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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안철수, '대선후보'가 직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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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재인-안철수, '대선후보'가 직업인가?

[편집국에서] 야권 재편, 1970년 김대중이 답이다

미우나 고우나 정치는 사람이 한다. 실패한 대선후보들의 기지개를 불편하게 보는 시선들이 있지만, 유구무언으로 칩거하며 세월만 보내기엔 작동을 멈춘 정치가 위기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야당이 강해져야 한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적어도 성급하다고 비판할 건 아니다. 집권세력의 시대역행을 한 목소리로 힐난하는 야권이 앙시앙 레짐(구체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도 정치 정상화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야권은 행동의 과격성과 달리 선명하지 않을뿐더러, 그렇다고 대안 제시에 유능하지도 않다. 호남이라는 지역적 기반과 20~40대 중심의 세대 전략에 안주한 결과다. 이들은 소수다. 지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야권 재편은, 이기는 싸움을 위한 구조 개편 작업이다. 어차피 불가피한 야권 재편이라면, 새 체제를 위한 리더십의 각축이 필연이다. 무기력한 야권의 재활에 문재인, 안철수 의원의 역할이 주목되는 건 그래서다.

문재인 의원의 자산은 지난해 대선에서 얻은 48%의 지지다. 아직까지 야권 지지자들 가운데에서 인기가 좋고 기대치도 높다. 하지만 대선 패배 후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모습이 그런 기대에 부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불쑥불쑥 내놓은 개인 성명이 일을 꼬이게 만든 적도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을 공개하자고 한 건 명백한 패착이었다. 전략적 오판을 넘어, 정치 리더로서 국가적 판단을 뒤로하고 '노무현 정부의 명예회복'에 자신의 정치를 결박시킨 한계를 드러냈다.

그가 책을 냈다. 노무현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진화된 문재인의 정치지향이 제시됐는지는 책이 시중에 나온 뒤에나 판단할 수 있겠다. 다만 최근 기자들과 잇따라 가진 자리에서 문 의원이 한 말만 놓고 보건대, 무언가 신선한 알맹이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줄곧 "야권 분열"을 걱정했다. 민주당 내부의 "단합"을 이야기했고, 안철수 의원에 대해선 "따로 가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 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현안에 집중된 탓일 수도 있겠지만, 박근혜 정부에 대한 일반적 비판을 되풀이했다. 대체로 '반(反) 박근혜 연대'에 대한 강박이 작동하는 듯 보였다.

경쟁보다 단결론이 앞설 때 내부 혁신은 희석된다. '문재인 험담'에 불과한 조경태 의원의 기자회견이 볼썽사납지만, 민주당의 자체 정화가 가능할 거란 기대가 사라진 지도 오래다. (현 정부 덕에) 민주-반민주 구도의 유효성이 부분적으로 부활했다 치더라도 민주당의 활로를 박근혜 정부의 반대급부에서 찾으면 그때그때의 국면 대응에 매몰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정작 문 의원에게 궁금한 건, 당 혁신의 과제는 무엇이고 그걸 위해 자신은 무엇을 할 것인지, 몰락한 진보와 외면하는 중도를 끌어들일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등이다. 이런 것들에 답을 내놓지 않으면 안철수 견제를 위한 친노 수장의 제스쳐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안철수 의원 역시 내년 6월 지방선거 일정으로부터 역산한 시간표에 떠밀려 독자세력화 계획을 발표한 듯한 느낌이 짙다. 창당만 하면 곧바로 제1야당에 올라설 것 같은 여론의 지지는 안 의원의 여전한 기반이다. 하지만 이는 '안개효과'다. 사람도 비전도 분명한 게 하나 없다. 정확하게는 비전이 불투명하니 사람이 안 꼬이는 거다. 정의, 복지, 평화를 신당의 방향으로 제시하고 '삶의 정치'를 내세웠으나, 많은 이들이 이제 안 의원에게 기대하는 건 추상이 아니라 구상이다. 최장집 교수와 결별한 뒤로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 노선은 뒷전으로 물러난 듯 보인다.

안 의원은 "낡은 틀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담아낼 수 없다"며 여야 모두를 비판하면서도 "산업화 세력도 민주화 세력도 존중의 대상"이라고 감싸 안았다. 대결의 정치를 끝내자는 취지이겠으나 양쪽으로부터 이삭줍기를 해 독자적인 정치 공간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건 착각에 가깝다. 곧 있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실제로는 민주당과의 경쟁에 주안점을 두면서 이렇게 말하는 건 정직하지도 않다. 안 의원의 측근인 송호창 의원이 지난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을 향해 "박 시장이 저희와 함께 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박 시장이 (민주당) 당적을 (버리고) 나와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한 건 순진함의 발로인가. 민주당과의 작은 싸움은 그 승패에 따라 야권의 역관계가 정립되는 계기는 될지언정 보수 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뒤흔들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진산 체제'는 1970년대 초 박정희 독재 치하에서 안이하기만 했던 야당의 무기력을 이르는 말로 자주 회자된다. '큰 뱀(大蛇)'으로 불렸을 정도로 노회한 당수 유진산이 이끄는 신민당은 변화의 요구를 거부하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젖비린내 난다'고 조롱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새로운 변화에 대한 대중들의 갈망은 유진산 총재가 그토록 조롱한 "구상유취의 정치적 미성년자들"에 의해 구현됐다. 당시 40대에 불과한 김영삼, 김대중이 낡은 체제를 혁파한 변화의 중심이었다.

그 후로도 한국정치 30년을 지배한 '양김'에 지금의 문재인, 안철수 의원을 비유하는 건 무리다. 다만, 유진산의 낙점을 받은 김영삼 대세론을 뚫고 김대중의 드라마 같은 역전승으로 귀결된 71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의 진짜 교훈은 담대한 변화에 대한 비전과 실천력을 보인 사람만이 낡은 체제를 물리고 정치의 새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당시 김영삼이 수락연설문을 손질하고 있을 때, 대의원들 숙소를 일일이 방문하며 지지를 호소한 김대중의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게 대선후보가 된 뒤, 김대중은 1971년 대선에선 향토예비군 폐지, 남북한 화해 교류와 평화통일,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대중경제 노선의 추진 등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아 큰 호응을 얻었다.

'대선 후보'가 직업이 아니라면, 4년 뒤에나 있을 대선에 출마하네 마네 하는 구름 같은 얘기보다 야권의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문재인, 안철수 의원이 '이기는 싸움'을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자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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