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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처형, 한반도 정세의 적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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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처형, 한반도 정세의 적신호?

[정욱식 칼럼] '전략적 인내'와 '기다리기 전략' 거론의 의미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장성택 행정부장 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즉결 처형했다. 11월 중순 가택 연금을 시작으로, 12월 8일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현장 체포를 거쳐 12월 12일에는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에서 즉결 처형을 감행한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이 밝힌 죄목은 "국가전복음모"였다. 대체적인 내용은 12월 9일 공개한 정치국 결정서와 대동소이하다. 다만 결정서에서는 "반당반혁명적 종파해위"를 핵심적인 사유로 밝혔으나 이번 판결에서는 내란 음모죄를 적용한 것이 눈에 띈다.

'전략적 인내'와 '기다리기 전략' 거론

주목할 점은 이러한 죄목을 거론하면서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이명박 정부의 '기다리기 전략'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장성택은 비렬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후 외부세계에 '개혁가'로 인식된 제놈의 추악한 몰골을 리용하여 짧은 기간에 '신정권'이 외국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어리석게 망상하였다"고 주장했다.

▲ 지난 12일 장성택이 처형당하기 전 특별군사재판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면서 "모든 사실은 장성택이 미국과 괴뢰역적패당의 '전략적 인내' 정책과 '기다리는 전략'에 편승하여 우리 공화국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키고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장악하려고 오래전부터 가장 교활하고 음흉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악랄하게 책동하여온 천하에 둘도 없는 만고역적, 매국노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략적 인내'는 2009년 12월부터 미국 내에서 거론되기 시작해 2010년 이후에는 오바마 행정부의 공식적인 대북정책처럼 굳어진 것이다. '기다리기 전략'은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 관련 질환으로 쓰러진 이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두 정책은 북한의 정책이 개선될 때까지 대화와 협상을 유보하는 대신에 대북 제재 강화 및 '작전계획 5029' 등을 통해 북한 급변사태 대비에 비중을 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기조는 오바마 2기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도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

정리하자면, 북한의 발표 내용은 장성택이 한미동맹의 북한붕괴 전략에 편승해 북한 내부 혼란을 증폭시키고, 이에 대한 인민과 군의 불만이 커지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다음에 외부의 인정을 받아내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사실관계에 부합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정은 체제가 장성택 숙청 및 처형의 유력한 근거 가운데 하나로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을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향후 한반도 정세의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내년 봄, 진짜 위기 오나?

북한의 대외 정책이 한국과 미국 등 외부의 반응 및 정책으로부터도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잠재적 악재가 현실화될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일단 김정은 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연초에는 연일 "서울 불바다", "워싱턴 불바다" 등 호전적 언사를 동원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킴으로써 '위험한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면, 연말에는 고모부인 장성택을 무자비하게 처형함으로써 '잔악한 지도자'라는 이미지까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려는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장성택 체포 직후인 10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북한은 현재 김정은의 권력 강화를 위해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하면서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며 "앞으로 남북관계가 더욱 불안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발언에 앞서 '부정선거, 재선거'를 주장한 민주당의 장하나 의원과 '박정희의 전철'을 언급한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을 겨냥해 "지금 국론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고 도를 넘는 과격한 발언을 하는 것은 결코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쟁을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국내 비판세력을 옥죄는 데에 북한 문제를 이용하려는 유혹이 또 다시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앞서 국가정보원은 통일부와 국방부 등 핵심 부처와 정보 공유도 하지 않고 국회 정보위 여야 간사들을 통해 관련 정보를 흘리는 '정치 행위'에 나섰다. 장성택 제거를 기회로 삼아 개혁 당할 위기에 몰린 국가정보원이 존재감을 다시 부각시키려고 한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도 이례적으로 신속한 입장을 내놓았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장성택 사형 집행 직후 "김정은 정권의 극단적 잔인함(extreme brutality)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밝혔다. 입장 표명도 신속하지만 북한 내부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이처럼 강경한 어조를 선보인 것도 이례적이다. 워싱턴 내에선 올봄 한반도 위기를 거치면서 "대화파의 씨가 말랐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이에 따라 장성택 제거를 김정은의 잔인함으로 규정한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더욱 위축될 공산이 크다. 북한이 문제 삼은 '전략적 인내'가 강화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상호작용의 맥락에서 볼 때 이러한 움직임은 대단히 우려된다. 김정은 체제는 박 대통령이 표현한 "공포정치"나 오바마 행정부가 언급한 "극단적 잔인함", 그리고 국내 언론에서 유행하고 있는 '리설주-장성택의 부적절한 관계설'(참고로 12월 7일자 북한 기록영화에는 장성택은 사라졌지만 김정은의 부인인 리설주는 남아 있었다) 등은 소위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자 내정 간섭으로 간주할 공산이 크다. 더구나 김정은 체제가 장성택 제거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을 거론했다는 점에서 북한 내 대화파의 입지가 축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한미 양국과 북한 사이의 상호작용이 악순환의 늪에 계속 빠져들게 되면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은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다. 장성택 제거를 북한의 불안정 고조의 징후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유행하면 '북한이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주장도 득세할 것이다. 도발에 대비한다며 군사적 준비태세를 강화하면 긴장 고조 속에 우발적 충돌의 위험도 커진다. 매년 봄 한미합동군사훈련 기간이 되면 북한의 반발과 맞물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어온 한반도 위기가 내년에는 더욱 위험한 양태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말이 씨가 되는 상황, 즉 자기충족적 예언이다. 과도한 해석, 과잉 반응, 국내 정치적 이용 유혹 등이 맞물려 '북한이 도발할 것'이라는 예언이 주를 이루다 보면 진짜 위기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불확실성이 위기로 가지 않도록 관리하고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대북정책의 변화이다.

북한이 '전략적 인내'나 '기다리기 전략'을 문제 삼은 데에는 대화하지 않는 한미 양국에 대한 불만이 깔렸다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그리고 한반도 위기를 예방해야 할 국익 상의 이유가 분명하다면,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할 이유는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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