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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망친 '빨갱이 아버지'를 용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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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망친 '빨갱이 아버지'를 용서하다

[프레시안 books] 김원일의 <아들의 아버지>

굳이 프로이트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아들에게 아버지는 죽여야 할 대상이다. 단언컨대, 아버지는 억압의 상징이다. 그로 상징되는 권력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아들을 옭아맨다. 죽여 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 말이다. 나도 그랬다. 마음으로 죽여 버렸고, 영원히 용서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김원일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지 널리 알려졌다. 한 인터넷 신문에 보면 김원일이 작성했다는 아버지의 이력이 실려 있는데, 소개하면 이렇다.

김종표(金鍾杓·1914~76). 일제강점기 때 마산상업고등학교 졸업. 한국전쟁 전 남조선노동당 경상남도 부위원장.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인민군 서울 점령 때, 성동구역 임시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서울시당 재정경리부 부부장 역임. 연합군 인천 상륙 때 구로지역 방위선 전투지휘 후방부 부책임자로 있다가 인민군이 서울 철수할 때 단신 월북. 이후 의용군으로 유격대를 조직하여 남하. 195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남북회의에 북한 측 대표 일원으로 참가. 연락부 대남사업 책임지도원. 1968년 무렵 해운총국 간부를 지냄. 1976년 강원도 금강산 부근 요양소에서 신병으로 사망.

▲ <마당 깊은 집>(김원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이런 이력을 남긴 이를 지아비나 아비로 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아간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는 익히 짐작가고도 남는다. 김원일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마당 깊은 집>(문학과지성사 펴냄)만 읽어보아도 충분하다. 이런 아버지라면 원망과 저주의 대상이다. 자신이 품은 이념을 실현하려고 가족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더욱이 남로당 출신들이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 받은 처우를 생각하면, 그들은 결국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 뿐이다. 어느 작가가 토했던 말처럼 가서 권력을 누리며 잘 살았다면 모르겠지만 역사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지 않은가. 밉고 원수 같고 뇌리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터다.

간혹 문화적으로 상당히 세련되고 인문적 사유가 깊은 데도 이념 문제에서 상당히 신경질적인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당황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아버지 콤플렉스 탓이었다. 지주 집안의 아들로 일제 강점기 일본에 유학 갔다 와서 사회주의 진영에서 독립 운동을 했고, 해방 후 좌익 운동을 하다 월북하는 바람에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혁명은 아버지만의 것이었고, 실패한 혁명은 가족의 재앙이었을 뿐이다.

십분 이해 갔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노둣돌이 되어 아들이 더 좋은 조건에서 세상살이를 하도록 이끌지는 못할지언정, 나락으로 떨어뜨린 셈이지 않은가. 사회적으로 아버지라는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게 한데다 스스로 아버지를 지워버렸을 터다. 그들이 이룬 일정한 성과도 사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 <아들의 아버지>(김원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그런데, 김원일이 아버지의 삶을 객관적으로 복원한 작품을 썼다. <아들의 아버지>(문학과지성사 펴냄). 작가의 기억과 친척의 증언, 아버지가 북한에서 보낸 삶을 아는 사람의 증언, 그리고 근현대사 자료를 바탕으로 써냈다. 그러다보니 이 작품은 소설의 요건을 지키지는 못했다. 회고록이라 해도 마땅하고 평전이라 해도 된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책에 정리된 자료를 건너뛰며 읽어도 된다. 그러나 젊은 세대라면 함께 읽어보는 것이 좋다. 책을 읽으며 작가가 작품에 역사 자료를 뭉개 넣은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해보았다. 내가 보건대 <아들의 아버지>는 아버지가 그 길을 간 이유가 무엇인지 해명하는데 바쳐져 있다. 그렇다면 시대적인 맥락을 돋을새김할 수밖에 없다.(김원일이 북한 성립을 남다른 시각으로 본 작품이 있다. 소설집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문이당 펴냄)에 실린 '손풍금'을 읽어보면 이번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일본에 유학 가 글재주를 자랑한 아버지가 좌파사상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1930년대 일본유학생 사회가 좌경화할 수밖에 없던 시대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향인 진영에 강습소를 차리고 농민 운동에 깊이 개입한 것은, 당시 진영 지역 농민들이 투쟁 가운데 얻은 높은 정치의식과 관련 있다. 해방 후 아버지가 남로당에서 중책을 맡게 된 데는 "일제 잔족세력을 척결하고, 민족반역자의 토지를 몰수하여 빈농에게 무상분배하고, 농민이 최저생활을 국가가 보장토록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광범한 기층 민중들이 있었다는 사실과 관련 있다. 전쟁 통에 살아남고 빨치산으로 활동한 데는 "남조선 쓰레기들은 후방부에서 제2전선을 구축해 빨치산 투쟁을 계속하다 조국의 이름으로 전사하라는 명령만 내린" 김일성과 관련이 있다. 돌아보건대, 아버지는 역사의 격변을 온몸을 통과할 수밖에 없던 혁명가였다는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일제 시대 독립 운동 할 적에는 순사에게 끌려가 남편 있는 데를 대라고 모진 고문을 받고, 해방 후 좌익 운동을 할 때는 순경에게 붙잡혀가 같은 이유로 고문을 받은 어머니의 말대로 아버지는 "가족을 돌보지 않은, '사상과 계집질에 미친 미치광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원일은 아버지를 그렇게 그리지 않는다. 계집질 한 내력도 소상히 밝히고 사상에 따라 산 삶도 제대로 그려내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물어보아야 한다. 김원일은 왜 아버지의 삶을 객관적이며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일까? 라고. 원망과 저주는 왜 사라졌는가? 라고. 그 답 가운데 하나는 앞에서 이미 했다. 역사가 아버지를 그 길로 가게 했다. 두 번째는 가족과 한 약속과 관련 있는 듯싶다. 만약 아버지가 솔가해 월북했다면, 이들의 삶은 달라질 수 있을 터다. 물론 남로당 출신들이 전쟁 후 숙청당했고, 설혹 살아남았다 해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살펴도 말이다. 김원일은 그런 면에서 전쟁 후 가족이 겪은 고난이 오로지 아버지의 무관심 탓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듯하다.

전쟁에 패배해 북으로 철수하는 상황에서 아버지가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 했던 대목이 나온다. 유엔군이 서울로 진입해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질 때 빨갱이 집안이라 해 총격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어떡하든 집에 머물러 있으라 했으나 2차 접선지로 갔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유엔군이 점령했다. 며칠 후 집으로 피난 물건을 챙기러 간 어머니는 아버지가 혼란의 와중에도 가족을 건사하러 집에 찾아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망연자실했다.

이 작품의 압권은 소년 김원일이 누나와 함께 열차에 무임승차해 진영까지 내려가는 장면이다. 석탄을 실어 날랐던 무개차를 타고 굶주림과 추위에 싸우며 고향으로 먼저 내려갔다. 밀양쯤에서 기차에 이상이 생겨 진영까지 걸식하며 갔다. 아버지는 여기서 살해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김원일은 이렇게 말한다.

"누나와 내가 무개차를 타고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남행할 그 시간, 아버지 역시 유격대 간부로 강원도 태백산맥 어름에서 엄동의 강추위 속에 고난에 찬 빨치산 투쟁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깊은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평생을 괴롭힌 악령과 싸우면서 이토록 천사의 품격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 하며 말이다. 이건 참으로 아들과 아버지의 해원굿이고, 불행한 민족사에 대한 씻김굿이다! 하며 말이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통일을 보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 말했다 한다. 김원일의 아버지는 실패한 혁명가다. 해방을 스스로 해내지 못했고 통일된 나라를 세우지 못한 우리 역사도 실패했다. 그러나 지는 꽃들이 씨앗을 남겨 다음해를 기약하듯, 이 실패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새로운 길이 분명히 있을 터다. 그것이 무엇일까? 책을 덮고, 함께 고민해야 할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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