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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 안 쓴다더니…'피 같은 돈' 삼켜버린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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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 안 쓴다더니…'피 같은 돈' 삼켜버린 영화제

[고발] 2013 서울시민영화제의 파행 운영

서울시민영화제라는 거창한 이름의 영화제가 있었다. 2013년 8월 16일부터 30일까지 반포 세빛둥둥섬, 청계광장, 상암 유니세프 광장, 잠실 시크릿 가든, 여의도 파라다이스 등 서울 시내 5개 장소에서 진행된 무료 야외영화제였다. 서울특별시,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한강사업본부, 한국YMCA전국연맹, 국제와이즈맨한국연맹,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이 공식 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기존의 영화제들은 주로 지자체 등으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예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서울시민영화제는 국고의 '혈세'를 쓰지 않는 영화제로 홍보했다. 이혁진 조직위원장의 경우,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 관계사인 유니온창투를 통해 영화펀드를 운영했으며, 영화제 유치 관련해서도 그동안 쌓은 금융 관련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기업들로부터 10억 원 가량을 기부 받았다고,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정부나 지자체 지원 없이 기업들의 협찬만으로 여는 첫 영화축제일 겁니다. 전문가들이 아니라 서울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영화를 선별해 야간에 극장이 아닌 한강 주변 야외에서 상영할 계획입니다. 한강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겁니다." (☞바로가기 : "이혁진 대표 '한강 영화축제 잘되면 평양서도 열고 싶어'")

하진욱 집행위원장 역시 서울시민영화제는 "기업의 문화기부를 통해 운영되는 영화제"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바로가기 : "[단독] 국고 0원…'1원'도 안 든 '시민영화제' 생긴다")

그러나 서울시민영화제는 시민의 '혈세'를 쓰지 않은 대신, 영화제에 참여한 '시민' 스탭에게 '피 같은 돈'을 지급하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개막부터 폐막까지 지급해야 할 돈의 대부분을 지급하지 않은 채 제법 큰 규모의 영화제를 치른 희귀한 경우로 남게 됐다. 서울시민영화제에 참여했던 영화계 인사 중 한명은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제와 상영회를 봤고 참여했지만, 이런 경우는 전무후무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 2013 서울시민영화제의 홍보 이미지. ⓒ서울시민영화제

인건비를 받지 못한 스탭들이 구성한 2013서울시민영화제 대책연대 준비회의에 따르면, 7월부터 (프로그램팀과 홍보팀의) 계약직 근로자들의 인건비가 체불되고, 영화제 개막 2주 전에도 상영 장소가 변경되거나 개막 당일까지 배급사 상영료 및 협력업체 선금을 미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초기 프로그램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씨네 드 펫', 문화 취약 계층을 찾아가는 '씨네 드 버스' 등 다양한 상영 방식으로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인다는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씨네 드 펫'은 일방적으로 취소되고, '씨네 드 버스'만 '찾아가는 영화제'로 명칭을 바꾸어 장애인시설 5곳을 찾아다니며 상영을 진행했다. 이 또한 영화제 중반에 협력업체 영사기사에게 중도금을 지급하지 못하면서 중단될 위기에 처했으나 약속한 장애인시설에서 관객들이 기다릴 것을 걱정한 영사기사가 책임감에 상영을 진행해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찾아가는 영화제'에 영화를 배급한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와 영사기사는 아직까지 상영료와 용역비를 지급받지 못 하고 있다.

스크린 설치비 미납으로 영화제의 주요 상영 장소였던 상암 유니세프 광장은 8월 19일에서 22일로 오픈이 연기됐고, 8월 21일 오픈 예정이었던 청계광장도 21일에서 22일로 연기됐다. 한편 중도금의 미납, 상영장비 대여료 미납으로 인해 8월 16일 세빛둥둥2섬에서 상영이 중단되었다. 원래 상영 계획은 8월 29일까지였다. 상암유니세프광장에서도 영화 상영이 8월 29일까지였지만 8월 28일 중단되었다.

영화를 보러 왔다 허탕을 친 시민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항의하기 시작하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메뉴가 통째로 사라졌다. 상영 업무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프로그램 팀이 이에 항의하자, 하진욱 집행위원장은 협찬금이 예상보다 적게 들어와 영화제가 파행 운영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로그램 팀을 제외한 집행부가 셀러브리티를 초청해 청담동 클럽 '엘루이'에서 폐막식 쫑파티를 진행하면서, 이혁진 조직위원장과 하진욱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운영은 방관한 채 나름의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듯이 보였"다.(☞기사 바로 가기 : "서울시민영화제,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기고] 제1회 서울시민영화제 파행운영과 피해자들의 목소리")

인건비 지급은 폐막 이후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계약직과 현장 진행 아르바이트생들의 인건비를 비롯한 상영료, 협력업체 대금 등 각종 지급이 9월 3일에서 9월 10일로, 다시 9월 15일로 연기됐다. 이 모든 공지는 문자와 '카톡'으로 이루어졌다. 문정현 프로그래머가 두 조직위원장에게 미지급 관련 공식 해명 요청서를 보냈을 때, 10월 15일까지 1차 지급하겠다는 약속이 '카톡'으로 왔지만, 보낸 사람은 유승원 사무국장이었다. 그 돈은 11월 25일 현재까지도 지급되지 않고 있다.

2013서울시민영화제 대책연대 준비회의가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인건비를 받지 못한 계약직 스탭과 아르바이트생이 42명, 영화 상영료와 원고료 등을 받지 못한 영화인은 총 21명, 배급사는 15곳, 개폐막식 협력업체는 10곳에 달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한 개인들 인건비를 포함하면 2013서울시민영화제의 적자 규모는 3억~4억 가량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혁진 조직위원장과 하진욱 집행위원장이 주장했던 기업의 지원금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문정현 프로그래머는 집행위원장 이름으로 된 통장에 돈이 입금된 내역은 분명히 남아 있는데, 불분명한 사용처로 큰 돈이 빠져나간 기록이 있다고 설명했다. 집행위원장을 제외한 영화제 스탭 중 누구도 지원금과 협찬금이 정확히 얼마나 들어왔는지, 그것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항목별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진상을 알고 있을 유일한 인물인 하진욱 집행위원장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이다. 이혁진 조직위원장에게도 반론을 듣고자 전화 연결을 시도했으나 이뤄지지 못했다.

그동안 무리한 계획으로 인해 파행으로 치달은 영화제는 간간이 존재했다. 2010년 제4회로 막을 내린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와 2009년 단 한 차례만 개최하고 사라진 서울국제사회복지영화제가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서울국제사회복지영화제는 대대적인 인건비 체불로 영화계 내에서 큰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영화제가 끝나면 해산하기 때문에 이런 일로 피해를 입은 개인들은 책임을 물을 대상이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문정현 프로그래머는 영화제라는 행사에 대해, 소수의 집행부들이 영화제 명함을 '스펙 쌓기'로만 여기는 태도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화제 도중 아무리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막상 영화제가 끝나고 나면 "그 성과가 남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진욱 집행위원장을 비난하면서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혁진 조직위원장은 사석에서 2014년 국회 윤중로 봄꽃축제 기간에 열리는 영화제를 구상 중이라고 발언한 바 있고, 하진욱 집행위원장은 <조선 르네상스 : 미술이 밝히는 조선의 역사>(호메로스 펴냄)를 발간하고 현재 부산 동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아무 문제 없이 강의 중이다. 서울시민영화제의 파행 운영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져도, "법적 조치는 당연히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혹까지 품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익명의 관계자는 "이혁진 조직위원장이 민주당의 모 의원과 긴밀한 관계여서 일을 쉽게 풀어나간 것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 세빛둥둥2섬 상영 중지 후 실려나가는 영사기. 선호빈 촬영본 FA1E0903 캡처. ⓒ2013서울시민영화제 대책연대 준비회의

2013서울시민영화제 대책연대 준비회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영화제를 비롯한 축제에 문화예술인들을 초청, 고용할 경우 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는 것을 비롯해 지자체 등 유관 기관에 축제에 단기적으로 종사하는 문화예술인들 위한 제도적 안전망을 마련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제안할 계획이다. 또한 두 위원장들을 고소할 예정이며, 본래 다큐멘터리 감독인 문정현 프로그래머는 이 과정을 <시네마지옥>(가제)라는 다큐멘터리로 만들 계획이다.

영화제로 대표되는 문화 축제는 무엇보다 이를 즐기는 관객 참여자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시민들과 약속했던 영화 상영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파행을 거듭했던 서울시민영화제의 일차 피해자는 영화제를 즐기려 찾아왔던 시민 관객들일 것이며, 이차 피해자는 영화제에 참여하여 임금 지급이 미뤄지는 한이 있어도 일정을 끝까지 완수하려 노력했던 개개인의 영화제 스탭들이다. 서울시민영화제의 파행 운영 같은 불행한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아야만 시민들과 스탭들의 피해가 유의미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서울시민영화제의 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서울특별시,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한강사업본부 등 주요 단체들이, 앞으로는 신생 행사의 성격과 진행 과정 등을 면밀히 고려하여 결정을 내리는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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