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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에 갇힌 미국, 사기꾼 대통령, 벼랑 끝 한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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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에 갇힌 미국, 사기꾼 대통령, 벼랑 끝 한국 경제

[주간 프레시안 뷰] 2013 5대 뉴스 ② 경제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 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 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현재 <프레시안 뷰>는 프레시안 조합원과 후원회원인 프레시앙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 외 구독을 원하는 분은 프레시안 협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유료 구독 신청(1개월 5000원)을 하면 됩니다. (☞<프레시안 뷰> 보기)

■ 지속적 침체(secular stagnation)와 양적 완화 축소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으로 일본까지 가세한 '양적 완화'란 돈을 풀었다는 의미입니다. 각국의 중앙은행은 경기가 나빠지면 금리를 낮추기 위해 돈을 풀죠. 주로 시중 은행이 보유하는 단기 국채를 사들여서 통화량을 늘리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양적 완화가 별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정책을 '비전통적(non traditional)'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의 대차대조표가 한눈에 보여 줍니다.

▲ 미국 연준의 대차대조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2007년까지 미국 연준은 단기 재무성증권(짙은 푸른색)을 매매해서 통화량을 조절해 왔습니다. 이것이 전통적 방법이라면 2009년부터 민간의 부실채권(MBS, 모기지에 기초한 증권, 갈색 부분)과 장기 국채를 직접 사들이는 방식을 추가했습니다. 단기 명목 이자율이 0에 가까워지면 더 이상 낮출 방법은 없죠. 그런데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니까 이제 장기 이자율까지 정책 목표로 삼아 민간 채권을 직접 사들여서 통화량을 증가시킨 겁니다. 그 결과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3배 이상 부풀어 올랐고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세 차례에 걸친 양적 완화로 본원통화(M1)는 4배 증가했습니다.

▲ 주요국 본원통화와 광의통화(M2)의 추이. ⓒ금융감독원

이론으로 말하자면, 돈이 풀려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실질 이자율은 마이너스(-)가 될 것이고 사람들은 반강제로 소비에 나설 수밖에 없겠죠. 2010년 '재정 위기'를 맞은 유럽연합(EU), 그리고 아베노믹스를 내세운 일본 역시 미국을 뒤따랐습니다. 일본은행은 아예 2%의 인플레이션을 목표라고 공포했죠. 1980년대 이래 각국 중앙은행은(당연히 한국은행도) '물가 안정'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추구했고 그것이 중앙은행 독립성의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정반대의 목표를 추구하다니 과연 '비전통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말하자면 전 세계가 '돈의 쓰나미'를 맞은 겁니다. 하지만 현실의 돈을 의미하는 광의의 통화(M2)는 그만큼 증가하지 않았습니다('주요국 본원통화와 광의통화(M2)의 추이' 참조). 쉽게 얘기하면, 풀린 돈이 투자와 소비로 연결되지 않고 금융 기관 사이에서 맴돌고 있는 거죠. 이런 현상은 통화승수(M2/M1)의 하락으로 표현됩니다. 달러의 통화승수는 2008년 8월 말 9.2에서 2013년 6월 말 3.3으로, 유로는 8.6에서 7.0으로, 그리고 엔은 11.8에서 6.7로 떨어졌습니다. 한마디로 돈이 돌지 않고 있는 겁니다. 케인스가 '유동성 함정'이라고 표현한 현상이죠. 하여, 경제 상황을 정확히 반영한다는 주가는 미국에서 이미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전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100% 이상 올랐고 부동산 시장마저 들썩거리지만 고용은 별로 회복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미국의 실업률과 고용률의 비동조화 현상. ⓒ새로운사회를위한연구원

금융 위기 직후 10%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지난 5월 7%대에 도달했고, 연준은 6.5% 이하로 떨어지면 양적 완화 정책을 서서히 거둬들이겠다고 발표했죠(사실 이런 예고 정책도 '비전통적'입니다). 하지만 <그림3>을 보면 고용률도 동시에 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아예 구직을 포기해서 통계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많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곧 임기를 끝낼 버냉키는 12월에 고집스럽게도 양적 완화 축소 정책을 실행했습니다. 물론 매달 750억 달러어치의 채권 매입을 650억 달러로 줄인 데 불과하니까 본격적인 양적 완화 축소라기보다는 양적 완화의 속도를 늦췄다고 표현하는 게 더 옳을 겁니다.

양적 완화를 축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앞으로도 미국이 더 빠른 속도로 양적 완화 축소를 단행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우선 현재는 인플레이션보다는 경기 침체와 실업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이래 진행된 금융 세계화로 인해 미국의 정책은 자본 이동을 통해 전 세계를 뒤흔듭니다.

자본의 이동을 결정하는 것은 환율, 이자율 격차, 그리고 글로벌 위험성인데 이 정책은 모든 면에서 위에서 거론한 나라들은 물론 다른 신흥 시장들까지 일거에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으니까요.

선진국들의 양적 완화로 돈은 신흥 경제로 몰려갔고, 이들 나라에 이른바 '버냉키 버블'이 형성되었는데 이젠 '버냉키 쇼크'를 계기로 돈이 빠져나가 거품이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거죠. 특히 동남아 국가들은 1997년 외환 위기의 진원지였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2월에 실제로 양적 완화 축소를 단행했을 때 세계 금융 시장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정책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전망 : 장기 침체

앞으로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까요? 우선 차이메리카(중국과 미국의 시대) 시대는 끝났습니다. 과거에 엄청난 무역 흑자를 낸 중국이 미국의 국채들 사들이고 미국은 그 돈으로 다시 소비를 늘리는 상황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죠. 중국은 1994년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외환 보유액의 60% 정도를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데 썼습니다. 이를 통해 중국은 위앤화 가치의 가파른 절상을 막을 수 있고 미국은 이자율(약 1%)을 떨어뜨릴 수 있었죠.

하지만 중국은 앞으로 수출 주도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국내 소비를 늘리려는 쪽으로 정책 기조를 바꿨습니다(2011년 3월의 12차 5개년 계획과 11월의 3중전회). 즉 글로벌 불균형과 국제 통화 체제라는 면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고 양적 완화와 같은 비전통적 정책이 더 이상의 침체를 막을 수는 있지만 실물 경제의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새로운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깁니다.

중국의 <신화통신>은 지난 10월 13일 "한 위선적인 국가에 의해 세계가 좌지우지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는 논평을 실었습니다. 가히 선전포고라고 할 만합니다. <신화통신>은 관영 언론이고, 이 논평은 중국 지도자들의 뜻이라고 보아야 하니까요. 이 글은 "탈(脫) 미국화 개혁의 핵심으로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기축통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새로운 세계 질서가 들어서야 한다. 여기서는 크건 작건, 부자건 가난하건 모든 나라가 그들의 핵심 이익을 존중받고 공정한 입장에서 보호받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타협의 길이 없는 건 아닙니다. 예컨대, 다극 질서에 맞게 복수의 국제 통화를 택하고 IMF에서도 미국이 거부권을 포기해서 거버넌스를 바꾸면 됩니다. 하지만 그건 미국이 누리던 특권을 일정 부분 포기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자국의 디폴트 상황에서도 벼랑 끝까지 맞서는 미국의 정치가 이런 어마어마한 결정을 택할 수 있을까요? 불행하게도 다시 위기는 찾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전환기 한 복판에, 지리적으로도 양국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겁니다.

11월 들어, 로렌스 서머스와 폴 크루그먼은 현재의 상황을 지속적인 침체(secular stagnation)라고 진단하며 마이너스 실질 금리 상황은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장기간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얘기죠. 미국 정부의 재정이 공화당에게 묶여 있는 동안 빈부 격차는 더욱 심해질 겁니다. 침체는 더욱더 장기화하겠죠. 양적 완화는 세계 경제를 공황 상태로 빠지는 걸 막았습니다. 하지만 실물 경제는 여전히 침체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 TPP에 한국은 참여할 것인가?

1972년 이래, 미국의 대 중국 전략은 경제적 포용(engagement)과 군사적 봉쇄(containment)입니다. 이를 합쳐서 '봉쇄 포용(congagement)' 전략이라고 부르죠.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의 외투를 입고 경제 성장에 주력했고 미국 역시 '대순항(Great Moderation)'의 호시절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는 모든 상황을 뒤바꿔 버렸습니다. 우선 경제면에서 양국의 밀월관계에 금이 갔고, 미국으로선 그저 포용만 할 수는 없게 됐죠. 미국이 중국의 제조업 제품을 수입하고 중국은 무역 흑자로 미 재무성 증권을 사서 달러를 되돌려 주는 '차이메리카'라는 아름다운 공생관계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진 거죠. 이제 포용보다는 간섭, 나아가서 환율 전쟁과 같은 갈등이 수면에 떠오르고 있습니다. 미국이 참여하기로 선언해서 갑자기 커져 버린 TPP는 중국 주변국의 경제 제도를 미국식으로 개조할 겁니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가 동시다발적으로 중국에 압력을 가하게 될 겁니다. TPP의 플랫폼이 한미 FTA+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군사 봉쇄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재정 적자가 이미 천문학적인 데다 공화당은 정부 폐쇄라는 극약 처방까지 꺼내서 정부 부채 비율 축소를 요구하는 판이죠. 당연히 미국은 한일 등 동맹국에게 제공되던 대중 봉쇄의 비용을 떠맡기 원합니다. 더 이상 핵우산에 무임승차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을 거란 얘기죠. 아시아판 미사일방어체제(MD)에 참여하라고 강요하거나 미군 기지의 신설, 또는 재배치 비용을 떠넘기는 게 대표적 예입니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내세웠던 하토야마 총리의 민주당 정권은 하텐마 기지 이전과 소비세 인상 문제로 허망하게 무너졌죠. 아베 총리는 이런 국제적 상황을 우파의 오랜 염원인, 일본 재무장화에 이용했습니다. 한국과 중국 간의 영토 분쟁, 역사 분쟁은 아주 유용한 수단이었죠.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요구를 수용했고 그 대가로 일본은 TPP 참여를 결정했습니다. 아베의 '세 번째 화살', 충격에 의한 내부 개혁이 바로 그겁니다.

도광양회 대신 중국이 내세웠던 평화 발전은 주변국에게 '패권굴기'로 비쳤습니다. 2010년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 중국과 영토 갈등을 일으킨 나라들은 중국이 얼마나 무섭게 성장했는지 체감했고, 결국 줄줄이 미국 품으로 달려갔죠. 제가 보기에는 중국 정부의 뼈아픈 실수입니다. 10여 년 이상 공들여온 아세안 나라들과의 관계도 망가졌으니까요. 그 결과 TPP는 미국의 원래 구상보다도 더 커졌습니다. 중국은 태연한 척, 언뜻 참여 의사까지 내비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미 FTA보다도 더 강해진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분야의 독소 조항은 물론이고 새로 추가된 '국유 기업 분야'까지 중국이 수용하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지난 3중전회에 제출된 개혁들이 무사히 완수된다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또 다시 맞은 갑오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다른 12개국 시민과 힘을 합쳐 TPP 협상의 공개를 요구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현재 협상 중인 한중 FTA를 RCEP(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의 플랫폼으로 완전히 다시 짜야 합니다. 여기에 외환 보유고의 공동 관리를 포함한 금융 협력, 환경 협력, 에너지 협력 등을 집어넣어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두 손 벌려 환영하도록 할 수 있다면 TPP 역시 예의 독소 조항을 제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요컨대 TPP와 RCEP가 아시아 주변국들을 향해 구애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셋째로, 어차피 우리가 이 지역의 방위 비용을 내야 한다면, 동아시아 공동 안보 체제를 만드는 편이 대중국 봉쇄망보다 훨씬 안전할 테죠.

■ 공약의 파기

금년 한국의 경제 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근혜본색, 줄푸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민들의 요구인 경제 민주화와 보편 복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2006년 구호이자 본령인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은 세운다)'는 경제 민주화-보편 복지와 절대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대선 과정에서도 이미 경제 민주화와 줄푸세는 다른 것이 아니라는 황당한 얘기를 하더니, 박 대통령은 2월 22일 경제 민주화에 대한 유권 해석을 내렸습니다. 경제 민주화란 "어디를 내리치고 옥죄는 게 아니라 각 경제 주체가 열심히 노력하고 땀 흘려서 일하면 꿈을 이룰 수 있고, 성공할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며 "누구의 희망을 꺾자는 것이 아니"랍니다.

여기서 내리치고 옥죄어서 희망이 꺾일 주체는 물론 재벌입니다. 박 대통령의 이어진 말은 그의 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피부에 와 닿게 확실하게 규제를 풀어(야 하며) 그냥 찔끔찔끔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격화되는 국제 경쟁 때문이랍니다. 그에게 경제 민주화란 재벌 규제가 아니라 경쟁적 규제 완화인 겁니다.

예를 들어, 재벌의 무분별한 하도급 단가 인하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몇 배의 벌금을 물리는 것은 "어디를 내리치고 옥죄는" 규제를 추가하는 것이니 해선 안 될 일이겠죠. 즉, 그는 대선 때의 가면을 벗고 5년 전 공약이었던 '줄푸세'로 명명백백하게 돌아갔습니다. '근혜본색'이죠.

이어서 박 대통령은 자신이 내세웠던 복지 공약도 줄줄이 폐기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복지 공약 수정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공약 수정은 없다'고 강조해왔다. 인수위원회 시절인 지난 1월 대선 공약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자 박 대통령은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통해 "'공약을 모두 지키면 나라 형편 어려워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쐐기를 박았죠. 정부 출범 뒤 3월 18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하나도 빠짐없이 공약을 지키라"고 주문했습니다. 당시에도 청와대는 여권의 복지 공약 수정론에 대해 "복지 공약을 지키지 말라 하니 굉장히 당황스럽다"고 불쾌함을 드러낼 정도였습니다.

▲ 박근혜 정부 1년, '근혜 본색'이 드러났다. ⓒ연합뉴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공약 뒤집기는 곧 시작됐죠. 대선 공약집에서 박 대통령은 '4대 중증 질환 총 진료비'를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모두 포함해 모두 무료로 해주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6월 26일, 보건복지부는 '4대 중증 질환 전액 국가부담' 공약의 이행방안에서 고가 항암제와 MRI 등에 한해서만 건강보험을 적용시키고 의학적 비급여 일부에 대해서만 진료비 20~50%를 지원하고 가격을 통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기초연금 공약은 노인 표를 끌어 모았죠. 그러나 논란 끝에 소득 70% 미만 일부 노인에게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 10~20만 원을 차등 지급하는 것으로 축소해서 사실상 공약은 파기되었습니다.

2014년부터 무상 교육을 매년 25%씩 확대해 2015년 50%, 2016년 75% 실시한다는 것이 공약이었지만, 올해 이에 대한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320만 채무 불이행자의 신용 회복을 지원하고 서민 과다 채무를 해소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 공약의 핵심은 18조 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설립한다는 것인데, 이 기금 규모가 1조 원 미만으로 축소되어 사실상 공약 이행이 시늉에 그쳤습니다.

또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안전우선주의에 입각한 원전 이용'과 '국민 여론을 수렴, 향후 20년간의 전원 믹스를 원점에서 재설정하며, 추가로 계획하고 있는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하에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2035년까지 핵발전소를 현재 23기에서 41기까지 늘리는 것을 뼈대로 한 2차 에너지기본계획(2013~2035년)안을 내는 과정에서 단 한 차례도 국민들의 의사를 물은 적이 없습니다.

■ 동시다발적 민영화

박근혜 대통령은 가을로 접어들면서 모든 분야의 민영화를 한꺼번에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기실 이 민영화는 문민 정부가 '세계화'를 외친 이래 기획돼 외환 위기를 거친 후 국민의 정부가 'IMF 조건'을 실천했으며 참여정부 역시 무슨 무슨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야금야금 진행해온 일이었죠. 삼성 등 재벌은 마지막 남은 '황금의 땅'인 공공 서비스 부문을 집어삼키고 싶어 합니다. 목표는 전기, 철도, 가스, 우편, 수도 등 네트워크 산업, 그리고 건강보험입니다.

재벌의 이 장기 기획은 한미 FTA에 이르러 돌이킬 수 없는 외길 수순이 되었습니다. 아뿔싸, 재벌들이 보기에 참으로 기꺼웠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의 촛불에 놀라 주춤거렸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거침이 없습니다. 과거의 정권들은 국민들의 눈치를 보아 가며 하나 또는 두 분야의 민영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그는 '투자 활성화'라는 이름하에 철도, 의료, 교육을 단숨에 시장에 넘기고 이제 가스마저 넘보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11월 18일의 국회 시정 연설에서 "제조업, 입지, 환경 분야 중심으로 추진돼 온 규제완화를 전 산업 분야로 확산해 투자 활성화의 폭을 넓혀가고자 의료, 교육, 금융, 관광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나갈 것이다"고 발언했습니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11월 27일 '금융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신제윤 위원장은 이 방안이 박근혜 정부의 금융 청사진이라고 했습니다. "(금융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의 가장 큰 주제는 새로운 시장과 역할을 찾아나서는 금융 회사에 '무한한 기회'를 열어주고 그렇지 않은 회사들은 '경쟁의 압력'을 통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라며 "(금융사 간) 경쟁을 저해하는 규제를 없애고 금융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겠다"는 것이죠. 그는 심지어 "세계적인 추세가 재규제에서 약간씩 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는데요. 제대로 거시 건전성 규제를 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규제 강화가 제대로 안 돼서 새로운 금융 위기를 맞을 거라고 경고한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앨런은 과연 금융을 제대로 몰라서 그러는 걸까요?

철도의 개방과 민영화도 문제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월 4일 프랑스 방문 때 현지 기업인들에게 "도시 철도 시장 개방과 관련해 정부조달협정 비준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해서 우리 국민은 비로소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 개정 의정서가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리고 15일 박대통령이 비준을 재가했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확인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재가한 개정 의정서는 도시철도(지하철) 운영, 지하철과 일반철도의 설계·건설·감독을 비롯해 시설의 유지·보수 등과 관련된 정부조달사업에 세계무역기구 가입 국가가 국내 기업과 똑같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12월 '수서발 KTX'를 운영할 주식회사를 설립을 실행했습니다. 물론, 정부는 새로운 수서발 KTX주식회사가 "철도공사 지분이 30%, 연기금 등 공적 자금 70%"로 해서 정부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죠. 그러나 국회 국정 감사에서 연기금은 그런 결정을 한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설령 대통령의 지시로 연기금 지분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한국철도공사와 분리된 주식회사는 연기금이 지분을 매각하면 민영화의 길로 들어설 것이 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발적 민영화'와 '개방(한미 FTA나 WTO 정부조달협정)'이 연결되면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예컨대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형 사고가 빈발해도 다시 공기업 체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철도 민영화, 추진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경제 민주화, 복지 공약 등에서의 후퇴에 이어, 철도 민영화 추진 중단 공약도 파기하고 있는 거죠.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세계는 아직도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바로 위기를 촉발했던 시장 만능주의 정책, 그 한국식 번역인 '줄푸세'를 빠른 속도로 추진하는 박근혜 정부. 정치와 함께 경제에서도 시대착오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11월에는 정부가 민간 사업자의 액화천연가스(LNG) 직도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연히 가스 수급 안정성이 악화되고 요금도 인상될 거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는 12월 2일 국회 앞에서 '실질 임금 쟁취 및 가스 민영화 저지를 위한 경고 파업' 기자 회견을 열고 '도시가스법 개정안'이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할 경우 필수 인원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낸 '천연가스 직도입 확대가 가스 및 전력 시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직도입 사업자는 천연가스 가격이 낮은 시기에는 값싼 연료를 도입하겠지만 가격이 오를 때에는 직수입 대신 가스공사를 통해 천연가스를 공급받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본색은 12월 13일의 '4차 투자 활성화 대책'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2차 대책'에서 수도권 규제가 풀렸다면, 이젠 네트워크 산업과 의료 민영화가 대상이 된 겁니다. 이번 대책의 특징은 공기업 자회사라는 우회로를 택했다는 점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의료법인이 영리회사를 자법인으로 둬 관광호텔·여행 등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병원은 수익을 의료업에 투자해야 하는 비영리법인으로 두더라도 자법인의 수익은 법인 구성원에게 배분할 수 있게 된 거죠. 만일 의사가 의료 기기, 의약품 영리자회사의 제품, 심지어 호텔과 여행까지 포함된 치료 패키지를 제시하면, 어떤 간 큰 환자가 거부할 수 있을까요? 결국 건강보험의 비급여 부문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건강보험은 무력화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건강보험까지 포함한 민영화를 걱정하고 있는 겁니다. 한 마디 덧붙이면 정부는 자회사의 이익을 모기업의 공공성 강화에 쓸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건 자회사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경제학에서 말하는 '터널링'에 해당합니다) 배임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공교육 기반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12월 13일 연간 교육비가 5000만 원대에 달하는 국제학교의 잉여금 배당, 외국학교·국내학교 법인의 합작설립, 방학 중 영어캠프 등을 허용했습니다. 투자 활성화를 앞세워 국내외 대자본에 값비싼 교육 상품을 만들어 팔 수 있는 물꼬를 터줬고, 정부가 사교육과 비싼 특권 교육을 부채질하고 있는 셈이죠. 교육 부문은 학부모의 '선택권'을 확대해 주는 데 비례해서 공공성이 무너집니다. 지금 한국 교육은 수능 점수 등 등수 올리기를 향한 무한경쟁체제인데 '다양한' 학교 형태란 그런 점수 따기에 용이하도록 만들어질 게 틀림없으니까요. 외국어고, 특목고, 자사고 등이 모두 그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민영화를 막는 정도가 아니라 공공성을 확대하는 개혁안도 내 놓아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정당이 원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민주당은 이참에 확실히 당론을 정해야 합니다. 만일 여전히 과거에 추진했던 정책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렇다고 선언하는 편이 낫겠죠.

두 번째의 걸림돌은 공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입니다. 세계 어느 정부나 본격적 민영화에 앞서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과 부채, 철밥통 고임금 등을 폭로했습니다. 관료적 경직성이나 '참호 파기'는 모든 거대 조직이 지니고 있는 것이지만, '내 돈으로 한다'는 것 때문에 분노가 폭발합니다.

따라서 반대의 목소리만 높일 것이 아니라 동시에 공공 기관 노조와 시민, 그리고 정당이 함께 공공성을 강화하는 개혁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공공 기관은 시민의 세금으로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니 시민이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2011년 이래 공공기관 노조, 시민단체, 그리고 일부 국회의원이 주도한 '공공기관을 서민의 벗으로' 운동은 이제 결실을 맺어야 합니다.

한 손으론 반대의 촛불을, 다른 한 손으론 개혁의 청사진을 치켜들지 못한다면 우리들의 소중한 재산은 물론, 아이들의 삶도 재벌들의 손에 넘어가고 말 겁니다.

■ 가계 부채와 실패한 부동산 정책

올해 가계 부채가 100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2002년 말 465조 원 수준이었던 가계 부채는 연내 1000조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나라 GDP와 맞먹을 정도의 규모니 이 자체로 문제입니다.

또한 가계 부채의 질도 악화되고 있습니다. 제2금융권, 사채 쪽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거죠.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2008년 말 149.7%에서 올 9월 말 169.2%로 5년간 무려 19.5%포인트 상승했습니다. 미국은 2008년 말 132.7%에서 지난해 말 114.9%로 하락했고, 영국(151.9%), 일본 (131.1%), 독일(95.2%) 등과 비교해도 국내 가계부채 상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빚이 아래쪽으로 전가되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지난 11월의 한은 보고서를 보면 임대업을 하는(즉 전세를 주는) 부자들의 빚이 줄어들었는데요. 한은은 전셋값을 올려서 자기 빚을 갚은 거라고 분석했습니다. 즉, 세입자가 빚을 내서 전세금 증가분을 충당했다면 부자의 빚이 아래쪽으로 전가된 거에 다름 아닙니다. 전세금 대출이 60조원에 이르렀는데 금년 가계 부채 증가의 주원인입니다.

우리 가계 빚은 집을 얻으려고 빌렸거나, 집을 담보로 해서 빌린 게 대부분입니다. 주택담보대출이 411조4000억 원이죠. 이럴 때 모두 집값이 떨어질 거라고 예상하면 전체가 다 문제가 될 수 있죠.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곧바로 금융위기로 갈 수 있습니다. 예컨대 담보로 잡힌 부동산 값이 20% 떨어지면 LTV(Loan to Value)를 맞추기 위해 상환해야 할 원리금이 늘어납니다. 결국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거죠.

금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한마디로 '잘해 줄 테니 집 사라'는 겁니다. 전셋값 상승에 대한 대책도 '돈 빌려 줄 테니까 집 사라'고 하는 거였죠.

하지만 보통 사람의 경우 집값이 떨어질 확률이 반반이라고 하면 전 재산이 걸린 주택 구매를 단행하긴 어렵겠죠.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될까요? 1년 내내 정부가 정책을 내 놓았지만 결국 실패한 건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모든 정책에는 '행복'이라는 낱말이 붙어 있는데요. 원래 2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던 '행복주택'은 애초에 '철도 유휴부지 등 국공유지에 짓는 임대주택'으로 규정됐었죠. 하지만 철도 유휴부지, 역 근처 공영주차장 및 유수지 등을 모두 긁어모아도 3만8000가구 공급에 그쳤고, 정부는 아예 행복주택 개념을 아예 바꿔버렸습니다. 행복주택이란 '직장과 주거지역이 가까운 곳에 젊은 층이 사는 저렴한 임대주택'이라고….

출시 이후, 단 2건만 판매된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I'도 사실상 폐지되고 은행이 자율적으로 취급하는 틈새상품으로만 명맥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의 1998년 교수 시절 논문을 정책으로 만들었지만, 무능만 증명한 셈이죠. 하지만 집값을 올려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기조는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정부 1년, 동아시아의 질서는 격동하고 있는데 2008년 금융 위기로 이미 파산이 선고된 '줄푸세', 즉 신자유주의 정책만 난무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내년에 또 하나의 위기를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외환보다는 정부가 스스로 키운 내우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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