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볼을 꼬집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안타깝게도, 현실이다. 2014년 오늘,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벌어진 일이다. 그것도 대학에서. 두산이 인수한 중앙대학교(이사장 박용성)가 그 주인공이다.
중앙대에선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있다. 일자리 안정과 노동 조건 개선 등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 중앙대는 '대자보 100만 원, 구호 100만 원'으로 답했다. 청소 노동자들이 학내에서 농성, 시위, 대자보와 현수막 부착, 유인물 배포 등의 행위를 할 때마다 한 사람당 100만 원씩 학교에 내게 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구호, 연설, 노래를 '큰소리로' 할 경우, 대자보 등은 '비방 목적'일 경우 100만 원이라는 식이다.
'대자보 100만 원, 구호 100만 원'은 한 달에 100만 원 남짓 받는다는 청소 노동자들의 심장을 짓누르는 부담이다. 생활 자체를 파탄 낼 수 있는 무시무시한 위협일 수밖에 없다. 중앙대에 익숙한 기업 논리를 숭상하는 이들이라면, 월 매출액이 100억 원 남짓인 A라는 기업이 특정한 행위 하나만으로 100억 원을 내고 또 내야 하는 처지에 놓이면 어떠할지를 떠올려도 좋겠다. '대자보 100만 원, 구호 100만 원'이 지나친 처사가 아니라고 믿는다면, 기업들이 매출액의 거의 전부를 세금으로 내도록 하는 데 앞장서리라 믿는다.
문제는 부담이 과도하다는 것만이 아니다. 하나씩 따져보자. 잘못을 한 구성원이 그에 상응하는 처분을 받아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그래야 사회가 별 탈 없이 유지된다. 이 대목에서 묻는다. 중앙대 청소 노동자들이 생활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는 처분을 받을 정도의 죽을죄를 지었나? 아니, 그들의 행위가 죄이긴 한가? 헌법에 보장된 노동 기본권을 누리며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건 죄가 아니다. 집회·결사의 자유를 비롯한 표현의 자유 역시 헌법에 담긴 기본 가치다.
기본권은 무소불위가 아니라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국가 안보, 질서 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 제한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일 터. 다시 묻는다. 청소 노동자들이 국가 안보 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를 했나? 예컨대 학교 건물을 파괴하거나, 아니 할 말로 총장을 비롯한 대학 관계자들에게 테러라도 가했나? 그런 게 전혀 아님을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상황이다.
계약 관계상 중앙대와 청소 노동자는 직접 관련성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중앙대에서 구호 같은 걸 외치지 말고 당신들을 고용한 용역 업체와 해결하라는 주장이다. 매끈해 보이는 이런 주장은 간접 고용의 폐해에 눈감을 때에만 성립하는 논리다. 지난 수년 동안 대학들의 꼼수를 비판하며 '진짜 사장은 총장'이라고 외친 노동자들의 절규 같은 건 무시해버리는 강심장을 지녔을 때에만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이다. 제3자를 자처하면서도, 용역 계약서를 통해 청소 노동자의 잡담, 콧노래까지 금지하고 노동 조건을 세세히 규정한 중앙대 현실을 모른 척하지 않고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부 |
돈을 앞세운 힘의 논리, 질식 위기에 놓인 민주공화국
'대자보 100만 원, 구호 100만 원' 사태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 돈을 앞세운 힘의 논리에 질식할 위기에 놓인 한국 사회의 오늘을 상징한다. 시쳇말로 '돈 주먹'(money fist)이 국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손발을 묶는 일이 노골적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이뤄지는 타락한 사회가 됐다는 말이다.
물론 '돈 주먹'의 횡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노동자들의 숨통을 죈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및 가압류(손배가압류)도 '돈 주먹'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손배가압류는 노동자들의 기본권 행사를 틀어막기 위한 신종 노동 탄압 무기로 악명을 떨쳤다. 자신과 동료들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운 '죄'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손배가압류를 당해 목숨을 끊어야 하는 비극도 발생했다.
2003년 1월 세상을 떠난 두산중공업 노동자 고 배달호 씨가 그런 경우였다. 손배가압류와 무더기 징계 등 강공을 펼친 두산중공업의 당시 회장이 바로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이다. 배 씨가 죽음으로 항거해야 했던 '돈 주먹'은 11년의 세월을 넘어 '대자보 100만 원, 구호 100만 원'으로 그렇게 이어져 있다. '헌법 위 재벌'이라는 말이 많은 이들의 울분 어린 공감을 얻는 이유다.
'대자보 100만 원, 구호 100만 원'을 박 이사장이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중앙대가 법원에 낸 '퇴거 및 업무 방해 금지 신청서'의 채권자는 박 이사장이다. 이용구 중앙대 총장이 "(변화는) 내가 책임지고 하는 거다"라면서도 "이사장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니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지만(<중앙일보>, 2013년 12월 23일), 2008년 두산 인수 후 중앙대의 변화를 주도한 이가 박 이사장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제대로 된 대학 교육을 나이 들어 마지막 일로 생각하고 시작"했다는 박 이사장은 "중앙대 이름을 빼고 다 바꾸겠다"며 변화를 밀어붙였다. 기업 논리에 바탕을 둔 구조조정이었다. "대학이 전인 교육의 장, 학문의 전당이라는 말은 헛소리"이며 "이제는 직업 교육소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2004년 서울대 강연)고 믿는 박 이사장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그 결과 일부 신문에서 실시하는 대학 평가에서 중앙대의 순위는 높아졌지만, 학내 민주주의는 뒷걸음질 쳤다. 구조조정에 반대한 학생들에게 퇴학 처분을 내린 것은 물론 명예훼손 혐의 고소, 손해배상 소송 제기를 검토한 것 등에서도 이는 단적으로 드러난다. 두산중공업 노동자들에 대한 강공을 빼닮은 공세를 중앙대 구성원들에게도 취했다는 비판을 자초한 일이었다. 중앙대가 아니라 '두산대'라는 조롱 섞인 이야기가 나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 ⓒ연합뉴스 |
'두산대'가 상징하는 대학의 기업화, 걱정스럽다
두산 재벌 인수 후 중앙대의 변화는 한국 대학 및 사회 전반의 기업화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대자보 100만 원, 구호 100만 원'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방호원이나 청소원은 대표적인 공급 과잉의 저임금 직종", "이러한 직종은 완전 경쟁을 통한 고용, 즉 용역 업체에 대한 상호 경쟁 입찰을 통해서 최소의 비용을 확보할 수 있다"며 직접 고용 목소리를 일축하는 중앙대 총장의 태도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중앙대 총장은 직접 고용을 했다가 "협의가 결렬되었을 때는 항상 이번 사태와 같은 농성, 파업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지난해 말, 국회 청소 노동자들이 "무기 계약직 되면 노동 3권이 보장돼요. 툭하면 파업 들어갈 텐데 어떻게 관리하겠어요"라고 해 사회적 지탄을 자초했던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의 망발을 연상시키는 총장님 말씀이다.
짚어야 할 게 더 있다. 박정희 정권 때 이뤄진 산업화를 찬양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한국에서, 정작 현장에서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산업화 주역'인 노동자들의 일부는 여전히 최소한의 노동 기본권을 요구해야 하는 처지라는 것이다. 그건 모순이다. 산업화를 거치며 치솟은 재벌들의 빌딩에 경탄하면서, 그 빌딩의 토대를 이룬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사람이 미래다." 두산이 몇 년째 강조하는 메시지다. 그러나 '대자보 100만 원, 구호 100만 원'으로 상징되는 '두산대'의 오늘은 많은 이들에게 두산의 메시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면서도 '파업 중이라 깨끗하게 못해줘서 미안해요'라고 하는 청소 노동자들, 그런 청소 노동자들에게 '불편해도 괜찮아요'라고 화답한 학생들. "사람이 미래다"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박 이사장 같은 이들에겐 이번 사태와 대학의 기업화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른바 '반기업 정서'에서 비롯된 것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박 이사장은 얼마 전(1월 2일자)에도 <한국경제> 인터뷰를 통해 '반기업 정서'를 우려했다.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답게, 'MB 사돈' 효성그룹 회장의 조세 포탈 및 배임·횡령 혐의에 대해 "그런 부분은 좀 이해해줬으면 한다"는 이야기도 거침없이 했다.
오해 없길 바란다. 재벌들이 '반기업 정서'라고 부르는 걸 키우는 건 다름 아닌 재벌 자신이다. '돈 주먹'뿐만 아니라, 재벌 총수 일가가 비리를 저지르고도 대부분 솜방망이 처분을 받아온 역사가 이른바 '반기업 정서'를 키운 것이다. 수백억 원대 횡령, 수천억 원대 분식 회계에 관여하고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법정에 섰음에도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던 박 이사장 사례도 그중 하나로 꼽힌다. '반기업 정서'를 운운하기 전에 이런 대목을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반기업 정서'가 아니라 '법 앞의 평등을 무너뜨린 이들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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