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건시민센터와 환경운동연합의 국민 여론 조사(2013년 10월) 설문 문항 중 하나인데, 공감한다는 의견(49.3%)이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31.2%)보다 높게 나왔다. 전기 생산과 소비가 사회,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발생하는 '에너지 부정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밀양 희망 버스'는 새로운 '연대의 공간'이기도 한데, '국책 사업'이라는 명분으로 국가와 자본이 낙후된 지방에 강요하는 '희생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인 셈이다.
일본 후쿠시마 현에서 태어난 다카하시 데쓰야의 말을 빌리자면, 이 희생의 시스템에서는 "어떤 자(들)의 이익이 다른 것(들)의 생활(생명, 건강, 일상, 재산, 존엄, 희망 등등)을 희생시켜서 산출되고 유지된다. 희생시키는 자의 이익은 희생당하는 것의 희생 없이는 산출되지 못하고 유지될 수도 없다. 이 희생은 통상 은폐돼 있거나 공동체(국가, 국민, 사회, 기업 등등)에 대한 '귀중한 희생'으로 미회되고 정당화된다."(<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한승동 옮김, 돌베개 펴냄), 37~38쪽)
한국 사회에서도 핵 발전과 화력 발전을 특정 지방에 집중 건설하는 방식으로 중심과 주변 사이에 식민주의적 지배-피지배 관계가 형성됐다고 말한다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전력 소비가 증가하고 송전망이 확대되면서 중앙 집중형 전력 시스템이 견고해진 것은 사실이다.
후쿠시마와 밀양이라는 사건을 경험하면서 우리도 탈핵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하고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지역 분산형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확대하는 방향에서 에너지원에 대한 관심도 커졌고, '핵발전소 하니 줄이기 사업'과 에너지 협동조합과 같은 새로운 접근이 지방자치단체와 풀뿌리에서 나타났다. 최근에는 광역-기초-마을 단위를 묶는 '지역 에너지 공사'와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도 검토되고 있다. 그동안 주로 하향식으로 추진되어 왔던 중앙 정부 주도의 계획 수립과 사업 집행이라는 관행이 지방 정부와 지역 사회의 권한과 재정의 한계와 맞물리면서, 지역의 '에너지 주권'이 극도로 제약되어 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상이다.
또 다른 긍정적인 모습이 있는데, 바로 송전 요금을 반영한 전기 요금 개편 주장이다. 핵발전소의 위험 인식과 밀양 송전탑 갈등을 배경으로 한, 송전 요금을 반영한 전기 요금의 '지역별 차등화' 요구가 그것이다. 발전 입지와 수요 입지 간의 거리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전국 단일 요금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부산, 울산, 경주, 울진, 영광, 당진 등 대형 전력 생산지와 서울과 경기의 전력 소비지가 같은 송전 요금을 부담하는 구조로, 사실상 지역 간 교차 보조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수도권에 살면 실제 비용 이하로 전기 요금을 지불하고, 반대로 발전소 인근 지방에 살면 비용 이상의 전기 요금을 부담하고 있다는 말이다.
경제 논리를 따르더라도, 송전 거리가 먼 지역은 송전 거리가 짧고 송·변전 시설의 각종 위험과 피해에 노출된 가까운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전기 요금을 지불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독일, 영국, 노르웨이, 미국, 호주, 뉴질랜드, 스웨덴, 일본 등 많은 국가들에서 송전 요금에 대해 지역별(혹은 접속 지점별) 요금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외국 사례와 국내 연구를 종합해보면, 송·변전 시설로 인한 환경 비용 및 계통 혼잡 비용 등을 반영해 지역별로 전기 요금을 차등화하는 방향으로 전기 요금 체계를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도 2000년 초반부터 발전, 송·변전, 배전을 분할 매각하는 전력 산업 구조 개편을 염두에 두고, 송전 요금을 고려한 차등 요금제를 계획했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환경 단체와 진보 정당에서도 집중형 전력 체제로 인한 지역 간 형평성 문제 해결과 분산형 전원의 원활한 도입을 위해 지역 간 송전 요금 차등화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최근에도 국책 연구 기관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와 유사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느니, 중장기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느니, 이런 식으로 즉답을 회피하고 있다. 이렇게 10년이 넘게 논의된 개선 방안을 계속 미루는 것은 정치 논리 이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기 힘들다 하겠다.
그런데 최근 다른 정치 논리가 작동하는 담론이 등장했다. '반값 전기료'라고 하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김영춘 인본사회연구소 소장은 올해 반값 전기료를 들고 나왔다. 산업용 전기 요금을 인상해서 핵발전소 반경 5킬로미터에 전기요금 90%, 10킬로미터에 80%, 20킬로미터 80%, 30킬로미터에 50%, 50킬로미터에 30%를 각각 지원하는 것이 요지다. 이럴 경우 부산시 주택용 전기 요금의 49.75%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전기 요금 지역별 차등화 방안을 반값 전기료와 동일시하는 흐름이 감지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에너지 부정의'와 '희생의 시스템'을 극복하기 위한 전기 요금 개편이라기보다 선거를 앞두고 보상 극대화 심리를 이용한 급조한 정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일종의 마이너스 요금제인 반값 전기료 담론은 개인이나 개별 가구가 직접 체감할 수 있어 정치적으로 매력적이고 사회적으로 수용성이 높은 방안일 수는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보다는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쪽에 가깝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첫째, 전반적으로 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전기 요금 현실화' 혹은 '정상화' 흐름에서 반값 전기료라는 표현은 부정적 인식을 준다. 지나친 '전기화'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전기 요금 개편이다.
둘째, 핵 발전에 위험 비용을 반영하는 하려면 발전 원가에 반영해 왜곡된 가격 구조 자체를 조정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김영춘 소장의 방식은 현행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법에 의해 전력 산업 기반 기금을 재원으로 하는 전기 요금 보조 사업과 질적인 차이가 없다.
셋째, 일반적인 의미에서 산업용 전기 요금 인상은 정당한 제안이다. 그러나 지역별 불균형을 해소할 목적이라면, 이는 산업, 일반, 주택, 농업 등 용도별 요금 체계를 개선하는 것과 무관하다. 서울과 경기의 주택용 전기 요금은 왜 문제 삼지 않는가?
넷째, '보상과 전환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다. 발전소와 송·배전 시설에 대한 위험과 피해에 대한 지원금 극대화 논리가 강조될수록 '보상 논리'에 빠져 전환의 가능성은 잠식당한다. 보상과 지원은 주변 지역 지원법을 개정하고 지원 방식을 개선해서 풀면 될 것이다.
다섯째, 서민층 에너지 빈곤이 걱정이라면, 적정 필요 전력량을 확실하게 보장하고 주택 에너지 효율화 사업의 투자를 늘려 에너지 복지를 강화하면 된다.
어쩌면 반값 전기료가 선거를 겨냥한 대중영합주의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탈핵 에너지 전환이라는 유기농 밭으로 날라 들어온 GMO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렇게 반값 전기료가 문제가 많다면, 다른 대안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탈핵 에너지 전환에 부합한 내용을 담보할 수 있을까?
현재 전기 요금에 반영되지 않는 송전 요금을 책정해 전기 요금에 지역별로 차등적으로 부과하면 된다. 송전 요금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한국전력공사의 '송·배전용 전기 설비 이용 규정'을 참고해 보자. 부산과 충남은 서울에 비해 1킬로와트시당 1.14원을 적게 부담하게 된다. 이는 일종의 플러스 요금제로, 전기 요금 자체에 포함시키는 방법이다. 또는 전기 요금의 3.7%로 부과되는 전력 산업 기반 기금을 지역별로 차등 부과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 두 경우 모두, 모든 지역에서 전기 요금이 인상되겠지만, 전력 생산지는 적게 인상되고, 전력 소비지는 많이 인상된다. 인상 금액의 일부를 공적으로 관리해 지역 에너지 시스템 전환에 사용하면, 탈핵 에너지 전환의 논리에 꼭 맞는다.
증세 없이 복지 없듯이, 요금 인상 없이 에너지 전환 없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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