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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에 안전벨트가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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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에 안전벨트가 없는 이유

[기고] 한수원의 '셀프 개혁안'을 보고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다. 지난 6월 핵심부품의 시험성적서 위조사건으로 밝혀지기 시작한 비리의 사슬은 고구마 줄기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원자력발전만큼 우리 사회에 과거, 현재, 미래를 망라해서 눈앞의 이익과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위험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도 드물 것이다.

한수원의 셀프개혁안을 보면서 공전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 「설국열차」에 등장한 멈출 수 없는 거대한 기차와 한수원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KTX의 경우 1000톤에 가까운 무거운 쇳덩이가 시속 300km로 달리면 사고상황에서 급정지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기차에는 안전벨트가 없다. 있으나 없으나 사고가 나면 별 차이가 없으니 처음부터 설치하지 않는 것이다.

원자력업계가 원전의 경제성보다는 안전성을 더 적극적으로 알리는 이유는 원자력은 그 자체로 위험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단순한 논리이지만 위험과 안전 사이에 과학과 기술이라는 이중 장벽을 치면 안전하다는 주장은 반박하기 힘든 객관적 타당성을 가지고 우리 앞에 버티게 된다. 하지만 끊임없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안전할까? 안전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하는 것일까?

한수원의 비리근절을 위한 대책과 원전 안전의 주장에 대한 회의적 의문이 하나의 줄기로 읽히는 것은 한수원이 기차라면 안전논리는 기차의 동력이고, 투명하고 정직한 운영은 기차의 브레이크와 같기 때문이다. 한수원이라는 기차는 이제 너무나 거대해졌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거대한 기차에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올라타고 있다는 것인데, 안전벨트와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처음부터 고려되지 않았다.

한수원의 비리는 다른 경우와는 완전히 달리 취급해야 한다. 비리가 곧 위험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에서 위험이라 함은 단순히 건물붕괴나 전기부족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 역사에서 누구도 겪어본 적이 없고, 실제로도 오랜 세월 동안 국토와 국민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형태로 전개되고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다. 2년 전에 벌어진 후쿠시마 원전사고뿐 아니라 1986년에 터진 체르노빌 원전사고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수원의 셀프개혁안은 "잘못했습니다"라는 반성이 아니다. 한수원이 말하는 투명성은 밖에서는 전혀 들여다볼 수 없는 폐쇄성일 뿐이다. 한수원 안에서 위험을 각오하고 땀흘리는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한수원하면 가장 먼저 비리를 떠올리는 국민적 의혹도 안타깝다. 하지만 고장난 브레이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고쳐야 한다.

원전업계 전체가 비리로 얽혀있다는 의혹을 벗어나고 싶다면 복잡한 근절대책 말고 국민에게 모든 것을 공개하고 스스로 감시받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위험vs안전'만큼 단순한 논리이지만, 한수원은 폐쇄성 유지와 투명 공개 사이에 또 다른 장벽을 세울지 모른다. 그 장벽이 과학과 기술일지 보안이나 경영논리 일지 알 수 없지만, 안전벨트 없는 기차에 올라탄 국민은 그저 사고가 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스마트가 판치는 이 나라에 국민들의 스마트함을 믿지 못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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