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 여당 추천 이사들이 수신료를 월 400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강행 처리했다. 이날 의결대로라면 현행 2500원에서 1500원이 오르는 셈이다.
KBS 이사회는 10일 오후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 이같은 인상안을 의결했다. 이날 표결에 참석한 한진만 이사는 "그동안 여러 방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4800원은 너무 비싸지 않은가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4000원으로 맞췄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이사회에서는 내년 1월 4800원으로 올리거나, 내년 1월 4300원으로 올리고 2016년 1월 500원을 다시 올리는 방안 등을 검토해왔다.
이날 의결은 여당 추천 이사들(이길영·양성수·임정규·한진만·최양수·이병혜·이상인)의 '단독 표결'로 이뤄졌다. KBS 이사회는 지난 7월 수신료 인상안을 상정했으나 야당 측 이사들(이규환·김주언·최영묵·조준상)이 보도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 보장을 위한 '5개 국장 사후평가제'를 전제조건으로 걸며 협상을 벌였다.
4개월 간 협상에도 불구,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야당 측 이사들은 지난달 협상 결렬을 선언, 이후 모든 이사회 일정을 보이콧해왔으며, 이날도 불참했다. 여당 측 이사들은 야당 측 이사들의 이사회 불참에도 수신료 인상안 처리를 더 미룰 수 없다며 이날 이사회 일정을 강행했다.
향후 절차는 방송통신위원회 심의와 국회 승인 등이 기다리고 있다. KBS 이사회가 수신료 인상안을 의결하면, 방통위는 60일 이내에 KBS 측이 제시한 인상안을 검토하고 여기에 방통위 의견을 덧붙여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로 보내야 한다.
그러나 야당 추천 이사진 및 언론시민사회가 '공정성 담보 장치' 없는 수신료 인상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향후 일정에 진통이 예상된다.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새언론포럼 등 언론시민단체들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우롱하는 수신료 인상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권의 입맛 맞추기에만 혈안인 KBS는 국민적 합의절차는 생략한 채 오로지 수신료 인상을 강행하겠다는 오만을 부리고 있다"면서 여당 이사진을 향해 "국민적 합의도 거치지 않은 수신료 인상의결을 끝내 강행한다면 현재 내고 있는 수신료도 거부할 것임을 엄중 경고한다"고 밝혔다.
야당 추천 이사들도 곧 여당 추천 이사들의 강행 처리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야당 추천 김주언 이사는 "국회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에 정치권, 시민사회와 함께 보도 공정성, 제작 자율성 확보 방안을 마련하는 일을 성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KBS '밀어주기'… "KBS 수신료 현실화 해야"
이날 정부도 'KBS 수신료 인상'을 공언함으로써 KBS에 힘을 실어줬다.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등 3개 부처는 이날 미래부 브리핑실에서 'KBS 수신료 인상안'이 담긴 '창조경제 시대의 방송산업 발전 종합계획'을 공동 발표했다.
정부는 KBS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 32년간 2500원으로 동결돼 방송광고 경쟁을 심화시키고 지상파 광고 수익을 감소시켜 콘텐츠 투자 여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청률 경쟁에서 벗어나 공정성과 공익성을 갖춘 고품질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도록 광고 재원 비율을 줄이는 대신 수신료를 올려야 한다는 것. 정부는 KBS 수신료가 외국 대비 6분의 1에서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정부의 이같은 발표는 KBS 이사회와 정치권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수신료 인상이 최종 결정되기까지 KBS 이사회 의결과 방통위와 국회 승인 등 절차가 남은 상황에서 정부가 수신료 인상을 공언하는 것은 반대 목소리를 사전 차단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점 때문이다.
김주언 이사는 "방통위와 미래부는 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판단할 수 있겠지만, 결국 이사회 의결을 거쳐 국회 승인을 받아야하는 문제"라며 "KBS 이사회와 여야 국회의원에 대한 압박으로 비춰질 공산이 있다"고 지적했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규제 기관에서 (수신료 인상에 대한) 의견을 낼 수는 있다"면서도 "현재 논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반대 의견이 많이 나오는데 규제 기관이 수신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하는 건 KBS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독단에 날개를 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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