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인 것이 더 현실적이다." 이리 말하면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이 땅에서 '급진'은 '과격', '환상', '종북' 등으로 매도되었으며, 이에 동의하는 사람조차 '비현실적'이라는 비판 앞에서는 오금이 굳었다. 과연 그런가.
22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국민 혈세만 낭비한 4대강 사업을 보자. 지금 이 순간에도 상류로부터 쓸려온 모래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를 다시 준설하는 비용만 매년 2조 원이 들어간다. 물은 흐르면서 이온작용, 미생물의 활동, 식물의 대사활동 등으로 정화한다. 막히는 순간 물이 썩는 것은 정한 이치, '녹차라떼'는 당연한 귀결이다. 수천 억 원을 투여한다 하더라도 흐르면서 맑게 유지되던 그 강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반면에 16개 보를 폭파공법으로 해체하는 데 2000억 원밖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강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복원력이 강하다. 보만 사라지면, 강은 깎기도 하고 쌓기도 하며 스스로 제 물길을 되찾고, 이온과 모래와 미생물이 어우러지며 저절로 제 몸을 맑게 한다.
교육문제도 마찬가지다. 정권마다 교육정책을 내놓았다. 입시를 바꾸고 사교육과 학교 폭력 근절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성공한 정권은 없었다. 모두 미봉책이었기 때문이다. 명문대 위주의 대학서열이 존재하는 한, 그 어떤 입시나 교육도 1%의 관문을 놓고 99%가 싸우는 전쟁터가 될 것이며, 그곳에 협력과 공감과 우애의 가치가 깃들 수 없다. 국가에서 어떤 정책을 내놓더라도 사설학원을 비롯한 교육마피아들은 그 정책을 유명무실화하는 대안을 내놓는다. 하지만, 교양대학을 운영하고 국립대학을 네트워크하며, 재정지원을 매개로 대학을 특성화하여 대학 서열화를 해체한 후, 대학입시를 철폐하고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 같은 자격시험으로 대체하면 이런 문제들이 일시에 사라진다.
남북한 사이에 국지전을 끝내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만드는 방안도 남북 교류와 협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북한에 전제 조건으로 핵 포기를 주문하지만, 이는 기관단총을 겨누고 있는 상대방에 맞서서 활을 들고 있는 이를 향하여 활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과 유사하다. 2011년 기준으로 남한이 북한보다 GNI 39배, 1인당 GNI 19배, 무역 212배, 국방비 지출 32배에 달한다. 게다가 이라크와 리비아를 초토화한 미국이 뒤를 받치고 있으며, 미국의 전략에는 언제든 북한을 섬멸해버린다는 작전계획이 있고, 실제로 미국은 두 차례나 북한을 폭격하려다가 막판에 중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까지 어려운 북한이 최소비용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핵이다. 현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을 보장하는 내용의 평화협정 체결과 북한 핵을 맞바꾸는 것밖에 없다. 이는 6자회담을 통해 가능하다.
한국 사회의 최대 모순이자 현안인 비정규직 문제에서도 급진적인 대안밖에 없다. 일자리 창출, 시간제 일자리,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 모두 미봉책이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철폐를 주장하면 좌파적 발상이니, 비현실적 대안이니 하며 비판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를 도입하기 시작한 김영삼 정권 이전의 정권이 좌파 정권이었는가. <시사저널>이 조사하여 2012년 10월 31일에 발표한 것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상위 30개 기업을 대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소요되는 비용을 조사한 결과, 추가 비용은 7900억 원이었다. 이는 해당기업이 지난해 올린 당기순이익 49조7000억 원의 1.5%에 지나지 않는다. 업종, 기업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기업이 번 것의 1.5%만 투자하면 860만 명의 비정규직과 그 가족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 회사 측에 물어보면, 비용 때문이 아니라 효율성 때문이라 답한다. 결국 경영자가 자신들의 이해관계나 회사 사정에 따라 마음대로 노동자를 통제하거나 관리하기 위하여 비정규직을 존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와 시민, 자본, 정부가 모여 대칭적인 권력 관계에서 토론을 하여 계절노동과 같은 특수한 분야를 제하고는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사회적 합의를 하고 이를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대선의 부정과 국정원의 선거 개입도 급진적 대안이 필요하다. 야권의 주장대로 국정원을 개혁한다고 하더라도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과 선거 개입을 불식시킬 수 없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의 문제다. 지금 대의민주제는 '구조적 불의'의 시스템일 뿐이다. 경제자본이 우선이고, 여기에 상징자본, 사회자본, 문화자본이 많은 이들이 대표가 되어 자신을 비롯한 권력층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정책이나 법을 제도화하고 있다. 노동자가 2000만 명에 달하고, 국민 가운데 보수:중도:진보의 비율이 대략 4:3:3의 비율인데, 실제 정당 지지율과 국회의원 가운데 진보정당이 차지하는 비율은 3%에서 10%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한다. 현실과 정치적 재현 사이에 심한 괴리가 존재하기에, 노동자와 서민의 의사는 정치로 수렴되지 않는다.
대안은 시민주권을 바탕으로 한 참여민주제다. 민주주의는 공공영역에서 권력이 평등한 가운데 모든 시민의 의사가 자유로이 표현되고 수렴되어 정책으로 전환되면서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독점을 깨는 체제여야 한다. 이런 체제 하에서 국정원은 시민위원회의 통제를 받게 하고, 중앙 및 지역의 검찰 수장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여 국민 주권을 절차적으로 확립하는 한편, 검찰이 국민의 권리를 의식하여 정의를 집행하도록 견제해야 한다.
서양의 실체론과 이분법적 사고에서는 극과 극은 반대다. 하지만, 동양의 관계론과 퍼지(fuzzy)의 사유체계에서는 극과 극은 통한다. 파란 태극 안에 빨강 태극이 들어 있고, 빨강 태극 안에 파란 태극이 들어있다. 팔을 펴는 것을 양, 굽히는 것을 음이라 하면, 굽히는 극에 이르면 펴는 힘이 작용한다. 그러니 극에 이르면 반드시 되돌아오고(物極必反),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는 것이다.[窮則變 變則通] 중요한 것은 원형이정(元亨利貞), 요새 식으로 말하여 올바른 도리를 따랐느냐는 점이다. 검찰, 군대, 국정원, 언론을 한 손에 장악한 현 정권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시간이 문제일 뿐, 4대강에서 참여 민주제, 나아가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극에 달하는 순간 올바른 도리에 따라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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