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경우 정치 공학에 바탕을 둔 그런 시나리오를 하나 더 보탤 생각은 없다.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짚어야 할 문제를 명확히 하고 그걸 살피고자 한다. 문 의원이 꺼낸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그것이다. 문 의원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 사회는 충분히 민주화되지 않았고 더 교묘해진 비민주 세력과 맞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관련 기사 : 대권 재도전 문재인 "'공안' 박근혜, 무서운 대통령")
문 의원 측이 최근 출간한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와 관련해 공개한 내용의 핵심축이 "불법 관권 선거", 박근혜 정부의 "공안 정치", "'종북' 공세", "NLL 공세" 등인 것도 '민주 대 반민주' 구도와 닿아 있다. 문 의원의 대선 이후 행보에서도 이 점을 느낄 수 있다. 대표적으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 공개를 주장하는 무리수를 둔 것도 '반민주적'인 박근혜 정부의 공세에 맞서 '민주적'이었다고 자임하는 노무현 정부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생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특정인만의 생각이라고 보는 건 곤란하다. '친노'(친노무현) 계열을 포함한 적잖은 민주당 정치인들은 물론 야권 지지자의 상당수도 공감하는 내용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군사 독재 시대의 산물이다. 박정희 유신 독재를 이은 전두환 정권에 대한 항쟁의 물결이 일었던 1987년을 상징한다. 세력 간 차이를 접고 단결해 반민주 정권을 끝장내야 한다는 의미였다. 생각이 다른 이들도 있었지만 1987년 당시엔 다수가 공감하는 구도였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1987년 이후에도 살아남았다. 가장 큰 계기는 그해 대선에서 '양김'(김영삼과 김대중) 분열로 야권이 정권 교체에 실패한 것이다. 그 후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민주대연합론 등의 이름으로 야권의 김대중 후보 당선을 위해 활용됐다.
이 과정에서 진보 정당 건설 등 다른 민주주의를 꿈꾸는 움직임은 억제됐다. 물론 '민주'의 의미를 밀어붙여 사회·경제 영역까지 민주주의를 확장해야 한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었다. 그렇지만 초점은 좁은 의미의 정치 영역을 중심으로 한 절차적 민주주의 구현이었고, 그걸 넘어서는 문제는 '민주 정부 수립 후'의 과제로 간주됐다.
1997년 김대중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 후 한동안 자취를 감춘 듯했던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불러낸 건 이명박 정부였다. MB 정부가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퇴행시키면서 이 구도는 다시 살아났다. 박근혜 정부 들어 다시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이야기되는 건 MB 집권기의 재판(再版)인 셈이다.
30년 가까이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거론되지만, 그 위력은 예전만 못하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지난해 대선이다. 넓은 의미의 '민주' 세력이 힘을 모으고도, 아버지의 독재를 반성하지 않는 '독재자의 딸'의 청와대 입성을 막지 못했다. 그 원인을 '민주 대 반민주'에 모두 돌릴 수는 없지만, 그 구도와 무관하다고 볼 수도 없다.
▲ 문재인 의원(지난해 대선 당시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힘이 예전만 못한 이유
이렇게 된 배경엔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민주'의 과제가 국민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정도가 1980년대와는 분명히 달라졌다. 1987년 이후, 더디긴 하지만 '민주'의 과제에서 한 걸음씩 내디딘 결과다.
물론 '민주'의 과제가 사라진 건 아니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국가 기관들의 대선 및 정치 개입 문제에서도 이 점은 잘 드러난다. 박근혜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공안 카드로 '민주'의 과제를 되살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민주'의 과제는 예전과 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이는 '민주'가 좁은 의미의 정치 영역을 넘어 사회·경제 영역으로 전진해야 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1987년 이후 사회 전반의 변화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문제가 있다. '민주 정부'를 자임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기억이다. 남북 관계 등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지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확산한 신자유주의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뒤흔든 시기였다. 김영삼 정부도 반대에 부딪혀 시행하지 못한 정리해고를 법제화하고 파견제를 도입한 것이 김대중 정부다. 그 기조를 이어받은 노무현 정부 때에는 비정규직이 양산됐다. 저질 일자리 비중이 높아지고 삶이 불안해진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집값도 폭등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열심히 일하면 큰돈은 못 벌어도 단란한 가정은 이룰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꿈도 많은 이들에겐 먼 이야기가 됐다. 이는 역으로 박정희 개발 독재의 신화가 부활하는 토양으로 작용했다.
불안정한 삶의 증가, 이건 중병이다. 한국은 여전히 이 중병을 앓고 있다. 언제 나을지 기약도 없는 상태다. 물론 그 책임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만 묻는 건 가혹한 일이다. 지금의 새누리당 세력도 여기서 조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과거사 정리 작업, 국가보안법·사학법 등의 개혁엔 쌍심지를 켜면서도 국민의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민주 정부'의 조치엔 앞장서서 협조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다. 재벌 등에 혜택을 몰아준 것이 MB 정부 이래 현 집권 세력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이것이 '다 새누리당 탓'이라는 주장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계승을 표방하는 이들은 이런 지적에 억울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전 집권 세력이 초래한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불리한 조건에서 출발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에 책임을 떠넘기기엔 '민주 정부' 10년은 긴 세월이다.
구제금융 위기를 극복하고 외환 보유고를 늘렸다고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회복 효과는 재벌을 중심으로 한 상층에 집중됐다. MB 정부 때 노골적으로 심해지긴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자유롭지 못하다. 양극화로 상징되는 격차 문제가 심각해진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상당수의 평범한 이들에게 경제 회복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인 이런 상황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더해, '민주 정부'가 박정희식 성장 체제를 넘어설 대안을 못 만들어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를 전면화했지만 그로 인한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복지를 전보다 늘렸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중병을 안기고 약간의 진통제를 주는 격이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민주 정부'에 대한 싸늘한 반응은 2007년 대선에서 530만 표라는 역대 최대 표 차이로 나타났다. 야권은 2012년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와 복지 사안에서도 박근혜 후보에게 밀렸다. 그만큼 신뢰를 잃었다는 뜻이다. 지난해 대선의 투표 행태를 소득별로 분석한 결과,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비율이 저소득층에서 가장 높았다(월 소득 199만 원 이하 계층의 65.7퍼센트)는 한 연구 결과(서울대 강원택 교수팀)도 이를 잘 보여준다. 시쳇말로 가난한 사람들이 못 배워서, '민주'의 중요성을 몰라서 그런 것일 뿐이라고 강변할 생각이 아니라면,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민주 정부' 10년에 대한 성찰 없는 '민주 회복' 주장의 함정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성찰을 피할 수 없다. '민주 정부'의 성과를 강조하는 것만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그랬나? 지난 대선까지 '이명박 나빠요', '박근혜도 한통속이에요', '그러니 우리 민주 세력에게 표를 주세요'를 강조하는 것 이상의 모습을 보였는지 의문이다. 대선 이후에도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노무현 계승을 자임하는 이들이 '민주'를 거론하는 것이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을까?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김대중 정부 때 정리해고에 맞선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은 폭력 진압을 당했다. 사회 전체로 보면 한 줌도 안 될 한 사업장의 문제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노동 전반에 걸친 문제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고 거리를 헤매야 했던 수많은 이들, 비정규직으로서 차별을 매일 겪어야 하는 이들에게 이른바 '민주 정부' 후예들의 반성 없는 '민주 회복' 목소리는 어떻게 들릴까?
이명박 정부 때 용산 참사로 6명(철거민 5명, 경찰 1명)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그에 못지않게 충격적이지만 많이 잊힌 사안 중 하나가 노무현 정부 때 쌀 개방 반대 시위 도중 두 농민(전용철·홍덕표)이 공권력에 의해 크게 다친 후 세상을 떠난 일이다. 그 후에도 농민들은 자본을 위한 시장 개방 이전에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거리에 서야 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이들에게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는 우리가 낫다. 민주적인 우리는 반민주적인 저들과 다르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까? (관련 기사 : '제2 새마을운동' 찬가 속 '이등 국민'들의 절규)
한미FTA 논란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가 진행한 한미FTA가 더 노골적으로 퍼준 건 맞다. MB 정부 당시 야권은 이 점을 공격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역시 '4대 선결 조건' 문제와 ISD(투자자-국가 소송제) 독소 조항 등으로 비판을 자초했던 것 등에 대해 성찰하는 모습을 야권에서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MB 때리기'에 집중하며 노무현 정부 당시 상황을 미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스무 명 이상이 세상을 등져야 했고 많은 이들이 여전히 그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쌍용자동차 문제가 시작된 것도 노무현 정권 때였다. 그러나 성찰은 없었다. 지난해 대선 직전 발표된 '문재인 인권 선언'에서도 "쌍용자동차 사태"는 용산 참사와 더불어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인권 유린 사태로만 거론됐다. 이런 상황에서, 쌍용자동차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민주 정부' 후예들의 목소리가 진정성 있게 들릴까?
ⓒ프레시안(손문상) |
'닥치고 정권 교체' 넘어서려면 김대중·노무현 10년을 정직하게 대면해야
성찰 없이 '민주 회복'만을 이야기하는 건 '민주 정부' 10년간 적잖은 고통을 감당해야 했던 이들에겐 '도로 김대중·노무현' 주장으로 다가갈 가능성이 높다. '친노'의 대표 주자인 문 의원이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다시 꺼낸 것이 걱정스러운 이유다. '민주 정부' 10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사회·경제 영역으로 '민주'를 확장할 구체적인 계획을 동반한 것인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두 가지를 충족하지 않는다면,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닥치고 반(反)박근혜-새누리당', '닥치고 정권 교체'의 함정으로 걸어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 진보 정당 운동 등을 억제하는 힘으로 작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성찰을 기반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을 억누르는 요소가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건 새누리당으로 표상되는 한국 지배 세력 주류의 전략에 휘말리는 것이기도 하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유훈에 기대어 특정 정치 세력의 존속만을 도모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도 어렵다. 반박근혜 정서에 바탕을 둔 반사 이익으로 국회 의석 수십 석 수준의 소수 야당은 할 수 있겠지만, 집권 정당으로 나아가기는 쉽지 않다. (관련 기사 : 문재인-안철수, '대선 후보'가 직업인가?) 집권기에 대한 찬양가는 열광적인 기존 지지자들의 결속력을 높일 수는 있을지언정, '민주 정부' 10년에 실망한 다른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는 어렵다.
'이명박근혜' 정권만을 표적으로 삼아 '민주 대 반민주'를 외치기에 앞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것이 제대로 된 미래를 향한 출발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과거사 문제를 추궁하는 것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공과에 대해 국민들에게 솔직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민주 정부' 계승을 표방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래야만 미래를 향한 동맹의 기반을 넓히고 굳건히 할 수 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를 확장하고 전진시키는 것, 지금 필요한 것은 그것이다.
노파심에서 덧붙이면 이건 '친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민주당 전체, 아울러 안철수 의원 등을 포함한 야권 전반도 마찬가지다. 문 의원이건 안 의원이건 다른 누구이건 '닥치고 정권 교체' 이상의 것을 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말이다. 따라서 안 의원 쪽에 힘을 실어준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오해는 사양한다. 그럴 생각, 의지, 이유 모두 손톱만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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