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9개월이 지난 박근혜 정부를 보면서 언제부터인가 이 연극이 자주 떠오른다. 그렇다고 연극과 현재 상황을 풍자적으로 하나하나 연결시키려고 꺼낸 화두는 아니다. 어차피 이 연극도 주제나 내용보다는 상황과 분위기로 말한다. 아무튼 박근혜 정부는 우리로 하여금 뭔가 계속 기다리게 만드는 것 같다.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소통하는 방식이 경솔함과 실수를 동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다리고 침묵하는 방식이 가지는 장점은 아주 많다. 하지만 그 장점은 기다리고 침묵한 후에 더 나은 반응과 소통이 있어야 성립하는 법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거의 대부분 사안에 대해 말없이 침묵으로 일관한다(박창신 신부의 발언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곧바로 반응했다). 시간을 더 주면 달라질 것인지, 아니면 이러다가 5년을 보내버릴 것인지 모르겠다. 연극에서 고도가 끝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처럼 우리를 하염없이 기다리게만 하는 것은 아닌지 서서히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진보적 아젠다를 선점해서 승리했다. 국내정치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로, 외교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균형외교가 핵심이었다. 대선 전략으로도 효과적이었지만 오늘의 한국사회가 실제로 필요한 것을 비교적 정확하게 짚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대선 승리를 넘어 국가의 진정한 정책으로 추진될 것인가에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실천은커녕 적극적으로 추진되는 사안도 찾기 어렵다. 국내 정치도 그렇지만 특히나 외교정책은 화려한 여러 제안과 구상들 속에 실제적으로는 진전되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외교만큼은 잘하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는 그래서 착시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을 강경한 원칙론으로 제압(?)하고, 미국과 중국을 포함해서 세계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정상회담을 하고, 일본을 나무라듯 단호함을 보이는 대통령의 모습에 감탄이나 긍지보다 걱정이 앞선다. 또한 우아한 패션 외교와 함께 남북한 신뢰를 말하고, DMZ 안의 평화공원을 제안하고, 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하기 위해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주창하며, 한반도와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철도연결 등 쏟아내는 대형 제안들을 대하면 흥분보다 공허함이 앞선다. 겉으로는 화려한데, 안으로는 어느 하나 긍정적인 상황이 없다. 남북관계는 진전시킬 생각조차 없는 것 같고, 겨우 살아남은 개성공단은 빈사상태인데 북한의 핵능력은 점점 더 증강되고 있다. 북한 도발에 대해 강력한 보복을 말하고, 안보 강화를 얘기하면서 전시작전통제권은 못 가져오겠다고 한다. 게다가 북한과 단독으로 싸우면 질 것이라는 언급까지 안보담당자의 입에서 나오는 그야말로 모순과 부조리의 상황이다.
▲ 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한-러 정상회담 이후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정부는 나진-하산 간 철도 연결에 한국 자본 참여를 결정했다. ⓒ연합뉴스 |
60년 묵은 한미동맹의 견고함을 자랑하면서도 미국이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인정하는 동안 정부는 어떤 발언권도 행사하지 못했다. 한·일 갈등에 있어 지금까지 한국에 정서적으로 동감하던 미국이 자국 이익에 대한 고려도 있지만, 한국의 외골수 탓을 하면서 일본으로 기울고 있다. 일본은 전혀 변할 생각이 없고, 오히려 아베는 한국이 이성적인 외교게임이 가능하지 않은 나라라고 하대하는 것을 보면 명분도 실리도 모두 놓치고 있는 셈이다. 중국과의 관계회복 역시 시동은 괜찮았으나 대북 지렛대로 활용조차 못 한 채, 오히려 북·중 공조는 되살아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한국과 일부 겹치게 설정하고 이어도를 포함했다. 이제 한국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다는 이어도 상공을 지날 때마다 일본과 중국의 사전허락을 받는 매우 굴욕적인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의 관할구역에서 중·일의 우발적 충동을 목도할 수도 있다.
북한의 핵전력증강은 자신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의 차원을 넘어 동북아 역내국 모두에게 강경한 대외정책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자신의 침체와 중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낀 미국이 아시아재균형 전략으로 한국 및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시키는 빌미가 되고, 일본 역시 중국의 위협에 대비하는 군사력증강을 북한위협 대비로 포장하고 있다. 미·일의 이러한 움직임을 공세적 봉쇄로 해석하는 중국이 다시 군비증강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동북아는 군비경쟁의 안보딜레마로 끌려들어갈 공산이 크다.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선 남북관계개선이 시급한데, 박근혜 정부는 기다린다는 입장인 것 같다. 한마디로 동북아는 강대국들의 세력재편으로 인해 요동치고, 그 파고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을 나라가 바로 한반도임에도 가장 여유를 부리는 한국정부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역설이다. 과연 박근혜 정부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북한의 굴복이나 붕괴를 기다린다면 그것은 부시나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핵능력만 키웠던 이미 실패한 희망적 사고일 뿐이다.
이론적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진보정부 10년의 온건한 햇볕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강경정책 사이의 중도론이다. 원칙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전자와 다르고, 북핵문제와 남북관계 개선을 연계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후자와 다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원칙이 강조되고, 유연성 있는 대북접근이 나오지 않으면서 후자와의 간격이 좁아졌다. 북한도발이 원인제공을 한 점이 있지만, 한국정부의 대화의지는 사라지고 북한의 선제행동을 조건화하고 있다. 그 결과 신뢰프로세스가 한국정부의 이니셔티브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주도권이 넘어가 버렸다. 북한이 신뢰받을 행동을 하지 않을 경우 우리의 다음 대안은 없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에 끌려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미국이 한국정부의 신뢰프로세스를 지지하는 모양새를 취하고는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미국이 은근한 압력을 행사해 왔다. 지난번 한미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의회연구소 보고서나 <포린 폴리시>도 거론했듯이 미국은 한국의 신뢰프로세스가 표방하는 대북원칙론과 대화론의 상충을 의아해했다. 이를 인지한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무조건적 화해정책이 아니라, 미국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행동에는 보상이 없다는 원칙론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미국의 의심을 해소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에 따라 북한이 변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와 유사해져 버렸다.
북한문제에 대한 적극적 해결의지 없이는 박근혜 정부의 화려한 아젠다들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아시아 패러독스의 해소를 위해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라는 다자협력체를 구성하자는 것도 양자동맹의 진영외교에 대한 대안으로서 당위성과 가치가 충분하다. 그런데 남북의 묶인 끈을 풀지 않는다면 다자기구가 대북압력기구로 이용되거나 아니면 유명무실해질 뿐이다. 러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유럽까지 연결된다는 장대한 철도계획도 남북이 막히면 의미가 없다. 이 모든 거대 프로젝트들이 시작되어야 할 한반도에는 아무것도 진행되고 있지 않다.
지난 4월 글로벌연구소의 소장 리처드 돕스 매킨지가 한국을 '뜨거워지는 냄비 속의 개구리'라고 표현해서 세간의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이것이 제조업의 성공에만 안주함으로써 위기를 인식하지 못한 한국경제의 숨은 약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지만, 위기불감증은 외교분야에서 더 심각하다. 이렇게 가다가는 끓어오르는 동북아 상황에 한반도는 익어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국가 간 신뢰가 힘든 것이 국제정치인데, 그 속에서도 상대를 설득해 국익을 실현하는 것이 진짜 외교이고 또 외교력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정부처럼 이미 신뢰할 수 있는 편한 상대들만 골라서 만나고, 신뢰하지 못하는 일본이나 북한은 아예 만나지도 않는 것은 스스로 외교무대에서 주요 행위자가 되기를 포기하는 외교 부재에 가깝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블라디미르는 "정말 끔찍한 것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야"라는 대사를 읊조린다. 한국외교의 역설과 부조리 속에서는 어쩌면 생각을 하고 산다는 것이 더 끔찍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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