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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정권 퇴진', 2008년 '촛불'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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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정권 퇴진', 2008년 '촛불'과 다르다

[박동천 칼럼] 다시 폭력의 시대가 찾아왔다

박근혜의 오기가 결국 대한민국을 다시 한 번 폭력의 소용돌이로 처넣고 말았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충분히 이유가 있는 합법적인 행위임에도 박근혜 정권은 일방적으로 이를 "불법"이라고 선전하더니, 기어이 경찰력을 동원해서 짓밟기 시작했다. 기가 막힌 것은 체포영장을 집행한다는 빌미로 민주노총 사무실을 급습하고 나서, 영장에 적시된 어느 누구도 체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무도한 권력의 횡포를 박근혜 정권은 "법과 원칙"이라고 우겨댄다.

이 정권은 스스로 무도하다는 사실을 줄곧 증명해 왔다. 선거공작을 자행한 국정원 직원을 "인권"을 앞세워 비호하고, 그 사실을 수사하던 올곧은 경찰관과 검찰총장과 검사를 찍어냈다. 이에 항의하는 종교인과 시민들을 "종북" 또는 "대선불복"으로 몰아붙이는 선전전을 감행하고, 멀쩡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왜곡하고 악용하여 공포정치를 자행했다. 정상적인 선거에 의해 당선된 국회의원에게 "내란음모"라는 딱지를 붙여서 기소하더니, 급기야 그가 속한 정당의 해산심판을 청구했다. 집권한 지 1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외교랍시고 혈세를 낭비해가며 천박한 "패션쇼"를 펼쳐서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했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무능을 감추기 위해 정치판을 아수라장으로 뒤집어 놓고, 국민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다.

아마도 이 정권의 실세들은 2008년과 2011년의 촛불을 떠올리면서, 항의하는 시민들을 밟고 넘어갈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지금 정권퇴진을 부르짖는 목소리는 2008년과 2011년의 촛불과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당시의 항의는 상당 부분 근거 없는 공포에서 비롯되었지만, 선거부정은 권력의 무자비한 압박 아래 축소된 수사만으로도 엄연한 사실로 드러났다. 게다가 경제민주화의 공약은 모두 사기극으로 판명나고 말았다. 이처럼 은폐와 거짓을 태연히 저지르는 정권이 철도 민영화가 아니라고 아무리 강변해도, 이를 믿어줄 시민은 별로 없는 것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철도노조가 정부 정책을 오해해서 파업에 나선 것이라면, 대화와 설득을 통해 이해를 구하면 될 일이 아닌가? 협박과 선동으로 파업을 매도하더니 급기야 국가의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고만 작태는 철도노조를 이 기회에 짓밟아버리겠다는 심보를 극명하게 증명한다.

짓밟아서 끝날 일인지 아니면 오히려 정부가 전복되고야 말 일인지는 앞으로 사태를 두고 봐야 알 일이다. 분명한 것은 정부의 폭력이 2008년이나 2011년처럼 쉽사리 성공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선거부정의 문제도 자체로 심각하거니와, 선거부정을 수사해야 할 권력이 은폐와 조작을 공개적으로 저지르고 있는데, 권력의 이런 범죄가 민주 사회에서 간단하게 끝날 리는 절대 없다. 더구나 젊은이들까지 암담한 현실에 대해 항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경제민주화라는 구호에 걸었던 조그만 희망이 여지없이 묵살당하면서, 좌절감이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가 개심하지 않는 한, 2014년 한국의 길거리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시대로 되돌아갈 모양이다. 시위대는 늘어날 것이고, 경찰은 강경진압에 나설 것이다. 어쩌면 최루탄과 화염병까지 부활될 위험마저도 없지 않다고 나는 우려한다. 마가렛 대처를 흉내내고 싶은지 모르지만, 대처는 선거부정에 의해 당선되지 않았고, 선거부정에 대한 의혹을 종북몰이로 덮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대처 시대 영국 젊은이들이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만큼 암담한 처지도 아니었다.

유일한 해법은 박근혜가 회개하는 길 뿐이다. 박근혜가 이런 지경에서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오기와 원한에 의해 조종되는 강시라는 평가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국가의 조직적인 은폐와 거짓 선전도 모자라, 시민들의 세금으로 사들인 폭력적 도구를 도리어 시민들을 탄압하는 데 악용하는 사태는 진보/보수의 차원을 이미 떠난 일이다. 새누리당에서 30명 정도의 의원만이라도 양식을 되찾는다면 박근혜의 폭주를 막을 수 있다.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목소리를 내기만 해도 박근혜가 더 이상 은폐와 선동과 폭력에 의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폭력의 시대는 이미 다시 시작되었다. 박근혜의 회개가 늦어질수록 야만은 날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될 것이다. 설사 정당한 저항이라도 폭력은 자제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얻어맞아서 분한 사람, 매도당해서 억울한 사람들에게 자제력을 기대한다는 것은 현명한 노릇이 아니다. 때린 사람, 부당한 딱지를 뒤집어씌운 쪽에서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사회 평화가 가능하다. 선거부정에 항의하고, 권력의 은폐와 언론의 선동에 분노하고, 경제민주화 공약의 이행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의 책임을 묻고 싶은 자는 먼저 정권의 무능과 억지와 거짓과 배임을 성토해야 한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시민이면 모두 나서서 폭력의 시대를 종식시키기 위해 각자 힘을 보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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