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은 큰 지장 없지만 직업을 갖기 힘들고 감염 우려 때문에 생선회와 같은 날음식은 전혀 먹지 못하고 술도 마시지 못한다. 차 뒷자리에 있던 시민센터 동료가 앞자리의 대화를 듣다가, 올해 초 충주로 그의 사례를 조사하러 갔을 때 사고 이전의 사진 속 성호 씨가 지금보다 거의 두 배 가까운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여서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고 말을 건네왔다. 가습기살균제는 그의 인생을 그렇게 바꿔놓았다. 살던 집을 정리하여 병원비로 충당했고 처가댁으로 들어가 신세를 지고 있다. 폐와 심장은 기증을 받지만 수술비용과 입원비로 억대의 돈이 들어가고 수술 후에는 1년 넘도록 한 달에 300만 원이 넘는 약을 복용해야 한다.
폐이식 수술받은 40대 성인남성 '폐 기능 장애 3급'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문제, 이렇게 해결하자' 토론회의 1부 피해자발언시간. 목발을 짚은 성태 씨가 나섰다. 폐이식 후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수시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고 급기야 다리 한쪽이 마비되어 장애등급까지 받았다. 병원에서 일하는 아내가 경제를 책임지고 있지만 그에게 들어가는 비용과 부담을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라며 몸과 마음은 물론 가정까지 파탄 날 지경이라고 하소연한다. 10여 명의 폐수술 사례자 중 앞에 소개한 성호 씨와 더불어 드문 성인남성 폐이식 사례다.
성호 씨와 달리 그의 경우는 폐이식 수술 후유증이 매우 심각한 상태다. 집에 매일 있지만 하나 있는 딸아이를 돌봐주지 못하는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다. 보다 못한 본가 어머니가 오셔서 집안 살림을 보살펴주시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호전되지 않아 주변의 환경이 모두 버겁고 견딜 수가 없다. 그해 겨울, 성태 씨는 필자에게 서너 차례 전화를 걸어 "또 입원했어요"라고 말을 건네 왔다. 피해대책문제가 어떻게 되어 가느냐고 묻고 싶어 전화를 했겠지만 나는 그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할 수 없어 늘 미안했다.
입원하지 않을 때 그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병원에 다녀야 하는데 공기 좋은 남양주로 이사한 뒤로는 택시를 대절해서 병원을 왕복하느라 6만 원의 교통비가 든다며 긴 한숨을 쉬었다. 국회에 피해자 증언을 하러 올 때도 택시비 걱정 때문에 망설이던 그다. 무리해서 국회증언에 나섰던 그는 그해 겨울 무려 여섯 번이나 입원했다.
이 글을 쓰다가 겨울에 들어서는데 어떻게 지내나 싶어 전화를 걸었다.
"다리는 좀 어때요?"
"발가락 3개는 아예 감각이 없어요. 신경이 끊어졌다네요"
"호흡은요?"
"3급이래요. 폐 기능이 정상의 40% 이하면 폐 기능 장애 3급이에요. 저는 30%수준이라네요. 폐이식 수술을 받으면 80%수준의 5급이 나와야 하는데 저는 이 모양이에요"
"올겨울 무사히 보내셔야죠"
"그래야죠. 헌데 병원 다니는 택시비가 이번에는 8만 원이나 나왔네요"
수시로 병원에 다녀야 하는 그에게 이번에 오른 택시비는 크나큰 부담이다. 그의 의무기록을 살펴봤다. 2011년 7월 4일 그에게 처음 증상이 나타나던 날의 기록이다. "회사에 가기 위해 걷고 있는데 갑자기 숨 찬 느낌이 들었다. 솜이 찰 때 어지러우면서 눈앞이 뿌옇게 되었다. 속도를 줄여 걸었더니 조금씩 호전되었다."
▲ 지난해 1월12일 오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가습기살균제로 아내를 잃은 세 남자가 모였다. ⓒ최예용 |
30대 산모의 죽음…아내를 잃은 세 남자들
2011년 12월 12일 이른 오후 환경보건시민센터 전화벨이 울렸다.
"우리 딸애가 아이를 가진 뒤 갑자기 숨쉬기가 어렵다고 해서 병원에 갔는데 위험하다고 하여 강제로 아이를 출산했다오. 7개월째였어요. 그리고 병원에서 다른 사람의 폐를 받아 이식수술까지 했는데 지금도 계속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사경을 헤매는 중이오. 질병관리본부인가에서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라고 했다는데 어찌하면 좋겠소?"
전화를 건 이의 목소리가 비틀거렸다. 딸아이가 병원에 입원한 뒤로 계속 술만 마신다는 친정아버지 윤 모 씨였다. 윤 씨가 전한 이야기는 환경보건시민센터 가습기살균제 피해사례 165번 '산모 환자'로 분류되어 기록됐다.
윤 씨의 딸은 3살과 9개월짜리 두 아이의 엄마 지영 씨다. 1981년생으로 2011년 당시 30살이었다. 둘째를 임신한 지 6개월째 되는 2011년 3월 초 어느 날, 첫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영 씨는 길에서 쓰러졌다. 숨쉬기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동네 아는 분이 부축해주어 겨우 집에 올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즈음 그녀는 숨이 가쁘다는 소리를 남편 이 모 씨에게 자주 했었다. 임신증상이려니 했는데 길에서 쓰러지기까지 하여 동네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를 살피던 의사는 인근 대학병원인 서울아산병원으로 바로 가보라고 권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일주일 정도 입원하여 조금 나아져서 퇴원했다. 그러다 며칠 뒤 또 나빠졌다. 병원 응급실을 찾았는데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4월 18일, 7개월짜리 아이를 강제로 출산시켰다. 아이와 산모를 모두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였다. 출산 후 산모 지영 씨의 증상이 더 나빠지자 병원에서 폐 이식을 권했다. 남편 이 씨가 고민 끝에 전화로 신청했다. 운 좋게도 신청한 지 3일 만에 폐기증자가 나타났고 곧바로 수술을 받았다. 5월 7일이었다. 두 달여간 입원한 후 7월 초 퇴원했다. 퇴원 후에도 호흡곤란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고 고열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11월 10일에는 아예 병원에 입원했다.
보름 뒤에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 후로 40여 일이 지난 2012년 1월 8일 일요일 아침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을 못 넘기실 것 같다." 한 달 여전인 2011년 12월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기를 들은 터였다.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지영 씨는 일요일을 넘겼다. 그리고 월요일도, 화요일도 버텼다. 그리고 수요일 오후 4시경 지영 씨의 호흡을 이어주던 계기가 "삐이"소리를 내며 호흡이 끊어졌음을 알렸다. 남편 이 씨가 시계를 보니 4시 20분을 막 가리키고 있었다. "병원에서 어렵다고 했던 날부터 잘 버텨와서 조금 더 있어 줄 걸로 생각했어요" 바싹 마른 입술에 하얀 백태가 앉은 이 씨가 허공을 쳐다보보며 말한다.
폐 이식수술을 받은 후인 2011년 7월 초, 퇴원하여 집에 있는데 질병관리본부 조사관이 집으로 찾아왔다. 이것저것 묻고 갔다. 가습기를 사용하는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는지도 물었다. 그 후 8월 31일 저녁 뉴스를 보면서 이 씨는 왜 아이 엄마가 저 지경이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이 씨는 2010년 3월경부터 가습기와 가습기살균제를 같이 사용해왔다.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란 제품을 동네 홈플러스에서 구입했다. 2, 3주마다 1, 2통씩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300밀리리터짜리 작은 통이다.
가습기는 주로 밤에 물이 떨어졌고 그때마다 이 씨가 싱크대에서 가습기를 헹구고 청소한 다음 통에 물을 채운 후 가습기살균제를 뚜껑에 따라서 부었다. 식구들이 한 방에서 잠을 잤고 문가의 서랍장 위에 가습기가 있었다. 가습기 쪽 가장 가까이 아빠가 주로 잤고 옆에 엄마 그리고 첫째가 끝에서 잤다. 아빠와 아이는 아직 별다른 증상이 없지만 알 수 없다. 가정주부인 엄마는 임신 중이라 매일 집에 있으면서 가습기를 쏘였다.
폐이식 수술을 하면서 1억 원을 훌쩍 넘는 경비가 발생했다. 별수가 없어 전셋집을 빼 짐을 처가댁으로 옮겼다. 그 와중에 가습기살균제 통들이 버려졌다. 가습기는 지금도 처가댁 어딘가 처박혀 있을 것이다. 물건들을 카드로 구입하여 가습기살균제 구입 영수증을 찾아두었다. 작년 말 입원한 뒤로 병원비가 4000만 원 넘게 나왔다. 이 씨는 감당할 도리가 없다. 처가에서 어떻게 해주실 거라고 생각한다. 이 씨는 하루 한 갑 정도 담배를 피운다. 그렇지만 집안에서는 안 피운다. 집에 오면 한대 정도 집 밖에서 피울 뿐이다. 약을 싫어해 거의 먹어본 일이 없다. 동갑내기 아이엄마도 건강했다.
지난해 1월 12일 정오경 두 남자가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 3호에 들어섰다. 안 모 씨와 이 모 씨다. 각각 2011년 2월과 5월에 아내를 잃은 사람들이다.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세퓨'라는 이름의 가습기살균제를 구입해 사용한 것이 이 두 남자의 공통점이다. 잠시 후 세 남자가 장례식장 밖으로 나갔다. 눈발이 날린다. "작년 2월 집사람을 떠나보냈을 때도 눈이 왔었는데…" 안 씨가 중얼거린다. "옆에서 지켜줬어?" 직업군인인 이 씨가 검은 상복을 입은, 윤 씨의 남편 이 씨에게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씨. 안 씨는 어제 아내의 위패를 모신 충북의 한 암자를 다녀와 폭음했다. 이 씨도 어젯밤 늦게 만취한 상태에서 지영 씨의 부고를 들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 인터넷 카페에서 '눈물'이란 아이디를 가진 이 모 씨의 아내가 작년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산모 6명이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서울, 수원, 청주, 대전, 광주에서 올라왔던 산모 4명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고 2명이 폐이식을 통해 살아남았었는데 지영 씨가 어제 사망하여 이제 대전에 사는 산모 한 사람만 이 세상에 남았다. 세상을 떠난 지영 씨도 생전에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 인터넷 카페에서 '두번째 인생'이란 아이디로 대책활동에 참여해왔다. 새로운 폐로 호흡하며 두 번째 인생을 꿈꾸던 지영 씨의 두 번째 삶은 겨우 일곱 달이었다.
눈발이 간간이 날리는 가운데 세 남자는 말없이 담배를 연거푸 피웠다. 영안실 3호 입구에 조화가 새로 도착했다. '삼가 故人의 冥福을 빕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 一同' 가습기살균제 피해사례 165번의 분류가 '산모 환자'에서 '산모 사망'으로 바뀌었다.
둘째 딸은 사망하고 엄마와 첫째 딸은 투병
백 모 씨 가족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입은 피해내용은 차마 글로 전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경우다. 2011년 6월 15일 엄마 백 씨가 서울아산병원에서 폐와 심장 이식을 받았다. 그리고 4일 후인 6월 19일 친정이 있는 부산에 있던 둘째 딸 주진(가명) 양이 부산대 병원에서 사망했다. 2010년생인 주진 양은 2살밖에 안됐었다. 비극은 계속되었다. 세달 후인 2011년 9월 23일 첫째 딸 영주(가명) 양은 서울아산병원에서 폐와 심장을 이식 받아야 했다. 2006년생인 영주 양은 여섯 살이었다. 도대체 백 씨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0년 1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5개월 동안 6~7통의 가습기살균제를 한방에서 사용한 것이 이유다. 동네에 있던 롯데마트에서 구입한 '와이즐렉'이란 PB상품이었다.
지난 2월 초 서울아산병원에서 백 씨와 주진 양 그리고 외할머니를 잠시 만났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영주의 상태가 어떤가요?"
"매주 모두 4, 5개과를 다니고 있어요. 폐이식 수술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이는 면역력 저하로 암의 일종인 혈액림프종이 발생했고, 이식된 폐와 심장의 기능이 모자라서 혈액에 산소를 주입해주는 신장투석을 받아요. 짜증, 우울에 조울증세가 있어 정신과 치료도 받고요. 이식부위의 흉터에 욕창 때문에 피부과도 다녀요."
"그걸 다 어떻게 견디죠? 저 어린아이가…"
"먹어야 하는 약만 7가지가 넘어요. 면역억제제, 위 보호제 2, 3가지, 신장 관련 비타민제, 우울증 치료제, 식욕촉진제, 스테로이드제, 조혈제. 그나마 뇌출혈로 인한 치료는 끝나서 다행이죠."
"식사는 잘 하나요?",
"먹는 게 어려워요. 소화를 못 시켜서 캔으로 된 영양식을 먹는데 안 먹으려고 해서 힘들어요. 올해부터 학교에 다녀야 하는데 밥 먹는 게 제일 걱정이에요. 힘들어도 일반 학교에 보내서 적응시켜 보려구요. 중증장애인 보조교사를 신청했는데 외형상의 장애학생이 우선이라고 해당이 안 된다네요."
"본인의 상태는 어떠세요?"
"영주에 비하면 저는 괜찮은 편이죠. 쉽게 피곤해지고 다리가 많이 부어요. 면역억제제, 위 보호제, 손 떨림 때문에 신경과 약도 먹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백 씨와 영주 양의 이야기를 듣기 힘들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한 가지 증상만이라도 기겁을 할 내용이 연이어졌다. 영주는 재활치료도 받아야 하는데 경비가 걱정이다. 보험사에서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장애라는 판정공문이 있어야 장애급부금이 나올 수 있다. 호흡기장애의 경우 1~3급만 지원되고 4, 5급은 안 되는데 백 씨와 영주의 경우 폐 이식을 받아서 4, 5등급이라서 역시 해당이 안 된단다.
이 글을 적다가 영주가 초등학교 1학년을 잘 마치고 있는지 궁금해져 늦은 밤이지만 문자를 보냈다.
"늦게 미안합니다. 영주 1년 동안 학교 잘 다녔지요?"
너무 늦었는지 답이 없다. 궁금하기도 하고 약간 불안하기도 한 채로 컴퓨터를 껐다. 다음날 아침 8시 반경 기다리던 문자가 왔다.
"어제 병원에서 늦게 도착해 일찍 자버렸네요.. 네.. 별 탈 없이 잘 다니고 있습니다"
'휴, 다행이다' 6살에 폐와 심장을 이식받고 살아난 영주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상징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힘들고 어려웠을 학교생활 1학년을 무사히 마친 영주에게 감사하다고 그리고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영주를 위해 보이지 않는 수고와 도움을 주었을 그의 친구들과 학교 선생님들께도 감사한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 외에도 폐 이식을 받은 후에 사망하여 부인을 잃은 남편의 이야기가 있고 딸을 잃은 후 사경을 헤매다 폐 이식을 받고 나서 극적으로 살아난 엄마의 경우도 있다. 감염을 우려하여 두문불출하고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사는 폐이식 산모의 경우도 있다. 2011년을 전후하여 한국 의료계의 폐 이식 수술 건수가 크게 증가했고 생존율도 크게 나아져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랐다고 하는데 가습기살균제 사건 덕분(?)이란다.
수원에 사는 윤수 씨는 부인이 폐 이식을 위해 기증자를 기다리다 떠나 보낸 경우다. 부인의 폐가 안 좋은 이유가 새 아파트 새 가구에서 나오는 환경오염물질 때문일 수 있다고 하여 오래된 집으로 옮기고 가구들도 모두 헌것으로 바꾸기까지 했지만 윤수 씨 부인은 폐 이식을 받아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폐이식을 받은 후 사망한 지영 씨의 인터넷카페 아이디가 '두번째 인생'이었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멍했더랬다. '기가 막히게 처절한 작명이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녀가 바랐던 두 번째 인생은 지상에서는 짧았지만 천상에서는 계속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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