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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에게 인기 만점, '동물' 썰 풀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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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에게 인기 만점, '동물' 썰 풀어보실래요

[프레시안 books] 권혁웅의 <꼬리치는 당신>

따뜻한 겨울을 나고 있다. 아직까지는. 그러던 중 눈이 내리고 날이 추워질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이때다! 철원 평야로 1박2일의 짧은 탐조여행을 떠났다. 두루미 같은 겨울철새를 보려면 눈이 쌓이고 추워야 한다. 그러면 들판에서 먹이를 찾기 어려워진 두루미들이 강변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철원의 두루미보호협회 회원들이 먹이를 주는 곳 앞에는 위장막 사이로 컨테이너가 있다. 거기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두루미들이 날아온다.

그런데 웬걸! 눈 내리고 추워지기는커녕 따뜻한 날이 이어진다. 한참을 앉아 있어봐야 저 멀리 있는 두루미 몇 마리 본 게 다다. 그러다가 우연히 찾아간 민박집이 철원 두루미보호협회의 초대 회장 댁이었다. 거기서 전국에서 잘못된 일기예보를 믿고 찾아온 유명 사진작가들을 만났고 이들에게서 두루미와 쇠기러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추어로 시작해서 한 분야만 파는 전문 사진작가의 반열에 들어간 사람들의 공통점은 직장에서 은퇴한 나이에 이른 할아버지라는 것.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일기예보만 보고 전국을 누빌 여유가 없지 않겠는가!

당연히 그들의 얘기가 재밌다. 50줄에 갓 들어선 나도 마치 꼬맹이 시절 외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얘기를 듣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정작 재밌는 자연 이야기는 책이 아니라 이런 말로 전해진 것들이다. 같이 간 '조류' 담당 학예사의 이야기보다 더 재밌다. 몇 부분은 좀 의심스러운 대목도 있었으나 나중에 확인해 보니 과학적으로도 거의 옳았다. 이렇게 자연 이야기를 토막토막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할머니 이야기처럼 다른 곳으로도 좀 빠지면서 말이다. 정작 교훈은 샛길에서 얻는 것 아니던가.

▲ <동물들도 이빨을 닦나요?>(해닝 비스너·발리 뮐러 글, 귄터 마타이 그림, 박정희 옮김, 소년한길 펴냄). ⓒ소년한길
책장을 살펴보니 이런 유이 책이 몇 권 있다. 최근에 읽은 책으로는 <동물들도 이빨을 닦나요? - 동물들의 궁금한 세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해닝 비스너·발리 뮐러 글, 귄터 마타이 그림, 박정희 옮김, 소년한길 펴냄, 2010),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 - 살아남은 동물들의 비밀>(최형선 지음, 부키 펴냄, 2011)이 있다. 모두 재밌다.

<동물들도 이빨을 닦나요?>에는 52개의 질문이 나온다. 일주일에 하나씩 아이들에게 읽어 주라는 건가? 간단한 질문에 대해 한 쪽의 텍스트와 한 쪽의 그림으로 답해주는 식이다. 외국 책이다보니 주로 질문도 외국 사람이 할 만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황새는 왜 아기들을 데려오나요?'라고 묻는 식이다.

여기에 과학자들에게 대답을 하라고 한다면, "황새 부모들은 둥지 안의 자기 새끼 돌보느라 사람의 아기까지 신경써주지는 못해요."라고 짧게 답한 다음에 이런 식으로 장황하게 이야기 할 것이다.

"황새는 천연기념물 199호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자연에서는 황새를 볼 수 없다. 마지막 수컷은 1971년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었고 평생을 함께 한 마지막 암컷도 1994년 창경원동물원에서 숨을 거뒀다. 마지막 수컷은 현재 경희대학교 자연사박물관에 표본으로 보관되어 있다. 1996년에 황새복원센터가 설립되고 독일과 러시아에서 두 마리의 황새를 도입해서 번식을 시작했다. 현재는 황새 개체수가 거의 100마리에 이른다." 재미없다.

그렇다면 유럽 할머니라면 어떻게 대답을 할까? <동물들도 이빨을 닦나요?>는 우선 까마귀는 안 된다고 말한다. (서양에서 까마귀는 '좋은' 새다.) 계속 깍깍거리느라 날아오는 도중에 아기를 떨어뜨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덩치가 커야 한다. 그래서 떠오른 새가 황새다. (체중 4킬로그램, 날개폭 2미터에) 힘이 센 황새만이 이 임무를 해낼 수 있을 거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얼마나 큰 새인지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어린 아이들에게 적당한 책이다.

▲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최형선 지음, 부키 펴냄). ⓒ부키
조금 전문적인 이야기가 들어간 동물이야기 책으로는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를 최고라고 꼽을 수 있다. 생태학 박사이면서 '알트루사 재미있는 학교' 교장 선생님으로도 여러 해 동안 활동했던 최형선 박사는 치타, 줄기러기, 낙타, 일본원숭이, 박쥐, 캥거루, 코끼리, 고래에 대한 서른여섯 가지 이야기를 한다. 각 챕터마다 한 쪽짜리 간단한 과학적인 설명이 있다. 안 읽어도 된다. 이 책의 목적이 그게 아니니까. 이 한쪽을 읽느라고 시간을 보내기에는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너무 재밌다.

'줄기러기는 에베레스트를 넘는다'라는 장은 인도의 저지대에서 겨울을 보낸 뒤 에베레스트 산을 넘어 티베트 고원에 있는 번식지로 이동하는 줄기러기 이야기다. 여객기 비행고도가 9000미터 정도인데 줄기러기도 이 높이로 비행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최형선 박사는 지각판 변화로 인한 산맥의 상승 현상이 서서히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금도 히말라야는 인도판이 유라시아판을 밀고 조금씩 북상하면서 해마다 1센티미터씩 높아지고 있다. 줄기러기가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와 티베트로 오가던 습성은 차츰 높아진 고도에 적응하게 되었는데, 새로운 세대가 앞 세대로부터 이주 경로를 배우고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는 동안 이 습성이 줄기차게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은가? 우리는 뒷산에만 올라가도 숨이 헉헉 차는데 줄기러기는 산소 농도가 해수면의 4분이 1밖에 안 되는 에베레스트 산을 우아하게 넘어갈 수 있는가 말이다. 궁금하시면 <진화의 키, 산소 농도>(피터 워드 지음, 김미선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을 보시라.)

줄기러기를 이렇게 이야기한 책도 있다.

높이, 더 높이

줄기러기는 인도와 티베트의 서식지를 오간다. 알다시피 그 사이엔 히말라야산맥이 있지. 8000미터 이상인 산들을 넘어가는 일은 새들에게도 엄청난 고난이다. 시속 145킬로미터의 바람, 평소의 4분의 1에 불과한 산소, 독수리들의 공격……. 곤고한 삶이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겠다. 이보다 더한 극한이 없으니.

히말라야 산들은 인도 지각이 아시아 지각 밑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지금도 계속 솟아오르고 있다. 1년에 10센티미터씩. 그러니까 새들은 매년 높이뛰기 신기록에 도전하는 중이지. 엄마, 나 작년보다 10센티미터 더 높이 날았어.

▲ <꼬리치는 당신>(권혁웅 지음, 김수옥·김다정 그림, 마음산책 펴냄). ⓒ마음산책
<꼬리치는 당신 - 시인의 동물 감성 사전>(권혁웅 지음, 김수옥·김다정 그림, 마음산책 펴냄)의 한 꼭지다. 제목을 보지 않고도 저자가 시인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책은 특이하다. "<꼬리치는 당신>은 OOOO한 책이야"라고 간단히 이야기 할 수 없다. 시집이기도 하고 에세이집이기도 하며 사전이기도 하고 과학책이기도 한 것 같은데, 딱히 시집도 아니며, 에세이집도 아니고 사전도 아니며 그렇다고 과학책도 아니다. 트윗 모음집인 것은 분명하다. 덕분에 한 꼭지가 대개 원고지 1매 정도다. 위에 인용한 줄기러기 항목은 꽤 긴 꼭지에 속한다.

이 책에는 미덕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는 참고문헌이다. 어디 굴러다니는 이야기에 저자의 입담을 입힌 책이 아니란 거다. 권혁웅 시인은 신뢰할 수 있는 문헌을 참고했다. 바짝 말라있는 정보를 가지고 이렇게 맛깔 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시인에게 넘치는 문학적인 감수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음, 과학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렇게 못쓴다. 몇 분 빼고는.)

결정적인 미덕은 항목 수다. 자그마치 564개에 이른다. 김소연 시인은 책 뒤표지에 실린 추천사에서 '집대성'이란 표현을 썼다. 맞다. 집대성!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와 <꼬리치는 당신>에 실린 줄기러기 이야기를 위에 소개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히말라야 산맥이 일 년에 높아지는 높이가 1센티미터일까, 10센티미터일까? 당연히 1센티미터다. 10센티미터씩 오른다면 10년마다 백과사전을 고쳐야 하는 일이 발생할 테니까…. 아마도 <꼬리치는 당신>의 참고문헌 목록에도 있는 <낙타는 왜 사막에 갔을까>을 읽고서 트윗을 날리는 사이에 오타가 발생했을 것이다. 항목마다 과학적으로 불분명하거나 오해를 한 것들이 가끔 보인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인이 동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권혁웅 시인은 외할머니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충분히 재밌게 전달하고 있다.

철원 평야에서 두루미를 겨우 몇 마리 본 후 민박집에 묵을 때 읽은 두루미 항목을 소개한다.

'날못쓰'라는 별명

일부일처제. 몇 년간 아이를 키운다. 사교적이어서 춤을 잘 춘다. 오래된 과거를 기억하며 복잡한 방식으로 의사소통한다. 여든까지도 산다. 두루미 얘기인데, 자기들끼리는 우리더러 이럴 거야. 우리랑 비슷한데, 글쎄 하늘을 날지 못한대. 불쌍해서 어쩌니? 날지도 못하는 쓰레기라니.


참, 각 항목마다 그려져 있는 동물 수묵화는 아름답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동물들도 이빨을 닦나요? - 동물들의 궁금한 세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2006년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 동물들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재구성하여 펴낸 그림책이다. 물개도 멍멍 짖는지, 돼지도 휘파람을 불 수 있는지, 독일 셰퍼드는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지, 악어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지, 고슴도치의 가시는 몇 개인지 등 단번에 눈길을 끄는 재미있는 질문들이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 - 살아남은 동물들의 비밀>
지구 생태계 대표 동물들의 아름다운 진화 이야기. 치타 얼굴에는 왜 까만 줄이 있을까? 고래는 왜 바다로 들어갔을까? 치타, 캥거루, 코끼리, 박쥐, 고래 등 친숙한 동물들에게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비밀이 숨어 있다. 이 책은 여덟 종의 지구 생태계 대표 동물들이 어떻게 다양한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찾아냈고 나아가 공존의 기쁨을 함께 누리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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