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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동북아, 한국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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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동북아, 한국의 선택은?

[정욱식의 '오, 평화'] 현상유지와 현상변경의 충돌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태평양의 가장 기본적인 질서는 미국 패권 체제였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잠시 그 위상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미국은 한국, 일본, 필리핀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양자 동맹을 유지·강화하면서 워싱턴을 중심으로 부챗살 모양의 패권체제를 유지했었다. 소련이라는 공동의 위협에 맞서 워싱턴-베이징-도쿄가 손을 잡은 것도 아시아 체제의 중요한 축이었다.

그러나 미-소 냉전 종식과 소련의 붕괴, 그리고 중국의 부상이 맞물리면서 이러한 체제는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련이라는 거대한 적을 상실한 미국은 그 상실감을 부상하는 중국에서 찾으려 해왔다. 중국은 "치욕의 세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주권의 영역을 재구성하면서 세력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한때 미국의 경제패권까지 넘보던 일본은 2위 자리마저 중국에 넘겨주고는 장기 불황과 정체성의 혼란을 우경화와 군사대국화를 통해 상쇄하려고 한다. 세계 10위권의 국력을 보유한 한국과 핵을 "만능의 보검"이라고 치켜세우는 북한도 이 지역에서 만만치 않은 실력자로 등장하고 있다. 동방정책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는 러시아의 복귀 역시 잠재적이지만 중요한 변수이다.

현상유지 대 현상변경

이러한 동북아 6자 사이의 각자도생과 합종연횡의 근저에는 '현상유지 대(對) 현상변경'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충돌하고 있다. 미국이 요란하게 선보인 아시아로의 복귀(pivot to Asia), 혹은 재균형(rebalance)은 중국의 세력권을 중국 근해로 묶어두면서 미국 주도의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현상유지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재균형은 새판짜기라기보다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고려에서 나온 전술적 변화라고 볼 수 있다.

▲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호에서 한 대원이 전방을 감시하고 있다. 랴오닝호는 지난 11월 26일 취역 후 처음으로 남중국해에서 훈련을 진행했다. ⓒAP=연합뉴스

반면 이를 봉쇄 및 포위 전략으로 간주하고 있는 중국은 반접근 및 거부 전략, 즉 미·일 동맹이 중국이 새롭게 구성하려는 세력권까지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시도를 구체화하고 있다. 군비증강과 주변국들과 영유권 분쟁에 대한 공세적인 태도는 이를 위한 두 축이기도 하다.

물론 두 나라 모두 전면적 대결을 선호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은 중국이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닌 상태'로 남아 있기를 선호한다고 할 수 있고, 중국은 미국의 의도를 의심하면서도 신형대국관계라는 틀을 통해 미국의 지위를 인정하면서도 중국의 세력권도 심화·확대하려고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ADIZ) 선포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은 ADIZ 선포 직후 미국이 B-52 전폭기를 동원해 무력시위에 나섰을 때, 전투기나 정찰기를 바로 발진시키지 않고 시차를 두면서 대응하는 양태를 보였다. 미국 역시 초기에는 중국의 구역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강경 태도를 보였다가 자국 민항기 회사에게 중국에 사전 통보를 권고하는 등 다소 누그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미국은 한국이 KADIZ를 이어도 상공까지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자, 직간접적으로 자제를 당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도 중국을 자극하는 지나친 언행은 자제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미국 특유의 '이중 억제' 전략을 잘 보여준다. B-52 전폭기를 발진시켜 중국이 '게임의 법칙'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억제하려는 동시에, 한국과 일본에도 강경 대응을 자제시킴으로써 한-중, 혹은 중-일간 분쟁에 미국이 휘말리는 것을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 억제 전략은 조 바이든 부통령의 일본-중국-한국 연쇄 방문의 핵심적인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미국이 아-태 지역의 대표적인 현상유지 세력이라면, 일본은 미국의 이러한 전략에 편승하면서도 자체적으로도 '게임 체인저'가 되려고 한다. 일본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전쟁 포기와 군대 미보유를 골자로 하는 평화헌법에서 벗어나 이제는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소련(러시아)를 염두에 둔 북방 위주에서 중국을 염두에 둔 남방 위주로의 군사전략 변화이다. 두 가지 모두 전후 일본 체제의 가장 큰 변화이자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분명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잠재적인 게임 체인저가 있다. 바로 북한이다. 한미 양국의 전략적 인내, 혹은 기다리기 전략이라는 무위(無爲)의 대북정책 속에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꾸준히 증강시키고 있다. 미국의 일부 전략가들은 북한이 미국 본토까지 다다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성공하고 지금보다 3~4배의 핵무기를 보유하면 게임 체인저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만약 북한이 이러한 능력을 갖게 되면, 북한은 정전체제가 미국이나 한국에도 '안락한 소파'가 아니라 '가시방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핵 시위를 통해 선보이려고 할 것이다. 올해 초 "서울 불바다"니 "워싱턴 불바다"니 하면서 요란을 떤 것은 어쩌면 예고편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뭘 해야 하나?

이처럼 동북아를 비롯한 아-태 지역에는 현상유지와 현상변경이 맞닥뜨리면서 거대한 파고가 일어나고 있다. 동아시아의 세력 재편기 때마다 제대로 인식도, 대응도 하지 못해 최대 피해자가 되었던 한국으로선 치밀하고도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 다시 관성과 나태함으로 일관할 경우, 언제든 이 파고가 우리를 집어삼킬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네 가지를 권고하고 싶다. 첫째는 KADIZ 확대와 같은 즉자적인 정책을 자제하는 것이다. 주변국들과 충분한 협의 없이 섣불리 확대했다가는 일본과 중국에 빌미를 줄 수 있다. 일본이 독도를 JADIZ에 포함시키거나 중국이 서해까지 CADIZ를 확대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대신 냉각기를 거치면서 주변국들과의 접점을 만들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는 남북관계 정상화이다. 남북관계는 꽉 막혀 있고 북한은 게임 체인저가 되려고 하는 현실을 타파하지 못하는 한, 동아시아에서 한국은 그 국력에 걸맞지 않게 주변국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정세 안정화를 통해 주변국들이 한반도 정세 불안을 이유로 자꾸 군사적 범위를 확대하려는 시도를 차단하는 것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셋째는 6자회담의 재개이다. 한-미-일이 6자회담 재개에는 부정적이면서 북한 위협을 근거로 군사력과 동맹을 강화하고 있는 현실이야말로 중국의 가장 큰 불만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거꾸로 6자회담 재개가 한국의 대중 발언권 강화 및 6자 상호 간의 신뢰 구축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6자회담의 실무그룹에는 동북아 평화안보체제가 있기 때문에, 현상유지와 현상타파가 거대한 파열음을 내고 있는 오늘날의 혼란기를 보다 평화롭고 협력적인 미래를 도모하는데 아주 유용한 틀이 될 수 있다.

끝으로 동아시아의 여러 현안들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반민반관(트랙 1.5 형태) 형태의 포럼 창설이다. 관련국 정부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 있는 현재의 구도에선 관(官)이 주도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민(民)만 나서기에는 허전하다. 민의 솔직한 창의성과 관의 실행 능력 사이의 조합을 모색할 때라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추구할 의지와 능력은 없지만, 만만치 않은 국력과 지정학적·지경학적 위치, 그리고 주변국들 모두와 우호적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한 한국이야말로 이 프로세스를 주도할 적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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