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통일의 경험이 있는 독일에 가서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알아보기 위해 조금 길게 잡은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집사람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당시 보름씩 휴가를 내는 것은 어쩌면 책상을 뺄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원래 한 달을 신청했는데 절반으로 깎였다.) 베를린에서 공부 중인 친구도 만나보고, 그림 같은 독일의 도시들을 직접 돌아보면서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결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무모한 것이었다. 10년 가까운 직장생활에 나이는 이미 30대 중반에 이르렀고,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 또 오랫동안 차분하게 준비해 온 일도 아니었다. 그것은 막연한 희망 하나를 붙들고 잘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세계에 뛰어드는 일이었다.
추석보너스를 받고 그만두는 게 유리하다는 상사의 조언대로 9월 말 월급과 상여금을 받고, 회사를 그만둔 지 미처 2주일이 안 되어 베를린 행 비행기에 올랐다. 흔히 유학 준비를 위해 찾는다는 남산에 있는 독일문화원(괴테 인스티튜트) 한 번 가보지 못하고 바로 독일로 날아갔다. 고추장, 밑반찬 등 무거운 짐들을 들고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 공항에서 갈아타는 곳을 찾아 헤매던 기억이 바로 엊그제 같다. (비행기 표 등에서 보듯이 프랑크푸르트 뒤에 반드시 마인 강변(am Main)을 붙여야 하는 이유는 독일의 북동쪽 오데르 강변에 있는 또 다른 프랑크푸르트(Frankfurt/Oder)와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다른 사람이 빌린 집을 재임대, 낡은 집도 그대로
1997년 10월 중순, 베를린 생활이 막 시작되었을 때 날씨는 썰렁하고 거리는 낙엽으로 가득하여 한국에서 온 초행자의 마음을 더욱 스산하게 하였다. 독일은 서머타임을 실시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낮 시간이 길고 반대로 겨울에는 더 짧아진다. 이 제도를 실시하게 되면 매년 3월 마지막 일요일의 새벽 2시를 3시로 바꾸고, 10월 마지막 일요일의 새벽 3시를 2시로 바꾸게 된다. 그러면 11월에는 오후 4~5시쯤이면 어둑해지고 깜깜해졌다. 조금 게으름을 피워 늦게 일어나면 잠깐 사이에 사방이 어두워졌다.
베를린에 도착한 다음 날, 남쪽에 위치한 한 대학기숙사의 운터미테(Untermiete: 재임차)로 들어갔다. 이는 어떤 사람이 빌린 집을 개인적 사정으로 몇 개월에서 1년 정도 재임대하는 것으로, 특히 대학기숙사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다. 다른 학교에서 한 학기 공부를 한다든가 장기간 아르바이트를 위해 비울 때, 또는 방학에 고향이나 여행을 가거나 할 때 등 다시 돌아올 예정이지만 비교적 오랫동안 집을 비울 때 그렇게 한다. 미리 대학 당국과 이야기가 된 경우 우선으로 기숙사를 배정받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보통 운터미테로 있으면서 정식으로 살 집을 구하게 된다.
집을 구하기 위해 친구의 도움을 받아 베를린의 여러 집을 구경하게 되었다. 독일에서 가장 일반적인 주거 형태는 5층 미만의 건물에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것으로 우리의 연립주택과 유사하다. 집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통 '오래전에 지은 집(Altbauwohnung)'과 '새로 지은 집(Neubauwohnung)'으로 나누는데, 흔히 2차 대전 이전에 지었느냐 또는 그 이후에 지었느냐가 그 기준이 된다.
대부분의 집이 돌로 지어졌기 때문에 오래되더라도 그 골격은 그대로였다. 그렇기 때문에 집이나 건물을 완전히 허물어 내는 경우는 드물었고, 적당한 때에 내부만 개조하여 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외관은 오랜 역사를 보여주듯이 중후한 맛이 나고, 내부는 새로이 정비하여 아주 편리하였다.
이와 같은 집들을 구분하는 좀 더 실용적인 기준은 그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승강기가 없는 오래된 집들의 경우, 노인들은 주로 아래층을 선호하고 젊은이들일수록 위로 올라가게 된다. 독일에서는 모든 건물에 0층이 존재하는데, 이를 땅에 맞닿아 있다고 해서 쉽게 '땅층(Erdgeschos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독일의 1층은 우리의 2층을 의미하며, 2층은 3층을, 3층은 4층을 의미한다. 이런 식으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오래된 집이지만 보수를 하여 승강기를 설치한 곳도 많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대부분의 사람이 새집을 선호할 것 같은데, 의외로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았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은 간혹 옛날 건물이 나오는 유럽영화를 감상하다가 벌써 알아챘을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러한 옛날 집은 층간 높이가 굉장히 높은 특징(대개 3미터 이상)이 있다. 그래서 장식을 잘 하면 나름대로 운치가 있고, 또한 공기도 쾌적해서 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들이 우리의 연립주택과 형태는 유사하지만, 한 가지 아주 다른 점은 집의 방향을 고려치 않고 지어졌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집들이 서로 거리를 마주하고 길 양옆으로 나란히 줄지어 들어서 있으며, 건물들 사이가 모두 붙어 있어서 사람이 지나다닐 공간이 없다. 각 건물의 입구로 들어가면 안쪽으로 건물들에 둘러싸인 공간이 있는데, 그곳은 보통 거주자들만의 휴식공간이 된다. 즉 건물의 방향을 생각하여 집을 지은 것이 아니라 길이 난대로 집을 지은 것이다. 어차피 해가 많지 않은 날씨 때문인지 우리처럼 남향집을 따지는 경우는 드문 것 같았다. 물론 도시의 외곽에 새로이 건설된 집들은 대체로 햇볕을 고려하여 지어졌다.
▲ 베를린 거리의 주택. ⓒ조성복 |
고민 끝에 선택한 집은? 바로 기숙사!
주거와 관련해, 우리와 다른 또 한 가지 특징은 대부분의 집이 전체 바닥에 양탄자를 깔고 집에서도 신발을 신고 생활한다는 점이다. 바닥에 카펫을 까는 것은 아마도 과거 바닥 난방이 없었고, 여름은 건조하고 겨울은 습한 기후, 아래층에 소리가 나지 않게 하는 방음 효과 등이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으로 이 양탄자를 청소하기 위한 진공청소기의 출력이 아주 막강하다.
부자들은 보통 커다란 정원을 가진 단독주택에서 사는 것 같은데, 어느 도시를 가든지 그런 지역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층아파트는 독일에서는 일반적인 주거지가 아닌 것 같았다. 이러한 건물은 주로 집단거주나 난민수용, 학생이나 노인들을 위한 기숙사, 양로원 등 예외적인 주거형태로 그렇게 많이 눈에 띄지는 않았다. 실제로 과거 동베를린 지역에 가면 대규모의 고층아파트들이 중간 중간에 많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부부는 베를린의 여러 집을 구경했지만 쉽사리 결정을 하지 못했다. 대체로 가격대비 살만한 것 같았다. 그러나 집사람이 다른 것들에 비해 집을 고르는 데는 신경을 많이 써서 아주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결국 또 다른 후배의 소개로 아직 대학에 등록하지 않아도 입주가 가능한 사설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ERH(Ernst-Reuter-Haus)'라는 기숙사였는데, 비록 전용면적이 28제곱미터로 작은 집이었지만 깨끗하면서 깔끔하였고, 조그만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이 갖추어져 있어서 바로 생활이 가능하였다. 월세도 542마르크(당시에는 독일 마르크(DM)화를 사용, 1DM = 약 500원)로 지금까지 보았던 집들보다 저렴하였다. 이 기숙사는 2차 대전 후 베를린 시장이었던 에른스트 로이터(Ernst Reuter)를 기념하는 재단에서 운영하는 것이었다. 이 재단은 이 기숙사 이외에도 여러 동의 유사한 집들을 운영, 관리하고 있었다. 독일에는 이처럼 공공성을 띠는 재단들이 많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기숙사를 고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이 기숙사에 들어가는 시점에 한국에서 IMF 외환위기 사태가 발생하여 환율이 2배까지 급등하였고, 이에 따라 한국에서 송금 받는 돈이 반 토막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얼마 후에는 도시를 옮겨 이사해야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일반주택에 비해 기숙사는 들고나는 것이 간단하였고,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적었기 때문에 그나마 기숙사에 머문 것은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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