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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수가 많아지면 임대 주택도 커지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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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수가 많아지면 임대 주택도 커지는 나라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의 안정적인 주거 문화 ②

한국의 IMF 사태에 따라 환율이 급등하면서 경제적인 문제가 궁핍한 수준을 넘어서 고통으로 변해갔다. 주변에서 돈을 빌리기도 했지만 한 번은 돈이 똑 떨어졌다. 장을 보지 못해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거의 거저라고 할 수 있는 밀가루로 일주일가량 수제비만 먹기도 했다.

그래서 베를린을 떠나 독일의 서북쪽에 있는 뮌스터(Münster)라는 도시로 옮겨가기로 했다. 베를린에서는 돈을 내고 사설 어학원을 다녀야만 했는데, 뮌스터에서는 무료로 대학의 어학코스를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어학 코스의 학생들도 대학에서 운영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베를린은 비록 수도이기는 했지만 주로 정치와 문화의 도시라서 재정 형편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학에 외국 학생들을 위한 독일어 초급 과정은 없고 중급 과정만 개설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노드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州)의 뮌스터 대학에서는 초급 과정부터 개설하고 있어서 옮겨가는 게 유리했다. 이처럼 독일에서는 교육 관련 사항이 16개 주 정부의 자치 권한에 속했다. 덕분에 대학 등록금이나 교과 과정 등을 각 주별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 숲 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가족. ⓒ조성복

독일에서는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우선!

뮌스터는 종교적으로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인구 30만 정도의 대학 도시로 약 4만 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인데, 특히 신학이 유명했다. 도시 중앙에는 둘레 길이가 2킬로미터가 넘는 아제(Aasee)라는 큰 호수가 있었다. 또한 이곳은 독일에서 자전거를 많이 타는 도시로도 유명했는데 실제로 구석구석까지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기숙사 주변에는 학생들이 다른 도시로 옮겨가면서 버리고 간 소위 '자전거 무덤'이라는 곳도 있었다. 우리 부부도 거기서 쓸 만한 것들을 찾아내 조립하여 도시 전체를 누비고 다녔다. 친환경 도시가 무엇인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거리에 보행자, 자전거, 자동차가 동시에 움직일 때 누가 우선권을 갖는 게 가장 합리적일까? 독일의 거리를 관찰한 바에 의하면 자전거, 보행자, 자동차 순서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럴까 고민을 했었는데, 세 주체가 움직이다가 멈추었을 때 가장 불편한 측이 바로 자전거이기 때문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은 당연히 보행자, 자동차 순이다. 그래서 자동차 운전자들은 보행자보다 속도가 빠른 자전거의 움직임에 항상 신경을 많이 쓰고, 거의 대부분 반드시 양보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와 자전거가 동시에 달리다가 자동차가 우회전하려는 경우, 자동차는 당연히 기다렸다가 달려오는 자전거를 보내고 지나간다. 그런데 어쩌다가 한 번씩 자전거보다 먼저 지나가려고 거꾸로 달려오는 자전거를 세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독일 사회에서 대단히 몰염치한 처사이다. 이럴 때 다혈질의 자전거 이용자는 가운뎃손가락을 높이 치켜세우며 지나가는 운전자를 쏘아본다. 아마도 "x 먹어라!"는 뜻일 게다.

몇 해 전부터 한국에서도 열풍이 불어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한국에서는 자전거와 자동차의 우선 순위가 어떨까 궁금했는데, 최근에 자전거를 탈 기회가 많아지면서 바로 알게 되었다. 만일 독일의 자전거 이용자들이 우리의 거리를 달린다면 아마도 짐작하건대, 어쩌다가 한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가운뎃손가락을 높이 치켜들고 다닐 것이 확실하다.

독일에서는 일반 도로에 자전거 도로가 따로 없을 경우, 자전거는 반드시 차도를 이용하도록 되어있다. 차도에 차들이 많아 자전거를 타기 어려울 경우에는 자전거를 내려 보도에서 끌고 가면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보도에서 자전거 타고 가는 것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아마도 보행자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 같다. 실제로 베를린에 살 때 차도가 혼잡하여 자전거로 보도를 달리다가 경찰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이 경우 10유로 정도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그는 우리가 외국인이라 잘 몰라서 그랬을 거라며 주의만 주고 보내주었다.

공공 임대 주택도 너무 좁으면 안 돼

뮌스터에서는 12제곱미터 크기의 작은 기숙사 방을 하나 받았는데, 한 달에 265마르크(약 13만 원)를 냈다. 주방과 화장실은 같은 층의 여러 학생과 공동으로 사용하였고, 방에는 침대 겸용 소파, 책상, 책꽂이, 개수대가 각각 하나씩 있었다. 또 대학의 무료 어학 코스를 다니게 되었고, 학생 신분이 되면서 교통비가 저절로 해결되어 한 달 비용이 베를린과 비교해 절반 이하로 많이 줄어들었다.

대학생은 학교에 등록하면 '학기 티켓(Semesterticket)'을 받는데, 그러면 한 학기 동안 버스나 전철, 그리고 도시 주변 일정 범위 내의 기차 등을 무한정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것은 특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을 사회적 약자로 보기 때문이다. 또한 이에 대한 비용으로 해당 지역의 크기와 재학생 수 등을 감안하여 학교에 등록한 모든 학생이 매 학기 약 100~150유로(약 15~22만 원)를 냈으니 공짜는 아니다.

이사를 하면 구청에 신고해야 하는데, 불가피하게 집사람의 주거지를 다른 곳에 두어야 했다. 그 기숙사 방에는 한 사람만 살 수 있고, 그래서 한 사람밖에 등록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이런 규정이 있나 의아스러웠지만, 나중에 그것이 옳다는 것을 실감했다. 왜냐하면 이곳에 사는 몇 개월 동안 독일에 살던 다른 기간에 비해 집사람과 가장 많이 다툰 것 같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이 적당한 주거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스트레스가 많이 생긴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실험을 해보면 알겠지만 실제로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같이 살면 반드시 싸우게 되어있다.

나중에 사회적 약자들이 우리식의 공공 임대 주택(Sozialwohnung·사회 주택)에 들어갈 때에도 일정한 제한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면적이 40제곱미터 이하인 집에는 독신인 경우에만 입주가 가능했다. 가족의 수가 많아지면 들어갈 집의 면적도 당연히 커졌다. 즉 돈이 없으니 좁더라도 싼 집에서 살겠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가난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헤칠 수 있는 상황에 내몰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이리라.

그런데 한국은 공공 임대 주택의 입주자를 선정할 때, '다자녀 우선'이라는 기준에 따라 5~6명의 가족을 49~59제곱미터의 조그만 집에 우선적으로 배정하고 있다. 그것조차도 감지덕지라는 뜻일까? 우리는 왜 독일과 같은 기준을 갖지 못하는지, 그러한 결정은 누가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최소한 다자녀 우선을 기준으로 작은 집에 배정하는 것은 재고되었으면 한다.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 독일의 안정적인 주거 문화

① 무작정 오른 유학길, 독일에 가보니 '0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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