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합진보당에 대해 정부가 위헌정당 해산심판을 청구한 것은 자유당 시절 진보당을 해산시킨 사례를 능가하는 적나라한 국가폭력이다. 그것은 자유의 적에 대해서는 자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전투적 민주주의로 포장한 채 종북담론으로 야기된 정치적 폭력의 극단을 달린다. 스스로 톨레랑스의 적이 되어 대중적 저항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런 처사는 국정원 등 수많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으로 인해 촉발된 현 정권의 위기상황이 그 직접적인 원인으로 읽힌다. 하지만, 엄밀히 보자면 1987년 민주화의 성과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터에 1991년 5월 투쟁까지도 공안정국에 의해 돌파당한 진보진영으로서는 항상 겪어야 하는 일상화된 폭력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정당을 포함한, '결사의 자유는 다원주의적인 민주주의의 시금석'이라는 유럽평의회 산하 베니스위원회의 선언은 이런 행태가 추악한 국가폭력에 불과함을 잘 보여준다.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는, '진보적 민주주의'든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된 사회'든 그에 대한 판단은 토론과 경쟁을 거친 시민사회의 선택대상으로 남겨둘 일이지 일시적 다수 정파에 불과한 정부의 몫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엄한 명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럽인권재판소가 분리주의정당이나 좌파정당들을 해산시킨 터키와 불가리아에 대해 하나같이 인권규약 위반으로 판단하였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테러활동을 지원하거나 혹은 신정주의를 외치며 다원주의를 부정하는 실질적 위험을 발생시킨 경우가 아닌 한, 아무리 헌법 개정을 외치며 체제혁신을 주장하더라도 국가는 관용하며 시민사회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이념과 주장을 가진 정당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민주주의의 실체라는 것은 그런 결정을 뒷받침하는 굳건한 신념이다.
정당의 해산은 "극도로 자제되어야 한다"는 베니스위원회의 선언은 이런 믿음으로부터 파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부의 심판청구가 명백히 부당함을 드러낸다. 통합진보당의 강령에서 체제전복의 목적도 확정하지 못하고, 그 활동에서 폭력성도 적발해내지 못한 채, 몇 가지의 단어나 어구들이 북한의 그것과 일치하거나 일치하는 것으로 읽어낼 수 있다는 판단만으로 섣부른 심판청구를 하였기 때문이다. 혹은 이런 극단적 자제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심판청구를 한 것은 대중적 지지가 약해진 통합진보당을 희생양 삼아 국가기관들의 선거개입에 대한 국민적 항의를 우회하려는 전략 때문이라는 음모론적 비판조차 가능할 수 있게 한다.
대체로 정당해산제도는 스페인처럼 정당의 활동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와 독일·터키, 우리나라와 같이 정당의 목적까지도 위헌 여부의 판단대상으로 삼는 경우로 나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도 그 목표는 뜬구름 잡는 식의 미래계획까지도 다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헌법체제에 대한 실질적인 위험이 존재할 때에만 그러하다. 즉, 위헌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① 목적요건(민주적 기본질서 파괴목적이 확정적, 항시적으로 존재), ② 계획요건(목적의 실현을 위한 확정된 계획이 존재), ③ 활동요건(목적이 정치행위로 명백히 표출되거나 그와 밀접한 연관을 가짐) 등이 충족되어야 하며 ④ 이 요건은 높은 수준의 증거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 이로 인하여 ⑤ 민주주의에 실질적 위험이 야기되어야 하며, ⑥ 그 위험과 정당해산 사이에는 법익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이 이날 국무회의를 통과한 것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하지만, 통합진보당의 경우는 이런 구시대적인 전투적 민주주의의 개념에 입각한 정당해산요건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이미 한 세기 전부터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던 이념이며,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은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도모하는 우리 헌법도 인정하는 지향점이다. 더구나 이의 실현계획을 47개의 항목으로 구체화한 당 강령 또한, 특권부패 정치구조 척결, 민생중심의 자주자립 경제체제 실현, 연대와 참여를 통한 복지공동체 구현, 노동이 존중받고 민중생존권이 보장되는 경제적 평등사회실현, 진정한 성 평등 세상 만들기, 정의와 평등이 실현되고 지속가능한 사회체제, 자주와 평화가 보장되는 한반도, 민족의 통일체제 등 우리 헌법에 저촉된다고 볼 사항은 전혀 없다. 더러 북한과 유사한 형태의 조어법이나 지향점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이를 두고 위헌정당의 요건 충족 운운하는 것은 전형적인 유추해석이자 그에 의한 자의적 법집행이라는 비난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몇 가지 간첩사건과의 연계성 또한 막연한 추론에 기반 할 따름이다).
나아가 베니스위원회는 "폭력의 사용을 주장하거나 민주적 헌정질서를 전복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정당만을 위헌정당으로 해산시킬 수 있다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의 경우에는 그 활동이 폭력적이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것이라는 증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한 착안점이 소위 R.O의 존재인데, 이와 관련한 재판은 이제 막 시작하였을 뿐 그 실체나 목표, 활동 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입증된 바 없다. 더구나 이 R.O와 통합진보당의 관계는 공소사실과 무관한 만큼 재판에서 제대로 다루어질지도 불확실하다.
요컨대, 정부가 제시하는 위헌정당의 혐의는 대부분 '해석'이나 유추에 의한 것이며 그 어느 것도 '소명' 정도에도 못 미친 자의적 판단에 불과하다. 더구나 그런 정부 주장에서도 통합진보당의 이런 사실관계가 우리 헌법체계에 어떤, 어느 정도의 위험을 야기하는지가 불확실하다. 통합진보당의 목표가 이루어진다 해서 우리 헌법체제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 정강들은 헌법 수준의 담론이라기보다는 기껏해야 국가계획 수준의 정책지향 혹은 정치목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부는 서독 사회주의제국당의 해산사건을 의식한 듯, '차세대 종북세력 양성 가능성'이라는 위험을 제시하지만 이 또한 어불성설이다. 종북의 개념도 특정되지 못한 상태에 더하여, 서독의 이 신나치주의 정당처럼 청소년조직을 구성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 후세대 지지 세력을 확보해 나간 사실이 통합진보당의 경우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겨우 소위 R.O의 폭력행사 음모 관련 기소 사실인데, 이조차도 그 실현 가능성은 접어두더라도 그것과 통합진보당의 의지나 활동과 어떤 연관을 가지는지는 전혀 입증도 소명도 되지 않았다. 즉, "정당에 의하여 권한을 부여받지 않은 구성원들의 개별적 행위에 대하여 전체로서의 정당에 대해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는 베니스위원회의 지침이 여전히 타당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의 심판청구행위는 시종일관 정당한 근거를 상실한다.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의 핵심이 되는 정당에 관한 한 국가개입은 가장 예외적으로, 그리고 가장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은 정당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것을 지엄한 헌법 명령으로 규정하면서 정당의 설립이나 가입을 규제하는 입법을 극히 좁은 영역 안에서만 허용하고자 하는 우리 헌법재판소(99헌바135)의 입장에서도 추론될 수 있다. 위헌정당해산제도는 '되도록 민주적 정치과정의 개방성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려는 헌법의지의 발현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정부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는 설익은 논리와 미진한 증거, 그리고 어설픈 종북 담론과 편향된 정치조작 등의 반(反)법치적, 반(反)헌법적 판단으로부터 연유한 폭력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족하다. 자유의 적을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전투적 민주주의가 자칫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폭력으로 변질되듯, 정부의 이번 처사는 우리 민주질서가 기반 하여야 할 정치적 다원성의 요청을 근저에서부터 부정하는 행태로 일그러진다.
톨레랑스를 부정하는 폭력, 그것은 결코 톨레랑스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국가폭력이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불안정한 상태에 빠뜨리고 있는 이 청구에 대해 하루라도 빨리 심리 종결하고 기각결정을 내리는 것이 정당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우리 헌법의 정신에 충실한 판단일 것이다. 나아가 우리들 또한 1987년 체제의 민주화에 대해 너무도 일찍 터뜨린 샴페인의 흔적은 이제 새로운 앵톨레랑스를 복권시키기 위한 저항의 결단으로써 지워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부의 위헌정당 해산심판청구는 우리가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에 너무도 큰 상처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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