은 사람을 뽑았다. 그런데 회사가 이 체인화 사업을 직접 경영하는 것이 여의치 않게 되자, 회사가 취한 행동은 그 인원들을 정리 해고하는 것이었다. 그 일을 처리한 부장은 일거에 상무로 승진하여 미국으로 1년간 연수를 떠났다고 들었던 것 같다.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은 이유는 그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고치려고 하지 않고, 매번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에 대해서만 단순히 임시처방으로 때우고 넘어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어느 특정 그룹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용자, 정규직, 정부, 비정규직 등 우리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동일노동, 대우만 달라…비정규직 차별, 사용자와 정규직의 담합

첫째, 현재의 경제 활동에서 충분한 이익을 얻고 있는 사용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 동시에 비정규직의 열악한 상황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리는 정책의 결과가 비정규직 문제이다. 다시 말해 비정규직의 노동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몫을 착취하여 그중 일부를 정규직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지는 자신들의 이익으로 챙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가 가능한 이유는 비정규직은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는 반면, 사용자와 정규직은 점점 더 풍요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현실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그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들이 말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일반적으로 업무 능력이나 직무에 따른 차별 대우는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야 사람들이 능력 향상을 위해 노력을 하고, 조직이나 기업이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서 차별을 하는 것은 누구도 공감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하는 일이 같거나 차이가 없을 때 또는 모순되게도 더 어렵거나 힘든 일을 하면서도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열악한 대우를 받는 것은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따라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대우는 사용자와 정규직 노동자의 명백한 횡포이자 보이지 않는 담합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우리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매우 무책임하게 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 아래 자신의 국민들이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독일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방해하기 위해서 파견 노동자의 임금을 현지 노동자와 동일하게 하도록 하는 법을 만드는 것일까? 기업들이 다수 사회 구성원들의 희생을 담보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을 모른 체하는 일은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는 수치로도 증명이 가능한데, 우리 정부의 노동 시장에 대한 공공지출은 2008년 기준 GDP의 0.49%로 OECD 국가들의 평균인 1.37%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였다. 이는 재정 배분의 우선 순위가 크게 잘못된 것으로 정부가 그 책임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기업에서의 비정규직 존재도 문제이지만, 국가 기관의 공무원, 초중고 학교의 교사, 대학의 교수 등 사회적 공공성을 띠는 곳에서 비정규직을 만들어 차별하는 것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차별에서 오는 피해는 그 서비스를 받는 모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처럼 직접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에서, 동일한 일을 하는 데 서로 차별을 둔다는 것은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일부는 정규직으로, 그 상담원들은 비정규직으로 구분하여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똑같은 학생들에게 똑같이 수업하는데 기간제 교사와 일반 교사를 구분하는 것, 마찬가지로 대학에서 같은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는데 교수와 강사를 차별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지난달 1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스포츠 강사 노동자대회'를 열고 초등스포츠 강사 대량 해고 중단과 처우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폭주하는 양극화…비정규직 노동자의 정치세력 필요

셋째,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 의식 결여도 문제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화하면서 기존의 노사 갈등은 점차 노노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러한 불공정한 상황을 전체 노동자의 관점에서 개선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확대에만 우선적으로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의 직장’이니 ‘귀족 노조’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그러한 시각을 바꾸지 않고 동일한 일을 하는데 임금을 차별하는 한, 또 노사 협상이나 노사정 협상의 자리에 비정규직이 참여하는 것을 계속해서 거부하는 한, 노노 갈등을 포함한 사회적 갈등은 앞으로 점점 더 커질 것이 확실하다.

넷째, 비정규직에 속하는 사람들의 연대 정신 부족도 이 문제를 지속시키는 한 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많은 비정규직이 서로 협력과 연대를 통해 차별을 시정하고 자신들의 지위를 개선하려는, 즉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신만 정규직으로 넘어가면 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들 각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를 조직적으로 해결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이 훨씬 더 크고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조금만 참으면 정규직으로 바꿔주겠다"는 사용자 측의 달콤한 유혹이나 "당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 비정규직인 것이다" 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능력 있는 사람은 성공한다"는, 언론들의 잘못된 이데올로기 유포도 한몫한다. 이것이 비정규직의 단결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3번의 끼니를 때운다. 부자라고 해서 더 많은 끼니를 먹는 것은 아니다. 한 끼를 아무리 잘 먹더라도 다음 끼니를 거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점에서는 누구나 동일하다. 다만 빈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그 한 끼 식사의 품질이 다르다는 정도이다. 한편에서는 한 끼에 3000원짜리 밥을 먹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3만 원짜리 밥을 먹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누구나 끼니를 거르지는 않도록 국가나 사회가 보장할 수 있어야 흔히 말하는 ‘공동체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이것조차도 부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난한 사람들 또는 사회적 약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3만 원짜리 식사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3000원짜리 식사지만 좀 더 안정적으로 하고 싶다는 것인데, 3만 원짜리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안정적인 식사를 위하여 3000원의 식사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비정규직 문제라고 생각한다. 과연 이러한 사회가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을까?

우리사회에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이제 비정규직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이 문제들을 그대로 방치하여 양극화가 점점 더 심화될 경우, 우리 모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다가서고 있지만, 그것들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사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현 체제에서 혜택을 보고 있는 기득권층의 적극적인 저항에서부터 소극적인 외면이나 무관심 등이 그 주요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체제 내 경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막대한 보상이 주어지지만, 그러한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하려는 사람에게는 자원이나 보상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 점도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큰 문제이다. 여기에는 주로 기득권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다수 언론의 책임도 크다.

또 다른 이유는 사회적 의견을 취합하는 정당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 세력이 부재한 상황이다. 따라서 그러한 정치 세력의 등장을 막고 있는 기존의 선거 제도를 시급히 바꿔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어떻게 해서든지 그 힘을 조직화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을 반드시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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