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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봉제 장인들, '멋지게!' 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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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봉제 장인들, '멋지게!' 일 냈다

[전순옥·권은정의 D-프로젝트] <7> 서울 의류·봉제협동조합 박귀성 이사장

창신동 골목은 동네시장 주변이 그렇듯 다정한 느낌이 있다. 작은 가게들이 올망졸망 서로 의지한 채 이어져 있고 가게주인들이나 지나가는 행인들이나 서로에 대한 살뜰한 마음을 아끼지 않는 듯하다. 얼핏 보면 여느 동네풍경과 다름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창신동 골목길은 깊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우리나라 봉제산업의 젖줄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시장을 비롯해 동대문 일대 패션산업을 지탱하는 힘이 여기에서 나온다. 구불구불 골목을 따라 어디선가 봉제인들이 쉬지 않고 돌리는 미싱에서, 날마다 옷들이 만들어진다. 여성복을 주로 하는 창신동 647번지 일대, 남성복을 주로 하는 42번지 일대는 그래서 옷을 생산해 내놓는 드넓은 밭인 것이다. 최근 이 밭 한가운데에 듬직한 공간이 생겼다. 고된 일을 하다가 잠시 들러 숨을 돌리기도 하고, 또 중요한 일이 생기면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이름은 '서울 의류·봉제협동조합'. 봉제공장 운영자들과 봉제인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꾸렸다.

▲ 서울 의류·봉제협동조합 박귀성 이사장 ⓒ프레시안(손문상)

조합을 책임지고 꾸려가고 있는 박귀성 이사장을 만나러 건물 이층 사무실에 들어섰다. 결코 넓다고 말할 수 없는 공간에 회의용 넓은 테이블이 눈에 띄었다. 매주 조합 임원들이 모여 회의하는 곳이다. 사무실 정면 벽에는 협동조합 조직도가 시원스레 붙여져 있다. 이사장을 필두로 부이사장, 총괄운영위원장, 총괄이사, 자문위원단, 감사단이 있고 기획부, 사업부, 교육부, 홍보부, 여성부, 디자인부로 나눠져 있다. 팀마다 운영위원장을 포함한 이사들이 6~9명씩 포진해 있다. 전체 임원단과 실무팀인 사무장과 과장을 포함해서 약 6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아주 넓진 않아도 협동조합 사무실이라니! 감개무량한 일이다. 협동조합을 만든 지 아직 1년이 안 됐다. 하지만 박 이사장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간 것 같다고 한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왜 이리 많은지, 마음이 바쁘다. 자신의 공장을 운영하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으니,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한다. 공장에 나가서 일을 처리하고 사무실에 들어서기 바쁘게 약속이 줄지어 기다린다. 그리고 회의도 해야 한다. 오전에 임원회의가 잡혀 있다면서 인터뷰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미리 양해를 구한다.

박 이사장은 사회 각계에서 봉제협동조합에 관심을 많이 보여준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실 의류·봉제협동조합이란 새로운 사건이지요. 우리가 서울시에서 1호로 만들어져서 그 상징성이 큰 모양인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70년대 산업성장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봉제산업 종사자 당사자들에게도 '협동조합'이란 하나의 놀라운 사건인 듯하다. 지난 긴 세월 동안 어떤 식으로든 한목소리로 모임을 만들 엄두를 내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박 이사장도 열아홉에 처음 봉제 일을 시작해 창신동에서 36년간 일하며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그전에 '봉제협회'라는 단체가 있긴 했지만, 개인의 이익을 위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일찍 흐지부지되고 말았단다. 그러나 오늘날 협동조합 결성도 사실은 우연히 이뤄진 것이라고 그는 솔직하게 말한다.

ⓒ프레시안(손문상)
"우리가 처음부터 (협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계획한 게 아닙니다. 2008년 친목 단체로 시작한 것입니다. 그해에 서울시에서 봉제인들을 위해서 컴퓨터 교육을 해줬거든요. 우리가 다 컴맹들이잖습니까. 구식이라는 눈치도 많이 받고 있던 형편이었는데, 좋은 기회였지요. 1주일에 두 번, 저녁 9시에서 11시, 두 시간씩 교육을 받았지요. 그 교육 장소가 창신동 공장 647번지예요."


그래서 처음 모임 이름이 '647'이었다. 3개월간 교육받으면서 정이 든 9명의 교육생 봉제공장사장님들이 친목단체를 만든 것이다. 교육이 끝나면 647번지 문밖에 두런두런 모여앉아 고기도 구워먹고 서로 술잔도 나누고 했다. 그곳을 지나치며 오가는 동네 사람들도 언제나 대환영이었다.

"그렇게 한 2년 하다 보니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 거예요. 처음엔 열 명, 스무 명이던 모임이 입소문이 퍼지면서 막 불어났어요. 거기에 가면 재미있다더라, 그렇게 된 거죠. 그래서 한 200명 넘어가니까 단체를 구성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그래서 작년 8월부터 '의류·봉제사랑회'라는 조직을 구성하게 된 거죠. 요즘도 매월 둘째 주에 그 모임을 계속합니다."

친목단체에서 출발해 주식회사를 계획하다가 협동조합에 이르게 된 게 '서울의류 협동조합'의 역사다.

"협동조합 이야기가 있기 전에 주식회사를 만들자고 했지요. 한 10명 정도로 시작해서 출자금 300만 원씩을 모아 주식회사 만들려고 했는데, 그때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21명이나 되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숫자가 모여서 참 기뻤습니다. 서로 뜻이 잘 통하는 것 같아서요. 그러다가 조합을 만들자는데 의견이 모인 거죠."

2012년 중반부터 조합 결성을 위한 준비를 해서 그해 12월에 창립총회를 열었고, 2013년 1월에 조합 인가를 받았다. 조합원이 되려면 출자금이 1인당 10만 원이다. 박 이사장은 현재 조합원 수가 240명인데, 증가 추세에 있다며 테이블 위에 놓인 조합원 가입신청서를 보여 준다. 여전히 인기 있는 친목단체 '의류·봉제 사랑회' 매월 모임에 오는 회원은 약 500여 명(월 회비 1만 원)에 이르지만, 그 회원들 모두가 다 조합회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출자금 10만 원이 부담되는 이들도 있지 않겠느냐고 박이사장은 조심스레 말한다.

현재 협회 사무실 아래층에는 작은 의류판매장이 있다. 사무실과 마찬가지로 중소기업청에서 소공인 정책으로 매장을 열 수 있도록 지원한 덕에 생긴 공간이다. 현재 15명이 공동 입점을 해 자신들이 만든 옷을 내놓고 판매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아직 공사 중이지만, 올해 말에 조합 공장도 문을 연다고 설명한다. 공동 봉제공장이 가동되면, 그전보다 일감이 균일하게 제공돼 좀 더 안정된 환경에서 옷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 같이 옷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는 이들은 모두 시장을 상대로 일하지요. 각자 옷을 만들어주고 단가를 얼마씩 받는 그런 시스템으로 일하는 임가공업자들이라는 거지요. 가격 결정에서 우리 입장이라는 게 그리 강할 수 없다는 거죠."

이어서 그는 조합 공장이 가동된다는 사실에 봉제인들의 기대가 크다고 말한다.

"기관 단체나 큰 회사의 단체복 물량을 일괄 주문받아서 생산할 수 있게 된 거죠. 현재 우리 같은 공장은 다해야 3~5명이 일하고 있는데, 주문이 없으면 그냥 놉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일감이 없어 놀고 있는 실정입니다. 외주를 많이 받아서 일감을 나눠 일할 수 있다면, 노는 일 없이 균일하게 일이 이어지게 할 수 있는 거죠. 일감 공급도 균일하지만 단가책정에서도 유리할 수 있고요. 개인이 하청을 받아서 하는 것보다 조합에서 일감을 받아 나누면 결국 생산자들이 단가를 더 높게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 의류제조업체 공동판매장 모습. ⓒ프레시안(손문상)

박 이사장은 조합을 만든 지 아직 얼마 안 됐는데, 너무 빨리 변화는 것 같아 내심 놀라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조합 운영에 생각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자금이 투입된다는 내용도 털어놓고 말한다.

"정말 이건 완전히 봉사라고 봐야겠지요. 중간에서 일을 하다보면 정말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모은 돈 6300만 원으로 가게도 얻어야 하는 바람에 돈이 모자라게 되었거든요. 중간에 임원들에게 증자 출자를 하자고 했지요. 그렇게 해서 다시 모은 돈이 1억2500만 원 정도 됐습니다. 그전에 모아놓은 거 다 합하니까 2억 원 정도 되는데 그것을 까먹을 수 없으니 뭔가 사업을 해야 하는 거죠."

조합원들의 출자금인 종잣돈을 건드리지 않으려면 뭐든지 수익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다. 일단 조합원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중심으로 판매 사업을 구상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게 1회용 커피. 통상 수퍼마켓에서 구입하면, 1개당 120원이지만 공동 구매로 현금 결제를 하면 1개당 100원에 구매 가능하다. 그렇게 구매해서 조합원들에게 110원에 판다. 그렇게 되면 조합과 조합원 각각 서로 10원씩의 이익금이 남으니, 이익이다. 실이나 테이프 등 부자재와 쓰레기봉투도 역시 판매 물품 대상이다. 조합원들이 주로 많이 쓰는 물건을 공동 구매해서 다시 판매한다는 전략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합원들 대부분이 시골이 고향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여전히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고향의 부모님이나 일가 친척들의 농산물품을 판매대상에 올려놓았다. 고구마, 사과 등 시골에서 보내오는 농산물을 중간에서 유통 차액을 남기지 않고 판매하니 생산자나 조합원 모두에게 이익이 됐다.

"그래도 시장 조사를 정확하게 해서 판매합니다. 조합원들에게 약간의 이익을 남겨 판매해 운영비에 보태는 것이죠. 직접 몸으로 뛰어야 합니다. 그래서 조합이 유지되게끔 해야죠. 하하하…."

박 이사장은 조합을 이끄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표정이다. 매끄러운 회의 진행도 이사장이 짊어져야 할 책임 중 큰 몫이다. 매주 목요일 각 팀장들이 11시 반부터 사무실에 모여서 운영 회의를 한다.

"올해 송년회 같은 것도 전부 미리 계획해 세워 진행하는 거죠. 우리가 매주 만나서 또다시 의논하고 그렇게…. 그렇게 발전해나가는 거죠."

박 이사장은 뭐니뭐니해도 협동조합의 존재 이유 중에 가장 우선하는 것은 조합원의 복지라고 말한다. 현재 종로구에서 운영 중인 봉제공장이 숫자가, 올해 7월에 실시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무등록자까지 합해서 1600여 개에 이른다. 그중에 공장이 가장 밀집된 지역이 창신동이다. 봉제와 마무리 단계까지, 즉 미싱을 가지고 작업하는 곳을 통틀어 말하자면 980개가 넘는다.

"서울시 연구원에서는 어떻게 하면 봉제공장을 살릴 것인가 하는 게 현안이라고 하는데요. 지금 환경이 참 열악하거든요. 창신동에서는 봉제가 돌아가야 동네가 다 돌아간다고 보면 맞습니다. 요즘 봉제가 경기가 없으니 다 죽을 형편이지요. 지금 보셨을 거예요! 요즘 창신동 길에 오토바이 달리는 것을 보기 힘들어요. 우리 동네에 오토바이가 전부 2500여 대 있는데 봉제가 잘 돌아갈 때는 이 일대가 길을 다닐 수가 없을 정도라니까요. 원단 싣고 다니는 오토바이로 길이 복잡해서요. 그런데 요새는 경기가 너무 안 좋아요. 길이 한산하죠. 만나는 사람마다 일감 달라고 아주 난리예요."

▲ 박귀성 이사장(왼쪽)과 권은정 인터뷰어(오른쪽) ⓒ프레시안(손문상)

협동조합 이사장으로서 일감을 많이 받아와서 나눠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책임감으로 무겁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박 이사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공장에서는 숙녀복 바지를 전문으로 생산한다.

"우리 같은 계통의 경우 각 분야마다 전문이 있어요. 블라우스, 재킷, 바지 다 분야가 있지요. 공장마다 그중 하나씩만 전문으로 만드니, 분야에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지요. 어느 정도냐 하면요. 아침에 주문 발주 들어오면 저녁에 바로 제품이 나갈 수 있게 한다니까요. 예를 들어서 이런 모양의 셔츠를 만들어서 저녁에 팔게 해달라고 주문이 들어오잖아요? 그럼 원단만 있으면 바로 만드는 거죠. 하루에 몇백 장 정도는 간단히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상권 자체가 여기를 중심으로 다 주변에 모여 있으니 가능한 거죠. 원단 가게, 부속품 가게, 마무리 가게 등. 모든 것이 착착착,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는 아주 흥겨운 목소리로 설명해줬다. 듣고 있는 사람마저 흥이 날 정도였다. 늘 해오던 일이라 그런지 전혀 막힘이 없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단다. 이점은 좀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한다.

"그런데 그런 가게들이 모두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원스톱 시스템의 장점을 제대로 살릴 수 없습니다."

그는 창신동에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서는 꿈을 가지고 있다.

"만약 창신동에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한 층은 바지, 또 한 층은 윗도리 등 이렇게 잘 연결이 되어 있으면 생산 환경이 아주 좋아진다는 거죠. 그런 작업 환경이 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분량을 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환경 개선은 저절로 이뤄지겠지요. 우리가 가장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 바로 환경 개선입니다!

제품을 만들고 나면 천 조각이 진짜 많이 나오거든요. 전부 쓰레기인데 그걸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우리에겐 큰 문제죠.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리는데 그게 엄청 무겁단 말이죠.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아주 쉬운데 지금 작업장 환경으로는 꿈도 못 꾸죠. 일의 특성상 공장에 먼지가 아주 많이 생기는데, 요새 누가 그 먼지 속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겠습니까? 옛날 같으면 먹고살기 위해서 그런 데서라도 일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는 동대문 일대 환경 개선을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했지만, 피부에 와 닿는 일인지 의문이라는 표정이다.

"동대문 비즈센터 같은 것을 만들긴 했는데 평당 임대료가 너무 비싸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서울시에서 지어서 임대 들어가게 해주면 좋을 텐데, 선거 때마다 국회의원·시장 후보들이 다 지어준다고 했지만 사실 어렵다는 것을 우리가 알지요. 왜냐하면 땅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에요. 더구나 지금은 또 봉제가 호황세가 아니라 더해요."

박 이사장은 1979년에 창신동에 처음 들어왔다. 친척 삼촌이 조그만 공장을 해서 도와주면서 시작한 일이 평생 직장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요즘과는 많이 다른 시절이었다며, 지나간 시간을 떠올린다.

"지금은 배우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힘들지만, 그때는 참…. 우리는 진짜 맞아가면서 배웠다니까요. 다들 일한 지 수십 년 세월이지요. 우리 조합 임원들이 전부 다 그렇습니다. 올해 28년 차 되는 친구가 아마 그중 제일 짧은 경력일 것입니다."

그런데 앞날이 걱정이다. 그는 앞으로 10년 후엔 어쩌면 봉제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배우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전순옥 민주당 의원이 만든 봉제아카데미에서 교육을 하고 있고 우리도 중기청에서 지원받는 특화 교육을 하는 등 돈을 주면서 현장 실습을 하는데, 실제로 와서 배우는 사람 중에 봉제 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기서 일하겠다고 온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가 수선집이라도 한번 해보려고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예요. 그전에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중 제일 많이 배워야 고등학교 마치고 온 사람들인데, 요즘은 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잖아요. 이런 곳에 와서 일하려고 하겠는가 말입니다."

협동조합 결성은 우리나라 봉제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 의식에서 다들 뭉쳐야겠다고 나선 것이다. 현재 조합 공장이나 공동 판매장 운영은 일감 나눔의 초기단계로, 기운이 점점 빠지고 있는 봉제산업의 돌파구를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조합의 목적이 크게는 봉제인 전체의 복지이지만, 우선 당면한 확실한 목적은 일차적으로 해당 조합원의 수익이다. 수제화나 다른 제조업 간의 협업화를 추진하는 공동 사업도 구상 중이다. 결국 제조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하는 큰 바람을 밑그림으로 그려놓고 있다. 하지만 어떤 길을 가야 그 목적지에 다다를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은 상태이다.

▲ 인터뷰 당일 열린 임원 회의 모습. ⓒ프레시안(손문상)

박 이사장은 중간 중간 전화를 받고, 구연희 과장이 들고 오는 서류를 보기도 하면서 협동조합의 역할을 상세히 설명해주고자 했다. 그 사이 임원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회의를 곧 시작해야 할 모양이다. 회의 참관을 조심스레 물어보았더니 흔쾌히 허락한다.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속속 모여든 11명의 임원이 회의에 참석했다. 매주 열리는 운영위원회 회의 참석자는 통상 각 팀장과 회장단이 된다. 팀장이 불참일 경우 부회장이 대신 참하기도 한다. 회의 결과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전체 조합원들에게 전달한다. 회의에서 무슨 내용을 다뤄졌는지, 바로바로 모두에게 알려 준다는 말이다. 박 이사장은 미리 준비해둔 의사봉을 두드리며 개회를 선언했다. 일을 아주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오늘의 안건은 몇 가지나 된다. 먼저 2014년도 사업계획 방향과 홈페이지 인터넷 쇼핑몰 필요성에 대한 논의해야 한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이들에게 익숙한 분야는 아니지만, 동대문 봉제시장에도 '인터넷 판매'란 시대적 트렌드를 어떻게든 반영해야한다. 실효성과 어려움에 대한 의견이 몇 차례 오간 다음, 구체적으로 진행하는 일은 이관재 사무장이 맡아 알아보기로 했다. 처음 시작하는 협동조합 실무를 이 사무장과 구연희 과장이 맡고 있어 운영진은 아주 든든한 듯했다. 그다음은 중요한 안건으로 12월 송년회에 관한 논의, 그리고 창신동 봉제공장 투어 협조 건, 그 다음은 서울상공회의소 종로구 상공회 업무 협약 체결 건, 기타논의 안건으로 서울시 4대 제조 인력지원 사업 관련 건이 잡혀 있었다.

임원들은 안건을 차례대로 통과시켰다. 시간이 좀 걸린 안건은 송년회 관련 건이었다. 동묘역 근처 웨딩 컨벤션센터에서 저녁 6~9시에 할 예정이다. 작년에는 500명을 예상했지만 130명이 더 왔다. 올해는 인원이 더 늘어날 것을 예상해야한다. 선물이나 식사준비를 넉넉하게 해야 한다고 모두 강조한다. 왔던 손님들을 서운하게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지난 12월 20일에 열린 송년회 참석 인원은 1000명이었다!). 많은 이들이 참석하는 큰 행사이기에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2부 행사인 노래자랑의 심사위원은 누구를 선정해야 가장 공정하게 될 것인지, 경품은 어떤 상품으로 하는 게 모두의 호응을 받게 될 것인지 등 임원들은 열성적으로 각자 의견을 개진한다. 마주 앉은 두 임원은 전기밥솥과 자동차 블랙박스 중에 어떤 게 더 좋은가를 두고 가격과 효용성을 열심히 따진다. 회의 도중 미처 진동으로 바꾸지 못한 한 임원의 스마트폰이 울린다. '멋지게 살자!'는 가사였다. 멋지게!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좌절하지 않겠노라는 성실한 봉제노동자의 다짐처럼 들렸다.

봉제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일감이 많지 않아 모두 만족스러운 한해였다'고 말할 수는 없었더라도 서로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는 송년회이다. 뜻깊은 시간이 되도록 협회 임원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애를 쓰고 있었다. 이들의 표정에서 지나간 옛 시대가 겹진다. 어렵고 힘든 일을 나눌 여유도, 그런 시간과 자리도 찾기도 힘들었던 나날들이었다. '의류봉제협동조합'은 앞으로 그런 모든 것을 안고 보듬어줄 넉넉하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다.

회의 중간에 한 청년이 들어와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 한 임원이 안건에 올라있는 창신동 투어에 대해 설명해 줄 것이라며 모두에게 그를 소개했다. 12월 말, 창신동 투어를 계획하고 있는 손경주 씨였다.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연구원인 그는 협동조합 '어반 하이브리드'의 이사이기도 하다. '창신동, 미디어로 꿰매다'라는 타이틀로 창신동 봉제공장 밀집지역의 재발견을 위한 행사에 대한 협조를 구하고자 미리 운영위원회의에 온 것이다. 봉제관련 사업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들에게 심포지엄과 창신동 일대 봉제공장을 투어하면서 봉제인들이 일하는 모습과 작업 내용을 현장에서 직접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공장 사장님들이 1일 선생님이 되어달라는 협조를 구했다. 손 씨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임원들 전원이 적극 협조하겠노라며, 봉제산업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정말 반갑다고 말했다. 동대문 시장의 의미, 우리나라 봉제산업의 가치를 제대로 짚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점점 더 기운을 얻고 있는 것 같아 그들의 처진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 옷감을 잔뜩 실은 오토바이가 창신동 골목을 달리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협동조합을 만든 사람들, 창신동 사람들, 이들의 열성이 한데 모여 우리는 다 같이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창신동 골목길에 세워진 오토바이들이 신호를 기다리며 출발선상에 팽팽히 서 있는 선수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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