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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서 다시 <난쏘공>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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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서 다시 <난쏘공>을 생각하다

[초록發光] 밀양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한 저소득층이 있었다. 서울 허름한 판자촌에서 살던 저소득층은 도시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행정 대집행에 의해 철거 계고장을 받는다. 아파트 입주권이 주어졌지만 입주비가 없는 가족은 입주권을 헐값에 팔고 뿔뿔이 흩어진다. 딸 한 명이 고생 끝에 입주권을 찾아왔지만, 아빠는 추락사했고 나머지 가족은 멀리 이사를 가버렸다. 가족은 풍비박산이 났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 우울한 사연은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줄거리다. 소설 속 이야기에 기시감(旣視感)이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지금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멀리는 일방적으로 서울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발발한 1971년의 광주 대단지 사건이 있고, 가깝게는 2012년의 두물머리 행정 대집행, 올해 제주도 강정 마을 행정 대집행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다시 밀양 송전탑 공사를 둘러싸고 갈등과 폭력의 메커니즘이 고개를 들었다.

밀양 송전탑 사태는 정부의 잘못된 에너지 정책과 지역 간 불평등 문제, 핵발전 수출을 둘러싼 정치적 이슈 등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일이다. 일부는 여전히 '초고압', '탈핵', '지역 간 불평등' 문제가 근본 원인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탈핵' 문제가 중요하다고 해서 밀양 사태 과정에서 나타난 정책과 반대 의견 사이의 갈등 구조를 뒤로 놓을 순 없다. 송전탑 설치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촌부들이나 "시민 단체 빨갱이"들이 국익을 헤치고 있다는 식의 논리를 제일 앞에 놓는 이유가 바로 갈등의 생성 이유와 해결 과정에 관해 찬반 양쪽 모두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최형락)

2011년 미국 상공회의소는 흥미로운 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3%가 재생 가능 에너지를 지지하지만, 미국 내 재생 가능 에너지 도입 계획의 45% 가량이 지역 주민의 반대로 취소되거나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이 시대적 흐름이더라도 에너지 인프라 건설 문제는 또 다른 문제라는 걸 시사한다.

대형 핵발전소나 화력 발전소는 물론이고, 재생 가능 에너지 역시 지역의 문화와 환경, 지역 주민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일각에서 얘기하는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이 결코 완전한 대안은 아니며, 이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상황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신고리 3호기 용량 1.4기가와트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대체하려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더 많은 지역이 태양광 패널로 뒤덮여야 한다. 효율이 나쁘면 재생 가능 에너지 설치는 사실 불가능할 것이고, 효율이 좋아진다고 해도 여전히 핵발전소에 비해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중앙 집중화된 핵발전을 계속 가져갈 수는 없다. 송전탑과 지역 불평등 문제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재생 가능 에너지로 대체하자는 주장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대규모로 표면화가 될 가능성이 적어서 그렇지 재생 가능 에너지 역시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주민들의 동의와 부지 확보에 있어 만만치 않은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단순히 A를 B로 대체하는 건 정답이 아니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재생 가능 에너지 도입이 자꾸 반려되는 이유를 지역 주민의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 부족, 프로젝트 주체에 대한 불신 등에서 찾았다. 지역 주민이 전기 중심의 사회 구조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발전 설비가 가지는 환경적 사회적 부작용이 작다는 점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공급을 중심에 놓는 사람들이 생각할 법한 논리다. 그렇기 때문에 '클린 테크니카(Clean Technica)'와 같은 재생 가능 에너지 보급 세력이 미국 상공회의소 보고서를 받아쓰며 "지역 이기주의(NYMBYism)"라고 몰아붙이는 것일 테다. 이런 분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에너지 문제가 중요하다고 해도 개인적 기본권을 이기주의로 치부하는 것은 다수에 근거한 집단주의고, 설령 재생 가능 에너지를 보급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생태 파시즘이란 비판을 받아 마땅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이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사회적 주체로서 그 지역 주민들을 인정한 후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협의하는 과정이다.

덴마크, 독일과 같이 재생 가능 에너지 보급이 활성화되어 있는 경우는 어떨까. 각국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지역 주민들에게 해당 프로젝트에 따른 혜택과 위험 요인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충분히 전달하고,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한다. 정보의 공평한 공유를 통해 합의 지점을 찾고, 그 합의에 대한 책임 역시 공유하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근본적인 갈등의 여지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의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폭 넓은 정보 공유가 필수적이다. 그런 과정을 두는 것이 그 사회의 에너지 시스템이다.

반면 우린 어떤가? 정부가 에너지 공급 안정성이라는 하나의 요소를 전부인 양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갈등 해소 노력과는 거리가 멀다. 추후 정부와 한국전력이 환골탈태해서 재생 가능 에너지 보급을 최우선 한다고 해도 '대규모'라는 전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밀양 송전탑을 밀어붙이는 걸 보면 우리 정부는 무식하거나 무능하거나 둘 중 하나다. 하긴, 다른 방식을 생각해보자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묵살하는 걸 보면 정부와 한국전력의 사회적 상상력이 딱 거기까지인 게 분명하다.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능력이 거기까지란 의미고.

송전탑을 저지하기 위한 시민 사회의 노력에도 그런 과정이 있었는지 반추할 필요가 있다.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저항하는 건 기본적인 권리다. 하지만 이대로 송전탑 건설이 저지된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현대 에너지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담론이 있다. 밀양의 할머니들에게, 또 탈핵을 원하는 이들에게 송전탑은 절대악이지만 그런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이들에게 송전탑은 고마움의 대상일 수도 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선 생태 파시즘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연구차 유사한 현장을 다녀온 박혜린 이노마드 대표는 이런 말을 들었다고 전한다.

"이런 섬 마을에 전기가 들어와 마을에서 그물 작업을 전기 모터를 돌려 편하게 작업한다. 위성TV도 보고 인터넷도 한다. 나는 송전탑에 감사한다."

'그래서 분산화를 해야 한다, 수요 관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뻔한 방향을 제안하자는 게 아니다. 해답을 찾기 위해선 반대도 반대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합의가, 납득이 가능하다. 송전탑 없는 세상은 무엇이고,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를 사회와 지역 주민과 공유했는지 생각해보자. 현상에 몰입해 더 큰 질문을 놓치고 간 건 아니었는지.

노력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노력은 송전탑을 막기 위한 노력만큼이나 치열했을까. 밀양을 벗어나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도 진정성이 전달되었을까. 그런 과정은 소홀히 하고 밀양을 응원하는 건 대증요법처럼 짧다. 그런 과정 없이 정부가 만든 프레임에 뛰어 들어 숫자를 논하는 건, 아무 생각 없이 "분산화하라, 수요 관리를 하라"고 뭉뚱그리는 것보다 나쁘다.

누구도 절대선일 수는 없다. 또 다른 '난장이'를 만들지 않기 위해 긴 호흡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사회적 숙의 구조부터 만들자.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 칼럼은 박혜린 이노마드 대표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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