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규제 때문에 투자하기 힘들다고 말해 온 재계를 무색케 하는 실증자료가 나왔다.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를 적용받는 대기업집단 계열사들 대부분이 출자여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기업들의 자금 유보율이 60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출총제는 기업의 투자와 상관관계가 적다"
21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4월 현재 출총제 규제를 받는 14개 기업집단의 출자여력(출총제를 위반하지 않으면서 추가로 출자할 수 있는 금액)은 20조4860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금액은 지난 2004년의 약 7조 원에 비해 3배에 근접하는 것일 뿐 아니라 지난해의 약 10조 원에 비해도 2배를 넘는 수준이다.
대기업집단별 출자여력은 삼성 10조950억 원, 현대자동차 3조8940억 원, 롯데 2조6250억 원, SK 1조9850억 원, GS 4120억 원 순으로 나타났다.
또 출총제 대상 기업집단의 463개 계열사 중 출총제를 적용받지 않거나 출자할 여력이 있는 기업은 405개(87.5%)에 달했다. 나아가 출자여력이 순자산의 10% 이상 남아 있는 기업집단도 삼성, 현대자동차 등 8개 집단으로 파악됐다.
반면 출총제로 인해 계열사에 대한 추가 출자가 불가능한 기업은 58개(12.5%)에 그쳤다. 기업집단별로 살펴보면 이런 기업은 CJ그룹이 14개로 가장 많았고, 이어 한화그룹이 7개, 금호아시아나 6개, SK그룹과 롯데그룹 각 5개 순이었다.
이런 출자여력의 현황은 기업들이 그동안 투자가 힘들었다는 재계의 주장이 설령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출종제가 그 이유가 될 수는 없음을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출자가 투자의 한 형태라고 볼 때, 그동안 출총제 탓을 한 재계의 주장은 그 근거가 없음이 이번에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는 이날 이같은 점을 지적하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에서 "촐총제가 기업투자의 걸림돌이라는 재계와 경제부처 관료, 일부 언론의 주장은 실증적 근거가 빈약한 이데올로기 공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돈 벌어도 투자 안 해…상장기업의 평균 내부유보율 600% 넘어
한편 기업들의 자금 유보율이 600%를 넘어섰다는 발표도 나왔다. 유보율은 잉여금을 자본금으로 나눈 비율을 가리키는데 유보율이 높을수록 기업의 재무 건전성이 양호하다는 말인 동시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기보다는 기업 내에 돈을 쌓아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날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12월 결산 제조업체 중 관리종목 등을 제외한 535개 사의 9월 말 현재 유보율은 평균 609%로 나타났다. 유보율 변동 추이를 보면, 지난해 말 569%에서 지난 3월 말 578%, 6월 말 592%로 점차 증가해 왔다.
특히 10대 그룹의 경우에는 유보율이 71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그룹별로 살펴보면 삼성그룹이 9개월 사이에 113.5% 늘어난 1276.9%로 가장 높은 유보율을 보였고, SK그룹이 1200.1%로 그 뒤를 이었다. 이밖에도 현대중공업이 892.7%, 한진그룹이 791.5%, 현대자동차가 522.1%, GS그룹이 461.1% 등의 유보율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주주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기업들이 보수적 경영 기조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면서, 장기적으로 이런 현상이 기업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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