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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수습생 시급 3000원…언제까지 '파이'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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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수습생 시급 3000원…언제까지 '파이'타령?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안정적인 일자리, 어떻게 만들어졌나 ③

(지난 편에서 이어집니다. ☞ 지난 편 보기)

지난 편의 '미용사 되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왜 수습생을 1명만 선발하는지 궁금했다. 시청자로서 보기에 그 미용실에서 3명을 모두 뽑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직업교육의 자리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공인한 것이고, 또 노사정(관련 부처, 사용자와 노조)이 서로 협의를 통해 일자리 수를 적절하게 조절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자 이해가 되었다. 특히 연방정부는 직업의 종류를 인증하고, 각 직종에 대한 훈련과 시험의 요건을 규정하며, 직업교육을 둘러싼 각 이해 당사자들의 역할과 권한 등을 조정한다.

만약 텔레비전에 나온 미용실에서 수습생으로 3명을 모두 고용한다면 기존 고객의 수는 일정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임금을 주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1명만 고용한 것이다. 그러면 자리를 얻지 못한 나머지 2명은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최악의 경우 복지제도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며 새로운 자리를 구하면 된다. 즉 안정된 일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는 말이다.

이는 지난 2월 언론에 보도된 한국의 미용실 상황과는 아주 대비되는 모습이다. 청년노동의 질 향상을 위해 만든 단체인 '청년유니온'이 발표한 '미용실 보조노동자 근로조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용실 인턴의 평균 월 급여가 93만 원, 주당 근무시간은 약 65시간, 평균 시급은 최저임금 (올해 기준 4860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3000원 미만이었다고 한다. 조사했던 전국 200여 개의 미용실 가운데 최저임금 이상으로 시급을 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미용실 인턴으로 일했던 사람들은 그와 같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도 괜찮았던 것일까? 그들이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그 열악하고 부당한 근로조건을 감수한 이유는 무엇일까?

▲ 청년유니온이 지난 4월 25일 서울 을지로 고용노동부 서울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용업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무리 부당한 조건이라도 거부할 처지가 안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간혹 그렇게 적은 돈을 받고 어떻게 일을 하느냐는 배부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그 사람이 그 일을 하고 싶어서 하겠는가? 생계가 막막한데 어떻게 조건을 따질 수 있을 것인가? 집안이 부유한데 미용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일단 열악한 조건의 자리는 거부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아무리 열악한 조건이라도 거부할 수가 없을 것이다. 즉 대등한 경제주체로서 거래할 수 있는 '경쟁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을'의 입장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을에게 갑이 제시하는 부당한 조건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국가가 을의 최저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그러면 미용실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급여를 줄 경우에는 그 자리를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러한 복지제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구직자들은 사실상 갑의 횡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안정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모든 사회구성원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복지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억지로 최저임금을 높이려는 노력보다도 국가가 개인의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면 최저임금은 저절로 올라갈 것이다. 고용시장에 나오는 일자리는 자연스럽게 최저생계비 이상의 급여를 주는 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도 그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상황이 바로 그러하다. 실제로 독일에는 아직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이 없다. 임금의 결정은 정부의 개입을 배제한 체 노사 간 자율적인 협상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서 정해진 임금수준이 각각의 해당산업에서 최저임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를 '임금협상의 자율성'이라고 하는데, 이는 기본법(독일의 헌법) 제9조 3항(단체, 결사의 자유)에 의해 보장되어 있다.

이 조항에는 누구든지, 어떤 직업이든지 근로조건이나 임금조건을 지원하고 지키기 위한 단체를 구성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 이러한 권리를 제한하거나 방해하기 위한 모든 행위는 무효이거나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노사 간 협의를 통한 최저임금의 결정과 부당한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는 복지제도의 발달은 독일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본배경이 된다.

한편, 독일에서도 최근 들어 최저임금제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점차 가열되고 있다. 지난 9월 총선에서 사민당과 녹색당은 독일 전역에서 일률적으로 시간당 8.50유로(약 1만2000원)의 최저임금제 도입을 주장했었다. 좌파당은 10.50유로(약 1만5000원)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반면에 기민당은 지역별, 산업별 최저임금을 검토하자는 입장이었다. 현재 기민당과 사민당이 대연정을 모색하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할 지 협상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우리의 상황을 잘사는 독일과 바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도 나중에 좀 더 잘 살게 되면 독일처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기도 한다. 결단코 그렇지가 않다. 지금 하지 못하는 일은 더 잘 살게 된 다음에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되면 비록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바로 그 방향으로는 가야 한다. 지난 수십 년간 파이를 좀 더 키워야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도대체 파이가 얼마만큼이 되어야 커졌다고 할 것인가?

현재 상황은 파이가 아니라 양극화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앞으로 독일의 사회복지제도나 노조문제 등에 대해서 살펴보면, 그들이 잘 살게 된 다음에 그러한 제도들을 만든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하지 못하게 한 '해고보호법'이란 것이 있다. 과연 독일인들이 이 법을 언제 만들었는지 다음 편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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