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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회의 ‘삼국지(三國志) 바로 읽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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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회의 ‘삼국지(三國志) 바로 읽기' <21>

반황후, 신데렐라의 비극

***들어가는 글**

신데렐라 이야기를 아시죠. 엄마가 죽고 새엄마가 들어오자 신데렐라는 구박을 받으면서 힘든 집안일을 합니다. 어느 날 왕자가 무도회를 열자, 신데렐라도 선녀의 도움으로 화려하게(?) 차려입고 무도회에 갔는데 왕자가 그녀에게 반해버립니다. 우여곡절 끝에 왕자는 신데렐라를 찾고 그녀는 다시 아름다운 공주의 모습이 되어 왕자와 결혼합니다.

신데렐라는 “재를 뒤집어 쓴 아이”라는 뜻입니다. 요즘은 여성들의 직업도 다양해서 여러 가지 사무직이나 서비스업도 있지만 과거에는 그저 집안일이나 농사일로, 대부분 ‘일하는 여성’들은 거의 재를 뒤집어 쓴 정도의 몰골이었을 것입니다.

[그림①] 재 속의 아이 신데렐라

그런데 왜 왕자가 신데렐라와 같은 여자에게 반했을까요? 왕자는 수많은 미인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데 아무리 선녀가 준 옷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신데렐라에게 반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사실 왕자 주변의 여자들은 대부분 귀족들이나 왕족들로 그저 얼굴이나 몸매나 가꾸고, 남자 귀족이나 연예인들의 이야기로 밤을 새우고, 괜찮은 귀족이나 후릴 궁리나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닙니까? 이런 종류의 유한계급(有閑階級 : Leisure Class) 사람들과 평생을 산다는 것도 일종의 고문(拷問)일 겁니다. 하녀들이 없으면 옷 하나 입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니 한심하기도 하겠지요.

이런 분위기에 있다가 열심히 일하는 정신도, 마음도 건강한 어린 아가씨가 눈앞에 나타났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처연한 인상을 주기도 하여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신데렐라는 자신이 처한 악조건들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영민(英敏)함이 있습니다. 신데렐라가 가진 아름다움은 귀족 여인들의 아름다움과 같은 속 빈 강정의 모습이 아니라 순수하고 건강한 것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귀족이나 왕족 여자들이 가진 퇴폐적인 아름다움과는 전혀 다른 것이죠.

그러면 왕비가 된 신데렐라는 이야기처럼 행복하게 여생을 보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을 수 있겠죠.

첫째, 아버지의 무관심과 새엄마의 학대는 신데렐라의 마음에 지우기 힘든 큰 상처를 주었을 것입니다. 후일 신데렐라가 왕비가 되었더라도 이 상처들은 쉽게 소멸되지는 않죠. 즉 사람의 마음은 나무의 나이테와 같아서 자기를 괴롭히는 모든 환경이 종식되어도 그 기억은 계속 머리에 남아서 괴롭히게 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결혼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 신데렐라처럼 애정 결핍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집착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열등감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소극적이 되거나 그것을 감추기 위해 지나치게 화려한 생활을 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신데렐라의 성공적인 결혼생활에는 장애가 됩니다. 즉 좀 어려운 말로 하면 피해의식에 따른 대인관계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이것은 사교생활을 중시하는 상류사회에서는 치명적인 결함이 되는 것이죠.

셋째, 신데렐라는 인맥(human network)이 없기 때문에 왕(왕자)의 사랑이 식게 되면 그것을 달래주거나 보호해 줄 보호막이 없죠. 따라서 신데렐라는 왕(왕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매달릴 수밖에 없고 그것은 오히려 지나친 투기로 나타나 정상적인 궁중 생활을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원래 왕(황제)은 수많은 후궁들을 공식적으로 거느릴 수가 있는데, 왕(황제)의 아내로서 이 같은 상황을 참는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와 세뇌 교육을 받아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신데렐라가 왕자의 사랑을 얻은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건강한 아름다움이었을 것입니다. 즉 실제의 미모(美貌)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는 것보다는 궁중에 출입하는 고귀한 가문의 여인들이나 궁녀들이 가지지 못한 어떤 매력, 예를 들면 일로 다져진 건강한 아름다움이 매력이었을 수도 있죠. 그런데 궁중에 들어오면 이 같은 매력은 급속히 떨어지게 되고 오히려 세련되지 못한 행동들이 부각되기 쉽습니다. 이것은 여러 사람들의 입방에 오르게 되고 신데렐라는 정치적으로 고립되기가 쉬운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제가 보건대 신데렐라는 결코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을 할 것이고 어쩌면 그로 인한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높지요.

***(1) ‘삼국지’의 신데렐라**

오래 전의 이야기지만 지극히 평범한 유치원 교사였던 다이애나가 대영제국의 왕세자비가 되어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찰스 왕세자와 이혼하였다가 교통사고로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요). 최근에 덴마크의 프레데릭 왕세자와 스페인의 필리페 왕세자가 평범한 여성과 결혼을 올려 세계적으로 신데렐라론이 급부상하였습니다. 프레데릭 왕세자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 현지의 선술집에서 도널드선이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이들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사랑을 꽃피웠다고 합니다.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하겠습니다. ‘삼국지’에는 이런 여인들이 없을까요?

나관중 ‘삼국지’로만은 잘 알 수가 없지만 ‘삼국지’에는 오나라 황제 손권의 아내로 반황후(潘皇后 : 반부인, 또는 반씨)라는 여인이 나오는데 이 여인은 ‘삼국지’ 전체를 통하여 대표적인 신데렐라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면 ‘삼국지’의 신데렐라 반황후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먼저 나관중 ‘삼국지’에서 반황후 부분을 보겠습니다.

“손화는 태자에서 폐위 된 것에 대해서 깊이 슬퍼하다가 급기야 가슴에 한이 쌓여 죽고 말았다. 손권은 다시 셋째 아들 손량(孫亮)을 태자로 삼았는데 이 손량은 반황후의 소생이었다(108회).”

반황후에 대한 나관중 ‘삼국지’의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입니다. 너무 간략하여 궁금증을 자아내거나, 아니면 너무 내용이 적어서 여러분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 같네요.

실제로 정사를 살펴보면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은 오나라에 훨씬 더 많았습니다. 이 부분을 드라마로 했으면 나관중 ‘삼국지’ 이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나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손권의 후계자 책봉에 관해서 살펴보면 오나라는 오늘날의 현실 정치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나관중 ‘삼국지’에는 손권의 후계자 책봉 과정들이 모두 합해도 5~6줄을 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관중 ‘삼국지’만 읽으면 오나라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은 것이죠.

위의 나관중 ‘삼국지’에 나오는 내용 가운데 “셋째 아들 손량”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손량은 손권의 셋째 아들이 아니라 일곱째 아들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손권의 아들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손권에게는 ① 손등(孫登), ② 손려(孫慮), ③ 손화(孫和), ④ 손패(孫覇), ⑤ 손분(孫奮), ⑥ 손휴(孫休), ⑦ 손량(孫亮 : 243-260) 등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손등과 손려는 일찍 죽고, 손화와 손패는 황위 다툼을 벌이다가 죽고, 이제 남은 사람은 ⑤ 손분, ⑥ 손휴, ⑦ 손량이었습니다.

[그림 ②] 어린 나이에 등극한 오나라 2대 황제 손량(드라마의 한 장면)

손분은 손권이 세상을 떠난 252년 제왕(齊王)으로 봉해졌다가 당시의 권력자였던 제갈각(제갈근의 아들, 제갈량의 조카)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후에 제갈각이 암살당하자 손분은 당연히 대권을 노리다가 결국 폐출되어 서인이 되었습니다. 손량은 지금까지 보신 대로 (우리 나이로) 10세에 황제에 오르지만 당시의 권력자 손침(손권 5촌 조카의 아들)에 의해 폐위를 당합니다(손량은 총명한 황제였으나 너무 어려서 당시의 실제 권력자인 손침을 죽여 대권을 찾아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손휴(235-264)는 오나라의 3대 황제였습니다(좀 문제가 있지요. 손휴는 손량보다도 여덟 살이나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어린 손량이 폐위된 후 권력자인 손침에 의해 다시 황제에 오릅니다. 오나라의 정변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줍니다).

258년 대장군 손침이 손량을 폐위시키고 손휴를 황제로 세웠는데 손휴는 즉위한 후 중신들과 힘을 합쳐 손침을 죽이고 황제의 권력을 다시 찾아옵니다. 손휴는 말하자면 ‘철인황제(哲人皇帝)였는데 자신의 뜻을 펼치지도 못하고 안타깝게도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 또한 오나라의 불행이었습니다.

[그림③] 손침을 제거하고 신하들에게 하례를 받는 오나라 3대 황제 손휴(드라마의 한 장면)

오나라는 삼국 가운데서도 유난히 권력투쟁이 극심하였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그 원인이 단순히 손권(孫勸)의 실정과 전공주(全公主)의 모함과 참소 때문일까요? 또 다른 이유는 없을까요?

오나라의 혼란은 손권과 전공주의 잘못뿐만 아니라 반황후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오나라의 이 격렬하고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의 과정은 반황후(潘皇后 : 반부인, 또는 반씨라고도 함)가 무리하게 자기 소생인 손량(孫亮)을 황제에 앉히려고 한 것과 무관하지 않지요. 신데렐라 같은 한 여인의 무모하고도 집요한 욕심의 결과가 나라를 어떻게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는지를 반황후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이번 강의의 주인공인 반황후로 돌아갑시다.

반씨(潘氏 : ?-252)는 오나라 2대 황제 손량(孫亮)의 어머니로 미천한 신분으로 황궁에 들어와 손권(孫權)의 총애를 받고 황후에까지 오른 여인입니다. 반황후는 회계(會稽) 구장(句章) 출신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하급관리였는데, 아버지가 죄를 지어 사형을 당하자 어린 여동생과 함께 궁중의 직실(織室)에 호송되어 일하게 됩니다.

어느 날 늙은 손권이 이 직실을 방문하였다가 어린 소녀(반씨)가 베 짜는 모습을 보고 반한 듯합니다. 아마 이 때의 반씨는 손권이 방문한다는 정보를 사전에 알았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그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 영민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생을 노비로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영리한 여자라면 자신의 모든 고난을 종식시켜줄 역전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겠지요.

이 날 손권은 아름답고 열심히 일하는 어린 소녀(반씨)를 기특하게 여겨(오서 : 반부인전) 처음에는 형식적으로 이런저런 질문했겠지만 반씨의 사정을 들어보고서는 아마 측은한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궁중에서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자신을 유혹하려고만 하는 여인들에 둘러싸여 반평생을 보낸 손권은 반씨의 또 다른 아름다움에 반했을 수가 있겠죠.

[그림④] 말년의 손권(드라마의 한 장면)

현대적으로 말하면, 손권은 반씨가 일하는 모습 속에서 궁중여인들과는 다른 매력을 보았을 것입니다. 여인이라면 종류별로 다 경험했을 손권이지만 반씨와 같은 경우를 경험하지는 못했겠죠. 손권의 눈에는 반씨가 애처로웠을 수도 있고 반씨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다른 여인들처럼 농염하게 유혹한다거나 궁중에서 닳아빠진 여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어떤 매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어리면서 순수하고 영민한 모습에 한없이 귀여웠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즉 손권은 반씨의 귀여움과 영민함, 싱싱한 젊음에 반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손권은 반씨를 사랑하여 부인으로 삼았는데 이 때, 반씨(반황후)의 나이는 불과 13~16세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환갑이 넘은 손권(孫權)이 손녀딸보다 더 어린 소녀를 사랑하여 낳은 아들이 바로 손량(孫亮)입니다.

이와 같이 반씨는 ‘삼국지’에서 가장 대표적인 신데렐라지요. 이제 이 신데렐라가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살펴봅시다.

***(2) 반황후, ‘삼국지’의 에비타**

반황후는 '거리의 여인'에서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던 아르헨티나의 에비타에 비유될 수도 있습니다. 에비타, 즉 에비타 에바 페론(Evita Eva Peron : 1919-1952)은 바로 ‘아르헨티나여, 날 위해 울지 말아요(Don't cry for me Argentina)’ 라는 유명한 노래의 주인공으로 아르헨티나의 부통령 후보가 되기도 했지만, 자궁암으로 33세의 나이로 요절한 사람입니다.

에비타의 장례식은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큰 국장(國葬)으로 한 달간 성대히 치러졌습니다. 에비타는 아르헨티나의 성녀(聖女)로 추앙받기도 하지만 그녀는 대표적인 대중인기 영합주의 정치, 즉 포퓰리즘(Populism)의 대명사였습니다. 이것은 국가의 장래로 보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최근 아르헨티나의 국가 부도는 이러한 포퓰리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근래 우리나라도 이 같은 현상들이 자주 나타나 우려가 됩니다.

[그림⑤] 에비타(Evita Eva Peron : 1919-1952)

그러면 우리의 주인공 반황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반황후는 결혼 초기에는 무척이나 행복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말년에 손권은 마치 손녀딸 같은 반씨를 맞아서 너무 흡족한 듯합니다. 왜냐하면 손권은 이 어린 여인이 낳은 아이까지 태자로 삼았고, 그 많은 후궁들을 제쳐두고 이 어린 여인을 황후로 세웠으니 말입니다. 짐작해 보건대 손권은 이 어린 소녀가 귀여워 어쩔 줄을 모른 듯합니다.

흔히 늙은 남편과 어린 여자가 결혼할 때 늙은 남편은 그 아내를 순진하고 귀엽게만 볼지도 모르지만, 그 어린 아내는 가장 영악하고 대담할 수가 있습니다. 이 점을 대개의 늙은 남편은 모르는 경우가 많지요.

손권은 단지 반씨를 귀엽게만 보았을지 모르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목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특히 노인과 결혼한 여자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남편에 대하여 나름대로 모든 준비를 해야 할 테니까요.

정사에 따르면 반씨(반황후)는 젊고 야심이 많았습니다. 반씨는 손권의 총애를 이용하여 자신의 아들 손량을 태자로 만드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결국 손량은 여덟 살에 태자에 책봉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지난번에 말씀을 드린 대로 전공주와 손화의 불화도 한몫했지요. 손량이 태자로 책봉된 다음해(251년) 손권은 반씨를 황후로 세웠습니다.

반씨가 황후에 된 것을 보면 오나라 정국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 서씨, 보씨, 왕씨 등은 수십 년을 같이 살았지만 황후 책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린 반씨는 아들이 태자가 된 뒤, 이내 황후로 책봉을 받았으니까 손권의 말년 정치가 얼마나 중신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나이의 손량이 태자에 봉해지자 곳곳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어린 태자가 제위(帝位)에 오르면 그 외척이나 환관, 그리고 권신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기 때문에 황권(皇權)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은 자명한 일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귀담아 듣기에 손권은 이미 너무 늙었습니다.

한편 야심가인 반황후는 늙은 남편이 사망할 경우에 대비하여 여러 가지 준비를 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즉 노환(老患)에 시달리고 있던 손권의 병이 깊어지자 반씨는 중서령 손홍(孫弘)을 불러 전한(前漢) 때 여태후(呂太后) 시대의 정치와 제도 등에 대한 연구를 주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왜냐하면 반황후가 손권의 사후를 대비하여 자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려고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림⑥] 여태후

여태후는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부인으로 혜제(惠帝)의 어머니였는데, 유방이 죽자 그 아들(혜제)을 내세워 섭정하였습니다. 여태후는 자신의 연적(戀敵)에 대해서 잔인하기로 유명하였습니다. 여태후는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유방의 후궁 척의(戚懿)의 팔다리와 코, 혀를 자르고 눈알을 파내었으며, 목에다 음약을 부어 벙어리로 만들고, 귀에다 약물을 부어 귀머거리로 만들어 변소에 가두고 인체(人彘 : 사람 돼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태후가 자신의 아들인 한나라 혜제에게 이 모습을 일부러 보여주자 혜제는 충격을 받아서 정치에 환멸을 느껴 정사는 멀리하고 주색에 빠져 24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지요. 여태후는 혜제의 죽음 이후 친정의 인척들과 함께 8년간이나 철권통치를 하였습니다.

반씨도 손권의 죽음이 임박하자 섭정(攝政)을 위한 채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씨는 한편으로는 과거의 일을 연구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반역사건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손권이 소생할 가능성이 희박해진 252년부터 반씨는 다른 후궁들을 모두 물리고 홀로 손권의 병간호를 합니다. 가장 안전하게 손권을 지키면서 손권의 유언(遺言)을 받으려 한 것이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를 장악할 책략(策略)을 세웁니다. 손홍(孫弘)이 이 일을 맡아서 했지요.

손홍은 손권이 죽은 후 새로운 세력을 구성하기 위해 바삐 움직입니다. 그런데 그만 문제가 발생하고 맙니다. 반황후는 손권의 병 수발을 혼자 들다보니 몸에 탈이 나게 됩니다. 아무리 젊고 건강한 여자라도 황제의 병 수발을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이죠. 결국 반황후도 과로(過勞)로 자리에 눕게 됩니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반황후를 질시해오던 수많은 후궁들이 연합하여 모의하고 궁녀들을 매수하여 반황후의 병간호를 핑계로 자주 드나들다가 기회를 봐서 반씨를 목 졸라 죽이고 맙니다. 야심에 찬 젊은 여인의 꿈이 일시에 날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신데렐라의 꿈도 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한동안 반황후가 몹쓸 병에 걸려 죽은 것으로만 알려집니다.

***(3) 실패의 운명을 진 신데렐라**

만약 신데렐라가 지나치게 권력에 집착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왕자의 사랑이 식어간다고 느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왕자는 신데렐라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른 여자들도 동시에 사랑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신데렐라가 애초에 귀족 여성으로 자랐다면 “왕이란 으레 그렇지, 뭐”하면서 적당히 눈감아주면서 주변의 귀족들에게 험담도 하면서 자기도 남자 애인이나 만들어서 적당히 즐기는 식으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데렐라는 그렇게 하기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왕궁에서 의지할 곳이라고는 왕(王)밖에는 없는데 그 왕이란 사내가 다른 여자들에 혹하여 도무지 코끝도 뵈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럴 경우 신데렐라는 절대고독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신데렐라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하여 자신만이 방식으로 대처하기 시작하겠지요.

반황후도 마찬가지입니다. 반황후는 무엇보다도 어린 자기의 아들을 황제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합리적일 수는 없지요. 손권에게는 이미 반황후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장성한 아들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반황후의 이 같은 집착과 책동은 장기적으로 나라를 패망으로 몰고 갈 수도 있지요.

반황후의 죽음의 원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대부분의 후궁(後宮)들이 자신들과는 이질적인 반황후에 대하여 공통의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반황후의 지나친 투기(妬忌)를 우려한 것입니다. 즉 만약 손권이 죽고 난 뒤 반황후가 정권을 장악했을 경우 손권이 사랑했던 여인들에게 어떤 끔찍한 사태가 발생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후궁들은 누구라도 자신이 척의(戚懿)와 같은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정사에 따르면 “반황후는 성품이 음험하고 질투가 심하였고 아첨을 좋아했으며 늘 원부인(袁夫人) 등을 비롯한 많은 후궁들을 참언하여 음해하였다.(오서 : 반부인전)”고 합니다.

반황후의 죽음의 원인이 처음에는 불치병으로 알려졌지만 이 비밀이 오래 갈 수 있나요? 왜냐하면 반황후 살해의 공범(共犯)들인 후궁들 사이도 좋을 리가 없으므로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 가운데 알력이 일어나 그 비밀들이 드러나게 되지요. 그래서 대대적인 조사가 행해집니다. 결국 범인들이 밝혀지고 이 일로 사형 당한 후궁이 6,7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한꺼번에 여러 명의 아내를 잃게 된 손권은 극심한 충격을 받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죽고 맙니다.

젊은 날의 손권은 탁월한 영도력을 발휘하여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위나라 촉나라와 더불어 자웅을 겨루는 국력을 가졌지만 말년의 손권은 총기를 잃고 계속된 실정으로 오나라의 쇠망을 초래합니다. 황제가 말년에 젊은 여인에 혹하면서부터 일은 그르치기 시작한 셈이죠.

여러 가지의 우환에 시달리던 손권은 지성으로 자신을 간호하던 반씨가 죽자 더욱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많은 후궁들의 죽음으로 손권은 자주 혼수상태에 빠졌고 결국 손권은 반씨가 죽은 뒤 두 달도 채 안 되어 극히 위독해집니다. 병세가 악화된 손권은 태부 제갈각(諸葛恪)과 대사마 여대(呂岱)를 병상 가까이 불러 뒷일을 부탁하고 제갈각과 손홍, 여대 등을 마지막으로 본 다음날 바로 세상을 떠납니다. 신데렐라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늙은 신랑도 세상을 떠난 것이지요. 저승에서 반황후가 손권을 만나서 나누었을 이야기들이 궁금합니다.

[그림 ⑦] 신데렐라 이야기를 그린 미국의 현대 그림들

세상에는 신데렐라를 꿈꾸는 수많은 여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에게 신데렐라의 일생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라고 권하고 싶네요. 신데렐라의 과도한 집착과 지나친 욕망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세상은 환상이 아닙니다. 신데렐라가 꿈꾸어 온 세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신데렐라가 기다리고 있는 백마 탄 왕자는 바람둥이에다가 자기밖에 모르는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일 경우가 많지요. 왜냐하면 왕자들은 그렇게 자라도록 교육을 받아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백마 탄 왕자는 궁극적으로 신데렐라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 이것을 알고서 왕자와 결혼하면 신데렐라는 불행하지 않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진실한 사랑과는 거리가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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