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장인인 양영수 씨는 교육 중이었다. 서울 성동구 중소기업 종합지원센터에서 '제화기능교육'을 하고 있었다. 성동구는 지난해부터 지역전통산업인 성수동 제화산업 발전을 위해 제화기술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한 교육을 실시해 왔다. 이 프로그램에 30·40년 경력의 성동구 수제화 장인들 10여 명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자원봉사로 6개월간 수업을 진행해 칼 갈기와 기계 사용법 등의 기초과정에서부터 구두 겉가죽과 밑창을 다루는 법 등 수제화 제작의 전 과정을 가르치는 중이다.
▲ 구두 장인 양영수 씨(가운데)가 '제화기능교육'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
교육 강도는 아주 세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10시부터 5시까지 6개월간 이론과 제작실습을 병행하는데, 수업에 연속 세 번 결석이면 그대로 '아웃'이다. '이어폰 사용금지', 'SNS 금지' 문구가 벽면에 붙어 있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20·30대 젊은 교육생들은 각자 구두제작에 열중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접착제 냄새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교육생들은 실습 마지막 주에 전시회에 내놓을 작품을 준비 중이었다. 남녀화 각 1족씩. 양영수 장인의 손길을 따라 잡으려는 젊은이들의 눈길에 열기가 느껴졌다.
양 구두 장인은 1주일에 3회, 수업에 나온다. 수업이 있는 날은 오후를 온통 교육에 바친다. 올해로 35년간 구두를 만들고 있는 그에게 수제화 타운 조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가 대답을 머뭇거린다. 그는 '희망적'이라는 말을 하는 이들과 생각이 좀 다르다고 한다. '제화 거리'가 조성이 되어야 하는데, 많은 이들이 찾기에는 부족한 조건인 것 같다고 말한다.
"지금보다 좀 더 특징적인 성격이 아쉽죠. 특색 있는 구두를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일단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거기에 가면 보기 드문 디자인이 있더라' 하는 소문이 나야 사람들이 더 모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울 성수동 수제화 타운(SSST)'은 디자인·영업·마케팅을 한자리에 두면서 소비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구두 마을'이 되고자 하는 소망으로 시작됐다. 현재 이 일대에는 350개의 제화업체가 들어있고, 3000명이 종사하고 있다. 서울성동제화협회(박동희 회장)가 2011년 6월부터 공동판매장을 개설해 운영 중인데, 현재 25개 업체가 입점해 있다. 전국적으로 수제화 타운이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현재 전국 대리점을 모집하는 중에 있다.
양 구두 장인은 구두 만드는 일을 수십 년째 하고 있지만 갈수록 구두를 만드는 일, 즉 제조업이 어렵다고 말한다.
"제조가 살아야 하는데, 제조가 열악합니다. 납품업체에서는 단가를 깎지요. 구두 재료업체에서도 이제 외상을 안줍니다. 우리 같은 이들을 중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그렇게 하다 보면 돈을 갚지 못하게 되니 연체되고 신용이 안 좋게 되는 것이지요. 그전에는 살롱화를 만들었는데, 마진(이윤)이 참 좋았습니다. 다른 것에 비해서 좋았다는 것이지요. 지금은 마진이 너무 없어요. 그때는 신발도 마음대로 만들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이 제조가 내리막길이라는 거죠. 발전이 안 돼요. 뭔가 잘 만들어 보려고 하면, 단가를 안 쳐주니 가격을 제대로 못 받게 되죠. 그러니 결국 부가가치가 높은 것을 못 만드는 것입니다."
▲ 구두 장인 양영수 씨. ⓒ프레시안(손문상) |
제화회사 '스코올 콜렉션'을 운영하는 양영수 사장은 자체 브랜드로 구두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주문을 받아서 납품하는 일 또한 중요한 몫이다. 그런데 이 제조과정에서 벌이가 제대로 안된다고 한다. 뭘 남기기에는 시스템이 너무 열악하다는 것이다.
"납품업체에서 우리보다 재료비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어요. 예를 들어, 동대문 어디에 가면 어느 재료를 가장 싸게 살수 있다면서 그 가격으로 단가를 쳐준다(계산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그 가격에 사려면 우리가 동대문으로 현금을 들고 가야 한다는 말인데, 시간도 그렇고 현금도 우리가 그럴 형편이 안 되거든요. 우리한테는 두 달 뒤에 결제를 해주면서 말이지요."
현재 국내 유명백화점에 납품하는 것과 똑같은 제품을 동시에 성수동 수제화 타운 공동판매장에도 내놓고 있는데, 차이가 아주 크다고 한다.
"똑같은 제품을 상표를 다르게 해서 내놓으면, 백화점 가격의 반값인데도 (소비자들이) 잘 안 사 갑니다. 가격을 두 배 더 주더라도 브랜드 상표가 붙여진 것을 사겠다는 게 소비자의 마음인데, 저희로서는 안타깝지요. 우리가 공동판매장을 낸 이유는 혼자 힘으로는 아직 안 되니까 모인 것입니다. 일단 이 판매장에 손님이 '대박'으로 모여야 하는데, 아직 그 수준은 아닙니다."
유럽풍 분위기의 성수동 구두 거리에 가장 크게 들어선 공동판매장의 현재 한 달 판매수입은 1억 몇천만 원 수준이다. 그러나 입점한 업체가 많으니 1업체당 1000만 원 정도 꼴로 수입이 돌아가는데, 이익금이 아니라 판매금액이다. 그 중에 25%를 떼어서 운영비로 돌리고 재료비 등 원가를 빼고 공장 운영비로 이리저리 빼면, 남는 게 정말 없다. 공동 판매한 지는 3년째이지만, 아직 제자리인 실정이다. 그러나 양 구두 장인은 점점 나아지니까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장인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이 분야에 들인 그의 정성과 시간이 얼마인가. 그에게 그동안 정부정책이나 어떤 공적인 경로로 지원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공장 차릴 때, 7년 전이네요. 그때 창업지원금 한번 받고 그 후에 운영지원금 받은 게 있는데, 이제 거의 다 갚았습니다. 은행보다 싸게 빌릴 수 있으니, 큰 도움이 되었지요. 공짜를 바라는 게 아니라, 요즘 같아서는 정말 운영자금 보증금이라도 지원해준다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어요. 그런 게 있다고 듣긴 했지만, 제가 잘하지 못하는 구석(일)이라서요. 서류작성도 서투르고…. 신용이 좋아야 사업을 할 수 있는데, 그게 참…."
▲ 서울 성동구 중소기업 종합지원센터 '제화기능교육' 현장. ⓒ프레시안(손문상) |
그는 자신이 서류작업이 서투르다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소위 말해서, 서류 꾸미기(paper work)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서류만 잘 쓰면 돈이 나오는데, 구두를 열심히 제작하는 이들은 구두 만들 줄이나 알지 서류 만드는 일을 전혀 모른다니까요. 실질적으로 찾아보면 열심히 하는 이들이 많은데, 구두 열심히 하는 이들은 대부분 그런 방법을 잘 모르죠. 또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면서도 잘 안 가게 되지요. 그러니까 돈을 마련하는데 머리를 쓰기보다는, 그럴 시간이면 구두 샘플제작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말이지요. 제 경험상으로도 그래요. 돈이 안 들어오는데도 어디 돈을 받으러 다니는 게 아니고, 샘플제작 생각하고 있다니까요. 장인이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지 돈을 얻어 오는 것에는 별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라니까요."
▲ 응시자 70여 명 가운데, 12명을 선발해 교육하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
"장인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언제든지 배우려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다 배웠어도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게 나올까 고민하고 배워야 합니다. 다 배웠다고 더 이상 안 한다면, 무슨 발전이 있습니까? 그런 건 누구나 다하는 것이지요!"
그는 구두를 만들려면, 또 이런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단 구두를 좋아해야 하고 구두 만드는 데 시간을 무한대로 투자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명심하라고 덧붙인다.
"'가족 먹여 살리겠다' 하는 마음이라면, 이거 배우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그 정도로 제조업이 열악하다는 말이지요."
그는 자신이 배우던 시대를 떠올리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내가 배울 때만 해도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거든요. 그때는 다 수제화, 살롱화 시절이었지요. 기술을 가진 이들을 대우해 주던 때였어요. 선금도 받고 돈을 많이 받고 그랬지요. 그만큼 제조업 경기가 좋았다는 거죠. 지금은 제조가 열악하니 기술자가 대우를 못 받는 거죠. 안타깝죠. 진짜 장인은 대우를 받아야 되거든요. 돈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기본으로 먹고사는데 신경 안 쓸 정도는 돼야지요. 솔직히 지금 좋은 구두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요, 제대로 열심히 만들어봐야 많이 못 받으니까요. 열심히 신경 써서 만들어봐야 돈을 못 가져간다는 말이죠. 좀 얼렁뚱땅 만들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도급제니까요."
구두 장인은 자신이 내뱉은 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즉시 고쳐 말한다.
"진짜 도자기 만드는 사람들은 마음에 안 들면 깨부숴버리잖아요. 그런데 정말 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런 애매한 도자기가 있는 것처럼, 구두도 다 만들어 놓고 보면 과감하게 잘라버려야 할지 그냥 내보내야 할지, 고민되는 게 보이거든요. '안 되겠다' 싶은 구두는 가위로 잘라 버려야 해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고민을 안 하지요. '새로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시스템이거든요. 그리고 그런 거 가져가서 팔아도 고객들은 잘 몰라요. 기술자들이 아니면 잘 알 수가 없지요.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지요. 사실 저도 처음에는 몰랐어요. 한 10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알겠던데요."
그는 자신이 아직 어렸을 때, 스승이 만들어 놓은 구두를 가게 사장님이 잘라버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틀어진 구두는 팔수가 없다고요. 지금은 그 정도 틀어진 것은 틀어진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일반인들은 진짜 모릅니다. 지금 그렇게 공들여서 만들라고 하면, 다들 도망갈 겁니다. 공임(제작 인건비)을 더 주면서 잘 만들라고 해야지, 다른 이들과 공임을 같게 주면서 잘 만들라고 하면 '누가 그렇게 하겠느냐' 이 말이지요. 그런 장인들에게는 네다섯 배 더 주면서 잘 만들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프레시안(손문상) |
올해 쉰이 된 그는, 10대 중반부터 구두 만드는 일을 배웠다. 구두 패턴사로 일하고 있던 육촌 형을 따라서 구두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부터 이 일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일이 싫증나거나 지겨웠던 적이 없었다.
"재밌어요. 저는 쉬는 날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쉬어도, 전 쉬는 날이 없어요. 공휴일 없이 나와서 일하는 편이지요. 매장에 나와서 두리번거리더라도 안 쉬어요."
구두 배울 때, 참 신 났다. 그때 그 기술은 아무나 배울 수 있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배우고 싶어 하던 이들은 많았지만, 능력 안 되고 머리 안 되면 안 가르쳐 줬다. 머리 좋고 실력 있고 정성 쏟는 이들만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그는 남들이 5년 걸려서 배울 일을 절반 기간 동안 다 배웠다. 스승이 무슨 말 하기 전에 알아서 미리미리 준비해두었다. 엄격한 선생님은 미싱 기술을 안 가르쳐 주셨지만, 몰래 미싱 발판을 굴리며 가죽에 바느질을 해보았다. 마침내 학생이 선생의 자격을 가지게 되던 날, 얼마나 기뻤던지! 월급이 올라가서도 좋았지만, 다들 실력을 인정해 주는 게 더 감동스러웠다. 그는 '서울'하고도 '명동'의 유명 제화점에서 일할 수 있었다. '잉글랜드', '킴스', '드봉' 등 수제화 계의 전설인 양화점들이었다. 명동 거리에서 저 멀리 멋쟁이들이 걸어오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멋진 구두를 신고 있었다고 그는 증언한다.
양 구두 장인 자신이 20여 년 전에 진짜 타조 가죽으로 130만 원짜리 남자화를 만든 사람이라고 자랑한다.
"아주 제대로 된 신발을 만들었지요. 좋은 가죽을 만지면 기분도 좋아집니다. 일이 더 재밌게 느껴지지요. 비싼 가죽은 천천히 만들게 됩니다. 풀이 묻으면 지우고 또 지우고 하면서 하지요. 혹시 흠이라도 나면 아까우니까요."
수제화 업계에서는 도제 시스템이 엄격하게 적용되었던 모양이다.
"그땐 아무리 일을 잘해도 '족보'가 중요했어요. 어느 살롱화 전문점에서 일했는지 따졌지요. '누구네 집에서 몇 년 일했느냐'가 그 사람을 고용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됐었어요. 검증이 다 끝난 것이니까요. 아무리 구두를 잘 만들어도 인격적으로 안 되면 안 써 줬어요. 선생님 바꾸고 배신하고, 그렇게 하면 안됐지요."
▲ 양영수 씨가 권은정 전문 인터뷰어(왼쪽)에게 구두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
그는 제조가 좋았던 시절이 1980년대 중반까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가 선생이 되면서 괜찮게 벌게 되었는데, 그게 잠깐이었어요. 1970년대가 전성기였어요. 1980년대 들어서 서서히 내리막길이었어요."
그는 처음에 남화 쪽에서 배운 다음 7,8년 일하다가 다시 여화를 배우러 옮겼다. 남녀화 둘 다 하다가 지금은 여화에만 전념하고 있다. 여화 중에도 편한 것 중심으로 한다. 스니커즈 같은 구두를 주로 만들고 있다.
그는 요즘 신발은 살롱 수제화 수준과 비교할 때 신발이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여진다고 한다.
"그때 구두를 수제화라고 한다면, 지금은 기계화라고 보면 됩니다. 지금은 손으로 만들어도 기계화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만드는 공정이나 기술이 그전과 비교했을 때 엄청 차이가 나니까요."
그런데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다들 나만의 구두, 수제화를 맞춰서 신으려고 하지 않겠는가?
"글쎄요. 좋은 구두를 맞춰서 신으려는 고객이 있다면 저희가 당연히 해드리지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누가 주문을 한다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텐데…. 수제화 만든다고 광고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알 텐데요!"
그는 수제화가 특별히 더 비싸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현재 백화점에서 파는 구두 가격정도면 진짜 수제화를 사 신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소재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가죽이라면 그 정도 수준에서 맞출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그 일을 수제화 타운에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공장과 매장이 한자리에 있는 그런 공간이 마을로 형성되면 좋겠지요. 주차 공간도 충분하고 사람들이 부담 없이 구경하거 올 수 있는 그런 거리로 만들어지면 좋을 텐데요. 작은 지역이라도 형성되어서 알려지기만 하면, 사람들이 찾아오겠지요. 굳이 땅값이 높은 다들 좋다는 지역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좋은 물건 따라서 사람들이 오기마련이니까요."
유명 브랜드 구두라고 해도 수제화를 결코 못 따라잡을 것이라며, 그 이유를 이렇게 든다.
"우선 브랜드 신발은 몇천 명의 발에 대한 평균치를 내어서 만들거든요. 보통 1500명 정도를 검증해서 한족을 만드는데 비해, 수제화는 한 사람의 발에 맞춰 만들잖아요. 각자 개별성을 반영한 신발이지요."
그는 브랜드 회사에서 이런 사실을 알아서도 못하고 몰라서도 못한다고 말하며, 부디 장인들이 수제화 제작에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신신당부한다.
"장인들은 고집이 다들 세기 때문에 어떤 조직이나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게 힘들거든요. 그들에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면 정말 좋지요. 장인정신을 이해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다들 모여서 얘기 나눠 보면 '마을을 형성만 해놓으면 실력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진짜 잘 만들 것'이라고들 합니다. 요즘은 배추 생산자도 자기 얼굴을 상표로 붙여서 내놓는 세월인데, 구두는 더하지 않겠습니까?"
ⓒ프레시안(손문상) |
현재 수제화 타운이 처음 들어설 때 장인들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을 기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성동구청 측에서 세운 기준은 달랐다.
"한 반년 정도 수제화 타운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샘플 작품을 갖다놓게 하는 전시 공간(쇼 윈도우, show window)이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 거죠. '거기 가보니 새로운 작품이 참 많더라' 하는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은데요. 첫 스타트가 굉장히 중요한데, 지금은 판매 위주가 되어 버렸지요."
그는 장인들에게 숨겨져 있는 도전정신을 끄집어내서 보여줄 수 있는 공간 마련이 우선 중요하다고 꼽는다. 그러면서 공장과 매장이 하나의 공간 안에 있을 수 있는 '공방'이면 참 좋겠다고 한다.
"신발을 만들면서 고객들과 얘기할 수 있는 거죠. 만드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또 수제화 제품 개발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업그레이드된 신발이 나와서 브랜드 보다 낫다는 인식이 있어야 '수제화 타운 거리'가 형성되고, 살롱 신발이 부활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게 된다면, 외국에도 우리 구두 만드는 솜씨가 알려져 사람들이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는 이탈리아 볼로냐 지방의 '아 테스토니(a.testoni)' 같은 신발을 우리라고 왜 못 만들겠느냐고 말한다.
"기술은 우리가 좋다니까요! 여건만 갖춰지면, 절대 뒤지지 않는 솜씨라고요. 단가를 안 쳐주니까 좋은 재료를 못 쓰는 거지요. 이탈리아 구두가 유명한 이유는 기술이 좋아서라기보다 재료를 좋은 것을 쓰니까요. 그쪽에서는 기계도 우리보다 좋은 것을 쓰지요. 손재주는 우리가 더 좋은데 말이지요."
또 중요한 차이가 있다. 시간 투자이다. 넉넉한 시간이 보장된다면, 구두에 들이는 정성이 배가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바로 돈이라는 말이다.
ⓒ프레시안(손문상) |
좋은 재질을 사용할 수 있는 주변 여건, 즉 들인 재료 값을 제대로 매겨주는 납품업체들이 있다면, 그리고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가치를 인정해서 공들이고 정성들인 만큼 공임을 매겨주려는 소비자들이 있다면, 좋은 구두는 탄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양영수 구두 장인은 말한다.
"그러면 낙엽으로라도 구두를 못 만들겠어요? 사람이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실패하더라도 자꾸 만들 수 있지요. 이것으로 만들어 볼까, 저것으로 만들어 볼까 하는 마음이라야 작품이 나오는 것이지요. 남들이 만드는 것 다 만들면 무슨 차별화가 생기겠습니까? 진짜 기술 있는 분들이 제대로 자기 실력 발휘할 수 있게 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당장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기술개발은 먼 나라 이야기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지원 시스템이 수제화 타운에서도 시급하다. 현재 장인들은 자기 역량의 60퍼센트 정도밖에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는 낙담했다.
"구두 제조에 손이 무지하게 많이 들어갑니다. 자재 구입하는 것만 해도 몇십 군데를 돌아야 해요. 실과 풀 등 여러 가지 부자재만 해도 종류가 96개나 되고, 전체 공정을 세어 봤더니 105번인가 됩니다. 그런 정성을 들이는데도 정말 남는 게 없어요. 게다가 대우도 못 받고요."
그와 함께 SSST 공동판매장에 들러보았다. 그는 진열대에서 자신의 회사 제품 구두를 번쩍 들어 보이며,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을 맺었다.
"실력 있는 장인들이 손으로 꿰맨 구두가 얼마나 멋진데요! 기계하고는 그 느낌이 달라요. 이런 멋진 기술을 부활시켜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배우고 싶어도 가르쳐 줄 만한 사람이 없을 겁니다. 거리든 마을이든 하나의 공간이 빨리 만들어져야 합니다."
ⓒ프레시안(손문상) |
구두장인 양영수 씨라면 재료가 무엇이든 아름답고 편한 구두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낙엽이든 깃털이든, 혹은 유리든 간에 말이다.
정말 누가 알겠는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구두회사를 찾아봤더니, 성수동 어디 구석에 자리 잡은 두 평짜리 공방이더라' 하는 말을 우리도 듣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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