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해고를 당한 후 법정 투쟁을 통해 그 해고를 무효화시켰더라도, 그 노동자는 회사에 '낙인'이 찍히게 된다. 말도 안되는 '보복'이 돌아올 때도 있다. 이번 사례는 한창 일을 해야 할 자신의 '장년기' 15년을 회사의 부당한 '폭력'과 싸우느라 훌쩍 보내버린 한 평범한 노동자의 이야기다. (편집자)
1차 경영해고와 승소 판결
원고는 1990년 6월 해외에 본사를 둔 아트라스콥코 그룹의 회사로서 에어, 가스 컴프레셔를 비롯하여 건설, 광산장비 및 산업공구 제조 및 도소매업 등을 경영하는 아트라스콥코제조한국 주식회사(1989년 3월 10일 설립되어 상시 근로자 136명 고용, 이하 '피고 회사')에 입사하여 상무 직급의 부서장으로 근무했다.
피고 회사는 1998년 2월경 IMF 경제위기를 이유로 부서장들에게 각 부서별로 경영해고할 인원을 20명 할당한 후 명단을 제출할 것을 지시했다. 당시 부서장이었던 원고는 해고회피노력의 일환으로 먼저 무급순환휴직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하면서 명단 제출을 거부했다. 그러자 피고 회사는 원고가 근무하던 사업부의 부서장 중 유일하게 원고만을 경영해고 대상자로 선정하여 1998년 5월에 경영해고 했다.
원고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지방노동위원회에 이어 중앙노동위원회도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 피고 회사가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서울행정법원(2000. 3. 28. 선고 99구1914 판결), 서울고등법원(2000. 7. 12. 선고 2000누3902) 및 대법원(2000. 11. 24. 선고 2000두6534 판결)에서도 부당해고로 판결하여 확정되었다. 해고된 후 2년 6개월 만에 지방노동위원회부터 대법원까지 5심의 절차가 종결되었다. 워낙 경영해고의 부당성이 명백해서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었다. 당시 내가 경영해고 사건을 담당했었다.
원고는 경영해고와 관련하여 외국인 대표이사와 한국인 상무이사(인사책임자)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고, 대표이사는 벌금 200만원, 상무이사는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대표이사 등이 이에 대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가 고등법원 판결 선고 이후인 2000년 7월 25일 취하하여 확정되었다. 한편 재판과정에서 회사를 위하여 위증한 임원이 위증죄로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 노동자들은 '자본과 권력이 있는' 사용자들의 부당 행위 앞에서 한없는 약자다. 사진은 123주년 노동절 행사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
복직 이후의 불이익처분
원고는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회사에 복직했으나 피고 회사로부터 지속적으로 부당한 차별적 대우 및 불이익한 인사처분을 받았다. 원고가 복직 이후 받은 불이익처분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o 2001년 3월 1일: 원고가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복직하고 출근했으나 피고 회사는 원고를 부서장이 아닌 말단 신입사원의 업무를 부여했다. 원고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전직 구제신청을 하여 노동위원회의 화해 권고에 따라 2001년 5월 화해가 성립되었다(원고에게 1개월 이내에 현재의 자리에서 별도의 방을 만들어주고, 불이익한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약정). o 2001년∼2009년 4월: 원고는 상무 직급으로서 부서장 직위에 있으면서도 부서원 하나 없이 마케팅 업무를 수행했다. 2001년부터 2008년 2월까지는 마케팅 부서장으로, 2008년 3월부터는 멀티브랜드 부서장으로 임명되어 마케팅 및 멀티브랜드 부서장(상무급)으로 근무했다. 간부들은 사내통신망을 이용하여 정보나 자료를 검색할 수 있음에도 원고만 정보에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당했다. o 2009년 4월 13일: 2008년 말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피고 회사는 이를 빌미로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원고를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시켜 자신 퇴사를 유도하였으나 원고가 이를 거부하자 마케팅 및 멀티브랜드 부서를 타 부서로 통합하고 재배치한다는 이유로 5월 1일부터 무기한 대기발령한다고 통보했다. o 2009년 4월 17일: 피고 회사는 원고의 보직을 박탈하고 간부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회계교육에 원고만 참석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o 2009년 4월 27일: 원고가 입사한 이후 약 19년 동안 참석하던 간부회의에 원고가 출석하는 것을 막았다. o 2009년 5월 11일: 원고가 피고 회사 대표이사에게 구조조정의 부당성 및 원고에 대한 대기발령, 차별조치에 대하여 시정조치를 문서로 요구하였으나, 대표이사가 이를 거부하여 원고는 사규에 정해진 고충처리절차에 따라 외국 그룹본사에 전자문서로 알렸다. o 2009년 6월 17일: 원고가 본사 경영진에게 보낸 전자문서에 대한 답변이 6월 10일 도착하여 위 답신 내용 및 원고가 본사 경영진에게 보낸 문서를 첨부하여 전자우편으로 전 직원들에게 발송했다. o 2009년 7월 20일: 피고 회사는 원고가 ① 본사 경영진에게 보낸 문서에 대표이사를 비난하는 내용이 있다는 점, ② 회계자료를 왜곡하였다는 점, ③ 회사의 허락 없이 위 자료를 전 직원에게 발송하였다는 점을 징계사유로 하여 정직 3개월의 징계를 했다. 위 징계에 대하여 부당정직구제신청 절차를 거쳐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기각되어 확정되었다(1심 서울행정법원 2010. 8. 12. 선고 2010가합1682 판결, 2심 서울고등법원 2011. 6. 29. 선고 2010누29453 판결, 3심 대법원 2011. 9. 29. 선고 2011두18182 판결). 나는 이 소송을 1심만 대리했고, 항소심과 상고심은 원고 본인이 진행했다. o 2009년 11월 23일: 피고 회사는 2001년 복직한 이래 약 9년 동안 수발신한 이메일을 원고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조치를 했다. o 2010년 6월 21일: 대표이사가 원고에게 지속적인 불만 제기를 중단할 것을 요청하고 향후 새로운 사안이 아닌 기존 사안에 대한 불만 제기는 답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메일을 보냈다. o 2010년 7월 22일: 원고가 2009년 7월 정직 3개월 징계처분과 관련하여 인사책임자를 인사위원회에 징계 요청하고, 인사위원장을 고소한 것을 이유로 피고 회사는 1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원고에 대해 문서경고의 징계를 하였다. o 2010년 7월 23일: 단체협약에 따라 모든 임원에 대하여 임금인상을 하였음에도 원고의 임금을 동결했다. 재판과정에서 확인된 바에 의하면 직위가 변경된 다른 간부직원 한 명도 동결되었다. o 2010년 8월 16일: 서울 본사에서 대기발령하고 있던 원고를 용인시 창고직으로 발령했다. o 2010년 11월 15일: 아무런 연고도 없는 광주광역시로 발령하면서 부서원 한 명 없이 혼자 시장 개척 업무를 수행할 것을 지시했다. o 2011년 1월 14일: 20년 이상 근무하였음에도 사규에 명시된 20년 근속상을 수여하지 않았다. o 2011년 1월 21일: 2010년 성과급 지급을 위한 성취도 평가에서 다른 두 명의 평가자는 원고의 성취도를 100%로 평가했음에도 대표이사만 성취도를 0%로 평가하여 원고의 성과급을 낮게 지급했다. o 2011년 2월 8일: 원고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전직 구제신청서를 접수했다. o 2011년 2월 28일: 2011년 3월 1일부로 용인시 창고직으로 복직을 명했다. 지방노동위원회는 위 복직명령을 이유로 부당전직 구제신청을 각하하는 판정을 했다. o 2011년 4월 5일: 피고 회사는 원고에 대해 재택근무할 것을 명했다. |
2차 해고의 경위
원고는 2010년 7월 다른 임원들과 달리 자신에 대해서만 임금을 동결한 것에 대해 2010년 7월 27일부터 8월 3일까지 3차례 인사부팀장에게 임금인상분 지급 요청 메일을 보냈으나, 인사부팀장으로부터 급여인상분을 지급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원고는 7월 29일과 8월 13일 2차례 대표이사에게 임금인상분 지급 요청 메일을 보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원고는 2010년 11월 12일자로 광주로의 전직명령을 받고 대표이사에게 위 인사명령이 부당하다는 메일을 보냈다. 대표이사는 11월 15일 원고에게 전직명령 문제는 자신에게 직접 항의하지 말고 인사부팀장과 의논하라는 메일을 보냈다. 원고는 11월 16일 인사부팀장에게 메일을 보냈고, 12월 1일에 대표이사에게 인사명령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메일을 다시 보냈다.
원고는 2011년 1월 대표이사의 편파적인 성취도 평가에 의해 낮은 성과급을 받은 후 1월 24일 그룹 본사 사장에게 그룹 사규에 따라 대표이사의 부당한 전직명령과 차별적인 임금 동결 조치 그리고 낮은 성과급 지급에 대해 진상조사 및 시정조치를 요구하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원고는 그룹 본사로부터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해 4월 5일 국민신문고를 통하여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차별적 임금동결 조치, 낮은 성과급 지급, 20년 장기근속상 미수여에 대해 신고했다(고용노동부로부터는 2011년 7월 6일자로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를 발견할 수 없어 사건을 종결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대표이사는 2011년 3월 31일 인사위원회에 원고에 대한 징계를 의뢰했고, 인사위원회는 5월 13일 원고에 대한 징계해고를 의결했으며, 대표이사는 5월 17일 원고를 징계해고 한다는 통보를 했다. 원고는 2011년 6월경 서초경찰서에 대표이사와 인사책임자를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가 취하했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는 7월 21일 위 혐의에 대하여 각하결정을 했다.
회사가 주장한 징계해고 사유는 ① 종전 징계처분에도 불구하고 자숙과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회사에 계속하여 항의 메일을 보내 경영진 및 관련 부서의 업무를 방해하고, 대표이사가 더 이상 항의메일을 보내지 말라고 지시했음에도 대표이사에게 계속하여 항의메일을 보내 업무상 지시명령을 이행하지 않음, ② 회사가 제시하는 직무 및 직위를 거부하여 담당업무를 수행하지 아니하고, 노동위원회 구제 신청, 고용노동부 진정 등을 하여 사내질서를 문란하게 함, ③ 2011년 1월 24일 그룹 본사 사장에게 진정성 메일을 보내 사내 질서를 문란하게 함이었다.
구제절차의 진행
원고는 2011년 6월 13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였으나,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8월 10일 구제신청을 기각하는 판정을 했다. 이에 원고는 8월 29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하였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10월 27일 원고의 재심신청을 기각하였다.
노동위원회는 원고가 대표이사로부터 인사 및 급여 문제와 관련하여 더 이상 항의성 메일을 보내지 말라는 경고를 수차례 받았음에도 이를 고의적으로 무시하고 대표이사와 인사담당 임원에게 항의성 이메일을 계속적으로 보내고, 2011년 1월 24일 그룹 본사 임원들에게 동일한 내용으로 진정성 이메일을 보낸 것은 원고가 고의적으로 업무상 지시를 위반한 것으로 징계사유에 해당하고, 그 위반의 고의 정도나 인사위원회에서도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은 점에 비추어 보면 원고의 귀책사유로 더 이상 근로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파탄되었으므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행정소송의 제기 및 진행
원고는 2011년 11월 21일 재심판정서를 송달받고 행정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는데, 나는 행정소송 단계에서 사건을 수임해서 진행했다. 준비를 거쳐 11월 30일 서울행정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회사 측이나 노동위원회는 대표이사가 2010년 6월 21일 경고성 메일을 보냈음에도 원고가 계속적으로 항의성 메일을 보낸 점과 그룹 본사 임원들에게 진정성 메일을 보낸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2010년 6월 21일 이후에 원고가 보낸 항의성 메일은 그 이후에 새롭게 발생한 원고에 대한 임금 인상 제외, 광주로의 전직명령, 부당하게 낮은 성과급 지급 등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대표이사의 2010년 6월 21일자 메일에도 기존사안이 아닌 '향후 새로운 사안'에 대해 메일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그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2011년 1월 24일 그룹 본사 임원들에게 진정성 메일을 보낸 것은 그룹 사규의 규정에 따라 고충처리 차원에서 절차를 밟은 것이다. 국민신문고를 통한 고용노동부에의 신고나 노동위원회에의 구제신청을 해고 사유로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근로기준법에 위반된다. 이런 점을 지적하는 서면을 제출하고 3월 5일 변론준비기일, 5월 3일 변론기일을 각 진행했고 5월 24일 원고 승소 판결이 선고되었다(서울행정법원 2012. 5. 24. 선고 2011구합40615 판결: 재판장 판사 박태준, 판사 안승훈, 판사 곽상호). 회사 측이 주장하는 징계사유 하나하나가 모두 정당한 징계사유가 될 수 없다고 조목조목 비판했다.
회사가 항소했는데, 각각 서면을 제출한 후 2012년 11월 14일 1차 변론기일을 진행하고 바로 결심했다. 판결은 2013년 1월 23일 선고되었는데, 피고 회사의 항소를 기각했다(서울고등법원 2013. 1. 23. 선고 2012누16826 판결: 재판장 판사 안영진, 판사 노경필, 판사 정재오). 이유는 1심 판결 이유를 거의 그대로 인용하고, 회사가 항소심에서도 한 주요 주장에 대해 정당한 징계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고 명확히 했다.
피고 회사가 상고를 했으나, 대법원은 2013년 5월 23일자로 회사의 상고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했다{대법원 2013. 5. 23. 선고 2013두3863 판결: 대법관 양창수(재판장) 박병대 고영한(주심) 김창석}. 원고는 2차 해고된 뒤에도 2년 만에 결국 노동위원회 구제절차로부터 대법원까지 5심의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원고의 장년기를 어디서 보상받나?
원고는 회사에서 1998년 1차 해고된 이후 현재까지 15년 이상 끊임없는 불이익처분과 그에 대한 항의와 법적 구제절차로 소중한 시기를 다 보냈다. 원고가 1954년생이니 44세부터 59세까지의 기간 동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이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원고의 한창 일했어야 하는 소중한 장년기를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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