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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덩어리에 이미 있는 우주의 진리, 캐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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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덩어리에 이미 있는 우주의 진리, 캐내십시오!

[이명현의 '사이홀릭'] 로렌스 크라우스의 <무로부터의 우주>

요즘 들어서 '왜 우주는 텅 비어 있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화두를 달고 나온 책들이 자주 눈에 보인다. 물론 이 질문은 천문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질문일 것이다. 다중우주이론이 과학자 사회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편하게 회자되기 시작하면서, 우주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책은 시시하게도 여전히 과학과 종교를 같은 저울 위에 올려놓고 신파극을 벌이는 불쌍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책들은 현대 과학이 우주의 기원 문제에 대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담론이 학계를 넘어서 일반인들의 지적 유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 <무로부터의 우주>(로렌스 크라우스 지음, 박병철 옮김, 승산 펴냄). ⓒ승산
로렌스 크라우스가 지은 <무로부터의 우주>(박병철 옮김, 승산 펴냄)도 그런 책들 중 하나다. 지금까지 '왜 우주는 텅 비어 있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화두를 내세우면서 출간된 책들 중에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서는) 이 책이 최고의 책인 것 같다. 먼저 최고 수준의 현역 과학자가 직접 쓴 책이라는 신뢰감이 있다. 크라우스는 이미 <스타트렉의 물리학>(곽영직·박병철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을 통해서 어떻게 일반인들과 책을 통해서 과학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그 솜씨를 보여준 바가 있다. 명쾌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은 정말 매력적이다. 종교와 신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선을 긋는 태도도 좋았다.

"누군가가 과학적 관점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질 때, 사실은 "어떻게?"를 묻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학을 주제로 한 문답에서 "왜?"는 그다지 바람직한 질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주는 '왜' 텅 비어 있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 역시 "우주에는 '어떻게' 무엇인가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내가 자주 쓰는 말이지만 문명의 발달이란 오래된 근원적인 질문을 정교한 현대적 질문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정교하고 정확한 질문을 한다는 것은 이미 어떻게 대답해야할 지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말과 같다. 질문이 구체화될수록 그에 대한 대답도 구체적일 수밖에 없다. 크라우스는 지난 시절 던졌던 질문을 수정하고 보완해서 더 정교하고 정확한 질문을 하는 것으로부터 우주의 기원의 문제를 풀어가자고 말하고 있다. 관습처럼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 답을 찾기 위한 질문 말이다.

질문의 발견은 우리 뇌의 신경회로의 재구성을 요구한다. 종교와 신학에서 던지던 낡은 질문과 인식으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통해서 천체들의 새로운 모습을 봤을 때 정작 문제가 되었던 것은 망원경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본 세계를 확신할 수 있는가 하는 인식론의 문제였다. 크라우스가 '질문'에 대한 문제로부터 <무로부터의 우주>를 시작한 것은 아주 적절해 보인다.

"최후의 퍼즐조각이 어떤 모양이건 간에, 지난 40년 동안 물리학과 천문학이 일궈낸 수많은 발견들 덕분에 우주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크게 달라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사이에 질문 자체도 바뀌었지만, 과거에 던졌던 질문의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이것은 현대과학이 남긴 위대한 유산이며, 위대한 음악과 위대한 문학, 그리고 위대한 예술처럼 누구나 향유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무로부터의 우주>를 만끽하는 비결은 자신의 뇌의 신경회로를 현대화하고 과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현대과학의 유산을 맘껏 향유할 수 있는 지름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작업에 시동을 걸어도 좋을 것 같다. 크라우스는 마치 조각가처럼 현대과학 속에 숨겨져 있던 '무로부터의 우주'의 모습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매우 간단하다. "우주는 왜 비어 있지 않고 물질의 존재를 허용했는가?"라는 질문에 과학이 어떤 답을 제시할 수 있으며, 지금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론과 관측을 통해 우리 과학자들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무(無)에서 유(有)가 태어난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주가 지금처럼 존재하려면 무에서 유가 반드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크라우스는 이 책에서 조각가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무로부터 유로의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서 새로운 이론을 내세우기 보다는 현대과학이 이미 이루어놓은 것들 속에 이미 모든 해답이 들어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언젠가 변산에서 조각공원과 천문대를 운영하면서 살고 있는 조각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엄청나게 큰 돌덩어리 위에 올라앉아 망치를 들고 있던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돌덩어리 속에 숨겨져 있는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 조각이라는 말을 했었다. 이미 돌덩어리 속에 존재하고 있는 속성을 찾아서 알리는 것이 조각가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질문의 의미는 우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서서히 변해왔다. "우주는 왜 텅 비어 있지 않고(無) 무언가가 존재하는가?(有)"-무(無)와 유(有)의 의미는 더 이상 과거와 같지 않기 때문에, 이 질문도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무(無)와 유(有)의 차이점은 거의 사라졌다. 무(無)는 언제든지 유(有)가 될 수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될 수도 있는' 정도가 아니라, 물리학이론 자체가 둘 사이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크라우스는 <무로부터의 우주>에서 조각가처럼, 예를 들면 급팽창우주론 속에 이미 숨겨져 있는 '무'의 원형을 찾아내서 알려주고 있다. 양자역학의 속성이 어떻게 '무'의 상태에서 '유'의 모습인 우주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준다. 큰 돌덩어리를 앞에 두고 한참동안 이곳저것을 걷어내더니 '봐라 여기 무로부터의 우주가 있지 않은가'하면서 완성된 조각품을 떡 하고 내놓고 있다. 초끈이론 속에서도 '무'의 향기를 찾아낸다. 현대과학이 알려준 우주의 모습은 이미 '무'를 품은 '유'였던 것이다. 또는 '유'를 품은 '무'이던가.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주가 텅 비어 있으며, 빈 공간의 역학이 현재 우주의 진화를 좌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는 우주가 무(無)(고안조차 없는 완전한 무(無))에서 탄생하는 것이 가능하고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높으며, 앞으로 다시 무(無)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크라우스의 칼날이 정교해질수록 우리는 더 구체적으로 돌덩어리 속에 숨겨져 있던 '무'의 실체에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동떨어진 외딴 곳에 있는 그 무엇인가가 아니라 이미 돌덩어리 속에 함유되어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조각가 크라우스의 진면목이 거침없이 드러난 책이 바로 <무로부터의 우주>다.

"과학의 변화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우주의 진화과정을 논할 때 종교나 신학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종교와 신학은 명백한 증거가 눈앞에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의조차 불분명한 무(無)네 집착하면서 논리의 취지를 흐려놓는다. 우주의 기원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져서 종교와 우주론이 더 가까워질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우주뿐만이 아니다. 지금 종교계에서는 인간의 도덕을 종교의 전유물로 간주하고 있지만, 결국은 이것도 종교와 무관하다는 쪽으로 결론지어질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종교와 신에 대해서 단호하고 명쾌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만, 크라우스 같은 과학자가 책을 쓰면서 여전히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좀 아쉽다. 그런 시시한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하기에는 이 책이 너무 아깝다. 물론 서양과학자들의 강박이겠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을 훌훌 털어버릴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로부터의 우주>를 읽지 않고 넘어갔으면 올 연말이 허전할 뻔했다. 책을 읽는 동안 오랜만에 설렘과 벅참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고맙다.

ⓒdiscovery student adven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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