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현재 <프레시안 뷰>는 프레시안 조합원과 후원회원인 프레시앙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 외 구독을 원하는 분은 프레시안 협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유료 구독 신청(1개월 5000원)을 하면 됩니다.(☞ <프레시안 뷰> 보기)
갑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되면 으레 '○○주년'이라는 이름을 붙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곤 하는데요. 올해엔 갑오농민전쟁 120주년, 1차 세계대전 100주년이라는 게 눈에 뜁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라는 120년 전 절망에 찬 선조들의 외침이 무겁게 다가오는 오늘날입니다. 위정자들이 민심에 주목하기는커녕 외세를 끌어들여 그 민심을 짓밟으면서 나라의 운명을 재촉했던 구한말 통한의 역사 역시 동아시아 패권 경쟁이 가시화되고 있는 오늘날 다양한 시사점을 주는 것 같습니다.
100년 전 유럽에선 요즘 유행하는 말로 '유럽의 패러독스'가 대폭발했습니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이후 주요 국가 간에 세력균형체제가 형성되고 경제적 상호의존과 민간 교류가 대폭적으로 늘어나면서 '큰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기대가 대단히 컸었는데요.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 한 방으로 이러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영국의 저명한 1차 대전 연구자인 마거릿 맥밀란(Margaret MacMillan) 교수가 1914년과 오늘날의 세계를 비교한 에세이를 썼는데요. 긴 영문이지만 읽어볼 만한 글입니다.
(☞ The Rhyme of History: Lesson of the Great War)
▲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1일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
지난주에는 작년 남북관계와 한반도 관련 주요 뉴스를 소개해드렸는데요(☞ 12월 26일 발행된 <주간 프레시안 뷰> 20호 참조). 이번 주에는 올 한 해를 전망해보고자 합니다. 한반도 정세라는 게 인간의 예측 능력을 초라하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대단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요. 일단 시작은 작년보다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우선 관심을 끄는 것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신년사에 담긴 남북관계 개선 의지입니다. 김정은은 "북남사이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며 "남조선 당국은 무모한 동족대결과 종북소동을 벌이지 말아야 하며 자주와 민주, 조국통일을 요구하는 겨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북남관계 개선에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전 신년사에 비해 남북관계 개선에 상당한 비중을 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에 따라 북한이 후속 조치로 작년에 무산되었던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비롯한 남북한의 현안을 포괄적으로 다룰 회담을 제의할지 주목됩니다.
(☞ 김정은 "강성국가 건설 불바람 일으키자")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했지만 비난도 계속하고 있어 향후 태도 변화 여부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는데요. 이는 박근혜 정부가 집권 2년 차를 맞이해 적극적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문제 해결에 나서기보다는 현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데요. 작년에 북한의 도발적인 언행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원칙을 지켰다고 자평하면서 북한이 도발하면 단호히 대처하고 북한이 변하면 돕겠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했습니다.
(☞ [기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위한 여정)
한편 김관진 국방부 장관 등 정부 고위 관료들이 여러 차례 언급한 '북한의 1~3월 도발 가능성'도 주목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고, 또한 한미연합군이 강력한 대북 태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무력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물론 변수는 있습니다. 대개 2월 말이나 3월 초에 시작되는 한미합동군사훈련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이 바로 그것인데요. 이들 훈련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두 가지가 주목됩니다. 하나는 장성택 숙청 사건을 계기로 한미 양국에서 또다시 부상하고 있는 북한 급변사태 대비 훈련이 공개적으로 진행될지…. 또 하나는 미국이 작년에 이어 B-52, B-2, F-22, 핵잠수함 등 전략 무기를 공개적으로 동원해 무력시위에 나설지의 여부입니다.
만약 한미합동훈련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면 북한의 강력한 반발과 맞물려 또다시 위기가 조성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도 이를 잘 알고 있을 텐데요. 일단 작년 전략 폭격기를 동원한 것은 북한의 3차 핵실험과 뒤이은 핵 위협 및 남한의 독자적인 핵 무장론을 동시에 억제하고자 하는 성격이 짙어 올해에는 이들 전략무기들을 동원할 가능성은 낮은 것 같습니다.
북미 대화 및 6자회담 재개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이른바 '전략적 인내'를 올해에도 유지할 공산이 큽니다. 워싱턴에서는 대북 불신과 혐오감이 워낙 강해 대화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여전하고요. 특히 미국의 입장에선 협상에 실패해도 걱정이고 성공해도 걱정입니다. 북핵 협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대체, 경제제재 해제, 북미 관계정상화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요. 이는 미국이 공들이고 있는 '아시아로의 귀환', 혹은 '재균형' 전략에 엄청난 차질을 줄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대타협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것이죠. 또한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올해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이란에 이어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는 것도 정치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라고 판단할 것이고요.
반전을 야기할 수 있는 변수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의 방중 여부가 주목되는데요. 추측건대,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의 방중 조건으로 북한이 6자회담 재개의 문턱을 크게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을 겁니다. 현재 북한은 조건 없는 회담을 요구하고 있고 한미 양국은 북한이 비핵화 선행조치를 먼저 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데요. 중국은 이 사이에서 힘겨운 중재를 하고 있습니다만, 미국의 완강한 입장으로 아직 회담 재개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북한이 추가적인 핵실험 및 장거리 로켓 발사 유예,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 복귀, 확고한 비핵화 의지 천명 등 사전조치를 취해주길 내심 바라고 있습니다. 아마도 시진핑은 이러한 사안들을 김정은 방중 수락 여부의 지렛대로 삼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진핑에게도 고민은 있겠죠. 북미 대화와 6자회담 재개에 대한 미국의 확답이 없는 상태에서 북한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북미 간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면 한국이 중국과 손을 잡고 6자회담의 문을 열려고 노력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에는 맞잡았던 손을 놓고 서로 삿대질하는 사이로 돌변했었죠. 박근혜 정부 1년 차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는데요.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가 잃어버린 한중 공조를 복원할 것인지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6자회담 재개야말로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인 관리와 문제 해결, 그리고 격동의 동아시아 시대에 한국이 생존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유력한 발판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좋을 텐데요. 아직 기대하긴 힘듭니다만 국민들은 계속 요구해야겠지요.
구한말이 주는 핵심적인 교훈은 국민을 적으로 만드는 정권에게 나라의 미래는 없다는 것입니다. 1000만 명 이상의 전투원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1차 세계대전 역시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 사이의 전략적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지 못하면 경제적 상호의존과 민간 교류의 증대가 결코 전쟁을 막아주는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일까요? 오늘날 한반도에서,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에서 유사한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러한 걱정을 기우로 만들기 위해 올 한 해에도 여러분과 힘차게 정진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